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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2

   아리아 발하임.

   크라슈의 어머니이자 과도한 상승 욕구로 인해 감정적 결함을 지닌 자.

     

   그녀에게 모성애는 없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위로 올라가기 위한 상승 욕만 있을 뿐.

     

   아리아 발하임이라는 인물은 그렇게 오래전부터 망가져 있던 인물이었다.

     

   크라슈는 아리아에 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이었다면 모를까, 지금 와서 어머니의 품은 딱히 그립지도 않았고.

   그녀가 자신이 나아가는 앞길을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리아 발하임은 크라슈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일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건 다름 아닌 크라슈의 약혼 건이었다.

     

   원래 비앙카 하덴하르츠와의 약혼이 정해져 있던 크라슈였다.

     

   그러나 웬걸.

   에파니아 제국에서 크라슈 앞으로 에파니아 황실과의 약혼 제안이 왔고, 아리아는 그것을 냉큼 받아 버렸다.

     

   그녀로서는 당연히 혹할 이야기이기는 했다.

     

   무려, 에파니아 황실과 자기 핏줄이 직접 가족으로서 이어지는 기회인데.

   그녀로서는 놓칠 이유가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덴하르츠 약혼 건과 같이 자잘한 것들은 그녀에게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원래도 하덴하르츠와의 약혼은 버린 패로 쓰이던 두 사람을 가문의 화합을 위해 써먹은 것뿐.

     

   별다른 의미가 없는 약혼이었다.

     

   단, 아리아는 한 가지 실수했다.

   당사자들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리아 님,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여느 때처럼 티타임을 즐기고 있던 아리아는 자주 대화를 나누던 발하임 안주인의 직속 기사단원 발키리의 단장을 힐끗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레 물었다.

     

   “약혼 건에 관해 크라슈 님이 화내지 않으실까 걱정입니다.”

   “그 아이에게도 좋은 이야기인걸. 무려, 황가와 연이 닿을 기회인데.”

     

   아리아는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듯이 웃었다.

     

   “게다가 조건도 나쁘지 않아. 4황녀, 시즐리 에파니아를 발하임 쪽으로 보내는 것이니 크라슈가 제국에 묶일 이유도 없지.”

     

   단,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제국에서 교육하겠다고 하긴 했으나.

   이만한 조건은 없는 게 사실이었다.

     

   “스타론 왕실 입장에서도 마냥 나쁜 이야기는 아니야. 제국과 매일 같이 벌이던 신경전을 발하임이 제국과 이어짐으로써 많이 완화할 수 있을 테니까.”

   “오히려 스타론이 발하임의 힘이 제국으로 유출될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샬롯이 있잖니?”

     

   그녀는 감정 없어 보이는 눈웃음을 지으며 차를 한 모금을 했다.

     

   “예전에 한 번 무산 되긴 했어도 스타론 1왕자께서 아직 혼약자가 없으니 샬롯이 왕비 자리에 들어가면 될 일이야.

   그렇게만 된다면 발하임은 제국과 스타론을 이어주는 다리로서 그 자리를 확고하게 만들 테지.”

     

   잘하면 가문 하나에 제국과 왕국을 둘 다 제어할 힘을 얻을 기회.

   이건, 발하임으로서도 전혀 나쁠 필요가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아리아의 적극적인 공세였다고 해도 발하임의 수뇌부들도 그녀의 뜻을 따른 것이다.

     

   “물론 여기저기 문제는 있어. 하지만 원래 일이라는 건 그런 법이야.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는 거잖니.”

     

   사소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면 큰 움직임을 할 수 없다.

   그것이 아리아가 지난 삶을 살아오며 터득한 노하우였다.

     

   “그러니 걱정 말렴. 크라슈, 그 아이도 결국 내 아이니까.”

     

   발키리 단장의 걱정을 물린 아리아는 찻잔을 한 모금 또 기울였다.

   그러나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잘못 알고 있었다.

     

   분명 크라슈는 아리아의 아이다.

   실제로 크라슈는 그녀를 꽤나 많이 닮아있기도 하였다.

     

   타고난 눈치 부분은 대부분 아리아를 통해 이어진 것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크라슈에 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실 하나는.

   크라슈는 그녀의 상상 이상으로 막무가내인 인물이었다는 거다.

     

   “크, 크라슈 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그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아리아는 문 쪽을 돌아보았다.

     

   “빨리 올 거라고는 생각하긴 했는데.”

     

   설마 이렇게 빨리 들이닥칠 줄이야.

   그 아이답다면 답다고 해야 할지.

     

   덜컹!

     

   그 순간 아리아의 예상대로 그녀의 방문이 열렸다.

   거기에는 아니나 다를까, 크라슈가 서 있었다.

     

   예전에 보았을 때보다도 훨씬 어른이 된 크라슈.

   아리아를 닮은 날카로운 눈매가 특징적인 크라슈는 이내 신경질적으로 주변을 슥 훑었다.

     

   그러고는 아리아와 눈이 마주치자 아리아는 바로 자애로운 웃음을 지었다.

     

   “아들, 오랜만에 엄마 얼굴을 보러 와줬네?”

   “예, 앞으로 평생 볼 생각 없었는데. 또 직접 일을 터트려 주셔서 들르게 되었습니다.”

   “어머, 일이라니. 무슨 일이었니.”

     

   크라슈의 뻔뻔함이 어디서 이어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크라슈는 터벅터벅 걸어가 그대로 아리아의 앞에 있던 의자를 빼어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러고는 대놓고 불량스럽게 다리를 꼬더니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어쩌자고 이런 일을 벌이셨습니까.”

     

   하덴하르츠의 약혼을 취소하고, 에파니아 황궁의 약혼 건을 받아들인다.

     

   이런 짓을 아리아 혼자서 무턱대고 진행할 수 있을 수는 없었을 테고, 발하임 수뇌부들도 찬성했겠지.

   아리아가 그들을 구워삶았을 것은 눈에 훤히 보였다.

     

   “다 아들 좋자고 하는 일이지.”

   “거기에 제가 좋은 게 어디 있습니까? 다 어머니나 가문 좋자고 하는 일이지.”

     

   크라슈의 비아냥거림에도 아리아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크라슈, 네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은 전부 발하임에서 나온 거란다.”

   “예, 청송관에 처박아 버린 것도 발하임이었죠.”

   “내 말은 네가 쌓아 올린 명성이 이토록 퍼질 수 있었던 게 발하임 덕이라는 거란다.”

     

   크라슈가 눈을 살짝 찌푸렸다.

   그 사실에 관해 크라슈도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크라슈의 삶 전반에는 늘 발하임이라는 수식언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수식언의 힘은 상상 이상이다.

     

   크라슈의 이름이 이토록 빨리 퍼질 수 있던 것은 늘 발하임이라는 수식언이 따라붙었기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발하임이었기에 크라슈는 반푼이 시절 그토록 처참한 취급을 받아야 했다.

     

   발하임이란 가문은 결과가 전부인 곳.

   결과를 내지 못하는 이에게 한없이 냉혹하기 그지없다.

     

   그런 크라슈에게 아리아의 말은 어쩌면 역린을 건드리는 말이기도 했다.

     

   “청송관에 있었던 일은 발하임의 압박감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하기 위함도 있었단다. 지금에서 보면 네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니.”

     

   그리고 아리아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크라슈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몰랐으니까.

   회귀 전 크라슈가 발하임이라는 틀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고, 그로 인해 어떻게 망가졌는지.

     

   아리아는 알 수 없었다.

     

   단지, 현재 시점에서 크라슈는 청송관에 머물며 이토록 크게 대성한 인물로 비출 뿐.

   크라슈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던 열등감과 같은 악의적인 감정에 관해 알 수 없었다.

     

   아리아는 타고난 눈치를 지녔다.

   그리고 크라슈도 그녀를 따라 타고난 눈치를 가졌다.

     

   이에 크라슈는 눈치 빠른 이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숨기는 것 또한 잘하였다.

     

   자신의 상태를 철저히 숨겨야만 했었을 때가 반푼이였던 그에게는 수없이 많았으니까.

     

   “하하.”

     

   크라슈가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눈치 못 챈 아리아가 그를 본 순간 크라슈의 눈에서 노기가 뚝뚝 흘러내렸다.

     

   “개소리하지 마십쇼.”

     

   크라슈의 뜻밖의 모습을 본 아리아가 침묵했다.

     

   “저에게는 발하임이라는 건 생각해 볼 가치도 없습니다.”

     

   멸망한 세계 앞.

   휘황찬란한 제국도, 최강의 가문이라던 발하임도 전부 부질없었다.

     

   몰아치는 멸망의 폭풍 앞에 무너져 내릴 뿐.

   발하임이라 할지라도 멸망 앞에 버텨내지 못한 게 현실이었다.

     

   “이 세계 어딘가에도 영원한 건 없습니다. 그건 제국도 발하임도 마찬가지고요.”

     

   그 광경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온 크라슈에게 발하임의 가치를 논한다.

   당연히 우습기 그지없는 이야기였다.

     

   “제게 발하임이라는 존재는 아무런 압박도 되지 못합니다.”

   “……아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네게 발하임이라는 틀이 없어지는 순간 네게 향하던 호의들도 전부 사라질 거란다.”

   “예, 꽤나 많은 게 사라지겠죠.”

     

   발하임만을 보고 크라슈를 호의적으로 보는 이들도 분명 없지 않다.

   발하임이 크라슈를 내치는 순간 여러 가지에서 불이익을 당하겠지.

     

   하지만.

     

   “제가 쌓아 올리고, 제 주위에 있는 녀석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크라슈가 쌓아온 인연들은 발하임이라는 틀과는 무관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제 주위에는 저 같은 녀석들밖에 없거든요.”

     

   가문의 비호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잃지 않는 녀석들.

   그런 녀석들과의 관계를 쌓아 올려 지금에 이른 크라슈였다.

     

   그런 그가 발하임의 비호가 사라지는 걸 두려워할까?

     

   크라슈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발하임이 오히려 제게 남아 달라 간청해야 할 겁니다.”

     

   크라슈의 몸에서 한순간 흑염이 피어올랐다.

     

   “크라슈 발하임 님!”

     

   옆에 있던 발키리의 단장이 당황하여 크라슈를 제지하고자 손을 뻗었다.

     

   하지만 크라슈는 그보다도 빨랐다.

   이미 단순한 육체 능력만으로도 마스터 상급에 도달해 있는 크라슈였기 때문이었다.

     

   아리아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녀는 자기 목에 겨누어진 주먹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 엄마한테 주먹이나 내지르는 짓은 하면 안 되지.”

     

   그녀는 무척이나 덤덤하게 크라슈의 주먹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아무리 크라슈라도 자신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하임의 안주인답게 그녀 또한 담이 보통이 아니었다.

     

   “어머니께만 날린 게 아닙니다.”

     

   크라슈는 주먹을 천천히 되돌리며 발키리 단장의 팔을 제압했던 걸 풀었다.

     

   “발하임 전체에 고한 겁니다. 저 건드리면 가문이고 뭐고 다 뒤집어엎어 버릴 작정이니까. 뒤지기 싫으면 알아서 기라고요.”

     

   발하임을 상대로 이 정도로 막무가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옆에서 듣고 있던 발키리 단장의 얼굴조차 새하얗게 질릴 정도의 막말이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황궁이 내건 약혼이고 뭐고, 개소리 집어치우라 하십쇼.”

     

   크라슈는 말을 마치고 그대로 몸을 돌려 나갔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아리아는 이내 다시금 찻잔을 들어 올렸다.

     

   “아들, 네가 이토록 감정적으로 나오는 건 하덴하르츠의 아이 때문이니.”

     

   그녀의 질문에 크라슈가 멈칫하였다.

     

   “걱정 말렴. 에파니아 황궁에서 내건 약혼에는 기존 약혼을 취소하라거나 하는 말은 없었으니까. 애초에 저쪽이 원하는 건 아들과 4황녀에게서 아이지. 사사로운 다른 문제들은 신경 쓰지 않고 있단다.”

     

   죽어도 황가의 약혼을 물리겠다는 말은 안 한다.

     

   “사사로운 문제가 아닙니다.”

     

   크라슈는 마지막으로 아리아에게 말하였다.

     

   “제 약혼녀의 문제니까요.”

     

   비앙카의 문제를 사사롭게 취급하지 마라.

   크라슈는 그리 경고하고 이만 나갔다.

     

   불같은 크라슈가 떠나가자 아리아는 찻잔을 내려두곤 이내 창문을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발하임의 정원 경치가 비추고 있었다.

     

   “나원, 누구를 닮아 저런 독불장군인지.”

     

   발하임의 안주인은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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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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