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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3

       세실은 하이젠버그를 따라 달렸다.

       

       하이젠버그는 미친 듯이 내달리는 중이었다. 그 속도를 쫓아가기 어려웠다. 세실은 더욱더 필사적으로 뜀박질을 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세실은 날숨을 뱉을 때를 맞춰서 소리를 내질렀다.

       

       “왜 그리 빨리 가세요!!”

       “보면 모르세요!”

       

       급박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제자를 찾아야 할 거 아닙니까!!”

       

       하이젠버그는 속도를 높였다. 저게 인간의 다리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도 이해는 갔다.

       

       레니냐는 하이젠버그 교수의 학생이었다. 그냥 과목 선생도 아닌, 담임이다.

       

       세실이 총장의 권한으로 그리 배속하였다.

       

       면접을 본 결과, 하이젠버그는 금안족 차별이 없었다. 선민의식이 강한 하이엘프보다 백 배는 낫다. 따라서 하이젠버그를 레니냐와 함께 배속하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레니냐, 레니냐!”

       

       안 그래도 빠르던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

       

       이젠 기본적인 각력으로는 따라잡지 못한다. 세실은 마력초를 물고 부족한 마나를 채웠다.

       

       다음 순간, 세실의 동공이 옥색으로 빛났다.

       

       [상급 공계 정령마도 ─ ‘바람과도 같이’]

       

       타타탁!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자, 반대급부로 가속도가 붙는다.

       

       마도를 사용해야 비로소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세실은 마력량은 출중해도 기초체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전선에 있었을 적에도 주로 후방에서 대규모 마법을 준비하는 역할이었다.

       

       그래도 괜찮다. 부족한 체력은 마나로 채우면 된다. 마법을 사용한 세실은 나는 것처럼 뛰었다.

       

       “어디 있니, 레니냐아!!”

       

       구슬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미가 자식을 찾는 것 같았다. 애처로운 음색에 세실은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하였다.

       

       ‘정령들이 얘기한 악의는 마수의 악의가 아니었구나….’

       

       타탁, 탁!

       

       얼마나 뛰었을까.

       

       어느덧 두 사람은 남서쪽 절벽에 도착했다.

       

       족히 100미터는 되는 벼랑이었다. 하이젠버그는 그 벼랑을 주저 없이 뛰어내렸다.

       

       “자, 잠깐만요!”

       

       뒤이어 세실도 뛰어내렸다.

       

       충격 흡수 마법을 사용한 덕분에 다리가 아작나는 것은 막았다.

       

       어차피 어려운 마법도 아니었다. 하이젠버그 교수도 실력자일 터이니 같은 마법을 사용해서 벼랑을 내려갔으리라 추측했다.

       

       황급히 해안가로 내려온 탓에 멀리까지 살필 여력이 없었다. 세실은 뛰어내려가자마자 백사장을 살폈다. 파도가 채찍질하는 소리가 3초에 한 번 꼴로 들려왔다.

       

       세실은 넘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걸었다. 하이젠버그가 저쪽에 있었다. 그녀는 뛰다 말고 걸음을 멈춘 채였다.

       

       덕분에 세실이 따라잡을 수 있었다.

       

       “…….”

       

       하이젠버그는 모래사장 너머를 가리키며 물었다.

       

       “…총장님. 저 컨테이너들이 보이십니까?”

       “아…. 네. 보입니다.”

       “도합 50여 채가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중 반절이 풍랑에 뒤집혔습니다.”

       

       세실은 말을 잇지 못하였다.

       

       재난이 휩쓸고 간 풍광.

       

       해안가의 상태는 구천의 단면도와도 같았다.

       

       “어떤 멍청이가 이런 곳에 판자촌을 세우는 걸 허가했단 말입니까?”

       

       하이젠버그, 아니. 아스테야의 목소리가 천천히 떨어들었다.

       

       추풍에 떠는 낙엽처럼 흔들리던 목소리는 곧 잠잠해졌다.

       

       [불결한 기운이 느껴져요.]

       ‘조용히 해, 아그네스.’

       [제 말 좀 들어보셔요. 엘프족 전체에 대한 말살심이 드러나고 있다니까요?]

       ‘조용히 하라고 했어.’

       [어쩔 수 없어요. 악의를 감지하면 저희는 좋든 싫든 계약자에게 보고해야 해요.]

       

       안다.

       

       이건 정령의 잘못이 아니다.

       

       엘프들의 잘못이지.

       

       금안족에 대한 홀대가 아스테야를 분노로 몰아넣었다. 하여 그녀가 엘프족을 증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대체 왜?

       

       도대체 왜, 인족인 아스테야 하이젠버그가 금안족의 현실을 보고 분노하는 것인가?

       

       의문에 답할 시간은 없었다. 아스테야가 날이 선 어조로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총장님. 말씀해 주십시오. 누가 이런 위험한 곳에 집터를 잡아도 된다고 허가를 내렸답니까?”

       “…아무도 허가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왜 카우렐리아의 국민들이 이런 개집만도 못한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겁니까?”

       “그, 그건…….”

       

       답은 간단했다.

       

       엘프가 내쫓았다.

       

       인구는 많았다. 수도 집중화 현상도 심각했다. 그 때문에 물가는 오르고,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좋지 못한 경제상황을 지나는 건 카우렐리아도 마찬가지. 그런 와중이었으니 금안족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럴 때의 정치인들은 소수를 배제하고 주류 그룹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을 정답이라고 여겼다.

       

       왜?

       

       카우렐리아는 대의민주주의 국가니까.

       

       표심을 얻지 못하면 텃밭을 잃고, 텃밭을 잃으면 정치인들의 밥줄은 끊긴다.

       

       금안족을 홀대하는 건 행정부의 뜻도, 의회의 뜻도 아니었다. 국민들의 뜻이지. 과반의 엘프가 금안족의 좋은 주거환경 마련을 거부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당장 자기들 터를 잡고 살 곳도 없는데, 어떻게 다른 종족에게 관용을 베풀겠는가.

       

       “명문 아카데미의 학생을 돈 주고 기숙사로 불러들이지 못할망정, 이런 곳에 닻을 내리고 살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총장님, 말은 편히 해 주세요. 총장님께서 시정하실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스테야는 그 말을 끝으로 앞으로 달려갔다. 세실은 그녀를 붙잡으려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다리가 모래사장을 다시 박찼다.

       

       급하게 레니냐를 찾던 아스테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녀는 뒤집힌 컨테이너들을 한 번씩 둘러보면서 속도를 늦췄다 높였다를 반복했다.

       

       “…사람이 있군요.”

       

       놀랍게도 생존자가 있었다.

       

       “사슬도 있고요.”

       

       자세히 보니 각 컨테이너는 하나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탓에 일부는 뒤집혔지만, 일부는 단단히 쐐기를 박은 덕분에 조금씩 흔들릴지언정 전복되지는 않았다.

       

       “잠깐, 이건….”

       “뭔가 느껴지세요?”

       “사슬들을 자세히 보세요. 금빛으로 빛나고 있지 않습니까?”

       

       아스테야의 말이 맞았다. 어두워서 흐릿하게 보일 뿐이지, 계란물에 묻은 쌀알처럼 고운 노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금빛이라면….”

       

       금안족이 마력초를 물고 자신들만의 마도를 펼칠 때 내는 빛깔이다.

       

       즉, 누군가가 마법으로 각 판자촌을 하나로 엮는 기예를 벌였다는 뜻이다.

       

       아스테야는 사슬을 따라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곳에는 엘프이면서 동시에 금안족인 자들이 있었다. 이곳에 집터를 잡고 살아가던 무리였다.

       

       수는 대략 1백 명. 금안족치고는 결코 적지 않은 규모였다. 아스테야는 가볍게 인사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리야드 아카데미에서 왔습니다. 다치신 분은 없습니까?”

       “…….”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세실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들이 자신들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사정이 이런데 행정부가 아니라 아카데미에서 나오셨다고?”

       “웃기는 소리 마십쇼.”

       

       금안족답게 차분한 어조였다. 그러나 말에는 잘 벼린 칼날처럼 날이 세워져 있었다.

       

       금안족은 순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에테르’라는 금안족이 마수라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로, 카우렐리아의 분리 정책은 알게 모르게 심해졌다. 당연히 이는 반발을 불러왔다.

       

       지금 금안족에게 아스테야와 자신은 불편한 인물일 뿐. 이에 대고 총장에 불과한 세실이 무어라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는 아스테야 교수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리 생각하던 참이었다.

       

       “선생님!”

       

       한 소녀가 묵묵부답인 인파를 뚫고 튀어나왔다.

       

       소녀는 곧장 아스테야에게로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레니냐!”

       “선생님!”

       “레니냐, 무사했구나!”

       

       무표정이던 아스테야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제야 세실은 아스테야 교수가 저런 얼굴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살기가, 사라졌어.]

       

       정령들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어리둥절해했다.

       

       살의는 물과도 같다. 물은 비열이 큰 탓에 쉽게 달궈지지도, 쉽게 식혀지지도 않는다.

       

       분노도 크게 다르진 않아서, 극단적인 감정을 품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한번 품은 감정이 쉽게 사그라지지도 아니한다.

       

       정령들은 이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악의를 구분한다. 종족 전체에 대한 살의는 극단적인 감정이다. 때문에 정령들은 이것을 악의로서 감지한다.

       

       조금 전까지 아스테야는 엘프족을 깊이 증오했다. 아마 세계수를 불태우고 엘프들을 몰살하겠다는 생각까지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감정이 레니냐를 만난 순간 썰물처럼 씻겨 내려간 듯했다.

       

       [처음 보는 유형의 사람인데요.]

       

       최상급 화염의 정령, 아그네스가 세실의 곁에 현현했다. 그녀는 머쓱한 표정으로 볼을 긁고는 사라졌다.

       

       나머지 세 정령들도 한숨을 내쉬긴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잘못 판단했어.]

       [마수는 아니네.]

       [혼선을 줘서 미안해요, 주인.]

       

       세실은 뺨을 두들겼다.

       

       그래, 내가 미쳤지.

       

       아스테야는 성인군자다. 이런 자를 두고 어떻게 그런 의심을 품었단 말인가?

       

       불경한 일이었다. 세실은 한 발자국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아스테야는 레니냐의 등을 토닥여주며 사정을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기류가 혼탁하여 강한 해풍이 불 것임을 알고 있었어요. 해서 동족들을 벼랑 위로 피신토록 하고 제 고유마도로 일에 대비했던 거예요.”

       “그래, 그렇구나. 잘했어.”

       

       아스테야는 환히 웃으며 레니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네가 마법을 쓰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네.”

       “아, 그거라면….”

       

       레니냐는 손을 들어올리며 스태프를 보여주었다.

       

       손 주위에 사슬이 감겨있다. 사슬 끝으로는 C자 갈고리가 달려있었다. 반원에 가까운 형태였는데, 지름은 2척에 이르렀다.

       

       “그게 네 스태프니?”

       “네 선생님.”

       

       레니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쪽 손에 든 것은 뭐고?”

       “망치입니다.”

       

       오른손에는 갈고리, 왼손에는 망치라.

       

       보통 스태프는 하나인데, 두 개나 들고 있다니. 보통 경우가 아니었다.

       

       “제법 무거워 보이네.”

       “생각보다 가벼워요.”

       

       레니냐는 두 스태프를 번갈아 휘두르며 금빛 마력을 둘렀다.

       

       예사롭지 않은 솜씨였다.

       

       “스태프는 시전자의 심상을 따라 만들어진다는데, 네 것은 유독 특이하구나. 풍랑에는 어떻게 대비한 거니?”

       “간단해요. 갈고리에 마나를 실어 땅에 내려찍고, 망치를 두들겨 고정하는 거예요.”

       “모래사장은 지반이 약할 텐데?”

       “단단한 흙이 나올 때까지 내리꽂으면 되죠.”

       

       못 믿으시겠으면 한 번 보실래요? 레니냐는 웃으며 컨테이너에 엮인 사슬을 하나 주웠다. 그리고 그것을 뿌리식물을 뽑아내는 것처럼 쭈욱 잡아당겼다.

       

       쑤우우욱! 쇠사슬은 한참을 지나서야 전부 뽑혀나왔다. 그 길이가 물경 수십 미터에 달했다.

       

       “단단히도 내려박았구나.”

       “제 고유마도 덕분이에요.”

       “아직 학생인데 고유마도를 만들었다고?”

       

       아스테야는 더는 숨기지 않았다. 그녀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이 올라갔다.

       

       “장하구나. 아주 장해.”

       

       순간, 세실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악의가 느껴졌다.

       

       정령이 아닌, 오직 인간과 엘프만이 느낄 수 있는 삿된 악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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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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