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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2

       해룡 리바이어던. 녀석은 까다로운 상대다.

       

       파도를 일으키는 것은 녀석의 역량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놈은 입에서 불을 뿜어낼 수도, 비늘로 대지를 가를 수도 있다. 작정하면 뭍으로 올라와 아카데미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 것도 가능하다.

       

       이대로라면 수개월 전의 악몽이 재현된다. 늦어버리기 전에 어떻게든 수를 써 놓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세실은 입술을 짓씹으며 앞으로 내달렸다.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영문 모를 광원은 북쪽 하늘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게 대체….”

       

       변광성처럼 깜빡이는 저 싯누런 불빛은 일종의 신호처럼 보였다. 리바이어던을 움직이게 하는 신호 말이다.

       

       빗줄기에 묻혀 지금까지 발견한 이가 없었을 뿐, 어쩌면 새벽부터 지금까지 하늘에 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큰일이었다. 해룡이 처음부터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고 있었다는 뜻이었으니까.

       

       타타탁!

       

       세실은 땅을 접어 달렸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몸이 총알처럼 쏘아졌다. 그녀의 신형은 어느덧 아카데미의 최북단까지 와 있었다.

       

       “아….”

       

       입에서 나지막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기숙사 입구가 무너져 있었다.

       

       단순히 물의 무게를 못 견뎌 무너진 것일까?

       

       아니다.

       

       ‘옥상에 마수가 있구나…!’

       

       리바이어던을 조종하는 상급자가 저 위에 있다.

       

       이 기숙사가 아카데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니까 자리를 잡은 것이다. 리바이어던과 통신하기 위해 기숙사를 점령하고 학생들을 포로로 잡았겠지. 입구가 봉쇄된 것도 필경 그 때문이리라.

       

       멀리 내다볼 것도 없었다. 들어가는 길이 막혔다면 다른 방법으로 올라가는 수밖에.

       

       세실은 짧은 주문을 읊었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며 두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그렇게 옥상까지 단번에 올라간 세실이 본 것은….

       

       “선생님, 이렇게 한다고 정말 비가 멈출까요?”

       “빗줄기가 얇아지고 있잖니. 조금만 더 해보자.”

       

       지향등을 깜빡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중 한 명은 세실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스테야 하이젠버그. 그녀가 얼마 전 임용을 허가한 신임 교수였다.

       

       다른 한 명은 피어바인 가문의 자제인 듯한데….

       

       당장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세실은 파쿠르를 하는 것처럼 난간을 뛰어넘었다. 하이젠버그 교수와 여학생 한 명의 시선이 자신을 흘깃 향해왔다.

       

       “여기서 뭣들 하는 건가요?”

       

       세실의 말 한마디에는 노기가 담겨있었다.

       

       “재난방송 못 들으셨나요? 건물 바깥에 나와 있으면 위험해요!”

       “죄송합니다 총장님.”

       

       하이젠버그 교수는 지향등을 위로 올리고 혼자 다가왔다. 빗물 때문에 그녀의 옷은 푹 젖어 있었다. 진득하게 눌어붙은 와이셔츠를 본 세실 총장은 큼큼, 하고 헛기침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진공 방수막을 하이젠버그 교수와 학생에게 씌워준 채로 물어보았다.

       

       “학생 한 명을 끼고 무얼 하셨던 건가요?”

       “제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제요?”

       

       세실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제가 아는 그 제사 말인가요?”

       “네. 하늘에 빌어 비를 그만 내려달라고 간원하던 참이었습니다.”

       

       세실의 시선이 지향등을 향했다.

       

       대포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몸통은 철제로 되어있는 것 같았고, 앞쪽에는 유리판을 통해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교수님께서 연성술로 만드신 건가요?”

       “네, 급조한 것입니다.”

       “기물이로군요. 제 마도 인생에서 이런 연성품은 본 적이 없어요.”

       

       세실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하이젠버그 교수를 쳐다보았다.

       

       모닥불처럼 은은하고 심유한 눈빛이었다. 어떻게 이런 폭우 속에서 평정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아리송할 정도로.

       

       “기숙사에 있던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모두 건물 안에 잘 있습니다.”

       “다치거나 변고를 당한 사람은요?”

       “없습니다.”

       

       과연 세실이 아래층을 내려다보니 사람들이 콩깍지에 담긴 완두처럼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세실은 다시 하이젠버그를 흘겨보았다. 그녀는 하늘을 향해 불빛을 쏘아 보내는 중이었다.

       

       “하이젠버그 교수님께서는 왜 이런 일을 하시는 건가요?”

       “방금 말씀드렸습니다.”

       

       깜빡, 깜빡, 깜빡.

       

       어떨 때는 길게, 또 어떨 때는 짧게 빛을 쏘아내는 하이젠버그. 세실의 고개가 갸웃 돌아갔다. 미신이 거의 사라지고 마도가 유일한 진리로 남은 시대에서, 1천년 전 사고를 지닌 사람이 아직도 존재한단 말인가?

       

       세실은 곁에 있는 학생에게 먼저 물었다. 이름이 유피엘이라고 했다. 유피엘은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저도 모르겠지만, 선생님이시니까 무슨 방법이 있을 거예요.”

       

       이해할 수 없었다. 세실은 지향등을 조종하던 하이젠버그 곁으로 다가가 따지듯이 말했다.

       

       “기우제도 아니고 이게 뭔가요? 아무런 소득도 없는 일을 하신다니요!”

       “총장님.”

       

       하이젠버그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하늘이 제 기도를 들어준 모양입니다.”

       

       덜컹, 하며 지향등이 고개를 떨구었다. 동시에 불빛이 꺼지고, 빗방울도 점차 얇아지기 시작했다.

       

       하이젠버그는 손을 앞으로 내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빗줄기가 잦아들고 있습니다.”

       “…….”

       

       세실의 입이 떡 벌어졌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는군요.”

       “제 기도 덕분입니다.”

       

       하이젠버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지향등을 치웠다. 세실은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제사라니요. 교수님께서는 구시대의 미신을 믿으십니까?”

       “제가 무얼 믿든 자유이지요.”

       

       자유.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카우렐리아에서 그만큼 만능인 단어도 없었다.

       

       “그, 그렇긴 하죠.”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비가 그친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다.

       

       세실은 지향등의 불빛이 리바이어던을 조종한다고 믿었다. 이는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하이젠버그가 지향등을 몇 번 깜빡거리자 비가 곧바로 멈추었다. 도저히 기세가 누그러질 줄 몰랐던 장대비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점이 석연찮았다.

       

       “…저, 교수님. 비도 그쳤는데 이제 그만 들어가시죠. 이러다가 감기에 드시겠습니다.”

       “그럽시다. 유피엘, 날 따라오렴.”

       

       유피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교수 뒤를 쫄래쫄래 쫓아갔다.

       

       두 사람은 옷을 갈아입고 돌아왔다. 하이젠버그 교수는 유피엘에게 모포를 둘러주고 믹스커피를 타 주었다. 그 모습에 세실은 영문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선생님, 질문 있어요.”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홀짝이던 유피엘이 물었다.

       

       “정말 선생님께서 지내셨던 제가 효과가 있었던 건가요?”

       “그랬겠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하늘에 등을 몇 번 쏘아보낸다고 비가 그친다는 게…….”

       

       대화를 듣던 세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스테야 하이젠버그는 이제 막 임용된 교수다.

       

       혹여 그녀가 인간형 마수라면? 그래서 리바이어던을 멋대로 조종할 수 있는 존재라면?

       

       […….]

       

       정령들은 하이젠버그 교수에 대해 침묵을 유지했다. 그 누구도 교수에게서 악의를 감지하지 못한 것이다.

       

       정말, 순수하게 제만 지낸 것일까?

       

       혹시 자신이 쓸데없는 의심을 한 것이 아닐까?

       

       아직은 모른다. 정령의 판단이라고 전부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실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큰일이군요.”

       “뭐가 말인가요?”

       “다다음 주에 학생들에게 세계수 견학을 시키자고 계획하던 참이라서요. 예상치 못한 물폭탄이 내렸으니 일자를 미루는 수밖에요.”

       “그런가요.”

       

       하이젠버그는 반개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애초에 세계수 출입은 이제 금지 아닌가요?”

       “그렇게 되기 전에 학생들에게 세례를 한번 받게 할 예정이었어요.”

       “정령계 견학 말씀이시군요.”

       

       앞으로 몇 달 후면 세계수에 들어갈 방법이 완전히 막히고 만다. 그 전에 세실은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정령계를 둘러보게 할 예정이었다.

       

       만약 하이젠버그가 이 일에 큰 관심을 보인다면….

       

       “저는 취소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어째서죠?”

       

       예상 외의 대답이 나와 놀랐다. 세실은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고는 물었다.

       

       “혹시 인간형 마수가 섞여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로드스톤은 어떻게 지키시려고 합니까?”

       “그것도 그렇군요.”

       “일이 잘못된다면 모든 책임을 총장님께서 물어야 하실지도 모릅니다.”

       

       세실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의 한숨인지, 불안해서 낸 한숨인지는 자신조차도 모른다.

       

       “저와 잠시 걸읍시다.”

       

       하이젠버그 교수는 유피엘을 기숙사로 돌려보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복도를 거닐었다. 소란스러웠던 기숙사를 전부 정리하고 나니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에는 더없이 좋은 분위기였다.

       

       “하이젠버그 교수님, 저는 교수님이 임용 당시 내셨던 논문을 보고 참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

       “그런 생각을 도대체 어떻게 하신 건가요?”

       

       정령 대칭성이 있으면 마소가 보존된다는 정리. 심플한 이야기였지만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또한 그만큼 중요하기도 했다. 세실도 그 정리를 보고 홀로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얼마 후 금안족에게도 대응하는 마소와 정령이 있었다는 가설을 세우고 스스로 놀라워했다.

       

       만약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흘끗. 세실은 하이젠버그 교수를 흘겨보았다.

       

       “요행이죠.”

       “요행이요?”

       “공부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걸 논문으로 써냈을 뿐이고, 운 좋게 얻어걸려 이런 나이에 명문 아카데미에 테뉴어를 받고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하이젠버그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총장님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아직도 직업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뇨. 훌륭한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되어 일리야드에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세실은 흐흐, 하고 웃으며 가식을 떨었다.

       

       이 여자, 틈이 안 보인다.

       

       어떻게든 대화 주제를 바꾸어 가며 떠보려고 했는데,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는 탓에 파고들 만한 곳이 없었다.

       

       멈칫.

       

       “…잠깐.”

       

       하이젠버그가 손을 떨며 물었다.

       

       “아까 커다란 파도가 일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랬죠.”

       “금안족이 사는 판자촌이 그 근처에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앗.”

       

       세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레니냐의 존재 때문이었다.

       

       세실은 레니냐의 재능을 높이 사서 지켜보고 있었다. 다른 아이는 몰라도 그 아이만큼은 체술과 학문에 능해 장차 큰일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때문에 장학금도 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그 학생이 집으로 삼고 있는 해안가가 파도에 휩쓸렸다면….

       

       큰 문제였다.

       

       “총장님께서 맡아달라고 하신 그 금안족 친구의 신변이 걱정됩니다.”

       “저도 그래요.”

       

       하이젠버그는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렸다. 여기서 세실이 놀란 두 번째 이유가 나온다.

       

       [이 교수, 위험하군.]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악의가 느껴져!]

       

       세실의 몸에 자리한 최상급 정령 넷이 한목소리로 그리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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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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