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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3

       지난 시간을 모두 통틀어, 나는 황제에게 직접 대항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항해볼까 생각은 해봤다. 혹시 모르니 한 번 암살 시도를 해보고, 먹히면 먹히는 대로 시간을 돌리고, 먹히지 않으면 먹히지 않는 대로 다시 시간을 돌려볼까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황제는 시리즈 중반까지의 최종보스다. 쉽게 이길 수 있을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나 혼자서 황제와 대적하려고 해도, 상황이 알려지면 황궁에 있는 모두가 나를 향해 달려들 테니까.

        

       ……황궁 내의 대응 시간에 대해서는 이미 확인해 보았다. 황궁 안에서 대놓고 폭탄을 터뜨려보기도 하고, 정비를 위해 잠깐 내려온 전함에 침입해보기도 했다. 어떻게든 탈출할 수는 있었지만, 솔직히 전장에서보다 위험했다.

        

       전장에서는 나의 편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고, 그래서 적도 나에게만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제도에선 다르다. 배신자가 나 혼자라면, 당연히 제도의 모든 병사는 나만을 쫓는다.

        

       설령 황제를 죽이는 데 성공해도, 내가 살아서 탈출할 가능성은 그렇게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시간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돌리다 보면 언젠간 성공할지 모르지만, 정작 내가 황제를 실제로 암살할 때의 배경은 또 다를 테니까.

        

       결국 황제와 직접 맞서 싸운 적은 없었다.

        

       황제의 검술은 루카스보다 위에 있을까? 이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종종 논쟁거리가 되곤 했다. 황제와 검성의 검술 실력이 비슷하다면, 루카스가 검성을 베는 데 성공한 시점에서 이미 루카스는 황제보다 강한 것이 아닌가?

        

       뭐, 게임에서는 그래도 ‘최종 보스’답게 황제의 능력치가 더 높게 설정되어있었지만. 애초에 전투가 끝나도 이벤트 장면에서는 전투가 끝난 것이 아니라 상대가 봐줬다는 식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시리즈였다. 그런 밸런스 맞추기용 능력치가 설정과 겹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게다가—

        

       “큭……!”

        

       황제를 향해 달리던 나는 급하게 몸을 틀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황제는 쉽게 승리를 내어줄 생각은 없었다. 나라는 존재 때문에 자기 계획을 완전히 바꾼 뒤에도 황제는 세상을 손에 넣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에게 했던 말들이 거짓말이었을까? 글쎄, 만약 내가 황제의 미래를 알고 있어서 그것까지 예견했다면, 황제는 정말로 그때 내게 해주었던 말대로 행동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계속 기회를 노렸겠지.

        

       그 옛날 팬그리폰이 했던 것처럼.

        

       연격으로 날아온 두 번의 검격을 피해 나는 옆으로 몸을 날렸다. 어깨부터 땅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빡, 하며 꽤 큰 소리가 났지만, 내가 몸에 입고 있는 강화복은 그런 소리 따위 듣지 못했다는 듯, 내 다리의 힘을 몇 배로 증폭하여 땅을 박찼다.

        

       관절을 갑자기 확 움직이면 나는 특유의 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그대로 뒤통수를 땅에 댄 채로 옆으로 굴렀다. 나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가 본다면 일부러 구른 것으로 보였을 거다.

        

       그대로 소총을 들어 쏘려다가— 루카스와 전투하는 도중에 탄창을 비워버렸던 것을 떠올렸다. 급하게 볼트를 당겨 약실을 열고—

        

       그대로 다시 옆으로 침착하게 구른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황제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바로 조금 전까지 루카스와 싸웠기 때문일까?

        

       황제의 움직임은 의외로 루카스의 것과 닮았다. 아니, 따지고 보면 루카스가 황제를 닮은 거겠지. 나를 베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루카스는 황제를 베는 것을 목표로 했으니까.

        

       다른 점이 있다면, 비교적 부드럽게 연결되는 루카스의 동작과는 다르게 황제의 동작은 조금 더 절도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동작을 억지로 이어 붙였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색하지 않다. 검술에서 멋이라는 것을 완전히 제외해버리고 오로지 검격과 검격이 연속으로 이어 붙도록, 중간과정을 생략해버린 것 같은 동작.

        

       검술을 따르며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 검술이 몸에 따르게 한 것 같은.

        

       카가가각!

        

       바닥에 다시 검격이 새겨지고, 나는 그 검격이 나에게 닿기 전 얼른 몸을 옆으로 날렸다.

        

       아마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아니었다면, 크건 작건 상처를 크게 입었을 것이다. 방어를 희생하고 파워에만 올인했던 것은 좋은 선택인 것 같다.

        

       조금 전 탄띠에서 꺼내 손에 꽉 쥐고 있던 탄환을 다시 약실에 넣고, 볼트를 앞으로 밀었다. 철컥, 하는 소리가 상황에 맞지 않게 경쾌하게 들렸다.

        

       그리고 곧장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텅, 하고 개머리판이 내 강화복 어깨 부분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흠.”

        

       하지만 나와 황제의 신체 능력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검성도 나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나에게는 재능이 없다고.

        

       당연히 황제는 내가 조준하는 자세를 보는 순간부터 나의 총격을 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쏜 총알은 황제를 빗겨나가서, 그대로 황제 뒤쪽에 있는 ‘장치’에 명중했다.

        

       펑, 하고 작은 폭발이 일었다. 하지만 장치 자체를 파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뭐, 그렇겠지. 무려 여신의 힘을 봉인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장치였다.

        

       여신의 힘을 써서 부수지 않는 한은, 아마 부서지지 않겠지.

        

       황제가 굳이 자리를 움직여 피한 것도 그런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만약 장치가 부서지지 않는다면—

        

       나는 손을 내려서 무릎 옆에 달린 작은 밸브를 잡았다.

        

       꽉 조여있던 밸브를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내가 움직일 때만 나오던 증기가 조금씩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움직일 때마다 관절이 뻐근한 참이었으니, 이 상태로 달리면 진짜로 다칠지 모른다.

        

       뭐, 그래도 어쩌겠어.

        

       황제와 대적했다고 해도 나는 아직은 황녀였다. 돌아가서 치유사들한테 치료라도 받으면 낫겠지.

        

       모르핀을 챙겨둘 걸 그랬나? 아니면 하다못해 메스암페타민이나—

        

       그랬다간 앨리스가 화냈겠지.

        

       처음으로 내 방에서 모르핀을 찾은 뒤 마구 화를 내던 앨리스를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었다. 1년이 채 되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여기저기서 총을 쏘는 소리와 검을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들어보면 모두 아는 목소리였다. 다들 힘차게 소리치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은 무사한 모양이다.

        

       고작 1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를 믿어주었다. 정작 나는 제대로 말해준 것도 하나도 없는데.

        

       나는 밸브에서 손을 떼고, 그대로 땅을 짚었다.

        

       그리고 마치 출발선에 선 육상선수처럼 다리를 웅크렸다가, 그대로 앞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목표는 황제가 아니다.

        

       내가 보는 것은 오로지 저 앞에 있는 기계장치뿐이다.

        

       장치를 부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진상을 알고 있는 이들 모두 나에게 여신의 힘이 있다느니 뭐라느니 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그런 것을 느껴본 적이 없으니까. 시간을 돌리는 것으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파괴할 수단이 없는데 시도를 계속해봐야 무의미할 뿐이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파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분해하면 된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황제는 분명히 그 지보— 부품을 손으로 따로 들고 있었으니까.

        

       황제도 바보는 아니다. 내가 보고 있는 방향을 파악하고,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정확히 파악한 모양이었다.

        

       황제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다음 검격을 준비하기에, 나는 그대로 권총을 뽑아 들어 황제에게 난사했다.

        

       어렸던 시절부터 애용하던 455구경 리볼버.

        

       방아쇠압은 조금 높지만, 더블액션 리볼버라 원한다면 순식간에 실린더를 비우는 게 가능하다.

        

       실린더 안에 있는 것은, 장약을 줄인 대신 길쭉한 탄두의 마르마로스를 넣은 특제탄.

        

       탄속도 느리고, 사거리도 짧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 거리에서라면 상관없다.

        

       펑, 펑, 펑.

        

       권총탄에서 나가는 탄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작은 폭발이 일었다. 황제는 검을 휘둘러 몇 발 정도를 공중에서 베어버린 모양이지만, 그런데도 폭발을 막지는 못했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황제를 죽이고자 했다면 이 작전은 실패이리라.

        

       아주 잠깐 황제의 시야를 가렸을 뿐이니까.

        

       게임이었다면 미스만 잔뜩 뜬 상황이려나? 만약 내가 게임을 하던 중이었다면 패드를 집어던지고 욕지거리 몇 번 한 다음 다시 로드해서 처음부터 했을 것이다. 기껏 강한 아이템을 맞춰갔는데 유효탄을 한 발도 맞추지 못한 셈이니까.

        

       하지만 그거야 선택지라는 게 없는 게임에서나 그런거고.

        

       황제의 발을 아주 잠깐 묶었다.

        

       하지만 나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황제는 능숙하게 검을 놀려서 연기를 걷어낸다. 연기의 틈으로 황제의 눈이 보였다.

        

       무서웠다.

        

       웃고 있는 황제는 정말로 이 상황이 즐거운 것 같아서, 마치 내가 무슨 일을 하건 소용없다고 말하려는 것 같아서.

        

       “언니!”

        

       “실비아!”

        

       하지만 그런 걱정은 뒤이어 들린 목소리에 확 날아갔다.

        

       몰려드는 적들을 어떻게 뚫었는지, 클레어와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기를 걷어내고 검을 들던 황제는 내 쪽으로 바로 달려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두 사람의 검격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 걸까? 곧장 목표를 잡아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고 판단한 걸까.

        

       황제와 내 사이를 노리고 검격이 날아들었다. 앨리스의 검격이었다.

        

       정확한 조준, 정확한 타이밍이었으나—

        

       촥!

        

       피가 튄다.

        

       황제는 그 검격을 정확하게 맞았다.

        

       하지만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황제는 오로지 나만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죄송합니다. 다음 화는 조금 늦게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여 오후 2시 이전에는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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