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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2

        

       일검 그룹 전 회장.

       장영철.

         

       소싯적 중국의 무인들에게 ‘동이검마(東夷劍魔)’라고 불렸던 유명한 무인이었으며, 한국에서는 남한제일검, 적참검마 등으로 불렸던 영웅과도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장영철은 다른 민족을 한없이 깔보는 중국의 무인들마저도 그 경지 자체는 무시하지 못해서 검마라는 칭호를 붙일 정도로 고강한 경지에 이른 무인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을 오랑캐라며 멸시했던 중국인들이 중화의 무인과 차별화를 하기 위해 ‘동이(東夷)’, 즉 동쪽의 오랑캐라는 뜻의 단어를 붙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북한이 멸망하기 전 공산주의자들을 죽이고 다니거나 북한에 홀로 잠입해서 사보타주를 행하는 등 수많은 활약을 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적참(赤斬)’. 즉 빨갱이를 베고 다니는 검마라는 뜻의 적참검마라는 칭호로 불리기도 했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이양훈은 장영철이 자신에게 말을 걸자 공손히 인사했다.

       그러자 장영철은 만족스럽다는 듯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양훈의 어깨에 손을 얹어 그의 자세를 고쳐주었다.

         

       “그래. 양훈이. 나는 양훈이가 이래서 좋아. 다른 놈들하고는 다르게 예의라는 게 잘 박혀있거든. 다른 놈들은…. 쯧. 제가 잘난 것도 아니고 제 아비들한테서 물려받은 재산 받아놓고선 아주 건방지기 짝이 없어. 온갖 고생을 하며 자신의 두 손으로 자수성가를 이룩해야 예의와 존중이 몸에 배게 되는 게야.”

         

       그리고선 장영철은 덕담을 시작했다.

       젊은 사람들이라면 꼰대가 또 설교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법한, ‘나 때는 말이야’와 ‘요새 젊은 녀석들은’이라는 단어가 잔뜩 들어가 있는 덕담을 말이다.

         

       하지만 이양훈은 그런 덕담을 듣고도 오히려 기껍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만만찮게 꼰대 기질이 있었으니까.

         

       “맞습니다. 그나마 2세까지는 제대로 교육이 된 것인지 그리 심하지는 않은데, 재벌 3세와 4세쯤 되면 아주 안하무인 그 자체입니다. 선대가 일군 가업을 말아먹기라도 하려는 듯 거침없이 행동하더군요. 그런 태도로 나오게 되면 오던 복도 다 달아나게 되는 법인데 말입니다.”

       “끌끌. 세상살이가 아주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을 한단 말이지. 이르기를 번수작운 복수우(飜手作雲 覆手雨)라! 손바닥을 뒤집으면 구름이 되고, 다시 뒤집으면 비가 되는 것처럼 세상살이 인심이라는 것은 사납기 짝이 없고 어찌 변할 줄 모르는 법이거늘.”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앙드레 지드(Andre Gide)가 말하길 겸손은 천국의 문을 열고 교만은 지옥의 문을 연다고 했었지요. 겸손하면 오던 화도 물러가고 자연스럽게 복이 따르게 되는 법인데, 집안의 엄격한 교육을 받은 놈들은 그것 하나를 모르고 오만방자하게 다니곤 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죠. 쯧쯧. 집안 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래서 자식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 게야. 항상 오만방자하고 무식한 것들이 꼭 화를 불러와서 집안을 망하게 했지. 내 옛적부터 그런 것을 자주 보았어.”

         

       이양훈과 장영철은 죽이 잘 맞았다.

       둘은 요새 것들이 어떻다느니, 여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며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느니, 돈이나 까먹을 줄 알지 주도적으로 뭘 해볼 생각도 안 하는 것들이 태반이라느니…. 나이 먹은 사람들이 으레 하는 젊은 사람들에 대한 욕을 신나게 해댔다.

         

       진성은 그것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저 말은 어딜 가나 보이는구나.’

         

       그는 회귀 전 보았던 어떤 기록을 떠올렸다.

       고고학 박사를 호위하고 있을 적, 심심함을 참지 못했던 고고학자가 자신이 발견한 것이라면서 찍은 사진을 진성에게 보여주며 자랑했었다.

         

       수메르어(𒅴𒂠)가 적혀있는 진흙 판이었다.

         

       그런데 거기 적힌 내용이 가관이었다.

         

       아들이라는 놈이 가업을 이을 생각은 안 하고 놀 궁리만 한다, 들어야 하는 수업을 땡땡이치고 여자나 만나러 간다,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히지 않아서 언제 한번 호되게 혼을 내야겠다, 맨날 제 친구들이랑 술이나 퍼마시면서 놀러 다니기만 하는 꼴을 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된다….

         

       지금 이양훈과 장영철이 하는 말과 판박이였다.

         

       ‘중세 유럽의 성직자도 저것과 비슷한 말을 하기도 했고. 재밌구나, 재밌어.’

         

       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덕담에 끼어들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존재감을 죽이면서 말이다.

         

       “…그래서 말이지. 자식 교육이란 무릇…. 그래, 자네처럼 해야 하는 게야. 자네가 아이 키우는 솜씨가 아주 기가 막힌다는 얘기가 돌고 있어.”

       “과분한 칭찬입니다. 아무리 제가 교육을 잘했다고 한들 어르신만 하겠습니까?”

       “아니야, 아니야. 내가 듣는 귀가 있고 보는 눈이 있는데 어찌 자네의 비범함을 모르겠는가? 듣자 하니 자네 딸들이 아주 대단하다지. 세린이 고 녀석은 계약자인데다가 벌써 두각을 드러내고 있고, 아린이 녀석은 나이에 맞지 않게 성취가 아주 훌륭하다지. 그 아이가 검만 쓴다면 내가 한 수 지도해주고 싶을 정도의 극찬이더구먼.”

         

       장영철은 이양훈의 딸, 이세린과 이아린을 칭찬하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서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아이 역시 대단하구먼. 아주 훤칠한 장부로 자랐어. 양훈이, 정말 대단해.”

       “제가 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제 손을 많이 타지 않았음에도 비뚤어지지 않고 잘 자라준 것만으로 감사할 뿐이지요.”

         

       이양훈은 장영철의 관심이 진성에게 돌아가자, 그에게 슬쩍 눈치를 주었다.

       장영철과 직접 대화를 나누라는 신호였다.

         

       “안녕하십니까. 박진성이라고 합니다.”

       “그래, 박진성이. 내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듣자 하니 여자에게 인기가 많을 장부라고 들었는데, 내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오늘 확인했네.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긴 것이 반안(潘安)과 송옥(宋玉)을 보는 것 같구먼. 허허허!”

       “감사합니다.”

         

       진성은 신호를 받자마자 몸의 근육을 의도적으로 한 번 긴장시켰다가 확 풀어버렸다. 그리곤 느슨하고 나른한 느낌을 유지한 채 그에게 인사했다. 장영철에게 ‘잠시 긴장했다가 다시 평온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곤 장영철이 자기 외모를 칭찬하는 것에 감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비굴하다거나 과하게 좋아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표정을 잘 관리했다. 그러면서도 오만하게 보이지 않도록 깍듯하게 예의를 지켰고, 눈동자를 움직이는 것에 주의하였다.

         

       눈이라는 것은 마음의 창.

       눈의 초점, 눈동자의 움직임, 눈동자의 크기 변화….

       그 모든 것이 첫인상을 결정하는 비언어적 표현이었으니까.

         

       그렇게 진성은 ‘윗사람에게 예의가 바르면서도 비굴하지도 오만하지도 않은 교양이 가득한 청년’을 연기하였다. 근육과 눈동자까지 통제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덕분이었을까?

       장영철은 진성에 대한 좋은 첫인상을 얻게 된 듯했다.

         

       “양훈이, 이래도 겸손을 떨긴가? 이르기를 과공비례(過恭非禮)라 했네. 과도한 겸손은 오히려 예의가 아닌 법. 이 아이가 이렇게 예의가 바른데 어찌 자네의 영향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는 진성이 마음에 든다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리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젊은이를 만났다면서 이양훈과 진성을 어디론가 데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아주 만족스러워. 요새 젊은것들은 말이야. 예의를 제대로 배워먹지 못한 것인지 하나같이 오만하거나 비굴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어설프거나…. 아주 개판이야 개판. 그런데 박진성이, 그래. 진성 군은 아주 내 마음이 쏙 든단 말이지.”

         

       장영철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진성을 칭찬했다.

       하지만 진성은 그러한 칭찬에 감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칭찬이 심하군.’

         

       앞서 장영철이 과한 겸손은 예의가 아니라고 하였던가?

       그렇다면 과도한 칭찬 역시 순수한 칭찬은 아니리라.

         

       본디 칭찬이라는 것은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안에 발을 들여 넣기 위한 것.

       그리고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곧 목적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목적이 가벼운 것이든 무거운 것이든 말이다.

         

       그리고 목적이 끼어든다면 순수함은 퇴색되는 법이다.

         

       진성은 겉으로는 연기를 하면서도 장영철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자신에게 어떤 용건이 있는 것인지,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인지 말이다.

         

       “흐음. 조금 전까지 여기에 있다고 들었는데. 이거 길이 엇갈렸는지도 모르겠구먼. 이양훈이, 박진성이. 잠시만 기다려주게나. 내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러네.”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 말씀이십니까, 어르신?”

       “그렇네. 최근에 우리 그룹에 식객으로 몸을 의탁하고 있는 이가 있는데, 진성 군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았거든. 그래서 꼭 한번 소개해주고 싶었지.”

       “아니, 어르신. 식객이라면….”

       “어허, 부담 느끼지 말게. 이게 다 양훈이 자네가 애를 잘 길러서 그런 것이야. 내 진성 군을 보고 성에 안 차면 소개고 뭐고 그냥 데리고 가려고 했었거든. 내 자격이 된다고 생각되어서 소개해주는 것이니, 그냥 어른이 용돈 준다 생각하고 가벼이 받으면 그만이야.”

         

       장영철은 이양훈과 진성에게 기다리라고 말하곤 스마트폰을 꺼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스마트폰 너머에서 낮은 저음으로 지금 가겠다는 말이 들렸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식객, 식객이라?’

         

       새까만 피부.

       깡마른 몸.

       볼품없어 보이는 외모.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주물(呪物).

         

       그리고.

         

       ‘음(陰) 하면서도 섬찟한 기운에, 기척이 여럿이라?’

         

       몸에서 풍기는 차가운 냉기와 묘한 기척.

       여러 개의 시선을 쏘아 보내는 듯한 기묘한 느낌.

         

       ‘강령술사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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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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