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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0

    <250 – 심마를 부르는 아이>

     

    열심히 싸우는 두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게도 사정이라는 것이 있다.

    남들은 열심히 경기를 뛰는데 혼자 신발이 벗겨져서 제대로 뛰지 못하는 학생은 얼마나 서러운가.

    공이 없는 내가 그 꼴이다.

    아이린이야 진짜 공이 아닌 아이스볼에도 이런저런 술식을 담아 한바탕 신나게 놀고 있지만 암흑마나의 안전성은 매개체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잔뜩 우겨넣으려면 피구공만큼 튼튼한 물건이 아니면 안 되는걸.’

     

    문제는 앞서 날린 공 세 개가 전부 단절된 공간 속에서만 오가는 무한가속반복구간에 갇혔다는 것!

    공을 꺼내려면 단절된 공간 너머 수직으로 경로를 뒤틀어 꺼내야만 했다.

     

    “잠깐만 빌릴게요!”

     

    이것이 백색의 성기사 루와 열심히 싸우던 북부대공녀 아이린의 피구공을 빼앗은 이유였다.

     

    “아”

     

    안 돼, 소리를 들으면 곤란하다.

    말도 못할 잠깐 사이에 냅다 무한반복구간에 던진 한기가 짱짱하게 들어찬 공.

    암흑마나를 덧씌워 보강하니 백색과 흑색이 동시에 감도는 굉장한 양의 마나가 실린 공이 되었다.

    휴.

    저 정도면 되겠어.

    무한가속반복구간 밖으로 공을 꺼내면 단숨에 공의 개수가 0개에서 4개가 될 수 있다.

    요컨대 <따서 돌려줄게> 작전!

    하나를 빼앗긴 것이 서러울지는 몰라도 안에 실린 힘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공을 하나 더 주면 아이린도 분명 기뻐하겠지?

    응, 공 하나로도 저렇게 신나서 싸우는데 공이 두 개가 되면 두 배로 기뻐하겠지.

    아이린의 기쁨까지 생각해주는 나는 착한아이임이 틀림없다.

     

    팅!

     

    어라?

    근데 계산대로 공과 공이 충돌해서 수직으로 빼내려면 팅이 아니라 쾅 소리가 나야 하는데?

    이 소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삑사리가 나서 빗맞은 소리 아닌가…?

     

    슈슈슉

     

    ‘아차!’

     

    중력계산을 깜빡했다.

    공들이 수평으로 중력을 받고 있어서 착각했지만 저 공간 전체의 중력이 수평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중력술식이 새겨진 공들만 그렇다.

    그 사실을 깜빡하고 중력이 수평으로 작용될 걸 생각하고 던졌으니 삑사리가 날 수밖에.

    심지어 돌려줘야 할 공은 튕겨나오기는 커녕 암흑마나에 감응하여 무한반복구간을 헤매는 다른 세 개의 공과 함께 구간반복을 개시했다.

    즉, 잃어버린 공이 세 개에서 네 개로 늘어났다는 결론이 된다.

    나무 위에 걸린 슬리퍼를 꺼내려고 던진 반대쪽 슬리퍼마저 덩달아 걸린 수준!

     

    “웁스.”

     

    아이린 고멘.

    공은 못 돌려줄 것 같아!

    사과를 하려고 돌아보는데 코트 밖에서 치유사들에게 호송당하는 아이린의 모습이 보였다.

    공을 빼앗긴 그 잠깐 사이에 아이린의 약점을 노린 선배가 공격을 가했나보다.

     

    “이런 비겁한! 용서할 수 없어요 선배. 아이린이 약할 때를 노려서 탈락시키다니!”

    “…네가 할 소리냐? 공을 빼앗고 심지어 잃어버리기까지 했으면서.”

    “아무튼 선배가 나쁜 거야!”

     

     

    * *

     

     

    무슨 억지도 이런 억지가 따로 있나.

    기가 막히는 심정을 알기나 하는지 적반하장으로 쌍심지를 키우는 꼬맹이.

    괘씸한 마음에 꿩 대신 닭이라고 검을 겨누니 신들의 응답이 이어졌다.

     

    <정의집행>

    [선신의 세 신격이 당신의 요구를 평가합니다.]

    [이 싸움은 악의 하수인과의 접전이 아닙니다.]

    [이 싸움은 선한 미래를 향한 한 걸음입니다.]

    [선신 프랙시스가 노력을 인정합니다.]

    [이 싸움은 의지의 준칙이 보편의 원리에 위배되지 않는 선험적인 싸움입니다.]

    [선신 임마누엘이 힘을 허락합니다.]

     

    북부대공녀 아이린과 대적했을 때에는 선신 임마누엘만이 힘을 보탰지만 오크노디를 상대로는 루의 선함을 인정하는 선신 프랙시스.

    모시고 있는 세 명의 선신 중 둘이 지지하며 한층 더 충만해진 힘.

    그러나 루의 얼굴은 한층 어두워졌다.

     

    “그토록 불길한 힘을 다루면서도 악의 하수인으로 인정되지 않다니. 당신은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교활한 사법을 다루는 겁니까?”

    “교활한 건 제가 아니라 공이 없는 사이에 아이린을 탈락시킨 선배님이죠!”

    “말이 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문답무용. 신께서 당신의 사악함을 직면하지 못했다면 제 빛이 당신의 실체를 드러내고야 말겠습니다!”

     

    지잉지잉 에너지가 밀집하며 점차 빠른 주기로 공명하며 진동하는 소리를 내는 루의 검.

    공명음이 정점에 달함과 동시에 커다란 빛의 참격이 반원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오크노디의 반격은 그만큼 요란하지는 않았다.

     

    “앗, 완드다!”

     

    누군가 코트 밖으로 이송되면서 미처 챙기지 못하고 남긴 완드를 집어들 뿐.

     

    ‘완드마법? 사람 우습게 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완드는 지팡이와 달리, 마법사용에 미숙한 낮은 경지의 견습마법사나 실전이 서툰 초보마법사들이 속성마나 퍼즐을 빠르게 짜맞추기 위해 드는 보조장비다.

    주력으로 사용하는 지팡이에 비하면 보조효과도 부가효과도 미진한 장비.

    심지어 사용자 본인의 속성과 다른 속성의 완드를 들거든 안 드니만 못한 효과를 초래한다.

     

    ‘그 오만함이 당신을 쓰러뜨릴 것입니다.’

     

    루는 생각했다.

    대결은 이 순간 끝났다고.

    오크노디의 패배가 저 완드를 들자마자 확정됐다고.

     

    “아이스커터!”

     

    저 작은 완드에서 뿜어져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만치 신속하고도 거대한 얼음의 참격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빛의 참격과 얼음의 참격이 상쇄되며 파괴되는 광경에 루의 눈이 커다래졌다.

    무려 둘이나 되는 신격의 도움을 받은 참격이다.

    그것이 완드 따위에 막혔다.

    운 좋게도 평소 다루던 속성과 일치해서 주력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된다.

    오크노디의 주력속성은 암흑.

    재단의 수석장학생,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에 대한 소문은 2학년인 자신도 알 정도로 유명하다.

    빙결의 재능 따위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저질렀다.

    정말로 재능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위력이다.

    위력은 그렇다고 쳐도 저 속도.

    본래부터 자주 사용하고 연습한 마법이 아니라면 자신의 것도 아닌 완드로 저렇게까지 신속하게 펼칠 수는 없다.

    하지만 저것이 정녕 노력만으로 가능한 속도인가?

     

    “이건 어떻습니까!”

     

    한 번은 우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연속으로 세 번은 어떤가.

    몰아치는 참격이 무색하게 에잇! 에잇! 하는 영창조차 생략된 외침에 마주 참격이 날아와 상쇄된다.

    상대의 마법의 출력과 타이밍을 정확하게 읽고 상쇄시키는 일절의 낭비조차 없는 테크닉.

    거기에는 노력을 넘어서는 속성훈련이 있었으리라는 사실이 암시되고 있다.

    코트 밖의 북부대공녀 아이린이 짓는 울 것 같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저건 오크노디가 척박한 북부인들도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익힐 수 없는 수준의 속성적응도를 지녔음을 의미한다.

     

    “흥!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아이린의 몫까지 제가 혼내주겠어요.”

     

    니가 제일 나빴는데 누굴 대신해서 혼내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무색하게 정말 살벌한 냉기가 코트 전체를 덮쳤다.

    지면이 모조리 얼어붙고.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으며.

    두려울 정도의 기운이 공처럼 밀집했다.

    저것은 달랐다.

    아이린의 <아이스플라워>가 아이스스피어의 얼음창칼들을 일점응축시킨 기운의 대폭발이라면 저것은 혹한의 숨결과 칼바람을 압축시킨 재해덩어리.

    살아있는 생명체가 다룰만한 힘도 아니고, 깨달을 수 있는 힘도 아니다.

    인간이 발을 들이면 살아서 벗어날 수 없는 대설원의 심부를 정처 없이 헤매는 생명체나 감히 자연을 흉내 내어 펼칠만한 재해마법이다.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원하는 타이밍에 얼마든지 오십시오.”

    “아 정말요?”

     

    악의 주구 앞에서 무릎 꿇지 않으리.

    용기를 표방하는 그의 선언에 오크노디가 반색하며 얼음공 두 개를 더 띄웠다.

     

    “…”

     

    입을 잘못 놀린 대가로 세배 더 어려운 시련에 직면한 백색의 성기사 루.

    그를 향해 지면으로부터 한층 더 얼음의 두께를 두텁게 만드는 <혹한구슬>을 셋이나 동시에 전진시키는 오크노디.

    북부대공녀 아이린의 <아이스플라워>를 베기 위해 검에 담았던 깨달음이 다시금 그의 검으로 펼쳐졌다.

    그러나 전과는 달랐다.

    벨 수 있다.

    그런 확신이 전혀 들지 않았다.

    혹한구슬 하나와 검이 충돌하는 순간, 불길한 예감은 다른 형태로 찾아왔다.

    구슬은 베였다.

    그러나 그 안의 혹한의 한파는 베이지 않았다.

    손이 얼어붙고.

    피부에 살얼음이 끼고.

    감히 눈을 뜨기조차 힘든 칼날처럼 날카로운 격풍 너머로 한 번의 호흡조차 폐부를 난도질하는 극한의 냉기가 그를 시험에 들게 하였다.

     

    ‘이런 것을 둘이나 더 베어야한다고?’

     

    검보다 먼저 마음이 꺾였다.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오기로 신성력을 더하려던 그의 몸이 다음 순간, 코트 밖에 있었다.

     

    “제가 선을 밟은 겁니까…?”

    “교관의 판단 하에 심각한 실력격차에 의해 시체의 형태조차 건질 수 없다고 판단, 부활의 가능성이 현저히 적다고 여겨져 긴급전송절차를 거쳤다.”

    “실격패… 라는 뜻입니까?”

     

    교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에 분개해야 마땅한데도 무심코 터져 나오는 안도의 한숨.

    큰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잠시 가벼워졌던 표정이 그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시련을 마주했구나.’

     

    백색의 성기사 루.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오크노디의 혹한구슬에 직면하고, 그것을 베고, 살아남을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반 강제로 코트 밖으로 전송되는 굴욕을 경험한 순간,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심마, 주화입마, 경지퇴보라 불리는 위기에 직면했음을.

     

    “아이린, 복수는 대신 했어요!”

     

    코트 밖의 아이린을 향해 해맑게 손을 흔드는 오크노디.

    저 아이가 그에게는 이제 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오크노디.”

    “왜요?”

     

    패자가 어떻게 입을 열 수 있냐는 것처럼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대답하는 오크노디.

    루는 그녀에게 힘겹게 물었다.

     

    “지금 건 몇 단계였지. 역시 4단계인가?”

     

    오크노디가 피식 웃었다.

     

    “지금 건 제 오리지널 기술이 아닌걸요? 아이린의 기술을 조금 손봤을 뿐이죠. 그래도 굳이 단계를 붙인다면, 음… 한 2.8단계?”

     

    루는 깨달았다.

    자신보다 먼저 오크노디를 상대했던 데드캣은 정말 목숨이 여러 개라서 간신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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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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