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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1

       *** ***

         

       “흑묘야, 비무나 할까?”

         

       “음. 그럴까요?”

         

       흑묘는 영 일진이 사납다는 듯한 얼굴을 한 호천안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흑묘 역시 아침부터 사라가 벌이던 기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사라가 노력하는데 응해주는게 마땅한 도리였다.

         

       두 사람은 기수식을 취하고 서로를 바라보면서 살짝 놀랐다.

         

       “많이 강해졌네요 선배.”

         

       “너도 많이 달라졌는데?”

         

       호천안은 흑묘의 기세가 전혀 달라졌다고 느꼈다. 흑묘는 경지에 비해서 지나칠 정도로 압박감이 없었다. 좋게 말하면 자신을 잘 숨기고 있었고 나쁘게 말하면 기선제압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라노징부와 손을 섞게 되면서 고수 특유의 압박감이 몸에 자리를 잡았다.

         

       흑묘는 호천안을 바라보며 보는 것과 마주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당소열의 특훈으로 검기를 깨닫고 그 뒤로 여일예에게 검기 운용법을 숙지한 호천안은 어엿한 절정고수가 되어 있었다.

         

       스스스스스!!

         

       “갑니다. 선배.”

         

       호천안의 검기 어린 검이 구음기로 이루어진 경을 가르는 것으로 비무를 시작했다.

         

       ‘선배는 눈부시게 성장하는군요.’

         

       흑묘는 검기를 깨우치기 전의 호천안을 떠올리며 장법을 뻗어냈다. 그 당시의 호천안이라면 고작해야 자신의 신체 주위에 경을 두르는 것이 한계였을 테니 구음기를 운용하는 흑묘와는 비무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을 터였다.

         

       강기마저 얼릴 수 있는 구음기. 그런 구음기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호천안이 두른 경은 손쉽게 얼어붙었을 테니까.

         

       “차합!”

         

       흑묘가 상체를 비틀어 호천안의 검을 피하면서 동시에 장법을 뿌렸다. 흑묘의 장영 두 개를 파훼한 호천안의 검에 서리가 엉겼다.

         

       신체에 적중했다면 동상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한기를 머금은 장영이었지만 닿은 것은 검이었다. 흑묘는 호천안이 검기를 일으키기 위해 주입하던 경을 끊어내는 것을 보며 미소지었다. 그대로 검기를 유지했다면 구음기가 검을 타고 호천안의 몸으로 침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적절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호천안은 이제 갓 검기를 깨우친 상태였으니 반복해서 검기의 흐름을 끊고 이어내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으니.

         

       호천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가슴팍 앞에 놓여 있는 손바닥을 볼 수 있었다.

         

       “졌다.”

         

       “수고했어요. 선배.”

         

       비무가 끝난 두 사람은 나란히 차를 마셨다.

         

       “휴우, 그래도 따뜻한 것이 몸에 들어가니 살 것 같은 느낌이군.”

         

       호천안은 양 손을 찻잔에 딱 붙이고 있었다. 아무리 흑묘의 장영을 검으로 받아내고 구음기가 파고들기 전에 검기를 끊어 내면서 대응했다고는 해도 손바닥으로 잔여 한기가 들어오는 것까지 피할 수는 없었으니까.

         

       흑묘는 호천안이 양손으로 찬잣을 꼭 잡고 있는 것이 우스워 낮게 웃음을 흘렸다.

         

       “후후, 빙공을 운영하고 나면 따뜻한 차 한잔이 최고지요.”

         

       “음. 그래?”

         

       “아무래도 몸이 차가워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으니까요.”

         

       호천안은 따뜻한 차를 마시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흑묘를 보면서 조금은 가슴이 묵직해졌다.

         

       ‘좀더 흑묘에게 신경 썼어야 했나.’

         

       호천안은 흑묘의 백발을 응시했다. 방금 전에 빙공을 끌어 올린 탓인지 새치처럼 보이던 검은 머리칼도 깨끗하게 백발로 돌아가 있었다. 아무리 태음지체를 타고난 흑묘라도 구음기를 그냥 몸에 품는 것은 부담이 있겠지.

         

       구음기라는 것이 얼마나 지독한 녀석인가.

         

       천고의 영약으로도 이길 수 없어 그 위에 영약에 영약을 더한 녀석으로도 간신히 균형이나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지독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그런 기운을 맨몸으로 흡수한 흑묘 아닌가. 그냥 본인이 괜찮다고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고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은 것은 실책이었다.

         

       “미안하다.”

         

       “…?”

         

       “아니, 사라의 치료제를 만들 때 네 몸을 보강할 수 있는 약도 하나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야 생각이 나버려서…”

         

       흑묘는 미안해 하는 호천안을 바라보면서 피식 웃었다.

         

       “지금의 저는 어때요?”

         

       “음….그…백색의 머리카락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선배, 바보에요? 그거 말고요.”

         

       흑묘는 호천안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며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어느 때는 세상에서 가장 눈치 빠른 인간이다가 이럴 때만 가면 눈치가 다 죽어버린 멍청이가 되어버리니.

         

       “저는 이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사람인가요?”

         

       “아.”

         

       호천안은 그 말에 흑묘의 머리카락 색이라던가, 김을 피워올리고 있는 차를 마시는 손짓을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사라의 구음기를 흡수하며 파생된 결과가 아니라 어째서 구음기를 자신의 몸속에 받아들였는지 그 의도를 생각했다.

         

       “…그렇구나.”

         

       흑묘는 사라를 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호천안의 머릿속에 이런저런 상념이 떠올랐다.

         

       그중 가장 크게 떠오른 단어는 협(俠)이었다.

         

       어둠 속에 숨어서 사람을 빤히 바라보기만 했던 고양이는 어느 새 한 명의 협객이 되어 있었다.

         

       “네 행동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

         

       그 사실을 깨달은 호천안은 일단 가슴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를 내뱉었다.

         

       흑묘는 그 말을 들으며 미소 지었다.

         

       “마술 공연은 성공적이었지만 궁주님은 아주 완강하게 치료를 거부하셨지. 이런 저런 사람에 희망을 걸고 실패하며 좌절하면서 궁주님의 마음은 꺾여 있었다. 남은 시간 내에 궁주님을 설득할 수 있을까. 이렇게 고민하고 있던 찰나 네가 사라의 구음기를 흡수했지.”

         

       사라가 나아진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에 궁주 역시 꺾인 마음을 딛고 일어날 수 있었다고 호천안은 말했다.

         

       “네가 사라의 기운을 흡수해 준 탓에 넉넉하게 시간을 벌 수 있었고 그 덕에 준비도 다 해갈 수 있었어.”

         

       호천안은 영수 사냥 때를 떠올렸다. 만약 여일예의 활약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도 흑갑토룡을 잡기는 잡았을 것이다. 위험한 상황을 대처할 방편도 마련은 해 놨었고. 다만 수도승들 사이에서 중상자나 사상자가 나왔겠지.

         

       흑묘가 구음기를 흡수해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저 허겁지겁 수도승들을 밀어 넣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일이었다.

         

       호천안은 말을 하면서 깨달았다. 사라를 치료하는 일에 흑묘는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걸 이제서야 알아차리다니. 

         

       ‘눈이 멀었었군.’

         

       호천안은 자신이 냉정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평상시와 같이 수련도 하고 쇠도 두드리고 유쾌하게 마술 공연도 벌였으니까.

         

       그러나 그건 그저 본인만의 착각에 불과했다.

        

       포달랍궁을 움직이기 위한 사항에만 신경 쓰고 있었을 뿐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다.

         

       구음기를 흡수해서 더 강력한 무공을 얻었으니 그냥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과연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었던가.

         

       강력한 성질의 구음기를 얻었다 한들 흑묘는 자신이 일평생 갈고 닦아온 무공의 틀을 하루아침에 바꾸어야 했고 머리색 역시 바뀌었다.

         

       흑묘는 사라를 구하기 위해 많은 것을 각오했고 실제로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흑묘의 마음가짐과 각오를 호천안은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분노에 매몰되어 있었는지도 눈치챘다.

         

       흑묘가 어떤 각오와 마음으로 구음기를 흡수했는지 이해하기는커녕 제대로 보려 하지도 않았을 만큼, 지금 자신의 마음속은 정철을 향한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는 것 비로소 알아차렸다.

         

       “…고맙다.”

         

       호천안은 여러 가지 감정을 담아 흑묘에게 인사했다.

         

       그 인사는 사라의 기운을 흡수해 포달랍궁을 움직이려는 계획을 손쉽게 만들어 준 감사 인사인지. 아니면 눈이 멀어버린 자신을 그저 침착하게 기다려 준 흑묘의 마음 씀씀이에 대한 인사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지금까지 묵묵히 자신과 함께 해 준 인사인지. 혹은 지금의 상태를 깨우치게 해 준 인사인지.

         

       호천안은 뭐라고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는 마음을 담아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흑묘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이참, 언니! 호천안 마술사님 좋아하는게 빤히 보이는데 왜 아무것도 안 하는 거에요!]

         

       ‘그러게, 어째서 아무것도 안했을까.’

         

       흑묘는 처음으로 면사를 벗고 호천안에게 얼굴을 보여주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때도 자신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흑묘는 지금이라면 답할 수 있었다.

         

       무서웠던 것이다.

         

       함부로 행동했다가는 그나마 기연사냥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핑계로 이어져 있던 선배와의 인연이 그대로 끝날까 두려웠던 것이다.

         

       흑묘는 자기자신에게 질문했다.

         

       아직도 호천안에게 버려질까 두렵냐고.

         

       ‘그렇지 않아.’

         

       이 선배는 잔정이 너무 많아서, 이 사람 저 사람 다 챙기느라고 고생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 챙기면서도 쌩하니 앞으로 나아가버리는 사람이었다.

         

       흑묘는 생각했다. 선배와 함께하는 법을 배우겠다고 한 이래로 참으로 다양한 인간관계가 있었다.

         

       사천성에서의 일이 끝나고 당도연에게 꼬드겨져서 비천마차를 타보질 않나.

         

       밝디밝은 혁기린과 친구가 되고 호천안을 좋아한다는 소리에 충격도 받고 의뭉스럽게 은근 슬쩍 일행으로 들어온 여일예와 으르릉거리기도 하고 비천마차를 함께 타고 당가로 날아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귀여운 려아를 만나고 려아에게 붙들려 강제로 여일예와 어울리기도 했다. 자신과 같이 별의 기운을 타고난 당소열과 일행이 되고.

         

       타인을 향해 손을 내밀고.

         

       사라를 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사라가 자신을 위해 이런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 어찌나 귀엽고 고맙던지.

         

       그러니까 그 마음에 응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무려 당소열에게 뺨까지 내준 사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아무 일도 없었다 하면 사라를 무슨 낯으로 보겠는가.

         

       “선배, 이건 다 선배가 가르쳐 준 함께하는 방법 탓이에요.”

         

       “뭐?”

         

       흑묘는 손을 뻗어 호천안의 앞섶을 잡고 잡아당겼다. 호천안이 당황스러운 표정이 눈앞에 보였다.

         

       호천안은 눈 앞에 나타난 흑묘의 얼굴에 마른침을 삼켰다. 언젠가부터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흑묘의 체향이 코를 가득 메웠다.

         

       흑묘 역시 지금 상황에 긴장했기 때문에 태음기를 일부 흘려버린 것이었다.

         

       흑묘는 쿵광거리는 심장소리를 머릿속에서 밀어내기 위해 아무 말이나 입에 담았다.

         

       “생각해보니까 괘씸하네.”

         

       “어?”

         

       “고마우면, 말로만 고맙다고 하지 말고 상을 줘야죠.”

         

       그래 이건 정당한 대가야. 흑묘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에 힘을 주며 호천안의 상체를 당겼다.

         

       흑묘와 호천안의 입술이 닿았다. 가볍게 접촉한 두 사람의 입술이 떼어지고 흑묘는 숨을 크게 쉬었다.

         

       “흑…”

         

       멍하니 뭐라고 말하려던 호천안의 입술이 다시 한번 덮어졌다. 가볍게 입술끼리 접촉한 방금 전과 달리 흑묘는 깊숙하게 밀고 들어갔다.

         

       ‘역시, 선배는 특별해요.’

         

       함께하는 법을 배운 뒤 흑묘는 많은 즐거움을 맛보았다. 혁기린과 웃고 월복당원들과 쌈도 먹었으며 당려아와 함께 놀고 사라를 돌봐주었다.

         

       다 즐거운 일들이었다. 선배가 어째서 단둘이 아닌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 이해할 수 있는 날들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런 많은 경험을 하고도 여전히 호천안을 향한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설육과 설육이 오갔다. 흑묘는 호천안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어쩐지 웃음이 나 입술을 떼었다. 이제는 호천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이 사람은 지닌 바 재주와 재능에 비해서 너무 자기평가가 박하다. 왜 나 따위에게 입술 박치기를…?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누군가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닐 텐데 왜 이렇게 자기평가가 박한지.

         

       흑묘의 머리에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곧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런 면까지 포함해서 호천안이니까.

         

       “선배.”

         

       흑묘가 다시 호천안의 앞섶을 당기며 중얼거렸다.

         

       “이제부터는 놓치지 않을 거에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며 흑묘는 다시 한번 호천안의 입술을 덮었다.

         

       두 사람의 설왕설래는 긴 시간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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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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