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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1

       “이, 이래도 되는 걸까?”

        

       몸에 묻은 빗물을 털어내 버린 뒤에도, 수아는 여전히 걱정했다.

        

       혹시 바닥에 떨어진 빗물 때문에 그녀들이 온 것을 들키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기에, 하늘이와 수아와 소희는 기다란 비옷을 입고 우산까지 쓴 채 병원까지 온 참이었다. 덕분에 신발이 조금 젖은 것을 빼면 몸에서 비가 뚝뚝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비는 병원 입구에 벗어두었고, 신발은 따로 가지고 온 실내화로 갈아신었으니까.

        

       병원의 면회 시간은 정해져 있다. 정신병원이라는 특성상 당연히 환자의 정신 건강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고, 특히 입원이 필요할 정도의 환자라면 차라리 병실에서 안정을 취하는 쪽이 좋았으니까. 공격성이 강한 경우도 있고, 옆에 사람이 있으면 불안해하는 경우도 있어서, 면회도 보통 의사의 판단을 듣고 결정하게 된다.

        

       뭐, 그 ‘의사’가 사실은 진짜 의사가 아니고 경찰이기는 했지만.

        

       아마 원래라면 다른 의료인들이 퇴근했을 지금도 병원에서 사라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아니, 사라를 지킨다기보다는 최나경을 체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해야 하려나. 엄밀히 따지자면 사라는 미끼였으니까.

        

       “양혜인 씨 방을 찾아갔을 때도 아무도 없었잖아. 아마 분명히 여기서 최나경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하늘이가 수아의 말에 대답했다.

        

       “하지만, 문이라도 잠겨있으면—”

        

       수아의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소희가 병원문을 밀자, 아무렇지도 않게 열렸으니까.

        

       “…….”

        

       할 말이 없어진 수아는, 그저 하늘이와 소희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

        

       병원은 소름 끼치도록 조용했다. 사실 정신병원이라고 해서 겉모습이 다른 병원들과 대단히 다른 것은 아니다. 건물 자체는 깔끔하게 청소하고 관리하는 병원들과 다를 것이 없었고, 특히 대기 중인 환자들이 없는 지금은 그야말로 ‘비어있는 병원’이라는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했다.

        

       평소라면 있어야 할 간호사들도 보이지 않았고, 복도의 불도 거의 다 꺼져 있었다. 환자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의료인들이 필요한 법인데도.

        

       병실에 환자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들 잠들었을 시간인데다가, 병실 자체는 방음이 잘되도록 만들어졌다고 들었으니까. 병실 문에는 바깥에서 열어볼 수 있는 창문이 있었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다른 환자들의 병실을 열어볼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열어보는 건 환자들에게 실례이기도 했고.

        

       “잠깐 자리를 비웠을지도 몰라.”

        

       하늘이는 의견을 제시했다. 어쩌면 너무 조용한 복도가 무서워서 어떤 말이건 해야 할 것 같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들이 여기 있다는 것을 들킬 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누가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복도에 불까지 꺼졌는데?”

        

       “……만약에 ‘돈을 받고 자리를 비웠다’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럴 만 하잖아?”

        

       소희의 의문에 하늘이가 재차 대답했다.

        

       확실히, ‘아무도 보지 못한 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제일 좋았다. 보고서 거짓말을 하는 것 보다는, 특정한 시간에 자리를 비워서 못 봤다고 하는 쪽이 나으니까.

        

       돈을 받는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사실 병원 자체는 이미 사라의 편이었다. 최대한 들키지 않도록 병원의 윗선들에만 알리고 지원금을 넘기는 식이긴 했지만. 무엇보다 이미 경찰이 개입했다는 점에서 병원 측에서 최나경에게 따로 돈을 받는 것도 애매해졌다.

        

       경찰의 아주 윗선이 아닌, 조금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경찰은 경찰이다. 일단은 인가받은 잠복이었고, 그렇기에 정당성이 있었으니까.

        

       “진짜 모든 것이 다 돈으로 굴러가네…….”

        

       “그래, 비정상이지.”

        

       소희의 한탄에 하늘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번 한 번이면 이제 끝이니까.”

        

       제일 뒤에서 따라오는 수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불까지 꺼놓은 것을 보면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사라가 입원하는 것 자체가 ‘최나경이 꾸민 일’처럼 보여야 했는데, 그게 제대로 맞아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수아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병원 직원들이 자리를 비운 건 그 이유때문이라고 해도, 어째서 최나경 측 사람은 한 명도 없어……?”

        

       “…….”

        

       그 말에 대답해줄 정보를 가진 사람은, 이 중에서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조심스럽게 걷는 와중,

        

       “끄아아아아악!”

        

       저 멀리서, 커다란 비명이 들렸다.

        

       방음이 되어있는 병실에서 여기까지 들릴 리가 없는 소리였다. 세 사람 다 그 비명에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이 느껴졌다.

        

       “저건,”

        

       무슨 소리지, 하고 하늘이가 중얼거리기도 전에,

        

       “가자.”

        

       하고, 소희가 먼저 뛰기 시작했다. 하늘이와 수아는 허둥지둥 그 뒤를 따라 뛰었다.

        

       *

        

       “…….”

        

       최나경은 나의 질문에 한참이나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말할 수 없는 건가요?”

        

       “아니.”

        

       나의 질문에, 최나경이 고개를 저었다.

        

       “말해줄게.”

        

       그리고 한걸음, 내 쪽으로 내디딘다.

        

       나는 더 이상 뒤로 갈 곳이 없었다. 뒤는 창문이었으니까.

        

       여름밤의 창문이었는데도, 등에 닿은 창문은 꽤 차가웠다.

        

       “나는, 오래전에, 너의 엄마를 사랑했어.”

        

       “…….”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서라도 너희 엄마를 따라가고 싶을 정도로. 평생 다른 사람을 이것보다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최나경은 다시 한 걸음 다가온다. 나를 더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다는 듯.

        

       창문에서 들어온 희미한 불빛이 최나경의 얼굴을 비춘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보이는 것은, 아마 창밖에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결혼했을 때는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어. 다시는 내 손에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두 사람은 서로를 정말로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거든. 내가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았어.”

        

       “……끼어들 수 있었다면.”

        

       “아마, 끼어들었겠지.”

        

       그녀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녀가 불행해지는 것을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셨잖아요.”

        

       “하지만 네가 남았지.”

        

       최나경은 다시 한 걸음 나에게 다가왔다. 이제 우리 둘의 간격은 세 걸음도 남지 않았다. 누구 하나가 마음먹고 달려든다면, 확실하게 덮칠 수 있는 거리.

        

       “……내가, 엄마와 닮았기 때문에?”

        

       “……부정은 하지 않을게.”

        

       최나경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하지만, 네가 그녀와 닮은 것은 그저 이유의 일부의 불과해. 나는 너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녀’를 원했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것이다.

        

       최나경은 애초부터 ‘나’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다.

        

       나를 낳아준, 나와 똑같이 닮은 어머니를 사랑했던 거지.

        

       그래서, 그렇기에…….

        

       그저,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기 싫었을 뿐이리라.

        

       내가 한때 그렇게 사랑했던 ‘어머님’은, 나를 그저 다른 사람에게 빼앗겨서는 안 되는 장난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 하하…….”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렇게 너를 다시 찾았다고 하더라도.”

        

       하지만 최나경의 말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너가 아직, 그녀가 되지 않았으니까.”

        

       “……뭐?”

        

       “나밖에 모르는, 내가 알고 있는, 나만이 알고 있는, 그녀.”

        

       “……그래서, 나를 정신병원에 가둔 거야?”

        

       “그저 기회가 와서 그렇게 했을 뿐이야. 사라야.”

        

       최나경은 천천히 팔을 들어 벌렸다.

        

       “이리 오렴. 앞으로도, 계속 같이 지내자. 그리고—”

        

       “싫어.”

        

       나는 그 말을 중간에 딱 잘랐다.

        

       시야가 조금 흐릿했다. 눈에서 뭔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마 눈물일 것이다.

        

       분노와 후회가 섞인.

        

       그리고, 동정이 섞인.

        

       나에 대한.

        

       완전히 틀려먹은 상대를 사랑하고 있던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동정이 섞인.

        

       불쌍하다.

        

       그리고, 억울하다.

        

       미친 듯이 억울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그런 이유로…… 나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고 싶어 하는 어느 존재 때문에, 내가 그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차라리, 차라리 그저 나를 사랑했다고 했으면 좋았을걸. 차라리 어머님이 나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좋았을걸…….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다. 아,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래서는, 최나경이 달려들었을 때—

        

       그렇게, 내가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기 직전이었을 때였다.

        

       번쩍, 하고, 창밖에서 번개가 쳤다.

        

       한순간 병실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창문의 빛이 들어올 수 있는 모든 각도에서, 강렬한 빛이 카메라 플래시처럼 병실 안 구석구석을 비추었다.

        

       그리고, 시야 한구석에, 병실 저쪽 구석에—

        

       사람 한 명이 서 있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눈을 크게 뜨고 서서, 이쪽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어떤 여인의 인영이.

        

       번개의 하얀 빛 때문이었는지, 일순간 보였던 그 여인의 피부는 그야말로 피가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 것처럼 핏기가 없어 보였다.

        

       정신병원, 밤, 절체절명의 순간, 비 오는 날, 번개.

        

       그 모든 조건이 모여서, 그 순간적인 광경이 미친 듯이 무섭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우르릉, 하고 다소 뒤늦게 천둥이 치는 순간에,

        

       “끄아아아아악!”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머릿속에 있던 모든 울분을 순간적으로 잊고 순수하게 공포에 질린 소리를 질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도 그녀는 메이드 복을 입고 있었던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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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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