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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1

     사람이 죽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축제!

     라고 하면 안 된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죽으면 전국민이 기뻐하고, 아버지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잠시나마 춤을 추고 그러겠지만, 일단 사람이 죽으면 축제가 아닌 장례식을 열어야 한다.

     귀족의 장례는 생각보다 긴 편이다.

     

     여러 장소에서 귀족들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조의를 표하기 위해 찾아오기 때문에, 시신을 땅에 묻든 화장을 하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린다.

     마법적 조치가 이루어진 관과 온도조절 마법이 걸린 영안실에 시신을 안치한 뒤, 죽은 날로부터 짧게는 일주일-길게는 보름 가까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시신을 묻거나 화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전부 무슨 특별한 예법이 있다거나 그런 게 아닌, 물리적인 시간의 문제 때문이었다.

     부고장이 날아가고, 급히 짐을 꾸려 마차를 수배하고, 급히 대륙을 달려 조의를 표하러 가기 까지 걸리는 시간 자체가 오래 걸려서 그동안은 장례식이 길게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닷새면 충분하겠군.”

     나는 장례식을 이끄는 상주로서, 온통 검은색 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행정관들에게 장례식이 이루어지는 기간을 딱 닷새로 정했다.

     “영안실은 바르셀로나 총독부에 있는 영안실을 그대로 쓰고, 조문객을 받는 건 내가 직접 하지.”

     “안 맡기셔도 되겠습니까?”

     “슬퍼서 시름에 잠기는 것도 아닌데 뭘. 내가 상주로서 직접 나서야 괜히 걸고 넘어지는 이들이 없지 않겠나.”

     카를로스 경이 우려를 표했다.

     아무래도 좋은 일도 아니고 호상도 아닌 만큼, 분명 귀족들 중에는 바르셀로나까지 와서 빈정거리거나 음모론을 퍼뜨릴 이들이 분명 존재했다.

     “고인의 명예가 걸린 문제지만, 전후사정은 확실히 해야 하는 법이야. 발자크 렘부르 군터 남작은 남작가가 진 막대한 빚을 상환하기 위해 금광 개발관을 특혜로서 받아냈고, 금광에 곡괭이를 들고 직접 확인하러 갔다가 변을 당한 것이라고.”

     적어도 겉으로 보기만 하면 자연사다.

     자기 욕심으로 인해 안전을 소홀히 한 바람에 생긴 비극이다.

     “집사였던 세바스찬이 증인이 될 것이며, 지브롤터에서 온 마법사들이 재현 마법을 펼친 결과 실제로 그 비극이 사실이라는 게 밝혀졌지.”

     시신의 방향을 바탕으로 내가 추론했던 것은 사실 그대로였다.

     “도망치려고 머뭇거리던 순간, 벽 사이에서 보인 황금의 빛에 잠시 눈이 멀어 발이 떨어지지 않았어. 그리고 벽을 살피려고 한 순간, 갱도가 무너지면서 변을 당하신 거지.”

     호로록.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들리는 거라고는 내가 잠시 솜누스 차로 목을 축이는 소리 뿐.

     “바르셀 005 행정관.”

     “예, 총독님.”

     내 부름을 받은 005번 행정관, 명찰에는 ‘에드윈’이라는 이름이 적힌 군청색 머리칼의 청년이 안경을 치켜올렸다.

     “C7구역의 개발권 양도에 대한 계약서 말이야. 렘부르 군터 남작이 돌아가셨으니, 유권해석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개발된 금광에 대한 권리.”

     -계약을 맺은 당사자가 사망 혹은 계약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가 될 경우, 권리와 재산은 자산으로 간주하여 제1 상속자에게 이양된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다.

     계약서 상에 적어두기는 했지만,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금광에서 광부들이 살인사건을 일으켜 광부들끼리 죽은 일은 있었어도, 적어도 개발권을 가진 당사자-귀족이 죽은 건 처음이니까.

     “발자크 렘부르 군터 남작은 따로 양자를 들이거나 후계자를 들이지 않았습니다. 유일한 혈육은 샤를로트 지브롤터와 그 손자손녀, 즉 총독님의 어머님과 형제자매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남작의 자산을 우리가 상속한다면, 자연히 그곳에 있는 금광도 우리의 것이 되겠군.”

     “예. 그….”

     “남작가를 상속한다는 건, 렘버리도 상속받는다는 것.”

     금을 캐냈다.

     하지만 그 금을 얻고자 한다면, 렘부르 군터 남작령까지 가지게 된다.

     “행정관들에게 물어보지. 제국에는 ‘상속포기’라는 제도가 있다고 들었는데, 확실한가?”

     “아, 네. 약 40년 전에 제도화된 내용으로, 상속자가 자산을 상속받기를 포기한다면 후순위 상속자에게 상속권이 넘어갑니다.”

     “그렇다면 노스트럼 왕국에는 상속포기라는 제도가 있을까?”

     “…….”

     “없다네.”

     나는 단언했다.

     “노스트럼에서는 부모의 것은 모두 자식, 그 중에서도 장남이 물려받는 것. 장남이 아닌 이가 자산을 물려받으려고 한다면, 가문을 떠나 ‘죽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

     만일 순순히 상속을 포기할 수 있다거나 그랬다면, 아버지의 형들이 그렇게 떠났을 리가 없다.

     “즉, 이대로 가면 렘버리의 그 빚폭탄이 유일한 상속자…샤를로트 지브롤터에게 넘어오겠군.”

     행정관들이 내 시선을 피한다.

     카를로스 경이 기사의 제복이 아닌 상복을 입은 것이 영 불편한듯 검은 넥타이를 살짝 당기며 풀어낸다.

     “상속포기를 하더라도 후순위를 따진다면, 어머니의 형제자매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어머니는 외동이셔. 그렇다면 결국….”

     “그 아들, 손자에게로 넘어갑니다.”

     “나한테, 말이지.”

     행정관들이 침을 꿀꺽 삼킨다.

     “황금여명 기사단의 유족들이 자리를 잡은 렘버리, 그리고 렘버리로 인한 온갖 빚을 말이야.”

     내가 뭐 본인들을 잡아먹을 것도 아닌데, 다들 서로 눈치를 보고 자기 목에 칼이 채워진 것처럼 불편함을 감추지를 못한다.

     “안심하게. 다들. 발자크 렘부르 군터 남작령에 관해서는 다 생각이 있으니.”

     

     나는 품에서 금화를 하나 꺼냈다.

     “한 가지 그대들에게 명령해야 할 게 있다면, 죽은 이에 대한 엄숙한 애도를 표하라는 것이야.”

     당연한 말이다.

     상식적인 말이다.

     “왜 죽어도 바르셀로나에서 죽었냐고, 왜 우리에게 이런 귀찮은 일을 만들었냐고. 그렇게 정 없는, 비인간적인 이야기는 적어도 남들 앞에서는 하지 말자고.”

     하지만 죽은 사람이 ‘죽어서 도움이 되는 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안된다고 할 수 있지만 웃음이 나오는 때도 있고, ‘죽어서 민폐가 되는 이’가 있다면 왜 그런 식으로 죽었냐고 짜증이 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장례식을 통해서, 우리 지브롤터는 우리 가문에 드리운 ‘렘부르 군터’를 완전히 지워내려고 할 예정이니까.”

     나는 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낸 다음, 유리병의 끝을 기울여 내 눈가에 가볍게 흘렸다.

     “죽기 전에 어떻게 했든, 죽는 과정에서 무엇을 했든, 죽고난 뒤에 남겨둔 게 무엇이든, 일단 죽은 것 만큼은 사실이니까.”

     주룩.

     “외조부가 돌아가신 것에 대해, 인간적으로 애도를 표하기만 하자고. 최선의 대우로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나는 미리 꺼내뒀던 금화를 손으로 쥐어, 그걸 반으로 접었다.

     “언젠가 국가 전체가 애도를 표할 날.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선왕’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국가장례식의 예행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알겠나?”

     

     모두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바르셀로나 역, 정차하는 마도자동선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이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귀족이다.

     귀족이 죽으면 서신을 보내는 걸로 애도를 표하는 경우가 있으나, 나이가 오래 되거나 이름을 널리 알려놓은 명사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의 죽음을 직접 애도하기 위해 직접 추모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

     평범한 사람의 죽음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추모를 할까?

     바르셀로나에 있던 광부들 중 몇 명은 광부들이 죽을 때는 오지도 않았으면서, 라는 식으로 바닥에 침을 뱉기도 했으나, 적어도 그 목소리는 귀족들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잦아들었다.

     자작에 남작에 백작에, 심지어 후작까지.

     모르가니아 공작가에서 누군가가 오기라도 한다면 사실상 제국에서 작위를 가진 귀족들이 하나씩은 방문하는 초유의 사태.

     아니, 윈체스터 대공과도 같은 소드 마스터가 죽기라도 했단말인가?

     도대체 누가 죽었길래 총독부에서도 난리고 귀족들이 이렇게 속속들이 모여드는 건지 의아하던 이들은 곧 총독부 행정관들이 게시판에 내건 부고 알림을 보고 탄식했다.

     “발자크 렘부르 군터 남작이 바르셀로나에서 사망. 금광 개발 중 갱도 붕괴.”

     “어떻게 죽었는지는 안 나와있어?”

     “몰라. 과다출혈로 죽었는지 돌 맞아 죽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그런데…고작 남작이 죽었는데 여기에서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거야?”

     모르는 사람이라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호들갑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렘부르 군터 남작이라는 인간, 렘버리 횡령한 사람 아니었어?”

     “그 사람이 총독의 외조부라고 하더군.”

     “……뭐?”

     바르셀로나는 불과 수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르셀 후작가였다.

     지브롤터 가문에 대한 관심보다는 황금여명의 기사단 구성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의외로 많은 이들이 렘부르 군터라는 성에 대해 알지 못했다.

     정확히는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고, 렘부르 군터라는 이름이 널리 퍼진 계기가 벌써 20년 가까이 지난 일이라 많은 이들의 관심과 기억에서 멀어지고 잊혀졌었다.

     “크림슨 지브롤터 후작이 변경백 시절에 지금의 후작 부인을 맞이할 때 그 아버지 측이 뒷목 잡고 쓰러졌다고 하던데, 그 사람이 바로 이번에 죽은 남작이었다고?”

     “그러게. 쯧쯧. 좀 안 됐네. 조금만 더 살았으면 외손자가 제국의 황태자가 될 수도 있는 거였을 텐데.”

     “불쌍할 일인가?”

     “글쎄? 적어도 높으신 분들이 저렇게 와서 애도를 표하는 걸 보면 그래도 명망있던 사람이었던 거 아닌가?”

     일반 영지민들은 자세한 걸 알지 못한다.

     그나마 어느정도 알고 있던 이들도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이상, 그저 주어진 정보로만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의절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장례식은 진짜 성대하게 열리는 모양이군.”

     “그러게. …세상에, 저거 보게.”

     바르셀로나의 성문.

     마도자동선이 아닌, 바르셀로나 땅에서 가장 자주 보였던 문장이 새겨진 마차들이 가문의 깃발 대신 검은 조기를 내건 채 바르셀로나에 들어왔다.

     “저거, 설마….”

     “세상에. 후작이 직접?”

     그레이 지브롤터 총독이 상주가 된 장례식.

     그 자리에 이런 일로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이들이 나타났다.

     “귀족들이 다 직접 상복 입고 오려고 한 이유가 있었군.”

     장례식은 죽은 이를 애도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산 사람끼리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 의절했다고 하더라도, 죽었는데 오긴 해야지.”

     * * * 

     “안치실까지 오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

     나의 아버지, 크림슨 후작이 직접 안치실로 찾아왔다.

     

     온도 조절 마법으로 두꺼운 옷을 입지 않으면 피부를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차갑다.

     마석으로 만들어진 관의 안에 안치된 시체로부터 시체 특유의 냄새가 알싸하게 풍겨나온다.

     

     이야기하기에는 좋지 않은 장소.

     비록 안치실에 살아있는 사람은 나와 아버지 단 둘 뿐이라고는 하지만, 분명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좋은 장소가 아니다.

     “죽을 때까지 욕심 부리다 가더니, 결국 죽어서는 자식과 핏줄들에게 민폐만 끼치고 떠나는군.”

     “아버지.”

     “그래. 어디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조심하기는 하마.”

     “다른 이들도 아버지 앞에서는 말조심을 하겠지만, 그래도 너무 티는 내지 말아주십시오. 웃음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슬픔조차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아버지는 죽은 발자크 남작의 시신을 마치 적의 시체를 본 것 마냥 담담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회귀 전이든 지금이든, 아버지가 찢어 죽이고 싶은 사람 둘을 꼽자면 단언컨대 이 한 사람과 저기 무능왕 뿐일 테니까.

     “어머니의 옆에 계셔주세요. 이곳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지킨다?”

     “예. 지켜야 합니다. 그냥 장례식이라고 한다면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지만, 이게 또 보통 장례식이 아니라서.”

     나는 위아래를 가리켰다.

     “장례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 그게 이번 전쟁이거든요.”

     “…….설마.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냥 평범한 자가 죽었다면 모를까, 발자크 남작 정도가 죽었으니 써먹기 딱 좋은 환경 아니겠습니까.”

     나는 안치실의 벽을 손으로 눌렀다.

     “이곳은 구 바르셀 후작성.”

     구구구,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의 일부가 아래로 내려가며 계단이 나타났다.

     “적진의 본거지를 활용하는 이상, 적이 언제든지 기습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통로가 어디에나 있는 게 현실입니다.”

     “…….”

     “어머니와 동생들은 제가 따로 수배해둔 마도자동선에서 지내는 게 좋을 겁니다. 아버지가 그곳을 지키십시오. 저는 이걸 지키겠습니다.”

     “지킨다. 무엇으로부터?”

     “당연히….”

     나는 관을 가볍게 두드린 다음, 관의 옆에 놓인 물건 하나를 들었다.

     “시체를 훔쳐서 지브롤터의 명예를 더럽히려는 쓰레기들이 설마 명예로운 노스트럼인은 아니겠지요.”

     철컥.

     “시체를 훔치든, 아니면 그 옆에 있는 금을 훔치든.”

     도둑은 쏴죽인다.

     제국의 머스킷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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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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