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53

    리빙아머이후 이렇다할 장애물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이 장소의 경계가 부실해서 라기보다는 세월이 세월이니만큼, 침입자를 배제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알맞다.

     

    오히려, 리빙아머 한 기라도 작동한 것이 기적이리라.

     

    역시 군단장급 사양으로 제작된 모델이라서 그 모진 시간의 풍파에도 견딜 수 있었던 걸까.

     

    ‘루크, 이 친구의 이름이 뭐죠?’

    ‘음, 일단은 임시로 리브, 라고 짓기는 했는데.’

    ‘리빙아머라서 리브인가요? 센스 없네요, 당신. 나중에 아이를 낳아도 이름을 그런 식으로 지을 건가요?’

    ‘크, 크흠, 여기서 아이 이야긴 대체 왜 나오지?’

    ‘당신이 만들었으니 당신의 아이 아닌가요?’

    ‘…….’

    추억을 떠올리며 복도를 걷던 루크는 문득, 자신의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이런, 또 감상에 젖어버렸군.”

     

    이 장소는 기묘하게 자신의 추억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었다.

     

    대체 어째서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 장소가 5000년 전의 자신과의 유일한 연결점이기 때문일까.

    아마 그렇겠지.

     

    이 곳은, 자신이 가진 이 ‘기억’이 거짓이 아닐것이라는 무엇보다 명확한 증거이니까.

     

     

    그렇게 다시 발걸음 속도를 끌어올릴 때쯤, 루크는 다시금 무언가 특이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이 이 장소의 중심인가.”

     

     

    문을 열자 가장 먼저 루크를 반기는 것은 그동안 벽과 천장, 바닥에서 숱하게 보았던 그 인조식물, ‘글레이프니르’의 이파리였다.

    마치 커튼처럼 내려앉은 그 덩굴들을 살짝 젖히자 드러나는 방의 내부 역시 역시나 무성한 수풀로 덮힌 상태.

    지금까지의 복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초록빛으로 뒤덮여 있다.

     

    루크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꽤 높은 천장에서, 마치 샹들리에, 또는 모빌처럼 내려온 줄기가 흔들거리며 루크의 마음 속 고양이의 본능을 자극했다.

     

    “…….”

     

    루크는 그것을 몇 번 건드려보다가, 이내 관심을 끄고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 나무는 마력저항력이 뛰어나 마법으로 베어내거나 막아내기는 어려웠다.

    몸에 두른 실드마저 무효화시키는 것인지, 풀잎들이 자신의 다리를 감싼 스타킹을 스쳐지나가는 느낌이 영 오싹하기도 하다.

     

    그렇게 방 더욱 깊숙한 곳에 입장한 루크는, 또 하나의 유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끌어안고 있는 듯한 모습.

     

    루크는 곧장 그것에 다가가 확인했다.

     

    “눈에 띄는 외상은 보이는 것 같지 않고…….”

     

    조금 더 자세히 살피기 위해 유골을 감싸듯 덮은 글레이프니르를 치워내려하자, 그대로 모래처럼 바스라지는 유골.

    엄청난 시간의 흐름에 전혀 저항하지 못하였다는 느낌이다.

     

    “음? 이건 아래에 있던 그 시체와는 같은 시간에 침입한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

    분명 그 시체와 비슷한 의상양식이기에 같은 시기에 침입한 존재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말이다.

     

    -파스슥.

     

    그렇게 뼛가루가 먼지처럼 흩날리고, 유골이 감싸고 있던 것이 드러났다.

     

    그것을 본 루크는 곧바로 납득하여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루크는 천체본과도 비슷한 형상의 금색 원형 장식물에 손을 뻗었다.

    몇겹의 회전하는 금빛 원형의 테 안에 담겨진 원추형 유리공예품.

    본디 두개의 꼭짓점이 합쳐져 모래시계 형상을 이루고 있어야 했을 그 형상은 지금 한 쪽이 부서져 파편이 된 상태다.

     

    “역천의 모래시계인가.”

     

    그것은 본래 이 장소의 시간의 흐름을 조작하는 것에 사용되는 코어와도 같은 물건.

    시간의 파편을 담아 작동하는 모래시계이며, 본래라면 주변의 시간선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아티팩트이나 지금은 안타깝게도 부서진 듯 하다.

     

    이 사람은 아마 이 아티팩트를 잘못 조작하여 급속도로 노환을 일으킨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으리라.

    인간의 몸으로 시간을 직사당한다면 그야 이렇게 되겠지.

     

    아마 이 장소의 시간이 자신의 아공간과 흐름이 다른 것도 어쩌면 이것의 고장이 원인이 될 수 있다.

     

    ‘흠, 지금 내가 고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미 흘러나간 시간을 주워담는 것은 아무리 루크라고 해도 불가능했다.

    4서클의 권한만이 허락된 현재 자신의 몸으로는 더더욱.

     

    다만, 어쩌면 이 아티팩트를 보수하면 그래도 어느정도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루크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깨진 유리조각을 집고, 엇나간 조임쇠 부분을 끼워넣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부분은 깔끔히 포기하고, 그나마 아직 남아있는 시간의 파편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주운 유리파편을 용접시킨다.

     

    대충 역천의 모래시계의 형태가 다듬어지자, 루크는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무성히 자라나 있던 덩굴손이 뒷걸음질치고, 천장에서부터 길게 내려앉아있던 줄기가 마치 위에서 잡아당기는 것 처럼 줄어든다.

    새카맣게 변색되어있던 벽지가 본연의 색을 되찾으며, 가루가 되었던 뼛조각들이 모여든다.

     

    마치 영상을 역재생하는 것 처럼, 이 공간의 시간이 되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곧 이 모든 것들이 과거의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허나, 그것이 끝이었다.

     

    천장에서부터 내려앉은 덩쿨은 더 이상 루크의 손에 닿지 않는 곳까지 올라갔을 뿐 사라지지 않았고, 죽어있던 시체의 살점은 돌아오지 않았으며, 창문을 튼튼한 커튼처럼 가리고 있던 이파리들은 여전한데다가, 바닥에 무성한 잡초들은 그대로였다.

     

    “역시 이 정도가 한계인가.”

     

    어차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루크는 한 형체를 발견했다.

     

    ‘밴시인가?’

     

    굉장히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공간이다.

    한을 가진 채 성불하지 못한 영혼이 하나쯤 있어도 딱히 이상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곧 루크는 그 생각을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저건 시간의 흔적이군.”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

    시간선이 아티팩트의 영향으로 조금 엉망이 되면, 과거에 있던 일들이 마치 메아리처럼 재생되는 일이.

     

    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하려면 시간선에 흔적을 남길 정도로 강한 영혼이나 인과를 지닌 자여야만 했다.

    그러니까, 최소한 역사책에 쓰일 위인쯤은 되어야만이 이런 메아리에 남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누군지는 몰라도, 굉장한 카르마를 지니고 있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어쩌면, 저 것이 바로 내가 찾던 바알의 흔적일지도 모르겠군.’

     

    루크는 곧장 그 형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

     

    루크는 자신의 앞을 걷는 반투명한 흰색 형체를 노려보며 걷고 있었다.

     

    -따각, 따각.

     

    복도를 무성히 덮고 있던 풀이 줄어서인지, 루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딱딱한 구두로 바닥을 밟는 경쾌한 소리가 따른다.

    몸 전체를 감싼 로브 때문에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불만스럽다.

     

    바알 니에르의 얼굴은 교과서로 보았을 뿐 아니라 과거 베리튼에서 거대하게 입체적으로 조각된 모습까지 보았기 때문에 육안으로 볼 수 있다면 구분이 가능할텐데 말이다.

    직감은 그 형체가 바알 니에르라고 가리키고 있기는 하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은 따라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그나저나, 저건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러다, 루크는 그 형체가 갑작스럽게 방향을 틀어 한 닫힌 문을 통과하는 것을 목격했다.

    루크는 곧장 그것을 따라가려 했으나.

     

    -철컥, 철컥.

     

    자신이 문고리를 잡자, 그 문은 단단히 잠겨 있을 뿐이다.

    마법을 이용해 잠금을 해제해보았으나, 여전히 열리질 않는다.

    안쪽에서 무언가에 의해 막힌 모양이다.

     

    “귀찮군.”

     

    루크는 몸에 인핸스 바디와 헤이스트를 중첩 시전했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문이라면, 물리력을 이용하면 그만.

     

    본래 물리력에 대한 저항도 상당한 소재라 제대로 관리가 된 문이었다면 물리력도 잘 통하지 않았겠지만.

    원래 세월이 지날수록 물리적 저항력은 약해지고 마법적 저항력은 높아지는 법이다.

     

    -쾅!

     

    힘없이 박살나는 문.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결과이나, 문이 파괴되면서 비산한 파편에 의해 스타킹이 조금 찢어져 피부가 좀 까졌다.

     

    실드를 시전했음에도 뚫고 넘어온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건 글레이프니르로 만들어진 문이었던 모양이다.

    피가 조금 흐르긴 했지만, 어차피 심한 상처는 없었다.

     

    루크는 곧 자신의 다리에서 신경을 끄고, 방의 내부를 눈에 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곳은 글레이프니르의 침식으로부터 어느정도 자유로웠나보군.’

     

    어떤 장소보다도 특별하게 취급된 듯 한 모습.

    책장이나 의자, 책상등의 가구들 역시 비교적 멀쩡한 듯 보였다.

    어쩌면 이곳은 바알의 연구실이나 집무실이 아니었을까 싶다.

     

    루크는 먼지쌓인 책상을 손가락으로 스윽 쓸어내면서 중얼거렸다.

     

    “흠, 꽤 가구는 나와 공통된 취향을 갖고 있었군, 바알.”

     

     

    가구의 양식이 과거 아린세이아의 왕성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어쩌면 그냥 자신의 아공간에 있던 물건들을 사용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헌데, 시간의 흔적은?’

     

    기껏 문을 부수며 들어왔으나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흔적.

    루크는 하는 수 없이 이곳을 좀 탐색해보기로 하고 걸음을 옮겼다.

     

    가장 먼저 다가간 것은 바로 책장.

     

    아무래도 가장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가장먼저, 책장에 위치한 책들에 앉은 먼지들을 손으로 탈탈 털어내고 그 이름을 읽어본 루크는 눈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메이지, 아르카나, 알케미스트, 소서러와 같은 주류 마법이론부터, 위저드리나 서머닝 같은 마이너학파에 더해 흑마법까지 섭렵된 책장에서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전부 다 내가 직접 작성한 마도서들이지 않나?”

     

    자신의 아티팩트와 마도서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이곳에 고이 모셔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루크는 곧장 몇가지 마도서를 꺼내 읽어보았다.

     

    -이성적으로 연금술을 이해하는 방법. 432P.

    ‘……따라서, 알케미스트의 근본적인 원칙은 다음과 같다. 물질에는 모두 고유한 가치가 있으며, 효과가 그 가치를 뛰어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당신이 흑마법을 사용함에 있어서 명심해야 할 계명. 23P

    ‘……영혼이란 삶의 흔적이다. 삶이라는 것이 끝나고 뒤에 남는 발자국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대한 영혼을 지니기 위해서는 높은 카르마를…….’

     

    -죽음에 대응하는 각 학파의 이론. 124P

    ‘신을 이용해 생전의 모습 그대로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죽음이란 긴 여행이라고 보는 시점이 압도적이다. 하지만 정말로 죽고나서 다시 태어난 인간이 자신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각 학파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전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과 일치한다.

    명백한 자신의 마도서들.

     

    “…….”

     

    그렇게 빠르게 자신의 마도서를 넘기고 있던 루크는 문득 모든 마도서들에 어떤 표시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손을 멈추고 말았다.

    마치 학습을 한 듯, 핵심내용에 밑줄이 들어가 있고, 조금 어렵고 고찰이 필요한 부분은 구석에 작게 메모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이 루크의 손을 멈춘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그 문자를 흘려쓰는 방식이, 루크에게 굉장히 익숙했기 때문이다.

     

     

    “잠깐, 이건 레니에의 필체인데……”

     

    이런 곳에 레니에의 흔적이 남아있다니, 이런 마법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었나?

     

     

    그렇게 루크가 정신없이 마도서를 확인하며 혼란에 빠진 찰나, 사라졌던 흰색 영체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로브를 벗은 채로, 벽의 한 부분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그리고 그 얼굴을 확인한 루크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레…… 니에?”

     

    바알이라고 생각했던 영체의 얼굴은 어느새 레니에의 것으로 변한 상태였다.

     

    레니에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품으며,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았다.

    마치, 눈을 마주치는 것만 같다.

     

    ‘그럴리가, 이건 아주 오래된 시간의 흔적일 뿐인데……?’

     

    설마,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올 것을 예지하고 있었단 말인가?

     

    “대체, 언제……. 부터?”

     

    레니에에겐 들릴 리 없는 목소리인 것을 알면서도 루크는 먹먹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루크는 홀린 듯이 고개를 들어 벽을 보았다.

    이제보니, 그것은 단순히 풀로 덮인 벽이 아니라, 무언가를 감싼 천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루크는 떨리는 손으로 천을 잡아 끌었다.

     

     

    -휙.

    그러자 드러나는 것은 소녀의 모습에서 전혀 성장하지 못한 레니에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청년 시절의 자신이 그녀를 무릎에 앉힌 채 함께 미소를 짓고 있는 그림. 

    루크는 다리로 몸을 지탱하는 것 조차 잊고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하, 하하하!”

     

    한차례 주변을 둘러본 루크는 그제서야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는 듯이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싼 채로 대소했다.

     

    “내 모든 것을 가져간 것이 그대였나, 레니에!”

     

    과거 자신이 레니에를 그리기는 했으나 자신의 모습을 그림에 그린 적은 없었으니, 뒤에서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아마 나중에 덧그려진 것이리라.

    만약 레니에가 아니라면 굳이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루크는 그제서야 이 방의 열린 창문이 유일하게 밖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곧바로 보이는 것은 나부끼고 있는 붉은 깃발.

    깃발의 문양을 확인한 루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 곳이 바로 아린세이아였다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실 해킹이 아니었던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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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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