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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2

     그 시각, 지브롤터 후작령 바르셀로나 외곽.

     

     덜컹, 덜커덩.

     숲 속, 마도자동선 하나가 흙길을 달려 숲의 앞에 멈춘다.

     돛은 없고 마도자동선의 겉면이 숲과 동화되기 위함인듯 진녹색 무늬의 ‘위장색’으로 칠해진 가운데, 마도자동선의 출입구가 열리며 한 남자가 마도자동선에서 내렸다.

     금발적안의 남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그는 자신의 키와 비슷한 금색의 지팡이를 움켜쥔 채 숲의 공터로 나섰다.

     “제로스.”

     “예, 전하.”

     세인트 지오의 뒤에 선 남자, 제로스는 목에 바늘로 꿰멘 것 같은 실자국이 남아있었다.

     목에다가 피부색 옷감을 붙여 그 위에 바느질을 한 게 아니라면, 목 자체에다가 바느질을 한 것처럼 그 모양새가 기괴했다.

     “함정일까?”

     “발자크 남작은 죽었습니다. 바르셀 내부의 요인들을 통해 교차검증을 끝냈습니다.”

     “암살당한 건가? 지브롤터에 의해?”

     “암살인지는 아직 파악할 수 없으나,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기사 제로스는 표정없는 목소리로 자신의 목을 만지작거렸다.

     “암살로 꾸몄다면, 그레이 지브롤터의 행동일 가능성이 큽니다. 크림슨이었다면 정면에서 베어 죽였을테니.”

     “쯧. 아버지나 아들이나 살인광인 건 마찬가지군. 아들 쪽이 더 음습하게 사람 죽이지만.”

     세인트 지오는 지브롤터 부자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으며 짜증을 냈다.

     “제로스. 제국 쪽 그림자들은 어떻게 되었지?”

     “일단 수배해두기는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이전만큼 숫자가 늘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왜?”

     “제국의 황제가 자신의 친위사단 하나를 바르셀로 보내는 바람에, 폐세자들이 그레이 지브롤터에 대한 공격을 꺼리는 추세입니다.”

     “쯧. 이런 기회를 놓친다니. 놈들은 황제가 될 자격은 없다.”

     세인트 지오는 구시렁거리더니, 곧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마냥 시간을 기다리기만 하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냥 떠날 수는 없지.”

     “그것은….”

     “쉿.”

     세인트 지오의 품에서 나온 것은 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가면.

     짐승의 얼굴 같기도 하고 괴물의 형상 같기도 한 그것은 흡사 드래곤을 형상화 한 투구의 얼굴 부분만 따로 떼온 것 같았다.

     “아, 아아.”

     세인트 지오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가면을 눌러썼다.

     가면은 코 아래가 드러나는 반가면이었고, 보이는 것은 피처럼 붉은 눈동자와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입 뿐.

     “과거, 노스트럼을 지킨 수많은 영웅들이 여기에 묻혔지.”

     “…….”

     “왜, 제로스. 뭐 문제라도 있나?”

     “없습니다.”

     기사 제로스가 목을 만지작거리자, 세인트 지오는 키득거리며 지팡이를 가볍게 흔들었다.

     “깨어나라. 황금의 영웅들이여.”

     찰랑.

     지팡이가 흔들린 순간, 그 끝에 달린 금색의 방울로부터 액체같은 것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계약자의 명에 따르라.”

     금색으로 빛나는 무언가.

     그것이 만일 금이라고 한다면, 따로 광맥을 찾아다닐 필요 없이 지팡이에서 흘러나오는 금만 챙기는 것만으로도 마차 하나를 금괴로 가득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스르륵.

     

     액체화 된 금이 지하로 스며들자, 곧 흙으로 된 공터 아래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일어나라. 일어나서, 용의 언령에 따라 움직여라.”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땅에서 사람의 팔이 솟아났다.

     팔에 묻은 얼음조각이 옆으로 떨어지고, 그 아래로 드러난 사람의 팔에는 피 대신 금으로 된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쯧. 부족한가?”

     몸 속에 금이 흐르기 시작한 사람들이 하나둘 땅 위로 솟아나기 시작했으나, 그 행동은 흡사 흑마법사들이 소환한다는 하급 좀비처럼 굼뜨고 느렸다.

     “전하. 필요하다면 금을….”

     “아니, 됐다. 금보다 더 확실한 게 여기 있으니.”

     

     세인트 지오는 지팡이를 바닥에 꽂은 다음, 허리에 찬 금으로 된 단검을 뽑았다.

     “여기, 용의 후예가 있다.”

     촤륵.

     스스로의 손바닥을 단검으로 긋자, 붉은 피가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곧장 지팡이를 향해 스며들기 시작했다.

     “깨어나라.”

     고오오오.

     피는 저마다 한 방울씩 지팡이를 따라 흘러가기 시작했고, 곧 삐거덕거리며 일어나던 좀비들이 ‘팟’하는 순간 기사처럼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노스트럼의 이름으로.”

     오랫동안 얼어붙어 있던 시체가 이제 막 깨어났으나, 비어있는 눈동자에 반짝이는 금색은 어딘가 소용돌이치듯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전하, 이들은….”

     “위대한 노스트럼의 영웅들이지. 왕의 명령에 충실한 이들.”

     “…….”

     “아, 그래. 그냥 바르셀 후작가에서 후작이 되지 못하고 죽은 이들이 여기에 묻혀있을 뿐이다. 됐나?”

     좀비처럼 깨어난 기사들은 어딘가 전원 제로스를 무척이나 닮아있었고, 그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이거나-혹은 10대의 소년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하여튼, 어울려주지를 못하는군.”

     “바르셀의 피를 이어받은 이들이 노스트럼과 맺은 맹약…. 죽어서도 왕가를 위해 충성한다는 기사의 서약.”

     “그렇지. 망할 지브롤터와는 달리, 왕가에 죽고 나서도 그 시신까지 바친다는 충성스러운 가문이 아니겠는가.”

     세인트 지오는 손수건을 꺼내 손바닥을 누르며 이죽거렸다.

     “그 덕분에 자네도 이렇게 다시 살아난 거고.”

     “…….”

     “걱정하지 말게. 지금은 죽어있지만, ‘다음의 자네’는 살아있을 거라니까? 명령이니까, 더 이상 군말하지 말고.”

     “그….”

     기사 제로스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곧 입을 꾹 다물었다.

     말하고 싶어도 마법의 힘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처럼.

     “다녀오게. 놈들이 따로 영안실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성 내의 비밀통로를 통해 들어갈 수 있을 것이야. 설령 발각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소모하여 임무만 달성하면 돼.”

     “소모, 입니까.”

     “그렇지.”

     세인트 지오는 하품을 하며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발자크 렘부르 군터의 시신을 가져와라. 혹시 가져올 수 없다면, 현장에서 시신을 불태우거나 훼손하라. 그리하여….”

     히죽.

     “죽은 외조부의 시신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패륜아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거지. 명령이다. 알겠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반짝.

     명령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제로스의 바느질 단면 안에서 살짝 금색의 빛이 반짝였다.

     “그래. 다녀와라. 뭐, 원래는 남은 시간 동안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거기는 하지만….”

     세인트 지오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엿 먹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가만히 있는 건 도리가 아니지.”

     그르륵.

     “가라, 제로스. 저들을 인도하여, 노인네 시체를 망가뜨리도록.”

     “예, 전하.”

     몸 속에 황금의 마나가 흐르는 시체들이 하나둘 제로스를 따라 하나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아버지가 영안실에 다녀간 이후.

     나는 아버지를 편하게 하기 위해 내가 상주로서 빈객들을 맞이하려고 했으나, 아버지는 오히려 본인이 직접 맞이하겠다면서 나를 영안실에 있도록 만들었다.

     ‘죽은 남작 얼굴 볼 바에는 귀족들 상대로 애도를 표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나?’

     빈객들은 안치된 시신을 향해 애도를 표하지 않는다.

     그들은 저기 위쪽, 연회장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장소에 마련된 별도의 빈소에 안치된 영정사진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상주와 마주 인사하며 조의를 표한다.

     왕이나 대공, 후작과 같이 저명한 이가 나이가 들어 죽었을 경우, 간혹 관을 빈소에 두고 직접 돌아가신 분의 얼굴을 보고 애도를 표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런 건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애도, 즉 특별한 경우.

     빈객들은 발자크 남작의 시신보다 크림슨 후작, 샤를로트 후작부인, 그리고 레타르를 비롯한 후작가의 자손들을 만나느라 여념이 없었다.

     ‘누구 하나 쯤은 시신을 보러 올 법도 한데.’

     수년 전.

     가모스 세빌리야 남작의 부친, 플람벨 세빌리야 남작이 죽었을 때.

     ‘시신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고자.’

     플람벨 전 남작은 백은중독자였고, 모종의 사유로 흡혈귀가 되었다.

     흡혈귀가 되어서 죽은 걸 우리는 발견했고, 우리는 이에 대한 수습을 위해 고인을 매장이 아닌 화장이라는 방식을 선택했다.

     당시에도 어떤 의혹이 있었다.

     -혹시 증거를 인멸하려고 시체를 불태운 거 아니냐?

     라는 음모론.

     나이가 들어서 죽었다고는 해도 시신을 숨긴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혹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최대한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장례식을 진행하였고, 시선을 지브롤터 쪽으로 돌려 의심을 피했다.

     그렇게 플람벨 남작의 건은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이번은 어떨까.

     음모론을 펼치기에는-

     ‘너무 저급하지.’

     음모론도 격이 맞아야 하는 법.

     발자크 남작의 죽음에 지브롤터가 관여되어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사교계 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정보와 관념이 있다.

     -발자크 남작을 죽이려고 했으면 진작 죽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성정 덕분에 암살 루머는 오히려 잦아들게 되었다.

     설령 그런 의혹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추후 제국의 ‘부마국’이 될 수도 있는 지브롤터의 안방에서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이가 있다면 목숨이 두 개인 사람일 것이다.

     ‘든든하긴 하네.’

     아버지가 여기에 있다.

     크림슨 지브롤터가 이곳에 있다.

     설령 내가 잠시 긴장의 끈을 놓아 무언가를 놓친다고 하더라도, 아버지가 나선다면 분명 모든 것이 수습될 것이다.

     오로솔 아카데미든 이곳 총독부든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했는데, 아버지가 이렇게 같은 건물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약간은 긴장을 내려놓고 영안실에서 조용히 눈을 감을 수 있다.

     그저 하나만 생각하면 된다.

     

     침입자.

     

     장례식에 관한 초동절차는 전부 다 마련해뒀고, 예식에 관한 문제는 아버지의 방문과 비슷하게 도착한 헥스 로마나 자작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다행히 장례식을 치르기에는 바르셀로나 총독부가 너무 적절한 장소였다.

     ‘제로스 바르셀이 누구보다 노스트럼스러운 인간이었던 게 참 다행이었지.’

     제국에서는 허례허식이라고 까내릴만큼, 죽은 이에 대한 예우를 물질적이고 금전적으로 갖추기에는 너무나도 완벽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

     노스트럼식, 사교의 장.

     시신이 땅에 묻힐 때까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는 장례식 연회로서, 남작가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가장 화려한 예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바르셀로나 총독부에 잠자고 있던 유리잔을 전부 꺼내고.

     창고 아래에 묵히고 있던 바르셀 레드와인 17년산도 전부 꺼내고.

     찾아온 이들이 편히 쉴수 있도록 총독부(구 후작성) 외빈용 객실을 가문마다 하나씩 내어주기도 하고.

     장례식이라서 그다지 호화스럽게는 꾸미지 못하지만, 제공되는 음식은 모두 바르셀로나에서 준비할 수 있는 최고급 식자재로 준비하며.

     동시에 장례식장이 아닌 개인 휴게실에서는 심심한 입을 달랠 수 있도록 각 객실마다 달콤한 디저트가 비치되어 있으니.

     그야말로, 돈지랄.

     이 돈으로 렘버리로 인한 빚을 갚아버리면 절반 정도는 상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막대한 예산.

     그게 지금 이 안치실에 누워있는 이를 위해 낭비되고 있다.

     낭비인가?

     애매하다.

     한 남작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왕국 대신들이 속속들이 찾아오고, 심지어-

     ‘왔군.’

     끼이익.

     두꺼운 철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인기척을 내며 들어오자,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왕전하.”

     “…….”

     오로솔 아카데미의 학생회장이자 노스트럼의 군왕이라고 할 수 있는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까지 찾아왔으니, 이 얼마나 귀족으로서 영예로운 장례식이 아닐 수 없다.

     “전하.”

     “잠시.”

     나리아는 뒤따르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더니, 곧 직접 영안실의 문을 닫았다.

     톡톡.

     나리아가 귀를 두드렸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휴.”

     나리아는 상복의 넥타이를 잠시 풀며 호흡을 골랐다.

     “시체 보면 그다지 안 좋을 텐데요.”

     “빚도 안 갚고 떠나는 자의 얼굴은 어떤지 한 번 보러 왔습니다.”

     “…….”

     “죽는 과정이 어떻든, 죽음이 자기 인생의 탈출이라고 생각하는가 싶어서.”

     나리아는 담담히 마석으로 만들어진 관 앞에 섰다.

     “렘버리의 빚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요. 이 자가 남기고 떠난 쓰레기.”

     “죽은 사람 앞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죽은 사람이 귀담아 듣는 것도 아니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죠. 무슨 문제라도?”

     “음.”

     그렇긴 한데.

     “괜찮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면 다시 죽을 때까지 일을 시키거나….”

     나리아는 관 아래를 슬그머니 보더니.

     “……그레이.”

     “안 됩니다.”

     “한 번만.”

     “누구를 쏘려고요. 안 됩니다.”

     시체로부터 눈을 돌려, 내가 미리 준비해둔 제국산 최신식 머스킷에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딱 한 번만 쏘게 해주….”

     “…….”

     드륵, 드르륵, 드륵.

     아래에서 들리는, 기이한 소리.

     철컥.

     나리아는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바로 머스킷을 들고 장전까지 마치며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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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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