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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1

   “여길 만든 허접은 정말 멍청한가봐. 이딴 함정에 누가 걸려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자기가 원숭이라고 다른 사람도 원숭이일거라 생각하는 건가?”

   

   루시 알른은 그리 이야기하며 가뿐히 함정을 뛰어 넘었지만 루카는 저 말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복도 사이에 존재하는 아주 작고 흐릿한 마력의 잔향은 결코 허술하지 않았으니까.

   

   저런 함정에 누가 걸려주냐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려주죠.

   

   심지어 저조차도 알른 영애가 말씀하지 않았더라면 위험할 뻔 했거늘 평범한 모험가들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저런 함정이 일반 던전에 있었다면 수많은 피해가 있었을 겁니다.

   

   루카는 속으로 그리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루시를 따라서 아카데미 구관의 숨겨진 장소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러한 일이 수도 없이 벌어졌기에.

   

   빛 하나 없는 미로에서 척척 앞으로 나아가며 길을 찾아내는 것은 물론이요.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모든 함정을 간파하는데다가.

   

   마물이 등장할 때면 예상했다는 듯 적이 공격하기도 전에 메이스를 휘둘러 머리를 깨버리는 그녀의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예언자에 가까워보였다.

   

   루시가 아카데미 던전을 공략하는 모습을 본 만큼 그녀의 능력을 대충 알고 있는 루카이지만 화면 너머로 보는 것과 그 옆에서 경험을 하는 것은 전혀 달랐다.

   

   그래서 루카는 루시가 경이를 보일 때마다 감탄을 연발했으나 그 때마다 루시에게 타박을 듣고 칼에게는 한심하다는 시선을 받을 뿐이었다.

   

   전자야 예상한 일이었기에 피해가 적었지만 후자는 아니었다.

   

   말해줘도 알아듣질 못한다는 듯한 칼의 시선은 ‘겨우 이 정도로 놀란다고? 참 보는 눈이 없군 그래.’ 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세공사로써 자부심을 지닌 루카에게 그 한심하단 시선은 도저히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그는 결국 속으로 경탄을 하며 겉으론 익숙해진 채 하는 걸 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합니다. 이건 알른 영애와 그녀의 호위 기사가 특이한 거 아닙니까? 누가 보더라도 이는 놀랄 일일 터인데 말입니다!

   

   명예를 중시하는 귀족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줘 보십시오.

   

   그 분들께서 군침을 흘리며 영애께 달려들 것이고, 영애의 여러 무용담을 듣고는 영애의 과거와는 관계없이 그녀를 칭송할 겁니다.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 귀족의 의무임과 동시에 귀족의 명예라 믿는.

   

   얼마나 어려운 던전을 공략했는가. 얼마나 많은 던전을 공략했는가. 그 안에서 얼마나 대단한 것을 손에 넣었는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을 겪었는가. 같은 것들이야말로 귀족의 증명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맏아들이라 할지라도 던전을 공략한 경험이 없다면 샌님이란 호칭을 선사함과 동시에 작위를 하사할 수 없다 외치는.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던전 공략 경험이 차고 넘칠 수밖에 없는 그 분들께서도 알른 영애의 위업을 보면 입이 닳고 마르도록 칭찬할 거란 말입니다.

   

   그런 것을 보고 감탄을 하는데 왜 이 정도로 놀라냐는 듯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루카는 억울함에 몸부림을 쳤지만 거기에 공감해 줄 이는 이 곳에 존재치 않았다.

   

   루시 알른이라는 빛에 너무도 익숙해진 이들에게 뜨겁지 않으냐고 소리를 쳐봐야 엄살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뿐일 테니까.

   

   “벌써 끝이네. 여길 만든 한심이는 이걸 어렵다고 생각했겠지? 정작 현실은 자그마한 여자애가 웃고 떠들며 공략할 수 있는 산책 코스일 뿐인데 말야.”

   

   그나마 루카에게 다행스러운 일은 그가 억울함을 느낄 시간이 짧았다는 것이리라.

   

   아카데미 구관에 숨겨진 던전이 끝을 드러내는 데에는 단 2시간이면 충분했으니까.

   

   수많은 길목이 늘어서 있는데다가 악의로 가득한 함정이 가득한지라 한 번 실수하는 순간 영원히 던전을 헤매야 할 곳의 끝에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이 단 2시간.

   

   “이걸 보고 어떻게 안 놀란단 말입니까.”

   

   자신의 회중시계를 확인한 루카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하. 정말. 언제까지 우끼끼거리는 원숭이로 남아 있을 생각인지 모르겠네. 사람의 시선으로 보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이해하십시오. 아가씨. 상식이 굳어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뿐입니다.”

   

   주인과 그 종자의 만담을 들은 루카는 이빨을 아득하고 갈았다. 루시는 그렇다 치더라도 칼에게는 나중에 대련을 신청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

   

   <…기이하군. 어째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일까.>

   

   아카데미 구관의 숨겨진 던전을 공략하는 내내 할배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구관에 숨겨져 있던 던전의 구조가 너무나도 익숙하다고 말이다.

   

   <여아야. 그대가 믿을지는 모르겠다만 내 동료 중 한 명. 이런 미로를 만드는 걸 좋아하던 녀석이 있었다.>

   

   나는 할배가 이야기하는 것이 누구인지 알았다.

   

   과거 악신이 봉인에서 풀려나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려 했을 때 최전선에 섰던 이들 중 하나.

   

   지금 존재하는 마법 체계 대부분에 자신의 손을 닿게 만든 대마법사.

   

   어느 날 증발한 것처럼 갑자기 사라진 탓에 여전히 어딘가에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괴담을 만들어내는 자.

   

   <이 곳에 존재하는 괴악한 취향은 녀석의 것이라고밖에 설명을 할 수가 없어.>

   

   할배의 의심은 정확했다. 석판을 지닌 게 아니라면 침입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미로를 만들어낸 것은 과거 할배의 동료였던 대마법사 에르기누스니까.

   

   ‘그런가요?’

   

   나는 이를 알고 있었지만 할배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내가 할배에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해주면 그 전말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야 할 텐데. 그건 할배가 들어서 좋은 이야기가 아니거든.

   

   난 할배가 뒷목을 잡고 넘어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걸. 메이스한테 잡을 뒷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어차피 내가 설명해주지 않더라도 할배라면 어차피 알게 될 텐데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할 이유가 없지.

   

   <녀석이 이 아카데미와 관련이 되어 있다고? 왜?>

   

   나는 할배의 의문을 무시하며 앞으로 척척 걸어나갔다.

   

   본래 아카데미 구관에 숨겨진 던전은 길을 찾아주는 석판이 없다면 통과할 수 없는 미로다. 그것이 길을 가리켜주는 대로 따라가지 않으면 어느새 입구로 돌아가게 되거든.

   

   근데 이 미로에 한해선 제작사 쪽이 좀 허술했어. 석판이 알려주는 길이 하나로 고정돼 있었으니까.

   

   물론 그 길이라는 게 더럽게 복잡해서 외우기 어려웠던 건 사실이지만 썩은물한테 그런 건 문제가 안 돼.

   

   외우는 게 효율적이라면 암기하고 마는 게 썩은물이란 족속이라고!

   

   그 때 여러 쌍욕을 퍼부어 가며 들였던 시간은 긴 세월이 지나 세상마저 바뀐 지금도 제대로 된 보답을 선사했다.

   

   2시간 정도 걸린 건가.

   

   뒤에 따라오는 두 사람을 신경 쓰느라 좀 늦었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아침이 되기 전엔 돌아갈 수 있겠다.

   

   그리 생각을 하면서 문 손잡이를 붙잡았다.

   

   휴식은 필요치 않았다.

   

   2시간 정도 산책을 했을 뿐인데 무슨 휴식이 필요하겠는가.

   

   “침입자인가.”

   

   두터운 철문을 가뿐하게 밀어서 연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고서 너무도 오랜 세월이 지나 모든 살과 장기를 잃어버렸으며,

   

   이성을 잃어버렸고,

   

   추억을 잃어버렸으며,

   

   영혼마저도 닳고 닳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목적만은 기억하고 있는.

   

   아니. 기억하고 있다고 믿는 이의 목소리가.

   

   “아니군. 침입자일 리가 없어.”

   <저 목소리는!>

   

   투박한 돌로 만들어진 좌에 앉아 우리를 가만 바라보던 이는 자신의 무릎 뼈를 짓누르면서 일어섰다.

   

   “…아가씨. 뒤로 물러서십시오. 저건 위험합니다.”

   

   그러기 무섭게 칼이 자신의 검을 꺼내들며 내 앞을 가로막았고.

   

   “칼 교수의 말이 옳습니다. 지금의 영애께서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군요.”

   

   루카가 자신의 품 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칼이 과민반응을 하는 것이야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루카는 아니다.

   

   어지간한 위협이라면 기꺼이 나를 앞으로 내세울 녀석이 날 지키고 서는 데에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내가 저 자와 싸워봐야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다는 것.

   

   저 해골의 앞에 서는 순간 그대로 개죽음을 당하리라는 것.

   

   둘의 판단은 정확했다.

   

   난 아직 저 녀석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반 년 정도가 더 지난다면 모를까 지금은 무리지.

   

   나라고 해서 그 사실을 모르진 않는다.

   

   어찌 모르겠는가. 내가 이 곳을 방문한 횟수만 따져도 수천은 가볍게 넘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곳에 당당히 찾아온 이유는 저 해골을 쓰러트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곳은 던전이기 이전에 시련의 장소니까.

   

   “던전에 나오는 마물들이 허술한 게 문제였습니다. 방심을 했군요.”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닙니다. 어찌하면 저 녀석을 상대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할 때죠.”

   

   뛰어난 실력을 지닌 무인 두 사람이다. 상대와 자신이 지닌 실력의 격차를 파악하고 빠르게 전략을 구상해나갔다.

   

   정작 좌에 앉은 해골은 그 두 사람을 시선에도 두지 않았다.

   

   그는 그저 나를. 나만을. 바라봤다.

   

   오래 전에 눈이 사라진 검은 눈동자의 안으로 나를 빨아들이기라도 할 것처럼 집요하게.

   

   “신의 사랑을 받는 자여.”

   <…음?! 아니군. 아니야. 녀석이 아냐. 저건 그걸 흉내내고 있는… 아. 아!>

   

   그러다 녀석이 내게 말을 걸었다. 게임에서는 단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던 대사로 말이다.

   

   “이름을 말하라.”

   

   ‘루시 알른입니다.’

   “루시 알른이야. 정신병 걸린 뼈다귀.”

   

   “루시 알른인가. 당당한 소개에 감사하며 본인도 스스로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 기사의 이름은 가라드. 한 때 영웅의 일각을 차지했던 자다.”

   

   <푸하하! 에르기누스! 이 정신 나간 새끼는 끝까지 꼴통이었군!>

   

   해골이 자신의 소개를 끝마치기 무섭게 할배가 격한 웃음과 속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저 해골의 정체는 대마법사 에르기누스가 자신의 동료를 추억하며 만들어낸 호문쿨루스.

   

   메스가키 스킬이 말한 것처럼 자신을 영웅이라 믿으며 영웅의 우스꽝스러운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는 정신병자 해골이니까.

   

   할배의 입장에서는 친구의 흑역사가 박제되어 있는 걸 구경하는 느낌이지 않으려나.

   

   “…가라드?”

   “영웅의 유해라고? 설마. 그럴 리가.”

   

   아. 젠장. 할배랑 옆의 두 놈들의 격차 때문에 나까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아.

   

   한 쪽은 잔뜩 긴장했는데 다른 한 쪽은 웃느라 정신이 나가 있다니!

   

   진정. 진정하자. 여기서 갑자기 폭소해버리면 그냥 미친년이잖아.

   

   “무슨 용무로 이 곳을 찾았나.”

   

   ‘당신이 지닌 방패를 원해요.’

   “정신병 걸린 뼈다귀한테 과분한 방패를 회수하러 왔어.”

   

   “그렇군. 하긴 그것밖에 없겠지.”

   

   <푸흐핳하하!>

   

   해골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에 할배의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아. 진짜 정신 사납네.

   

   “신의 사랑을 받는 그대이니만큼 그냥 주고 싶기는 하다만 안타깝게도 내겐 그런 권한이 없다.”

   

   ‘그러면요?’

   “오랜만에 수다 떨 상대가 생겨서 기쁜 건 알겠는데. 정신 나간 해골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는 입장도 생각해줄래?”

   

   “…아아. 미안하군.”

   

   <쿠흡. 크하하하! 예의에 미친 녀석을 흉내냈음에도 여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가!>

   

   할배! 제발 적당히 좀 해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그대는 내가 내리는 시련을 통과해야 한다.”

   

   아무리 좆밥인 시련이라도 집중할 땐 집중해야 한단 말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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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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