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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1

    루크는 말조차 잊은 채, 멍하니 형형색색의 꽃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초원을 시야에 담았다.

    몇번을 다시 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

    이 초원이 거대한 회로도라는 것은 변치 않는 현실이었다.

     

    “그럴리가…….”

     

     

    루크는 그렇게 손에 쥔 꽃다발을 놓지도 못 한 채로, 마치 홀린 듯이 초원으로 한걸음, 한걸음 걷는다.

     

    “말도 안돼…….”

     

    이 드넓은 초원을 전부 회로도로 이용한 것에 대한 놀라움으로 경악한 것은 아니었다.

     

     

    그 마법식의 문법이, 너무나도 눈에 익었기 때문이다.

     

     

    붉은 색 꽃잎을 어루어만지며 생각했다.

     

    ‘이 다중복합배열방식은……. 현대에 와서야 바알 니에르에 의해서 제안되고 많은 후대에 걸쳐서 개량되어 비로소 보편화된 문법일텐데……?’

     

    반면, 레니에의 나라, 아린세이아와 레니에는 2000년 전에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루크는 처음 헌화를 보고선 레니에를 떠올렸으나,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무려 1000년이 넘게 어긋난 상황.

    시간대가 전혀 맞지 않는다.

     

    ‘아니면, 우연히 레니에가? 아니, 그럴리가 없어.’

    그녀가 우연히 심은 꽃들이 정말이지 우연히 그런 기묘한 배치를 했다는 것을 믿는 것은 어지간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더라도 믿기 어려운 일이다.

     

    현대의 클래스 마법이 유행하기 전, 서클마법이 득세하고 있을 때는 마법이란 마법사마다 각자 다른 문법과 체계를 지니고 있었다.

     

    모든 마법사들마다, 학파마다 다른 저마다의 방식이 있었다는 것이다.

     

    가장 보편적이며, 지식을 숭배하고 원소에 대한 지배권을 중시하는 서클 운용 방식인 메이지.

    실전성을 중시하며, 인챈트를 극한까지 활용하는 방식인 아르카나.

    연금술을 사용해, 재료를 이용하여 마법을 발생시키는 알케미스트.

    개인의 깨달음을 극한으로 단련해, 강력한 의지로 마법을 발생시키는 소서러 등.

     

    모든 학파마다 고유의 문법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타인과 완전히 같은 문법을 지니게 되는 경우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같은 뿌리에서 파생된 학파의 경우가 아니라면 이러한 일치율을 보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현대의 클래스마법은 명백히 새로운 학파다.

    그 무엇과도 닮았으나, 동시에 닮지 않은 기묘한 모순적인 방식.

     

     

    현대마법의 제작자, 동시에 마왕의 이름을 지닌 마법사.

    바로, 바알 니에르가 만들어낸 체계이자 이론인 클래스 만이, 그 문법을 사용하니까.

     

     

    루크는 분노로 인해 빠르게 돌기 시작한 서클을 가다듬으며  씹는 듯이 중얼거렸다. 

    “바알……!”

     

    루크의 몸에서 푸른색 불길의 형상이 빠져나가는 듯 하다.

    그것은 무리하게 서클을 돌다 차마 버티질 못하고 튕겨져나온 마나의 형상들이었다.

     

    ‘니에르, 네가 감히……. 네가 감히 나의 아공간을 침범한 것인가?’

     

    클래스학파의 창시자인 본인이 아니라면 이토록 완벽한 문법을 따르는 회로도는 제작할 수 없었으리라.

    마법사에게 아공간은 굉장히 개인적인 공간이다.

    관계도 없는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물건들에 타인이 손을 대는 것도 기분나쁜 일이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감히 타인의 아공간을 침범한 주제에, 자신의 것처럼 꾸며놓다 못해, 자신의 모든 기억마저 짓밟은 것이 아니던가?

    만약 그녀가 아티팩트만을 건드렸다면 루크는 별달리 분노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녀는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루크 이루시라는 인물은 그녀의 시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무려 4000년 전에 죽은 인물이니까.

    그래도, 이것은 여전히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바알 니에르가 아무리 헌화를 통해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남겼다 하지만, 남의 공간에 흙발로 들어와 도굴꾼이나 다름없는 짓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루크는 다시 그 넓은 초원을 시야에 담았다.

    다만, 이번에 루크가 눈에 담는 것은 풍경이 아니었다.

     

    “그래, 이제 알겠군.”

     

     

    이 거대한 회로도의 역할은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것이다.

     

     

    바알 니에르, 알 수 없는 과거를 지닌, 갑자기 나타난 희대의 천재.

    그녀는 이 세계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역사서에서도 단연 이질적인 존재였다.

     

     

     

      

    “이제는 진실을 드러낼 때가 되었다. 바알 니에르.”

    감정을 가다듬은 루크는 회로도의 코어에 위치한 붉은 꽃을 짓밟으며 일어섰다.

    그러자 꽃이 지탱하던 회로도의 법칙이 뒤틀리며 루크의 눈 앞에 무성한 수풀로 덮힌 문이 드러났다.

     

    이 거대한 회로도로 숨기던 것이니 물론 그것은 단순한 문이 아니다.

     

    “아공간 내부의 아공간이라.”

     

    과연 그녀는 대체 뭘 그리도 보존하고 싶었던 것인가?

     

     

    루크는 직감했다.

    무엇이 되었든, 이 너머에는 자신이 원하는 진실이 있을 것이라고.

     

    ————–

     

    루크가 아공간에 진입한 순간, 루크 숲에서는 여전히 수색이 한창이었다.

     

    “여기! 휴대식 컴퓨터 찾았습니다!”

    “뭐? 정말이야? 가져와봐!”

    “네!”

     

    명령에 따라 컴퓨터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자신의 상관, 샌슨에게 가져가는 수색대원.

    상관은 자신의 곁에 서서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엘프 숲지기, 예르나에게 다가가 보여주며 물었다.

     

    “이거, 루크의 것이 맞습니까?”

    “……맞네요.”

     

    샌슨에게서 건네 받은 컴퓨터를 보자, 예르나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심각해질 수 밖에 없었다.

    샌슨은 조금 조심스럽게 대원에게 물었다.

     

    “이어진 흔적은?”

    “……흔적은, 여기서 끊긴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 있어? 좀 더 찾아보고 보고할 수 있도록.”

    “네, 죄송합니다. 더 찾아보겠습니다.”

     

    예르나는 그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한 채 가만히 있었다.

     

     

    GPS에 너무나 갑작스레 나타난 붉은 점, 위험지역으로 이어진 루크의 흔적, 그리고 아무렇게나 내버려진 컴퓨터.

     

    예르나는 그토록 컴퓨터를 애지중지하던 루크가 아무데나 컴퓨터를 버려두고 갈 아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예르나의 곁에는, 다이튼이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막 멀리 간 건 아니겠지. 흔적이 끊긴 것도 이 근처라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여기는 지금 몬스터도 없으니까, 위험할 것도 딱히 없고. 루크가 딱히 자기가 왔던 길도 모를 정도로 길치도 아니고 말이야. 그리고 아직 어두워지려면 한참이나 남았잖아?”

    “그럴까……? 역시 그렇겠지?”

    “그래, 그리고 걔 나보다 세다니까.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잠깐 컴퓨터 놔두고 요 근처에서 놀고 있는 거겠지…….”

     

    분명 루크는 숲에서 길을 잃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또한 지금 시점에서 그 아이를 위협할 만한 요소도 숲에는 딱히 없었기에, 그녀는 루크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밤이 되어 길을 찾기 어려워지려면 한참이나 남기도 했고.

    심지어 루크는 너무나 능숙하게 숲지기인 다이튼 정도는 가볍게 갖고 놀(?) 수 있는 정도로 뛰어난 실력과 힘도 갖추고 있다.

    과거 그 ‘딜런트’의 시설에서도, 루크는 자신의 서클을 이용해서 그의 마법을 받아치기도 했고.

    게다가, 지금은 숲에 딱히 위험한 몬스터도 다가오지 않고 있으니까 안심할 수 있는 구석은 더욱 컸다.

     

    다이튼의 말대로, 잠깐 이 근처에서 놀고 있는 것이겠지.

    아니면 근처에 잠시 볼일이 생겼다던가.

     

    예르나는 그리 생각하며 조금은 마음을 다잡았다.

    여전히 불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처음의 불안감보다는 훨씬 나았다.

     

    “고마워, 좀 진정이 되네.”

     

    샌슨이 건넨 컴퓨터를 받아 살피는 다이튼.

    그는 곧장 화면부터 켜보았다.

     

    “아직 전원은 나가지 않았네.”

     

    혹시나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게 있나 싶어서 화면을 보자, ‘패스워드를 입력해주세요’라는 글자가 뜬다.

    그것은 사실 과거 루크가 컴퓨터를 처음 받고 개인설정을 할 때 뭔지도 잘 모르고 설정해둔 것이었다.

     

    이럴 때 보통 이런 화면이 보이고 비밀번호를 모른다면 다시 화면을 닫고 한숨이나 쉬는 게 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좀 귀찮구만.’

     

    “혹시 패스워드를 알아?”

    “응?”

    “어쩌면 마지막으로 루크가 보던 것이 단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아……그렇네. 일리가 있네.”

     

    자신은 딱히 컴퓨터와는 친하지 않아 떠올릴 수 없던 발상이었는데.

    예르나는 다이튼에게 패스워드를 말했다.

     

    “아린세이아.”

    “아린세이아?”

     

    패스워드가 2000년 전에 사라진 전설 속의 나라라…….

     

    그 이름을 들은 다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좀 루크 답네.”

     

    패스워드를 입력하자, 나타난 화면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이거 대체……. 뭐라고 써 있는 거야?”

     

    숫자가 있고, 그래프가 있고…….

    적어도 주식 차트는 아닌 것이 확실한데, 그렇다고 조작도 안되고 대체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어때? 거기 단서가 있어?”

    “음, 그게…….”

     

    지극히 평범한 숲지기의 삶을 살아온 다이튼이 매직파인더 화면을 읽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나마 읽을 수 있는 글자라고는. ‘체험판 종료’라고 쓰여진 문자 뿐.

     

    하지만 잘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는 조금 그런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뭔가 찾았어?”

    “음……. 그러니까.”

     

    예르나가 꽤나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른다고 하면 더 불안해할 것이고,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기엔 수색에 혼선을 줄 것이 분명한데…….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다이튼은 필사적으로 컴퓨터를 뒤져서 단서가 될 만한 무언가를 찾아보기로 했다.

     

    ‘음……. 최근 검색 기록이라도 보자.’

     

    하지만 뭐 죄다 ‘매직파인더 다운로드’, ‘매직파인더 무료’같은 게 아니면 ‘고양이 영상’, ‘고양이 놀이영상’ 이런 거 뿐이다.

     

    ‘아니, 이놈은 지가 고양이면서 고양이 영상은 왜 본대?’

     

    다이튼의 사이버 수사는 더욱 큰 혼란에 빠졌다.

     

    “음……. 잠깐만. 좀만 더 찾아볼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컴퓨터랑 아공간을 동시에 해킹당한 루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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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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