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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2

    루크 숲의 숲지기들이 자신을 찾고 있는 그 때, 루크는 풀이 무성한 동굴과도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이 아공간은……. 바깥과 시간의 차이가 거의 없는 것 같군.”

     

    아공간에 들어온 순간, 루크는 밖에서 흐를 시간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보존을 목적으로 한계까지 잡아 늘린 자신의 아공간에서는 가능한 시간을 적게 써야만 했으니 말이다.

     

    그곳에서는 1분도 물질계에서는 100분이 되고 말 테니까.

     

    처음엔 낯선 공간으로 변모한 자신의 공간에 당황해 조금 시간을 낭비한 감이 없잖아 있기는 하지만, 일단 지금까지는 크게 낭비된 시간이 없으니 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당초의 목적은 적어도 해가 저물기 전에는 밖으로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물질계에서 흐르는 시간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니 내심 안심이 된다.

    때문에 루크는 조금 시간을 갖고 자세히 주변을 감싼 이 식물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리 분노했더라도, 앞뒤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부숴버려도 괜찮을 정도로 이 장소는 녹록치만은 않아보였으니.

     

    ‘마법이 잘 듣지 않는 듯 한데…….’

     

    벽면에 손을 대고 잠시 이파리를 만져보던 루크는 곧 한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글레이프니르가 어째서 여기에?”

     

    바로, 이 식물들이 그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현대에서 세계수를 고치는 데 사용한 인공식물, 현재는 ‘글레이프니르’라고 불리우는 그것과 같은 종이었던 사실을.

     

    이 곳 전체에 작용되는 강력한 마법저항력에 대한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루크는 상황을 더더욱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바알은 대체 어째서 이런 걸……?’

     

    대체 이 장소는 무슨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루크는 이제 분노하기보다는 호기심이 앞섰다.

     

    ——–

     

    통로는 점점 들어갈수록 초록색 이파리도 조금씩 줄어갔다.

    식물이 감싸지 않은 부분이 점차 넓어지자, 루크도 이제는 이곳이 단순한 동굴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꽤나 오랜 세월 방치되어서 장식물이나 가구 같은 것은 제대로 남아있는 것이 없어 어느 시대의 양식인지 특정할 수는 없었으나, 이곳은 명백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실내였다.

     

    그렇게 주변을 관찰하며 걷기를 잠시, 루크는 한가지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처음엔 기둥인가 싶어서 넘겼으나, 이제보니 기둥과는 달랐다.

     

    그것은 녹이 슬고 덩굴에 감싸여, 거의 벽과 하나가 되다시피 한 갑옷이었다.

     

     

    루크는 드디어 이 장소의 시대를 엿볼 수 있을 만한 무언가를 찾아냈다는 생각에 곧장 그 갑옷을 향해 다가가 풀들을 치워냈다.

     

    그러자 분명 과거에는 찬란했을, 그러나 지금은 잔뜩 산화되고 부식되어 형상조차 알아보기 힘들어진 거친 표면을 어루어만지며 중얼거렸다.

     

    “이 재질과 설계, 이건 단순한 장식용 갑옷이 아니로군.”

     

    루크는 고개를 들어 그 갑옷의 머리로 보이는 부분에 시선을 맞추었다.

     

    “리빙아머.”

     

    골렘의 일종이며, 제작자에 따라서는 웬만한 소드마스터급 성능을 낼 수도 있는 전력이다.

    루크는 조금 더 전체적으로 그 형상을 보기 위해서 걸음을 뒤로 뺐다.

     

    -파삭.

     

    무언가 발에 밟혀 바스라지는 소리.

    시선을 내려 확인해보니, 그것은 바닥을 감싼 수풀등에 얽혀서 제대로 식별할 수는 없었으나, 대략적인 형태와 크기로 미루어볼 때 그것은 인간의 두개골이었다.

     

    수풀을 살짝 들추어 확인해보니, 아마도 이 유골은 남성의 것으로 보인다.

     

    “그냥 시체로군.”

     

    안타깝지만 사망당시 나이는 짐작하기 어렵다.

    적어도 100년은 훨씬 지난 듯 보이는 유골이었으니 말이다.

    애초이 이 정도로 형체가 남아있다는 것부터가 기적이리라.

    어쩌면 이 유골의 주인은 엘프일지도.

    아무래도 장수종인 엘프들의 유골이 타 종족보다는 훨씬 더 길게 보존되는 특성이 있으니까.

     

    허나 유일하게 확신할만한 것은 그가 입은 넝마조각.

    그것을 잘 뒤적여보면 얼핏 보이는 방어구로 이 자는 아마도 모험가이거나 용병이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흠, 뼈가 잘려나간 흔적이 있군……. 역시 살해당했나.’

     

    그리고 그 살해자가 누구인가 하면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바로 저 리빙아머겠지.

     

    추측하자면, 아마도 이 남자는 오랜 과거 어떤 루트를 통해 이 아공간에 들어온 뒤, 리빙아머의 표적이 되어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으리라.

     

    루크가 이미 가동을 정지해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리빙아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뭐, 지금은 딱히 걱정할 필요 없나.”

     

    그렇게 중얼거린 뒤 루크가 다시금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휙.

     

    돌연 루크가 빠르게 몸을 비튼다.

     

    -후웅-!

     

    날카로운 검기가 루크의 곁을 돌연 스치고 지나갔다.

    명백히 자신을 노린 것으로 보이는 공격.

     

    루크는 풍압에 날아가려던 모자를 붙잡아 누르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검기가 날아온 방향을 주시했다.

     

    풀과 먼지로 흐려진 통로 건너편에서, 흐릿하게 푸른 안광이 비쳐나오고 있다.

     

    “뭐야, 아직도 가동중인 리빙아머가 있었나.”

     

    “…….”

     

    조금 흙먼지가 걷히기 시작하자 나타난 리빙아머의 모습에, 루크는 눈을 가늘게 뜰 수 밖에 없었다.

     

    “잠깐, 저 문양…….”

     

    방금 살펴보려고 했으나 크게 부식되어 형체 말고는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없던 가동을 멈춘 리빙아머와는 달리 현재까지 가동하는 저 리빙아머의 갑주는, 양각된 문양의 형태를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그 문양은 굉장히 낯이 익다.

     

    “내가 설계한 리빙아머가 아닌가!”

     

    이제는 화도 나지 않는 상황이다.

    바알 니에르, 그대는 정녕 명예도, 수치도 모르는가.

     

    남이 만든 골렘을 감히 자신의 거처를 지키는데다 사용하다니.

     

    -그그극, 끼기긱…….

     

    부식된 관절부가 비틀리고 긁히며 유발되는 불쾌한 쇳소리.

    허나 리빙아머는 그런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손에 쥔 검을 털어내듯 아래로 내렸다.

     

    긴 세월 보수되지 않았기에 부식되어 날카로움을 잃은 검은 검사의 손보다는 고물상이 더 어울릴, 부드러운 두부조차 베어내지 못할 듯 한 형상이었으나.

     

    그 검사가 오러블레이드의 사용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츠츠츳…….

     

    정순한 마력이 녹슨 검을 감싸고, 푸른 빛이 검의 표면을 더없이 날카롭게 한다.

    이제는 그 누구도 저 검을 녹슬었다며 무시할 수는 없으리라.

     

    허나, 루크는 그런 것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슬슬 화보다는 짜증이 나는 군. 바알.”

     

    ————

     

    전설이나 동화, 소설등의 매체에서는 으레 ‘몇백번의 합을 나눴다’, 내지는 ‘삼일 밤낮을 싸웠다’라고 표현하기는 하지만 그런 전투는 상대가 봐준 것이거나, 쉽게 죽이거나 무력화시킬 수 없는 상황을 지니지 않는 한 굉장히 드물다.

     

    실전 결투에서는 보통은 한 합, 제아무리 길어봤자 세 합 안에 끝이 나니까.

     

    그동안 단련한 긴 세월을, 몇 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부딪힌다.

    이때 승패를 가리는 것은 ‘이 전투가 있기 전까지, 당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을 벼려왔는가’ 이다.

     

    따라서, 이것은 일종의 시험이라고 볼 수 있다.

     

    상대가 어떤 공격을 할 지 예상하고, 그에 맞게 대응한다.

    상대는 그 대응을 예측하고, 또 그것을 반격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것이 바로 이상적인 결투의 흐름.

    그 찰나의 흐름을, 모르는 상대의 일생이 담긴 검격을 대응하기 위해서 전사들은 모두 평생의 노력을 퍼붓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그러한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골렘에 자신이 당할리가 있나.’

     

    그 리빙아머의 모든 논리회로, 동작구조를 설계한 것이 바로 자신이다.

    아무리 앞선 전투를 통해 행동과 동작을 개선한다고 해도, 결국 보이는 움직임은 정해져있다.

     

    때문에,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임하는 결투는 그야말로 찰나에 끝났다.

     

    그것은 마치, 답지를 미리 보고 난 후에 임하는 시험과도 같으니.

     

     

    루크는 녹슨 몸체에 어울리지 않게 빠른 속도로 찔러오는 검의 옆면을 오른 손으로 흘려냈다.

    오러가 씌워진 검에 손을 가져다 대는 것은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행동임에 그지없으나,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정해진 행동을 취하는 자동인형이다.

    인간의 손으로 행하는 불확실성이 포함된 동작과는 다른, 데이터로 설계된 최적의 경로는 당연히 예측할 수 있다.

     

    “…….”

     

    검이 흘려져 훤히 드러나게 된 몸체.

    루크는 곧장 그 안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당겨두었던 왼손을 뻗어내며 마력을 흘려넣는다.

     

    일점에 불과 얼음을 동시에 처박으면, 제아무리 마법저항력을 높여 단조시킨 아세릴이라고해도 버틸 수 없다.

     

    -파각!

     

    리빙아머의 갑주가, 오랜기간 가동하며 긁힌 흔적을 타고 금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

     

    -끼기기긱.

     

    곧 리빙아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마치 누군가 순간적으로 석화라도 걸어버린 듯, 검을 들어올린 모습 그대로.

    “……네게는 죄가 없겠지.”

     

    루크는 천천히 안광이 꺼지기 시작하는 리빙아머의 투구를 올려다보며, 슬프게 중얼거렸다.

     

    루크에게도 이 리빙아머는 남다른 추억이 담긴 골렘이었으니까.

    마법사든 대장장이든, 하다못해 한낱 아이들조차 자신이 만든 잡동사니에도 애착을 갖게 마련이다.

     

    ‘루크님! 이런 걸 만들어주시면, 대체 왕실 기사단은 대체 뭘 먹고 살아요!’

    ‘그들이 내 골렘보다 약한가? 그렇다면 그들이 노력할 일이지 왜 나를 탓하지?’

     

    “…….”

     

    문득 떠오른 추억이다.

     

    루크는 그런 리빙아머의 녹슨 갑주를 끌어안고 말았다.

     

    차갑고 거친 표면이 몸으로, 손으로, 얼굴로 느껴진다.

     

    “수고했다. 정말로 오래……. 버텼구나.”

     

    비록 주인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덤벼들기는 했지만…….

    리빙아머에게 비쳤을 지금 자신의 모습은 당연히 침입자라고 볼 수 밖에 없었으리라.

     

    루크 이루시와는 육체, 영혼, 그 무엇도 일치하지 않고 있으니까.

    다만, 아직 버리지 않은 이름만이 남아있을 뿐.

     

    그러니 이 리빙아머는 사람이 아니지만, 전사에 대한 예우를 받기에 충분했다.

     

    루크는 리빙아머의 팔을 내려 자세를 정돈시킨 뒤, 벽에 기대어 세워 두고, 앞에 보이는 계단을 올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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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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