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50

     지브롤터의 방침이 정해진 이상, 나머지는 자연사를 기다리면 될 일이다.

     누군가는 ‘그거 그냥 제거하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할 수 있다.

     리스크를 두고 그 리스크가 터지기를 기다리기만 할 게 아니라, 직접 수술용 칼날을 들고 위험을 마주하여 미리 터뜨리는 것이 방법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가령, 동굴이 무너지는 경우.

     그냥 동굴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어떤 이들이 동굴을 강제로 무너뜨리는 수작을 부리는 경우.

     가능은 하다.

     하지만 그걸 선택하려고 했다면, 나는 진작 렘버리에서 발자크 남작을 위한 석관을 준비했을 것이다.

     ‘마법 때문에 안 돼.’

     노스트럼에는 마법사가 있다.

     과거 세빌리야에서 전 영주가 죽었을 때 마법으로 그 죽음의 과정을 파헤친 것처럼, 사건 재현 마법을 통해 마나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죽음의 과정을 추측하는 마법이 존재한다.

     ‘자연사인지 암살인지 구분은 확실하게 할 수 있으니까.’

     이 마법 때문에 제국처럼 경찰력이라거나 추리라거나 하는 부분이 그다지 발전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죽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죽었는지 살해당했는지는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어 국가 운영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

     과거의 순간에 대한 마나의 기억을 읽어내는 마법.

     이미 지나간 시간을 마나의 흔적으로 그대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여러 암살자들이 성토하는 마법이지만, 그 덕분에 노스트럼은 상대적으로 암살이 있었던 적이 드물었다.

     암살자라고 바로 들키는 건 아니지만, 암살이 있었다는 정황증거는 바로 드러나니까.

     그리고 간혹 운이 나쁜 경우에는 마나의 잔향이 실제 사람 얼굴이나 체격, 걸음걸이와 족적까지 남기는 경우가 있어, 암살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방식이다.

     그래서 결투가 널리 퍼진 걸지도 모른다.

     

     결투라는 행위는 정정당당한 것이니, 정면에서 죽여도 명예롭게 죽이기만 하면 다들 그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는 않으니까.

     그렇다면 여기에서 질문.

     

     발자크 렘부르 군터 남작을 상대로 결투를 걸 만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없지.’

     그 누구도 남작에게 직접적으로 결투를 걸 사람은 없다.

     설령 결투대리인을 내세운다고 해도, 발자크 남작에게 결투를 걸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이미 몰락한 인간의 숨통을 끊어봐야, 그 늙은 목을 조르기 위해 손을 뻗었다는 것 자체가 욕을 먹을 행위니까.

     그래서 나는 발자크 남작이 어떠한 행위를 하든 가만히 놔두기로 했다.

     만일 그가 기적적인 확률로 금광을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계약서 상으로는 바르셀로나 총독부가 금광을 가지게 되어있었다.

     이면계약서가 아니냐고?

     나이가 들어서 작은 글씨로 적힌 부분을 눈치채지 못한 거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늙은 여우는 아무리 몸이 늙었어도 삶의 경험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협잡질 정도는 당사자가 이미 골백 번도 해본 것이기에, 내가 그런 걸 쓴다고 해서 눈치채지 못할 인간은 아니다.

     ‘그래서 당당히 계약서에 적었지.’

     발자크 남작은 서명을 했다.

     광맥 개발권을 발견한 것에 대한 포상금을 지급하고, 금광은 바르셀로나 총독부에서 관리하는 걸로 처리하기로 했다.

     당연히 발자크 남작으로서는 손해가 막심한 부분이었으나, 어찌 채광권을 제값주고 경매로 사들인 이들과 특혜를 누린 이에게 같은 권리를 제공할 수 있으랴?

     발자크 남작이 서명한 건 전부 본인의 의지였다.

     몰락하기 싫으면 울며 겨자먹기로 서명을 해야했고, 그는 그렇게 곡괭이를 들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과연.

     “도련님!! 큰일났습니다!”

     “아아. 보고는 방금 현장에서 직통으로 들었다.”

     “그, 일단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야지.”

     발자크 남작은 금광 개발을 위해 파놓은 갱도가 무너졌을 때, 과연 끝까지 어떤 상태로 있었을까.

     “아니다. 아직 죽었다고 단정하기는 이른가?”

     만일 갱도가 무너지고 혼자 금광의 막장에 있는데도 살아남았다면, 삶에 대한 의지 하나만큼은 분명 존경할만한 위인이다.

     “죽었다면 자기 욕심 때문에 죽은 거나 마찬가지지만.”

     현장보고.

     -탈출할 시간이 있었다.

     제 시간에 탈출하지 못한 건, 늙어서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까.

     * * *

     잠시 뒤, C7구역 무너진 갱도 입구.

     “저, 정말입니다!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나이까!”

     늙은 집사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하소연을 한다.

     “정말입니다! 총독 각하! 저, 저는 주인을 버리고 도망나온 게 아닙니다!”

     “그대의 이름과 직책은?”

     “세바스찬! 세바스찬입니다! 발자크 남작가에서 집사장으로 일하며, 남작을 직접 모시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집사의 몰골은 흙투성이로 정말 말이 아니었다.

     흙먼지 뿐만 아니라, 검은 정장이 다 헤지고 찢어지고, 기워놓았던 곳이 너덜너덜거리며 피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남작과 함께 괭이질을 한 건가?”

     “그, 예….”

     무너지는 갱도에서 허겁지겁 뛰쳐나오며 생긴 상처가 아닌, 육체 노동을 하지 않은 이들이 급격하게 육체를 혹사시키다가 발생한 멍이나 상처들이 전신에 가득했다.

     

     ‘이렇게 나이 든 집사에게도 곡괭이 들게 했는데, 본인이라고 오죽할까.’

     그만큼 절박했겠지.

     절박했으니까 갱도가 무너진다는 외침에도 ‘한 덩이만 더’라고 생각했겠지.

     “좋네. 마법사를 불렀으니 저 돌덩이들이 치워지면 바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현장 상황을 말해주겠나?”

     “그, 나, 남작님이 말하셨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파면 된다고.”

     집사 세바스찬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진절머리가 담겨 있었다.

     “저는 일단 오늘은 끝내고 돌아가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동굴의 진동이 심상치 않으니, 땅이 어느정도 안정되고 난 뒤에 다시 한 번 금맥이 있는지 살펴보자고!”

     “그랬는데, 나오지 않았다?”

     “저는 남작을 잡고 당기려고 했으나, 제 힘은 남작보다 훨씬 못했습니다. 그래서….”

     “남작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혼자서 도망쳤다는 거군.”

     “…….”

     세바스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집사든 기사든, 주인을 버리고 혼자 살아남았다고 하는 건 보통 노스트럼 사교계에 있어서는 변절이나 매국과 같은 취급을 받기 마련.

     “잘 하셨소.”

     “예?”

     “그대는 주인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 했을 것이오. 하지만 집사라고 꼭 주인과 함께 죽으라는 법이 있는가?”

     그러나 나는 노스트럼의 인식과는 동떨어진 인간이다.

     “그것도 어디 영지전에서 영주성을 지키다가 적의 검에 쓰러지는 것도 아니고, 동굴 흔들리는 거 뻔히 알고도 빠져나오지 않은 이와 함께 돌에 깔려서 죽기라도 했다면 그게 어리석은 죽음이지.”

     “초, 총독 각하….”

     “사건 정황을 알려줘서 고맙소. 굳이 마법으로 조사할 필요도 없을 것 같군.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세바스찬 집사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가능성 중 하나는 아닌 모양이다.

     무너지는 갱도.

     허겁지겁 도망치는 두 사람.

     발이 걸려 넘어져 쓰러진 남작과 하늘에서 떨어진 돌 무더기.

     살려달라는 손짓에도 그걸 무시한 채, 오직 출구만을 바라보며 도망치는 집사 세바스찬.

     혹은 넘어져서 쓰러진 게 아니라, 집사 세바스찬이 발자크 남작을 넘어뜨리거나 밀어내어 죽이려고 한 거라면?

     ‘조사하면 다 나오니까 굳이 당장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동기는 없다.

     세바스찬은 발자크 남작을 따라 바르셀로나까지 따라 온 참된 집사고, 남작을 위해 스스로 곡괭이를 들고 금을 캐는 일까지 해온 나름의 충신이다.

     그런 그가 발자크 남작을 일부러 죽일 이유는 없다.

     ‘정말로?’

     나는 믿지 않는다.

     동기라는 건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 뿐.

     내가 모르는 또다른 상황이 있을 수 있고, 나는 매국노 그레이로서 그러한 경우를 너무나도 많이 봐왔다.

     “세바스찬 집사.”

     “예.”

     “렘버르 군터 남작께서 사망하신다면, 남작령은 누가 물려받게 되어있지?”

     “그, 그건….”

     “딱히 내가 물려받겠다는 건 아니야. 오히려 그쪽은 내게 짐이지.”

     빚도 자산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렘버리’라고 하면 이야기는 다르다.

     “그저 믿기지 않아서 그런다네. 어디 자산이 지금 넘치는 것도 아니고, 몰락하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 구명줄을 간신히 잡았는데, 만일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거나 한다면 그건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나.”

     “사, 살해라뇨! 당치도 않은 말씀을!!”

     “내가 뭐 그대가 남작을 살해했다고 말하기라도 했는가? 뭘 그렇게 펄쩍 뛰며 그러는가.”

     “…….”

     직감과 관찰안,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나는 믿도록 하겠네. 집사 세바스찬, 자네는 남작을 죽이지는 않았어.”

     “죽이지, 는? 서, 설마 남작을 구하지 않은 걸로…! 저는 그저, 겁쟁이였을 뿐입니다…! 크흑…!”

     “그런가.”

     정황은 그러하다.

     “글쎄.”

     “저, 저는…!”

     “뭐, 그다지 신경 쓰지 말게. 아무래도 외조부가 이런 사태에 이르렀다보니, 여러 가지 가능성이 떠올라서 말이야.”

     “저, 저는 결코 남작님에게 해를 끼치거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를 바라지.”

     세바스찬 집사는 의심을 받는 게 억울하다는듯 울상을 지었으나, 아직 명확하게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았기에 그런 의심을 받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사실 제일 가능성이 없어보이기는 하지만, 직감적으로는 범인은 황제라고 생각이 되는데 말이야.’

     아직 정보는 없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몇 가지, 머릿속에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며칠 동안 위험한 탄광을 괭이질하느라 체력이 떨어진 발자크 남작.

     갑자기 금광이 크게 흔들리며 갱도가 무너지려고 하고, 집사 세바스찬은 그 동안의 고생으로 인해 주인을 멱살 잡고 끌고나오기보다는 자신의 목숨을 선택해버렸다.

     제국의 황제가 그림자 중 몇몇을 이용해 발자크 남작의 동선을 파악한 뒤, 노스트럼식 사건 재현 마법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 위치에서 갱도를 터뜨려 남작을 갱도 속에 갇히게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동기?

     나를 귀찮게 하니까?

     ‘황제라면 그럴 인간이긴 해.’

     억측이라고 하기에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고, 실제로 나는 거의 97%의 확률로 배후에 황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면 말고.

     “총독 각하! 갱도가 열렸습니다!”

     카를로스 경을 위시한 행정관들이 열심히 갱도의 무너진 돌덩이를 치워냈다.

     평범한 인부가 아닌 기사들을 동원하니, 생각 이상으로 더 빠르게 길이 열렸다.

     “내부는?”

     “그, 그게.”

     “직접 보면 알겠군.”

     “도, 도련님!”

     “괜찮아. 적어도 지금은 안 무너지니까.”

     나는 카를로스 경의 어깨를 두드리며 갱도 안으로 향했다.

     진동은 없다.

     고요함만이 가득하고, 알싸한 피냄새만이 내 코를 자극한다.

     발광마법이 걸린 마석을 꺼내 어둠을 밝히고 한참을 내려간 뒤.

     “쯧.”

     갱도의 끝, 바윗 덩어리들에 깔린 노인이 하나 있었다.

     쓰러진 몸의 방향이 갱도 내부, 벽을 향하고 있는 모습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너진 천장에서 돌덩이가 떨어지는데도 곡괭이를 멈추지 않은 건가.”

     사후경직 때문일까.

     죽은 노인의 손은 곡괭이를 꼭 움켜쥐고 있었다.

     마치 곡괭이로 조금만 더 파내면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

     갱도가 무너지면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바깥의 빛이 아닌, 이 흙더미 너머에 희망의 빛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라도 한 걸까.

     “참 안타깝게도….”

     차라리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기라도 했다면 참작의 여지라도 있지만, 이렇게 죽어버렸으면 뭐라고 말도 제대로 못 한다.

     그저-

     “……?”

     전방, 흙더미 사이, 뭔가가 반짝인 듯 했다.

     “……..”

     나는 지팡이를 꺼낸 다음, 지팡이 끝에 오러를 담아 곡괭이질의 흔적이 남은 곳을 향해 푹 지팡이를 찔러넣었다.

     “…쯧.”

     지팡이끝, 오러가 ‘퍼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지팡이를 회수하고 내가 만들어낸 구멍을 본 순간, 나는 안쪽에서 발광마법의 빛에 반짝이는 금빛에 절로 탄식이 나왔다.

     “끝까지 욕심을 저버리지 못한 건가.”

     그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명운을 재촉했다고.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