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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1

        

        * * *

         

         

         

       성년의 날.

       갓 성인이 되는 아이들이 하는 행사.

         

       진성이 참여하는 성년의 날 행사는 호텔에서 이루어졌다.

       일검 그룹에서 자신이 성년의 날 행사를 후원하겠다며 호텔 하나를 행사에 쓰라고 내놓은 것이다.

         

       필요할 때는 연무장으로도 쓰인다는 호텔 대강당은 넓고 쾌적했으며, 벽이나 시설들이 단단한 것이 검기를 담아서 휘둘러도 쉽게 부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한 대강당에 수많은 사람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 중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아이들이리라.

         

       어떤 아이들은 자신이 성인이 되는 것에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자신이 성인으로 인정받았으니 학생 시절에 못 해보았던 것, 술과 담배를 합법적으로 하고 이성을 잔뜩 만나고 다니며 청춘을 구가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을 수도 있겠지.

       어떤 아이들은 학생 때도 모종의 방법으로 마음껏 보았던 성인물을 합법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할 것이고, 어떤 아이들은 지긋지긋한 고등학교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대학교로 갈 수 있다는 것에 기대를 품고 있을 것이며, 어떤 아이들은 성인으로의 책임을 잊어버린 채 그저 권리만을 생각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떠올리고 있으리라.

         

       그리고 어떤 냉소적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리라.

       ‘아무것도 모르는 갓 성인이 되는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새끼들 데려다가 재롱잔치 시키고, 그것을 구경하면서 어른들이 더러운 이야기를 잔뜩 나누는 행사’라고 말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각자의 기대를 품고, 혹은 냉소적인 생각을 품고 성인식에 참여하였다.

         

       다만 확실한 것이 있다면 정확한 정답은 없다는 것.

       기대를 품고 있는 아이들의 정답도 있고, 냉소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아이들이 정확하게 예견한 것도 있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딱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만물의 이치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에- 이제 성인이 되어 사회에 발을 디디게 되는 여러분들은 이 자리에-”

         

       일단 성년의 날 행사 자체는 여타 다른 행사와 비슷했다.

       이상한 노인네가 튀어나와서 교장 선생님처럼 느릿느릿하게 끝나지 않는 말을 하고, 그 끔찍한 지루함 때문에 행사에 참석한 아이들의 긴장이 서서히 풀리고 대신 그 자리에 실망감이 들어차기 시작할 것이며, ‘성년의 날’ 행사의 역사적 의의와 전통문화로서의 가치까지 튀어나오며 아이들을 지루함에 미쳐버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 기나긴 연설이 끝나면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이랍시고 튀어나와서 몇몇 아이들이 자신의 넘치는 끼를 발산하고, 지루한 분위기를 깨뜨려주는 구원자 같은 이들에게 아낌없이 손뼉을 쳐주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해당 행사장에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전부 고운 빛깔의 한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머리에는 아무것도 쓰고 있지 않았다.

         

       남자도, 여자도 말이다.

         

       “고려 시절부터 우리 민족은 성년이 되면 남자에게는 갓을 씌웠고, 여자는 쪽을 지었습니다. 이것을 관례와 계례라고 하지요. 이러한 우리의 풍습은 길게 이어져 왔고, 한때는 잠시 사라졌다가 부활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조상들의 얼을 이어받아 성년의 무게를, 성년이 되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마음속 깊숙한 곳에 새겨두었으면….”

         

       사회자는 아이들에게 전통문화로서의 성년의 날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번 떠들어댄 뒤, 각 자리에 설치된 아티팩트를 작동시켰다.

         

       윙-

         

       그러자 모터가 돌아가는 듯한 자그마한 소리와 함께 각 자리의 앞쪽에 놓여있던 물건이 허공으로 떠올랐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각자의 머리에 얹어졌다. 남자들의 머리 위에는 상투 머리 가발과 갓이 씌워졌으며, 여자의 머리에는 가체(加髢)라고 불리는 가발이 씌워졌다.

         

       “여러분은 지금 이 자리에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네, 단순히 해가 지나서 어른의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은 사회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어른으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른이란 무릇 책임과 권리를 함께 지는 존재입니다. 네, 옛날이라면 일가를 이루고 능히 부양해야 하는 책임을 졌으며, 그 대신에 사회가 허락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죠. 장사면 장사, 농사면 농사, 공부면 공부….”

         

       갓을 씌우고 쪽을 지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 행사의 핵심이자 전부.

       나머지는 이 핵심을 띄우고 참가자를 즐겁게 하기 위한 조미료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말을 다르게 한다면, 이 의식을 하기 위해 모였던 아이들이 이제부터는 자유를 얻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에, 이것으로 참가자들은 성인으로의 다짐을 마음에 안고 가족에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며 남은 행사의 일정을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절도있게 무대 뒤로 사라진 뒤 썰물처럼 행사장을 향해 나섰다.

       모두의 구경거리가 되는 무대 위가 아니라, 참가자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곳을 향해서.

         

       진성 역시 이러한 이들의 틈새에 섞여서 빠져나왔다.

         

       이씨 가문 사람들과 마녀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진성은 사뿐사뿐 걸어서 일행이 모여있는 장소를 향해 걸어갔다.

         

       “여어, 오라비. 어울리는데?”

         

       그가 도착하자마자 이아린은 아저씨처럼 기분 나쁘게 웃으며 진성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추파를 던졌다. 그리고는 욕인지 칭찬인지 모르는 말을 던졌다.

         

       “누가 보면 유생인 줄 알겠어? 응? 진짜 기생오라비같이 생겼네. 응? 기생오라비? 기생오라비도 오라비니까 맞네.”

         

       그러더니 진성의 모습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것인지 보법을 밟으며 진성의 앞까지 다가왔고, 진성이 몸에 걸치고 있는 선비 옷을 만져보기도 하고 갓을 벗기고는 자기 머리에 써보기도 했다.

       넓은 소매에 자기 손을 쑥 집어넣어 보기도 했고, 진성에게 빼앗은 것을 들고 아나스타시아에게 뛰어가서 그녀의 머리에 씌워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갓을 쓴 아나스타시아를 보고는 귀엽다면서 껴안으려고 하다가 그녀가 데리고 온 무지개색의 털 뭉치가 뽑아낸 촉수에 가로막혀서 껴안는 것을 실패하기도 했다.

         

       진성은 그러한 이아린의 장난기 가득한, 활발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곤 일행이 모여있는 테이블에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양훈이 진성에게 말했다.

         

       “박진성.”

       “예.”

         

       그를 부른 이양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서류 봉투 하나를 진성에게 쓰윽 내밀었다.

       그리곤 별거 아니라는 듯 말을 툭 던졌다.

         

       “선물이다.”

         

       이양훈은 확인해보라는 듯 진성에게 눈짓을 보냈다.

         

       “독립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거주지다. 어디 다른 주술사 놈들처럼 산속에서 살거나 집도 절도 없이 그냥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것보다는 여기서 자는 게 나을 거다.”

         

       진성은 이양훈의 말대로 봉투를 열어보았다.

       그러자 나온 것은 문서였다.

         

       진성의 이름으로 건물이 생겼음을 증명하는 문서.

         

       그렇다.

       집이 아니다.

         

       건물이었다.

       그것도 그냥 건물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빌딩이었다.

         

       유동 인구가 많고 교통이 편리한 곳에 있는, 사람들이 ‘알짜배기’라고 부르는 곳에 있는 빌딩이었다. 게다가 지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데다가 아티팩트를 이용한 방범 장치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나와 있었다.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진성이 고개를 들어 이양훈을 보자, 이양훈은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젓더니 또 하나를 진성에게 주었다.

         

       통장과 카드였다.

         

       “독립하면 바로 먹고살 수는 없을 것 아니냐. 여기 한동안은 모자람 없이 살 수 있는 돈을 넣어뒀다. 그리고 카드는…빌딩이 휑할 텐데, 그걸로 긁어서 치장하도록 하거라.”

         

       진성이 통장을 확인해보자 거기에는 억대의 원화가 들어있었다.

       게다가 통장과 함께 준 카드 역시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자기 핏줄이 아닌 사람에게 베풀어주는 것 치고는 지나칠 정도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이양훈은 진성에게 그러한 선물을 주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고, 진성 역시 그러한 선물을 받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렇게 이양훈이 진성에게 주는 물질적인 선물은 끝이 났다.

         

       하지만 물질적인 것을 다 줬다고 해서 선물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일어나거라. 소개해주겠다.”

         

       이양훈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진성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가 재계에서 친분을 나눠온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오, 광양 그룹 회장님 아니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하, 이거 오랜만에 뵙습니다. 요새 이런 자리가 쉽게 열리지 않아서 원….”

       “그렇군요. 아, 옆에 훤칠한 장부가 한 명 있는데. 혹시…?”

       “네. 맞습니다. 자식처럼 기른 녀석이지요. 제가 아마 자식 복이 있어서 아들을 낳았으면 이렇지 않았을까 싶어질 정도입니다. 하하하.”

         

       이양훈은 진성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눈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박진성에 관한 이야기는 암암리에 퍼져있었기에 이양훈이 데리고 온, 갓 성인이 된 남자가 누구인지는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애초에 이 행사장에 박진성에 관한 이야기를 알지 못할 정도로 사회적인 힘이 부족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사람들은 박진성이라는 존재를 단순히 이양훈이 맡아서 기르게 된 애매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양훈은 그러한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버리기라도 하듯 ‘자식과도 같은’, ‘딸들과 한 식구처럼 자란’, ‘이씨 가문의 자랑’ 등의 수식어를 붙여 소개함으로써 진성과 자신이 친밀한 사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거기에 더해 진성이 주술사라는 것 역시 적극적으로 알렸다.

         

       “이 녀석이 어릴 적부터 주술에 관심을 보여왔지요. 그것이 어찌나 심한지, 의무교육만 마치고 그대로 주술에만 빠져들기까지 했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주술이라는 것이 발을 디디기는 쉬워도 경지에 이르기에는 각오가 필요할 텐데…?”

       “허허.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만류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주술에 대한 사랑이 어찌나 대단한지, 각오고 뭐고 순식간에 엄청난 실력을 갖췄지 뭡니까? 이제야 갓 성인이 되었습니다마는 그 주술 실력은 어지간한 주술사에 비해서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이거 우리나라에 복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요. 우리나라가 주술 불모지라면서 세계 사람들에게 그렇게 평가가 좋지 않은 것,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녀석이라면 그런 평가를 뒤집어버리고 한국을 주술 강국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입니까? 대단하군요. 흐음. 그렇다면 얼마 후에 전통 행사가 있는데, 거기 참여해줄 수 있는지…?”

       “행사요? 어떤 행사입니까?”

       “별 건 아닙니다. 그냥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전통행사인데…. TV에도 방송되고 그럽니다. 시청률은 낮지만 말입니다.”

       “방송에도 나온다면 대단한 거 아닙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진짜 주술 의식도 아니고 그냥 전통 행사인데요. 그런데 이 행사가 본래는 의식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주술사가 껴 있지 않으니까 그냥 흉내 내기처럼 느껴진단 말이죠. 그런데 마침 실력이 있는 주술사라고 하시니….”

         

       그리고 이러한 이양훈의 ‘소개’는 꽤 좋은 반응을 보였다.

       이양훈이 ‘자식이나 다름없다.’라며 신용을 보증해주고, 토종 주술사가 씨가 말라버린 한국에 오랜만에 등장한 젊은 주술사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음침하거나 기괴하게 보이는 다른 주술사와는 다르게 훤칠한데다가 잘생기기까지 하다.

         

       반응이 좋을 수밖에.

         

       그리고 이러한 좋은 반응은 진성을 소개받은 사람들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과 함께 ‘자그마한 일 정도는 맡겨서 실력을 확인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 덕분에 진성은 크지는 않지만, 충분히 계단이 될 수 있을법한 제의도 여러 개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진성은 이양훈의 도움을 받아 황금 같은 인맥을 쌓아가기 시작했고, 일반적이라면 얼굴 보기도 힘든 사람들과 말을 나눠가며 안면을 익힐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기를 한참.

         

       “허허허. 양훈이. 오랜만에 보는구먼.”

         

       행사장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가치 있는 사람 중 하나.

         

       일검 그룹의 전(前)회장이 이양훈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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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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