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51

    처음 들어갔을 때는 횃불이 잔뜩 타올라서 굉장히 밝았던 보스방이지만, 어느새 가득했던 횃불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이제 남은 횃불은 단 하나.

    그 어두운 곳에서 황금 사신 일행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황금 사신이 들고 있던 방패는 이미 부서진 상태였다.

    게다가 황금 사신의 머리 위 떠올라서 남은 체력을 표시하는 초록색 막대기는 반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붉은 사신은 부러진 창을 들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구석에 앉아서 다른 미니 사신들이 싸우고 있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시무룩한 붉은 사신의 머리 위의 초록색 막대기는 텅텅 빈 상태였다.

    남은 체력이 거의 없는 푸른 사신은 뭔가 큰 주문을 사용하려는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얼마 안 남았어!’

    황금 사신이 한손검을 부여잡고 의지를 표현했다.

    던전의 최종 보스는 공격을 맞을 때마다 횃불이 하나씩 꺼지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대신 횃불이 줄어들수록 보스방의 어둠이 짙어져서, 그림자를 다루는 보스가 강해지는 기믹이었다.

    의지를 다지는 황금 사신을 내려다보며, 보라 사신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하늘로 뛰어오르더니, 빠른 속도로 그림자 창을 잔뜩 쏘아 보냈다.

    목표는 주문을 준비 중인 푸른 사신!

    황금 사신은 화려한 동작으로 그림자 창을 작은 한손검만으로 전부 쳐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패도 없이 작은 검 한 자루만으로는 무리였는지, 커다란 창이 황금 사신의 몸통을 강타했다.

    ‘끄앙.’

    체력이 모두 떨어진 황금 사신은 미니 사신 미궁의 규칙대로 ‘끄앙!’이라고 의지를 뿜어내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쓰러졌다.

    그리고 황금 사신은 바닥에 대자로 엎어지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푸른 사신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푸른 사신이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주문을 실패한 것으로 보이자, 보라 사신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푸른 사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림자로 검을 만들어서 푸른 사신을 향해 휘둘렀다.

    ‘끄앙!’

    그림자 검에 베인 푸른 사신은 규칙대로 사망자의 비명을 질렀지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푸른 사신이 쓰러진 뒤편에는 물로 만들어진 문자열이 새겨져 있었다.

    <부활.>

    주문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 문자열에 깜짝 놀란 보라 사신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에 보인 것은 체력을 소량 회복해서 부활한 붉은 사신이었다.

    부러진 창을 앞으로 뻗은 채, 온몸이 불꽃으로 뒤덮인 붉은 사신.

    ‘받아라!’

    고속으로 돌진하는 창병의 필살기.

    그리고 그 필살기는 보라 사신의 심장에 틀어박혔다.

    ‘!!!’

    그러자 보스방안에 퍼진 모든 그림자가 울렁거리며 보라 사신을 향해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잔뜩 모여든 그림자는 갑작스럽게 ‘펑’ 하고 터지면서 화려하게 흩어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어둠 속에 잠겼던 보스방의 그림자가 모두 사라지고, 꺼졌던 횃불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마지막까지 화려한 죽음이었다.

    붉은 사신은 창을 높이 치켜들고 승리의 만세를 했다.

    그리고 전투가 끝나서 부활한 황금 사신과 푸른 사신도 후다닥 달려와서 만세에 동참했다.

    폴짝폴짝.

    정말 행복한 것처럼 점프하고, 서로 부딪쳐서 구르며 기쁨을 표현했다.

    그리고 보스방 끝에 있던 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보물 상자가 있는 방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말 맛있는 향기가 나는 방이었다.

    뚜방뚜방.

    그러자 황금 사신 일행은 서로 손을 꼭 붙잡고, 신나게 손을 휘두르며 뚜방뚜방 보물 상자 방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겼어!’

    ‘모두 잘했어!’

    황금 사신 일행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나는 던전을 모두 관찰할 수 있는 던전 최심부에 누워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미니 사신들이 미궁 놀이에 금세 질릴 거로 생각했었지만, 생각보다 성황리에 운영 중이었다.

    미궁 근처에는 등에 번호가 새겨진 미니 아귀를 들고 있는 미니 사신들이 잔뜩 모여들어 있었다.

    순서가 오면 ‘뀨힝힝’하고 우는 번호표 하얀 아귀였다.

    그리고 미궁의 입구에는 집사 아귀들이 노란 사신이 만든 온갖 종류의 인형 옷들을 나눠주고 있었다.

    검과 방패를 장비한 황금 사신 인형 옷.

    창을 든 붉은 사신 인형 옷.

    지팡이를 든 푸른 사신 인형 옷.

    활을 든 주황 사신 인형 옷.

    대검을 든 검은 사신 인형 옷.

    등등 온갖 장비와 온갖 색을 가진 인형 옷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푸른 사신이나 보라 사신 정도일 텐데, 그 숫자가 너무 부족했으니까.

    그대로 입장하게 만들었다면 황금 사신들로만 이루어진 파티가 즐비했을 것이다.

    게다가 신체 능력 차이를 감안해서 인형 옷으로 능력치를 제한하는 효과도 있었다.

    시선을 돌리자, 보스 대기실에서 서로서로 열심히 투닥거리고 있는 보라 사신들이 보였다.

    그림자로 몬스터를 만들어 내고, 보스 역할까지 하는 보라 사신들이었다.

    투닥투닥해서 몬스터를 만들고, 투닥투닥해서 보스방에 들어가고.

    역할이 역할이니만큼 굉장히 바빴는데, 생각보다 행복해 보였다.

    보스역을 맡으면서 무게를 잡을 수 있어서 그런가?

    나라면 아귀를 시켰을 텐데, 기어코 몬스터 같은 귀찮은 역할을 자기가 해버리네.

    시선을 돌리자, 보물 상자 방에서는 황금 사신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사탕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석에는 황금 사신들이 벗어던진 인형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아이들은 자기 몸통의 몇 배나 되는 초거대 별사탕을 품에 안고, 굉장히 맛있게 먹고 있었다.

    마치 영화를 친구들끼리 보고 나서, 식사하며 그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누가 어떤 몬스터를 잡을 때 어떻게 대단했는지, 다른 장면에서는 누가 대단했는지 서로서로 의지를 나누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사실 던전 보상인 초거대 별사탕은 특별하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같이 모험하고 클리어 보상으로 같이 먹어서 그런지, 먹을 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을 먹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행복한 미니 사신들을 봐서 그런지, 갑자기 나도 미궁에 들어가고 싶어졌다.

    누가 티라노 미궁을 만들어 주면 좋을 텐데….

    ***

    세희 연구소 제3 회의실.

    평소에도 잘 쓰이지 않는 제3 회의실이었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 서아와 다른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아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진행하는 면접이었다.

    원래 매번 농땡이를 피우면서도 다른 직원의 3배는 일했던 엘리트 오예린 연구원이 있었을 때는 괜찮았다.

    하지만 현재 오예린 연구원은 회색 사신 보모 역할을 제외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게 변해버려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서아는 이력서를 천천히 넘겨보면서, 눈앞에 있는 헬멧 연구원을 살펴보고 있었다.

    연구원은 놀랍게도 면접에서 제임스사 마크가 대문짝만하게 찍힌 정신 오염 차단 헬멧을 쓰고 있었다.

    ‘예상보다 특이한 사람이네.’

    오브젝트 협회에서도 헬멧을 자주 쓰고 다녔다고 하던데, 정말 정신 오염에 철저한 사람으로 보였다.

    원래라면 절대로 뽑지 않았을 괴짜로 보였지만,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좋게 보였다.

    황금 사신이 뿌리는 미약한 정신 오염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서 그런지, 현재 세희 연구소에는 미니 사신을 제대로 관리할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대단해. 정말로 철저하구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스펙도 훌륭하고, 오브젝트 협회에서도 일 처리만큼은 굉장히 좋았다고 들었으니 뽑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원래라면 당연히 메일로 통보해야겠지만, 서아는 들뜬 마음에 직접 합격을 통보해 버렸다.

    “귀하의 입사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귀하의 가치관과 우리 회사의 비전이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멋진 성과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네요.”

    서아가 사무적인 말투로 합격을 알린 뒤, 연구원과 악수했다.

    “합격인가요?”

    “물론 합격이에요. 자세한 사항은 메일로 보내둘게요. 나중에 확인해 보세요.”

    서아가 싱긋 웃으며 이야기하자, 헬멧 연구원도 마주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리고 약간 어수선한 느낌으로 면접장을 나섰다.

    그렇게 면접자가 나가자, 서아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새싹 사신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을 것 같지? 정신 오염에 철저한 걸 보니, 김중뢰 선임 연구원에 비견될 만한 사람일 것 같아.”

    하지만 서아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새싹 사신은 키득키득 웃기만 할 뿐이었다.

    ‘?’

    서아는 이해하기 힘든 반응을 보이는 새싹 사신을 보며 어리둥절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렸다.

    ***

    세희 연구소 정문에서 방문자증을 반납한 헬멧 연구원은 경쾌한 걸음걸이로 주차장을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들어가기 힘들다는 세희 연구소에 드디어 합격이야!”

    헬멧 연구원이 굉장히 기쁜 기색으로 말하자, 헬멧 속에 들어있는 황금 사신이 연구원의 뺨을 토닥이며 같이 즐거워했다.

    헬멧 연구원은 황금 사신을 헬멧 속에서 꺼내, 손 위에 올려두고 말했다.

    “이제 다른 미니 사신이 친구들이랑 놀 수 있겠네?”

    그러자 황금 사신은 별로 필요 없다는 것처럼 도리도리했다.

    “그래도 다른 황금 사신이도 있으면 좋지 않아?”

    헬멧 연구원이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황금 사신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지?”

    헬멧 연구원은 미니 사신들과 놀기만 한다는 세희 연구소의 소문을 생각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뚜방뚜방.

    미니 사신들이 모두 내가 만든 미궁에 푹 빠져있는 동안, 나는 새로 생긴 지형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보라색 달을 물리쳐서 생긴 걸까?

    미니 사신 정원, 사탕 산맥 너머에 생긴 끝없이 펼쳐진 설원이었다.

    ‘오.’

    나는 산맥 위에서 설원의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감탄했다.

    구름 한 점 없는데, 함박눈이 내리는 설원.

    설원 한편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온갖 종류의 과일과 떡들이 열린 나무.

    그리고 그 끝에는 눈이 뭉쳐서 만들어진 얼음이 빙하처럼 흐르며, 핫초코의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손바닥 위로 떨어지는 눈을 입가로 가져가서 조금 먹어보았다.

    냠냠.

    그러자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히 퍼져나갔다.

    ‘맛있네.’

    우유에 단맛을 첨가한 뒤 얼린 것 같은 맛이었다.

    게다가 이 우유 빙수 같은 설원에는 빙수에 얹어 먹을 토핑이 열리는 나무들까지 있었다.

    완벽하네.

    나는 바닥에 누워서 눈을 먹고, 과일들도 따 먹으면서 설원을 만끽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계속 눈을 배 속에 집어넣고 있었더니, 내 시야 구석에 하얀색 쥐처럼 생긴 오브젝트가 꾸물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하얗고 복슬복슬해서 귀엽고, 꼬리에는 온갖 종류의 과일을 꼬챙이 해둔 햄스터였다.

    시간 가속으로 쫓아가서 붙잡아 보니, 꼬리에 꽂힌 과일들은 모두 설탕으로 코팅된 상태였다.

    ‘으음. 무언가 절대로 잊어먹어서는 안 되는 오브젝트 같은 느낌이 드네.’

    설원.

    꼬챙이.

    뭔가 생각날 것 같은 조합이었다.

    나는 햄스터를 꽉 잡은 채,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다음화 보기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