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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2

       “그래도 인원이 이만큼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군. 네다섯 명 정도였다면 이미 진작에 적에게 둘러싸였을 거다.”

        

       “그, 그런가요?”

        

       제니퍼의 말에 캐롤린이 겁난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녀의 손은 침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한 손으로는 마법진을 그리며 무언 주문을 영창 한다. 거의 정점에 다다른 실력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입으로 외우는 주문을 생략한다는 건, 심지어 주변에서 적이 몰려오는 와중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실전에는 나가본 적 없다는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이니 제니퍼는 속으로 조금 놀랐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하긴, 제국 최고의 아카데미의 선생이었다. 실력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할 수 없었겠지.

        

       앞서 나가서 싸우는 존재는 대부분 학생이었다. 적들은 하나하나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들이었다.

        

       하지만 제니퍼는 아직은 그렇게까지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단순히 학생들의 실력을 믿어서는 아니다.

        

       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던 제니퍼는 전투상황을 한눈에 보는 법을 익혀왔으니까. 지휘관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장의 상황을 살피고 후방 부대의 지원을 효율적으로 감독하는 것이다. 그래야 전방에 있는 부대원들이 사기를 잃지 않고 피해를 최소한으로 입으며 싸울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뒤쪽에서 밀려오는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열댓 명이라면 순식간에 처리하고 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상대는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될 민간인들이다. 거기에 수도 ‘열댓 명’이라기에는 너무 많았다. 뒤쪽 말고도 다른 쪽의 문으로도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고, 당연히 앞서나가 싸우는 아이들에게도 영향이 가는 중이었다.

        

       “제이크, 로티. 너희들은 앞으로 나가서 싸우는 아이들을 지원하도록.”

        

       제니퍼가 두 사람에게 그렇게 말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로티가 들고 있는 것은 소총이었다. 특수제작된 폭동진압용 탄약이 있다면 모를까—아니, 애초에 그런 탄환도 ‘소총용’으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로티의 탄환은 철저하게 실전을 염두에 둔 탄환이었다.

        

       당연하지만, 맞으면 죽는다. 어디를 맞아도 죽을 위험이 있는 탄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탄은 ‘죽어도 되는 이들’에게 쓰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고 그런 로티를 보호할 인재로는 당연히 제이크가 있겠고. 전장에서 사랑하는 커플이 함께 있는 것은 위험성을 동반한다. 어느 한쪽이 크게 다치거나 죽으면 다른 이가 이성을 잃을 테니까. 하지만 반대로, 양쪽 다 무사하게 지킬 수 있다면 더 큰 시너지를 일으키기도 한다.

        

       빠릿빠릿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로티를 따라 제이크가 바로 이동했다. 한순간 이쪽을 돌아보긴 했지만, 제니퍼는 고개를 끄덕여주었을 뿐이다.

        

       “하앗!”

        

       그 사이에 캐롤린의 캐스팅이 완성되었다.

        

       캐롤린의 지팡이가 초록색 빛을 번쩍이는 것과 동시에 주변을 격한 바람이 휩쓸었다. 마치 건물 안에 태풍이 들이닥친 것처럼 앞으로 다가오던 사람들은 죄다 뒤쪽으로 밀려 나갔다. 최대한 다치지 않도록 위력을 조정한 것인지, 바닥을 뒹굴거나 위험하게 넘어져 머리를 찧는 이는 없었다.

        

       상대가 의식이 없더라도 민간인이 아닌 기사였다면 저렇게까지 효과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사들을 조종하지 않은 것이 황제의 오만 때문이건, 아니면 그럴 수 없었을 뿐이건, 제니퍼는 한순간 그 상황에 감사했다.

        

       그리고 곧장 미아가 움직였다.

        

       자기 키만큼 커다란 지팡이를 잡고 마치 바닥에 붓질이라도 하듯 크게 반원을 그린다.

        

       동시에, 그 반원을 따라서 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벽이 솟았다.

        

       “맨손으로는 한동안 깨지 못할 거예요……”

        

       미아가 조금은 소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니퍼는 그런 미아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다. 한순간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우리의 힘을 다른 쪽으로 돌릴 수 있을 틈이 생겼다는 뜻이니까. 우리도 앞으로 나간다. 다만, 뒤쪽을 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마법과 총기로 지원할 수 있는 곳까지 가도록 하지.”

        

       제니퍼의 말에 캐롤린과 미아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전투가 벌어지는 쪽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도 바람과 얼음으로 의자 같은 가구들을 움직이고 얼려서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

        

       탕—

        

       그런 소리가 들리고, 제이든이 급하게 방패를 들어 올렸다.

        

       핑, 하는 소리와 함께 방패의 각진 부분에 총알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주 잠깐 그곳에 스파크가 일었다.

        

       “이래서 총이 싫다니까.”

        

       제이든은 투덜거리며 방패를 살짝 내렸다.

        

       뒤이어서 연속으로 들려오는 총소리에 제이든은 옆으로 펄쩍 뛰었다. 피융, 피융, 제이든이 있던 자리에 총알이 박히며 파편이 튀었다.

        

       로티의 총이다.

        

       앨리스는 그렇게 판단했다. 제이든을 앞에 두고 뒤를 보기에는 여유가 없었으니까.

        

       “미안하지만, 아버지는 실비아와의 독대를 원한다. 아직 완성하지 못한 기계가 있으니까.”

        

       “……기계는 ‘팬그리폰’의 피가 이어진 사람이어야 움직이는 건가?”

        

       “이제 와서 숨길 이유는 없으니, 그렇다고 해도 되겠지. 하지만 너는 안 돼.”

        

       “어째서?”

        

       “이미 써봤으니까, 결과는 알고 있다.”

        

       “…….”

        

       앨리스는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느끼고는 있었다. 그 가면 쓴 여자가 실비아의 총이 분명한 무기로 자길 쏘려고 했을 때. 정작 실비아에게는 죽이겠다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

        

       실비아의 무기를 들고는 있었지만, 실비아라기에는 제대로 된 검격을 사용했다.

        

       그러니까, 아마, 그 가면 쓴 여자는.

        

       “지금 이 상황이, 그 결과라는 소리야?”

        

       제이든은 굳이 대답하진 않았다.

        

       한 손에 방패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검— 한 손으로는 휘두르기 어려울 만큼 큰 검을 든 채 제이든은 그대로 앨리스 쪽으로 달려들었다.

        

       “큭!”

        

       피할 틈은 없었다. 앨리스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대로 제이든의 검을 받아내는 것.

        

       “솔직히 말하자면, 네 재능은 아버지의 재능을 이어받았다기에는 조금 떨어지는군. 훈련을 게을리한 건가?”

        

       “……!”

        

       앨리스는 이를 악문 채 양손에 힘을 줘 제이든의 검을 밀어냈다.

        

       훈련은 했다. 정말로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검을 휘둘렀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재능은 별개의 이야기다. 아무리 노력해도 저 위에 있는 이를 따라갈 수는 없다.

        

       게다가, 지금 제이든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만약 제이든이 조금 더 제대로 된 ‘황가의 아이’라고 한다면—

        

       “레이디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

        

       챙!

        

       뒤이어 들린 말소리와 동시에 제이든의 검에 또 다른 검이 겹쳤다.

        

       두 사람의 힘에 뒤로 살짝 밀려난 제이든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쓸어올린 사람은 제이크였다.

        

       “이름이 제이든이라고 했던가? 나랑 이름이 비슷해서 쉽게 잊을 수 없었거든.”

        

       아카데미에서 종종 보여주던 것 같은 가벼운 목소리로 제이크가 말했다.

        

       “재능이니 뭐니 말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앨리스가 부러운 거 아니야? 황제의 진짜 딸이잖아.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일한 거겠지. 기사단장까지 되고.”

        

       “…….”

        

       제이크의 말에 제이든이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제이든은 실비아를 정말로 귀여워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앨리스의 판단으로는, 적어도 그 감정은 진심으로 보였다.

        

       자기처럼 ‘피가 섞이지 않았으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고, 출신성분에 별다른 신경도 쓰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존재.

        

       하지만 그게 앨리스에 대한 열등감 때문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정작 앨리스도 다른 아이들을 질투했으니까.

        

       “나도 아버지의 기대를 꾸준히 배신해온 놈이라서 잘 알고 있거든. 너처럼 기대에 계속 부응하는데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거랑은 정반대이긴 하지만 말이야. 지금도 그렇게 열심히 싸우는 거, 황제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거잖아.”

        

       “네가 뭘 안다고 그러냐.”

        

       제이든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제이크는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

        

       “……실비아한테 가고 싶지?”

        

       “…….”

        

       제이크가 넌지시 물어보는 소리에, 앨리스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좋아, 그럼 협력할게. 가서 할 일을 하라고.”

        

       “알았어.”

        

       제이크가 자세를 잡는 것을 보고, 앨리스도 양손으로 검을 잡았다.

        

       제이든은 그런 둘을 보더니 시선을 살짝 돌렸다.

        

       ……성당의 뒤편, 그러니까 교황의 자리가 있던 곳의 뒤편으로부터 기사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성당의 기사들이 아닌, 명백히 제국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었다.

        

       수가 아주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저 앞으로 가려면 꽤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뭐, 기사라도 총 맞으면 죽는 건 같으니까.”

        

       긴장이라도 풀겠다는 듯 제이크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앨리스는 순간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리흐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쓰면서 가장 기분 좋을때는 당연히 저의 글을 칭찬해주시는 말을 들었을 때입니다. 솔직히 쓰는 사람이 자기가 쓰는 글이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오는 내용에 대해서 이미 다 알고 있고, 특히 지금은 결말부까지 얼추 다 생각해둔지라 제가 제 소설에 ‘기대’하는 것은 조금 말이 이상하죠. 그렇기에 제가 글을 제대로 쓰고 있다고 느끼는 방법은 독자 여러분의 반응을 보는 것 뿐입니다. 당연히 칭찬이 많으면 제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해져요.

    언제나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가 처음 이곳에 연중성녀를 쓸때만 해도 앞으로 글을 얼마나 쓸지, 쓰고 있는 글을 끝까지 써서 완결낼 수는 있을지 걱정했었는데, 벌써 글을 1년 넘게 써서 여기까지 왔네요. 이런 말을 하기에는 조금 시간이 너무 지난 것 같지만, 올해에도 열심히 글을 써서 독자 여러분들을 즐겁게 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읽을만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후원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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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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