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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0

       “이제 조금만 있으면 끝이네.”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사라는 여전히 조금 불안한 표정이었다. 의식 안의 사라는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표정도 다양했다. 솔직히, 게임에서 묘사되었던 것처럼 악랄한 악녀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금 약하고 여린 소녀 한 명이었을 뿐.

        

       “끝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불안해.”

        

       내 옆에 앉은 사라가 대답했다. 평소처럼 딱 달라붙어 있지는 않았다. 한 뼘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기에, 사라는 더 외롭고 약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쉽게 사라를 안아줄 수 없었다.

        

       사라가 이렇게 스스로 거리를 두고 앉았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할 것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아무리 생각을 정리했다고 하더라도, 최나경이 사라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며칠 안에 모든 것이 끝난다고 하면 기분이 싱숭생숭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 사람은 내 유년기를 자기 것으로 생각하던 사람이잖아.”

        

       가만히 듣고만 있는 나에게, 사라가 천천히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없어지면, 내 유년기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어져. 친구도 없었고, 사실상 가족도 없었고.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저 방 안에 혼자 남아있던 외톨이. 내 기억 속에는 혼자인 나만 남게 돼.”

        

       “…….”

        

       내가 사라에게 뭐라고 해줘야 할까.

        

       아무리 그렇더라도 죄는 심판받아야 하는 것이고, 최나경이 저지른 죄는 그저 용서하고 지나가기에는 너무 큰 것이라고? 너의 유년기를 집어삼킨 그녀가 증오스럽지 않냐고? 최나경이 사라져야 앞으로 우리의 삶이 훨씬 더 밝아질 거라고?

        

       아니, 어떤 말도 사라를 위로할 수는 없으리라.

        

       어린 시절을 모두 바쳐서…… 아니, 사실 생각해보면 사라가 확실하게 행복하다고 느꼈던 것은 요 몇 개월 사이뿐이다. 단순히 유년기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다. 올해 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나는 이 세상에 없었다.

        

       사라 입장에서는, 지금 이 상황이 ‘자기 인생의 전부’를 부정하는 것처럼도 보였을 것이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사람이, 내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지면…… 지금까지의 내 삶이 거짓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물론 사라가 이런 고민을 내놓았던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은 아니다. 사라 스스로 최나경과 연을 끊으려고 하기도 했었고, 한 번 납치된 이후로는 최나경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끊어버렸으니까.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직 일이 끝나지는 않았던 때와 이제는 일을 끝내는 것을 앞둔 상황은 다르다.

        

       “……착각하지 마. 속은 후련하니까.”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사라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후련해서 그래. 후련해서.”

        

       “너무 후련하다는 게 문제구나.”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을 가로막던 것을 치워내는데, 정작 자기 인생의 전부가 그 장애물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거니까.

        

       만약 그 장애물을 치워내는 것이 혼자의 힘으로 해낸 것이라면 이 후련함도 그저 성취감 하나만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라는 결국 모든 것을 포기했던 아이니까. 내가 자기 몸에 들어온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너무 나간 생각이다.

        

       뭐, 내가 사라의 삶에 있어서 꽤 중요한 인물이고, 많은 일을 해 주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적어도 내 주변에 있는 아이 중에서 나를 좋아하는 이유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사라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사라 본인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모두 쓸데없는 짓이 되었을 것이다.

        

       아니, 제대로 시도조차 하지 못했겠지.

        

       사실 지금 당장 내가 이 자리에서 사라지더라도 사라는 모든 것을 잘해 나갈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미래만 봐야지.”

        

       그래서, 나는 사라에게 말해주었다.

        

       “지금까지의 일은 어쩔 수 없어.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나더라도, 우리 손에 남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잖아.”

        

       하늘이도, 소희도, 수아도. 그리고 아름이도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양혜인도 우리를 굳이 떠나지는 않을 거고.

        

       학교에서도 새로운 친구를 계속 사귈 수 있을 거다. 최나경이 만들어둔 우리는 이미 깨진 지 오래니까.

        

       아직 사라는 실감할 수 없겠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살아갈 날이 아주 길게 남아있으니까.

        

       “그렇구나.”

        

       사라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러네.”

        

       그리고 내 쪽으로 다가와 앉았다.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면서, 사라는 말했다.

        

       “맞아. 우리는 앞으로도, 쭉 함께니까.”

        

       “그래.”

        

       나는 그 말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맞아. 계속 이렇게 있을 거니까.”

        

       그리고 그렇게 말하며, 사라가 기댄 쪽의 팔을 움직여 사라를 안아주었다.

        

       사라는 그대로 한참 동안 말없이 내 품에 안겨있었다.

        

       우리가 다시 깨어날 때까지.

        

       *

        

       비가 올 줄은 몰랐는데.

        

       분명 잠이 들 때만 하더라도 하늘은 맑았던 것 같다. 빨간 노을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쏴, 하고, 낮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수준으로 마구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동안 그대로 그렇게 누워있었다.

        

       하긴, 날씨가 덥고 습하기는 했다. 여름은 항상 그러니까. 저게 장마인지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걱정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지금 당장은 밖에 나갈 필요도 없는걸.

        

       “…….”

        

       더 잠이 오지는 않았다. 조금 전까지의 포옹이 계속 몸에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계속, 계속 그렇게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서, 몸을 일으켰다. 병실의 커튼을 치지 않고 잠이 들었기에 창으로는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고 있었으므로 아주 강한 빛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환한 달빛은 보이지 않았으므로. 병원 근처의 가로등 불빛 정도만 희미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병원 근처에는 지역을 통과하는 꽤 넓은 도로가 하나 있었지만, 두꺼운 창문 너머로 들리는 것은 빗소리뿐이었다. 아마 차가 지나가도 거기에 소리가 묻히는 것 같다.

        

       천천히 걸어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거기 그대로 서서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멀리 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이기는 했다. 아마 읍내에서도 아직 깨어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은 그 자체로 잠든 것처럼 조용했다.

        

       한동안 그렇게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찰칵,

        

       하고, 작은 소리가 들렸다. 텅 빈 방에서 아무 원인도 없이 들릴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손잡이가 돌아가면서 몇 번 덜컹거렸다. 마치 잠겨있다는 것을 확인하듯.

        

       만약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여기에 갇혀 있었다면…… 그러니까 ‘최나경’의 생각대로 이 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한 상황이었다면, 엄청나게 무서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저 문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

        

       몇 번 정도 더 찰칵거리는 소리가 이어진 뒤에야, 문이 열렸다.

        

       강제로 여는 소리는 아니었다. 아마 열쇠를 가지고 있었겠지.

        

       “…….”

       “…….”

        

       병원 복도도 불이 꺼져있었기에, 나는 문 너머에 있는 존재의 인영 정도만 겨우 볼 수 있었다.

        

       “사라야.”

        

       하지만 그 인영으로도, 상대가 누구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아주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을 몸매였다. 어쩌면 오히려 그것 때문에 귀신이나 유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남편도 없으면서, 그리고 언론에 굳이 얼굴을 드러내는 일도 많지 않으면서, 마치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듯 열심히 몸매를 가꾸고 열심히 화장을 하고 다니는 한 여성.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기 수양딸에게 성적인 관심이 있던, 제정신이 아닌 여자.

        

       인영이 내 쪽으로 한 걸음씩 다가온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 속으로 한 걸음씩 다가오는 그녀는, 오늘도 완벽한 모습이었다.

        

       아니, 평소만큼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잘 먹지 못했는지 볼이 살짝 들어가 있었다. 눈 밑에는 화장으로도 미처 가릴 수 없는 눈그늘이 진하게 남아있었고, 머리카락도 조금 푸석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리라.

        

       자기 딸,

        

       그러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고 천천히 준비했겠지.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니까.

        

       ……차라리.

        

       차라리, 그걸 조금만 더 일찍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저지른 잘못은 시간이 지나도 치우지 않는 이상 거기에 그대로 남아있는 법이었으니까.

        

       “사라…… 맞니?”

        

       가해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딸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낸다.

        

       그 목소리를 듣고 감탄했다.

        

       저건 연기도 뭣도 아니리라. 그저 진심으로 자기 딸을 걱정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관계를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계속 생각해봤어요.”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이 그날 했던 말이 뭐였는지. 그날, 그 사람에게 했던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아닌, 그러니까, 저 사람이 알고 있는 내가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 같던 말.

        

       마치 나와 다른 사람을 헷갈리는 듯한,

        

       아니, 겹쳐 보이는 것 같던 그 말.

        

       그 사람의 기억 안에서,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내기 위해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하지만 그 말만큼은 무슨 뜻인지 끝까지 알아낼 수 없었다.

        

       “헤어지기 전에, 그게 무슨 뜻이었는지, 가르쳐줄 수 있을까요?”

        

       더 이상, 나는 저 사람을 봐도 가슴이 뛰지 않았다.

        

       그래. 그 사람 말대로다.

        

       나의 과거를, 확실하게 끝마칠 이유가, 지금의 나에게는 넘쳐흐르도록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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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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