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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3

       엘라는 초조하게 발로 바닥을 쳐가며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각은 새벽 4시 20분.

         

       어제 클라라가 짠 일정표대로라면 단원들은 지금쯤 준비를 마치고 나와서 마차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 나갈 준비가 된 단원은 한 명도 없었다.

         

       “누나, 샤워하려는데 뜨거운 물이 안 나와요!”

       “온수가 바닥나서 그래! 랫맨들이 예비 보일러를 가동 중이니까 조금 기다려!”

       “핫핫, 엘라 양? 제 팔 못 봤습니까? 어제 변기에 빠져버려서 세탁했었는데…….”

       “팔뼈? 아까 트라이머리가 세탁물 한 아름 안고 가던데 거기 섞인 거 아닐까? 2층에 가 봐!”

       “이봐, 뜨거운 물이 안 나오잖아!”

       “머리 하나밖에 못 감았다고!”

       “어떻게 된 거야?”

       “기다리라니까! 그동안 다른 일이라도 하고 있어!”

       “무슨 일?”

       “주방에 가서 유라 언니라도 돕든지 보일러에 넣을 장작이라도 나르든지!”

       “찍찍, 부단장! 창고에 갔다! 장작! 없다!”

       “뭐? 그저께만 해도 거기 있었는데…….”

       “아, 장작 찾냐? 그 참나무들 내가 건조 시킨다고 별관 지붕에 올려뒀다!”

       “아니, 영감님, 그런 짓을 왜 해요?”

       “참나무는 습기를 빼야 화력 효율이 올라가. 다 말랐을 텐데 내린다는 걸 깜빡했군.”

       “찍찍! 늙은이! 일 두 번 하게 만든다!”

       “엘라, 수저 가지러 가지 않았니?”

       “아차, 잠시만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여기저기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단원들은 정신없이 위층과 아래층을 오갔다. 복장을 갖추지 못한 단원은 물론이요, 아직 씻지도 못한 단원들에 잠옷 바람 그대로인 단원들도 있었다.

       다들 늦잠을 잔 탓이었다.

         

       그나마 준비를 빨리 마친 엘라가 중간에서 상황을 수습하고 있었지만, 원래 계획한 시간 내에 출발하기는 요원해 보였다.

         

       “클라라 선배, 마차는 어떻게 됐어?”

       “그……마부님들이 추가 요금만 내면 5시까지는 기다려 줄 수 있대……. 하지만 그때가 되면 뒤의 일정 때문에 무조건 출발해야 한다고…….”

         

       클라라는 죄지은 사람처럼 엘라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지금 서커스단이 겪고 있는 혼란은 비서인 그녀의 책임이 컸다.

         

       일단 그녀는 서커스단에 하나밖에 없는 탁상시계-아주 귀한 물건으로 아나이스가 원더스타인에게 선물로 준 것이었다.-덕분에 원래 계획했던 시간에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녀는 유라크네를 깨워 주방으로 내려보낸 후,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그렇게 욕탕에 누운 채 뜨거운 물을 맞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녀는 그 온기와 나른함에 취해 그만 그대로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은 4시가 넘어서였다. 그것도 스스로 일어난 게 아니라,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마친 유라크네가 아직 단원이 아무도 안 일어난 것을 알아차리고는 놀라서 달려온 것이었다.

         

       “히이익, 늦었다, 늦었어!”

         

       어찌나 놀랐는지 그녀는 옷도 걸치지 않고 방을 뛰쳐나갔다. 유라크네가 붙잡지 않았더라면 알몸으로 원더스타인의 방에 뛰어들었을지도 몰랐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원더스타인은 자신에게 허리를 연신 숙여대는 클라라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는 언성을 높이거나 인상을 찌푸리는 대신, 그녀에게 휠체어를 가지고 오도록 했다.

         

       “괘종시계에도 알람을 맞춰놓지 않았습니까?”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클라라는 혹시나 자신이 못 일어날 때를 대비해 로비 중앙에 있는 커다란 괘종시계에 알람을 설정했다. 그러나 그것이 울리지 않았다.

         

       클라라는 원더스타인이 휠체어에 앉는 것을 도와주면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그, 그게 제가 오전 3시 40분이 아니라, 오후 3시 40분으로 설정해버려서요…….”

       “그렇군요.”

         

       조용히 웃는 원더스타인의 모습에 클라라는 덜컥 겁이 났다.

         

       “저, 화, 화나신 거 아니죠?”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합니까? 일단 서두르죠.”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겉모습과 달리 그는 속이 상당히 쓰렸다.

         

       단원들의 평균 호감도와 서커스단의 명성 덕분에 요즘은 하루에 40 정도의 데볼루트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저기 나갈 일이 많아서 그런지 자원은 좀처럼 쌓이지 않았다.

         

       클라라의 몸을 주기적으로 조정하는 데도 많은 데볼루트가 소모되었고, 며칠 전에는 호크의 몸을 만들어주는 데 상당수를 사용했으며, 어제는 또 레이나의 몸을 씻기는 데 필요 이상으로 낭비하고 말았다.

         

       그런데 또 지금 계획하지 않았던 곳에서 데볼루트를 써야 했다.

       그는 음향실의 기능을 이용해 단원들을 깨웠다. 그는 그들에게 현재 시각이 4시가 넘었다는 것을 알렸다.

         

       “아무쪼록 다들 서둘러 주세요.”

         

       방금까지 고요했던 별장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유라크네는 식탁에 차려놓았던 음식들을 이용해 도시락을 쌌다. 앉아서 느긋하게 아침이나 먹을 시간 따위 없었다. 가는 길에 마차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

       

       그것만으로 시간을 상당히 절약한 셈이었다. 다들 서두른다면 계획된 시각에 맞출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생각한 대로 굴러가지 못했다.

         

       “보일러에 온수가 없어요!”

       “히익!”

         

       이번 일의 범인 역시 클라라였다.

       그녀가 뜨거운 물을 1시간 넘게 틀어버린 탓에 단원들이 몇 명 씻기도 전에 온수가 바닥나고 말았다.

         

       그렇다고 찬물로 씻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예테린푸르크의 10월 날씨는 아랫지방의 겨울 날씨와 비슷했다.

       이곳이 제국 내에서 따뜻한 축에 속한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하의 날씨에도 하천에서 수영을 즐기는 키예프 사람들 기준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4시 30분을 지나 40분이 넘었다.

         

       다행히 다급한 문제들은 대부분 해결되었다. 단원들은 하나둘 복장을 갖춰 로비로 내려오기 시작했고, 유라크네도 주방에서 나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올라갔다.

         

       이제야 여유가 좀 생긴 엘라는 로비를 둘러보다가 벽난로 앞에 아까부터 쌓여있던 털 뭉치에 눈이 갔다.

         

       빨래들인가?

       다가가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 그녀는 놀라서 소리쳤다.

         

       “마야, 넌 왜 또 여기 있어!”

         

       그것은 카디건과 스웨터를 뭉텅이로 둘둘 두르고 있는 마야였다. 그녀는 마치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엎드린 자세로 벽난로 앞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어서 일어나!”

         

       그녀가 거칠게 몸을 흔들자 마야가 졸린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부단장? 무슨 일이야?”

       “일은 무슨 일! 도대체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어젯밤부터.”

       “뭐?”

       “불 옆이 따뜻해서.”

       “그 난리를 치는데 한 번을 안 깼다고? 돌겠네! 10분 뒤 출발이야! 어서 가서 준비해!”

         

       엘라는 그녀를 일으켜 세웠고, 그녀는 느릿한 하품을 하며 염동력으로 날아 방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50분이 지나고 5시 정각이 다 되었을 무렵, 단원들은 겨우 준비를 마치고 마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별장에서 나온 유라크네는 가쁜 숨을 내쉬며 마차에 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한숨 돌릴 여유도 갖지 못했다.

         

       “두 사람 복장이 그게 뭐예요!”

         

       그녀는 자신과 같은 마차를 탄 마야와 클라라의 상태를 확인하고 기겁을 했다.

         

       마야는 그저께부터 입고 다니던 옷을 구겨진 그대로 걸치고 나왔다. 소매와 팔꿈치에 때가 탄 건 물론이고, 여기저기 보풀이 일어나거나 실밥이 풀려 있기까지 했다.

       머리카락 역시 부스스했다. 겨울이라 모직에서 일어나는 정전기 때문에 뻗침이 더 심했다.

         

       “이 꼴을 하고 어떻게 사람들 앞에 서려고 그래요?”

         

       유라크네는 휴대용 빗을 꺼내 마야의 머리카락을 빗었다. 스웨터와 카디건의 보풀과 실밥은 부직포로 대충 정리했지만, 구김과 때 탄 것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이렇게나 예쁜 애가 이렇게 거지꼴을 하고 다니다니. 통탄할 노릇이었다.

       원더스타인에게 부탁한다면 단번에 깔끔한 새 옷으로 갈아입혀 주겠지만, 몸도 안 좋은 분에게 이런 사소한 일로 귀찮게 해드릴 수는 없었다.

         

       클라라의 경우 옷 입은 것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다만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 않아서인지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뭉치고 엉켜 있었다. 마치 미역을 따다가 그대로 머리 위에 얹어둔 것 같았다.

         

       이게 그 모범생?

       유라크네는 그녀의 꼴을 보고 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가! 학교 다닐 때는 이것보다 훨씬 깔끔했잖아요!”

       “어, 그때는 친구가 도와줬거든요…….”

         

       클라라는 파이렌을 떠올리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와 지낼 때는 그녀가 목욕도 시켜주고 옷도 갈아입혀 주고 밥도 떠먹여 줘서 편했다.

         

       유라크네는 그녀의 룸메이트도 어지간히 힘들었겠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두 사람 다 저 좀 보세요. 제가 평소에도 늘 말했지만…….”

         

       출발하고 30분 동안 두 사람은 유라크네에게 여자로서의 몸가짐에 대해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게으른데다 마이페이스 기질이 강한 두 사람은 그녀의 충고를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원더스타인이 언급되면 또 갑자기 눈빛이 달라졌다.

         

       “단장님이 여러분 때문에 밖에서 욕을 듣는다면 좋겠어요? 단장님도 지저분한 꼴의 여자를 보면 싫어할 거라고요.”

       “단장님이…….”

       “……정말요?”

         

       유라크네는 원더스타인 얘기만 나오면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는 두 사람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대단하셔, 우리 단장님.

         

       그렇게 그들은 중간에 도시락도 까먹고 이런저런 잡담도 나누면서 6시 반을 조금 넘겨서 테트로미노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때는 이미 학교 앞에 기자들이 잔뜩 대기하고 있었다.

         

       “마차 온다!”

       “어, 저기는 또 어디야?”

       “잠깐, 괴물서커스 같은데?”

       “정말?”

         

       기자들은 마차에서 내리는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원더스타인, 엘라, 마야에게 집중적으로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이달 시험에 황금 카니발과 은막 서커스도 함께 참가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환상의 13번을 함께 준비하던 동지 아닙니까?”

       “이번에도 서커스단 간에 어떤 뒷거래를 하실 예정입니까?”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가짜인 거 알고 한 거 아닙니까?”

       “크리스티앙 팬이라면서요, 엘라 부단장님?”

       “천 개의 칼날을 염동력으로 날렸다는 거, 사실 환상 아닙니까?”

         

       지난 며칠 동안 그들을 지겹게 괴롭혔던 질문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그러나 엘라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어제 원더스타인의 제안에 따라 외출하고 나서 그녀의 마음속에 드리웠던 먹구름은 모두 가셨다.

       덕분에 물어뜯으려고 덤벼드는 기자들의 태도에도 주눅 들지 않을 수 있었다.

         

       다른 단원들 역시 기자들이 아무리 도발해도 넘어가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들의 적대적인 시선에 익숙한 괴물 단원들에게 이 정도 조롱은 장난에 불과했다. 그리고 원더스타인과 마야는 언제나 그렇듯 주변에서 누가 뭐래도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정치의 중심부에서 한 그루 나무처럼 살아왔던 가스통에게도 그들의 수작은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다만, 클라라만은 달랐다. 그녀는 시네페쿠스의 사도였던 탓에 주변의 속삭임에 남들보다 몇 배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그것도 오늘은 원더스타인이 그녀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보고 음향실 기능을 이용해 그녀에게 가는 다른 사람들의 소리를 차단해 주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별 탈 없이 강당 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이번 달 시험에 응시하는 서커스단 몇이 먼저 와 있었다. 그중에는 황금 카니발도 있었다.

         

       “레이나!”

         

       엘라는 우는 여자의 가면을 보고 반갑게 아는 척을 했다.

       그러나 레이나는 화들짝 놀라 그녀를 바라봤다가 그녀 옆에 있는 원더스타인과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대꾸 한마디 없이 가만히 땅만 바라봤다.

         

       로드 판타스틱 역시 그들을 본 척 만 척하며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대했다.

       오히려 그의 뒤에 있던 다른 황금 카니발의 곡예사들이 엘라를 기억하고 손을 흔들었다.

         

       엘라는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면서도 레이나의 모습을 연신 살폈다.

         

       “뭐야, 저 콧수염이야 기대도 안 했지만, 레이나도 저러네? 이제 적이라 이거지? 흥.”

         

       얼마 안 있어 은막 서커스와 나머지 서커스단들이 도착하면서 강당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7시 정각.

       새하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객석으로 들어섰고, 이어서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의 창립자들인 4인방을 비롯하여 교수진들이 무대 위로 올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H S_544 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사실 레이나는 처음 등장 때부터 나이 상향 패치(?)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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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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