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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1

       세실이 기시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오후 무렵이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모처럼 이사회에 찾아가 그리 물었다.

       

       손톱을 깎던 이사 하나가 심드렁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았다. 바깥에는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뭐가 말이오?”

       “비가 아직도 안 그치고 있잖아요.”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이젠 아니었다.

       

       몇 번을 되뇌어도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분명히 겪어본 일이 아닌데, 어디선가 겪어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우기요. 비가 며칠이고 계속되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소.”

       “하지만 빗줄기가 너무 굵잖아요.”

       “어느 정도로?”

       

       이사장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리떼가 지나가는 것처럼 거친 풍랑이 빗줄기를 감싸고 돌았다. 덜컥! 창문을 열자마자 삭풍보다 더한 바람이 몰아쳤다. 이사장은 재빨리 문을 닫았다. 그가 애용하는 데스크는 물폭탄을 맞아 금세 수라장이 되었다.

       

       “…젠장.”

       

       이사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혀를 차댔다.

       

       “틀림없이 해룡의 짓이에요.”

       

       세실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그녀의 몸 깊숙이 자리한 정령들이 일제히 공명하고 있었다.

       

       지금 비에서 악의가 느껴진다, 마수가 벌인 짓일지도 모른다.

       

       그런 속삭임이 몇 번이고 들려오며 머릿속을 간질였다.

       

       “리바이어던이 움직이기 시작했단 말입니까?”

       “네.”

       

       이사회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대책을 마련해야겠군.”

       

       그들도 심상에서 깊이 느끼고 있다. 세례를 받은 그들의 정령이 미미하게 반응한다.

       

       대다수의 엘프는 정령의 촉을 절대적으로 믿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사회 양반들도 다들 하나씩은 상급 정령을 갖추고 있었으니,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를 유추할 수 있었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이사 중 한명이 입을 뗐다.

       

       “좋습니다, 르네이 총장. 당신이 직접 움직이시오.”

       “알겠습니다.”

       

       세실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대로 바깥으로 나오며 손가락을 꺾었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뼈마디의 기포가 터지는 소리가 나왔다.

       

       리바이어던.

       

       “간덩이가 부은 놈이로군.”

       

       저번에는 자신이 없을 때 아카데미가 습격받았다.

       

       이번엔 다르다. 세실이 있고, 새로 영입한 우수한 교수진도 있다.

       

       아카데미의 방비는 이전보다 강력해졌고, 꼰대 같던 저 이사회도 정신 바짝 차리고 자기 말을 들어먹었다.

       

       제아무리 절멸급 마수라지만, 승산은 있었다.

       

       아니, 차고 넘쳤다.

       

       [행정부에서 긴급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현재 국지성 호우로 인해 침수 피해가 예상됩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외출을 자제하시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핫라인과 기타 안전장치를 점검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공계마도사들이 수도 전역에 경고 음성을 흩뿌렸다. 얼마 후 재난대피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크등 불빛조차 희미하게 보이는 명명한 거리 속에서, 세실은 전투마도사 몇 명을 데리고 아카데미를 순찰했다.

       

       “저지대 상황은 어떤가요?”

       “서쪽은 이미 침수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받았습니다.”

       

       서쪽이라면 예전에 해룡이 모습을 드러냈던 장소였다.

       

       과연, 이번에도 똑같은 방향으로 오는 모양이다.

       

       “놈을 그곳에서 맞아야겠군요.”

       

       세실은 씩 웃으며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아무리 그래도 절멸급 마수인데 괜찮을까요?”

       “교무처장은 왜 그리 걱정이 많으십니까?”

       “놈들은 생각보다 똑똑합니다. 이번에는 완전 반대쪽에서 올 수도 있습니다.”

       

       테르먼 교무처장의 우려에, 세실은 웃음으로 회답했다.

       

       “놈은 서쪽으로 옵니다.”

       

       절멸급 마수의 지능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니까 서쪽을 소란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자신을 동쪽으로 유인한 뒤, 혼란한 때를 틈타 서쪽으로 몰려올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성동격서’를 한 번 더 꼬아서 내는 것이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세실의 이야기를 들은 테르먼이 감탄을 흘렸다.

       

       그러나 마냥 탄성만 내지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세실은 구호대를 이끌고 아카데미 서쪽으로 도착했다. 아카데미 서쪽엔 벼랑이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수 미터에 달하는 파도가 바위와 테트라포드를 찰싹거리며 인정사정없이 후려치고 있었다.

       

       “예상대로군요.”

       

       다들 물을 퍼나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사이에 빗줄기도 더 굵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가락만 한 것이 이제는 팔뚝만큼 굵어져 지면에 폭탄을 내리꽂고 있었다.

       

       “증기의 비 당시에도 이랬다고 했나요?”

       “조금 다릅니다.”

       

       ‘증기의 비’는 비를 맞는 즉시 몸이 산화한다. 하지만 지금 내리는 비는 맞는다고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비의 줄기가 지나치게 굵어 물리적인 외상을 입을 수는 있었다. 그 탓에 세실을 포함한 마도사들은 우산 대신 진공 방수막을 띄웠다.

       

       “총장님, 저길 보십시오.”

       

       테르먼이 해안을 가리켰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저건…….”

       

       해룡처럼 보였으나 해룡은 아니었다.

       

       땅에서 휘청거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몸속에 잠재된 정령들이 낮게 속삭였다. 세실은 긴 귀를 까딱거리며 빗소리와 지진파를 구별해냈다.

       

       곧 세실의 입에서 나지막한 한 마디가 새어 나왔다.

       

       “…해일이군요.”

       

       그 말에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작업하던 엘프들은 지레 겁먹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 미터로 추산하던 파도가, 인영을 전부 삼켜버릴 것처럼 세를 부풀렸던 까닭이다.

       

       물경 250미터.

       

       해일의 규모는 필시 해룡의 반절에 이르렀다.

       

       “죽일 놈의 마왕군….”

       

       세실은 이를 갈며 스태프를 꺼냈다.

       

       “여러분은 하수도를 뚫는 일에 집중해 주세요!”

       “총장님은 어떡하시고요?”

       

       부웅, 부웅.

       

       허공을 가르는 소리는 해일뿐만이 아니었다.

       

       스태프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던 세실이 하늘을 쳐다보며 눈을 부릅떴다.

       

       “저걸 막아야죠.”

       

       

       **

       

       

       아공간에서 꺼낸 스태프는 그 사람의 심리와 경험을 반영한다고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속성에 맞추어 심리를 표현하고, 경험을 추량한다. 당연히 그에 맞추어 스태프가 축조되고 조형된다.

       

       불의 마도사라면 대개 화염을 휘감은 모습으로 스태프가 나타나며, 물의 마도사라면 물방울과 고드름이 맺힌 형태로 구현된다.

       

       세실의 스태프는 조금 달랐다.

       

       사대원소의 적성을 전부 타고난 그녀는 정령왕에게 직접 스태프를 선물받았다. 정령왕이 내린 것이니 평범하진 않겠지만, 세실의 것은 매우 특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수의 잔가지를 엮어 만든 귀물이었으니.

       

       『광명(光明)』

       

       어둠을 몰아내고, 마수를 도려내는 마도구.

       

       “와라, 석기시대로 보내주마.”

       

       후웅, 후웅.

       

       스태프를 한 번씩 고쳐잡을 때마다 철근을 휘두르는 것처럼 묵직한 소리가 났다.

       

       부웅!

       

       해일이 지척까지 와 있었다. 세실은 지체하지 않고 마나를 끌어모았다. 

       

       부우웅!

       

       스태프 끝에 칼날과도 같은 예리함이 깃들었다.

       

       부우우웅!

       

       세실의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변한다.

       

       파도가 하늘을 등지고 덮쳐왔다. 파도 사이사이로 수은의 형상을 한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부는 웃고 있었고, 또 일부는 절규하거나 분개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잔혹하고, 끔찍했으며, 괴이쩍은 형상이었다.

       

       필경 저 또한 하나의 마수이리라. 세실은 정신을 집중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폐포에 있는 모든 산소를 토해냈다. 이제 남은 것은 순수한 마나뿐이었다.

       

       세실의 머리 위로 최상급 불의 정령이 현현했다. 정령은 세실의 스태프 끝을 가리키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여신이시여.”

       

       [전설급 화계 정령마도 ─ ‘더 높은 곳을 추구하게 하소서(Altiora Petamus)’]

       

       부우우우웅─!!

       

       세실은 스태프를 검처럼 휘둘렀다.

       

       종으로 짓쳐내린 참격이었다.

       

       읊어진 시문은 바람이 되었고, 바람은 다시 불꽃으로 화했다. 이윽고 불꽃은 흐르는 용암을 품은 고룡이 되어 하늘로 피어났다.

       

       모란이 만개하는 것처럼 고고한 자태였다. 언령마도의 세찬 불길이 수평선을 향해 내달렸다. 파도는 이제 거의 3백 미터를 웃돌았으나, 화룡의 분노는 여신의 보살핌과도 같았다. 세실의 마도는 천장 무서운 줄 모르고 용솟음치며 수면 위를 힘차게 전진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쿠우우웅!!

       

       수룡과 화룡이 충돌했다.

       

       빠지지한 소리를 내며 불길이 물길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화룡이 몸을 쇠사슬처럼 늘어뜨려 더욱더 위로 올라갔다. 동시에 가오리처럼 양옆으로 널리 퍼지며 날개를 바로 펼쳤다.

       

       촤아아악!

       

       파도의 얼굴이 용암에 덮여 일그러졌다. 웃는 얼굴은 울며 굳었고, 울던 얼굴은 세로로 접혀 짓뭉개졌다.

       

       화룡의 기세는 꺾일 줄 몰랐다. 반면 해일은 점차 수그러드는 수준이 아니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먹혀서, 단번에 증발했다.

       

       “─!!”

       

       순간, 비가 멎었다.

       

       도망치던 엘프들은 입을 떡 벌렸다.

       

       그들이 고개를 돌려보니, 하늘이 멈추고 하얀 구름이 피어올랐다. 비오는 날 이무기가 승천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회초리처럼 철썩거리던 소리도 잠시나마 잦아들었고, 빗줄기는 원래 크기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사, 살았다.”

       

       누군가가 그리 말했다.

       

       하나둘씩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살았구나, 우린 살았어…!”

       “내, 내는 증말로 죽는 줄 알았데이…!!”

       

       안도하는 목소리, 안심하는 목소리, 기뻐하는 목소리.

       

       세실이 마도를 펼치지 않았더라면 절규와 비명으로 물들었을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세실은 후우, 하고 한숨을 털어냈다.

       

       “…총장님.”

       “아직 비가 그친 게 아니에요. 빨리 작업하고 나라에 보고하자고요.”

       “예, 알겠습니다.”

       

       학생과 교직원을 지켜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다. 저번에 출장을 나갔던 것은 억울해도 분명한 실책이었으니, 아카데미에 발붙이고 있는 지금만큼이라도 최선을 다해 움직여야 한다.

       

       “…응?”

       

       하늘을 바라보는데 이상한 게 떠 있었다.

       

       빛무리처럼 생긴 것이 불규칙적으로 깜빡거리는 중이었다. 그것을 몇 초간 살펴보던 세실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저게 뭐죠?”

       “지향등에서 보내는 신호 같습니다.”

       

       교무처장이 즉답했다.

       

       그러나 세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저건 지향등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러고 보니 이 근처엔 등대가 없었죠.”

       

       두 사람이 대화하는 와중에도 불빛은 하늘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명멸했다.

       

       별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밝았으며, 달이라고 하기에는 움직임이 지나치게 산만했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웠다.

       

       “틀림없이 마수가 보내는 신호일 거예요.”

       

       고심하던 세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떨어졌다.

       

       “테르먼, 여긴 당신에게 맡길게요. 남은 잔해를 정리하고 산사태가 나는지 잘 지켜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총장님.”

       

       세실은 하급자에게 서쪽 지역의 관리를 맡게 한 다음 불빛이 반짝이는 곳으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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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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