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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3

       병장기로 나누는 대화에는 그 자체로 가슴을 뛰게 하는 힘이 있었다. VR같은 대단한 기술 없이, 그저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을 뿐이더라도.

        

       상대의 호흡과 떨림, 작은 걸음걸이에서 그 생각을 읽어내고, 그 안에 담긴 수를 꺾어내는 일련의 과정과-

        

       보통의 대화와 달리,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갈리는 결과까지.

        

       명예를 건 결투에 남자들이 열광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제 남자는 아니지만서도.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에 와서야 결투의 즐거움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진동으로 느껴지는 관중들의 환호성. 시야 너머, 내 목을 노리고 있는 강자.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훌륭한 대화수단까지.

        

       심장이 기분 좋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첫 세트.

        

       의표를 찔렀고, 그 대가로 승리를 가져왔다. 두 번 통하진……않겠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오소독스다. 이전, 2지하를 전수할 때 학습하던 속도를 생각하면……아마, 지금쯤 조금 전 꼼수가 뭐였는지 눈치채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초에 두 번 쓸 생각도 없어.

        

       중요한 건, 무슨 캐릭터를 고르냐인데. 아마 오소독스는……광전사를 들고 오지 않을까. 한 세트만 더 내주면 탈락하는 위기니. 사람은 벼랑 끝에 몰리면, 가장 몸에 익은 도구에 의존하는 법이다.

        

       이전 경기를 생각해보면- 양손도끼를 선호했었지. 매직미사일 법사로 카운터를 칠까.

        

       하지만, 다시 도적을 들고 올 가능성도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 오소독스 수준의 도적이라면……그런 빌드로는, 사실상 만나자마자 목을 길게 늘어트려 내어주는 편이 나을 정도다.

        

       그런 무리한 도박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 세트를 가벼이 흘려보내기엔, 너무나 즐거운……시간이었으니.

        

       머릿속에서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뭘지. 상대가 노리는 빌드는, 예상하는 함정은, 배제하는 위험은…….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평소에 비해 몇 배는 빠르게 돌아가는 머릿속에서는, 수십, 수백개의 생각들이 폭탄의 파편처럼 이리저리 튀어 다니고 있었다.

        

       벌써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언터처블스 대회에서는 물론이고, 불과 며칠 전까지 치르던 경기들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아드레날린과 함께.

        

       의외로 무대 체질이었던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자그마한 요새에 숨어서 1년 넘게 보낸 사람이 할 생각은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 * * *

        

       “자, 두 번째 세트! 양 선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먼저 오소독스 선수는- 다시 한번 도적을 들고 왔어요! 오소독스 선수의 이번 대회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는 세트! 트레이드 마크였던 광전사를 포기하고, 자신에게 우승컵을 안겨주었던 도적을 꺼내듭니다!”

        

       “네, 그만큼 도적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겠죠. 조금 전 미러전에서 졌지만, 다시 제대로 붙으면 내가 밀리지 않는다. 그런 자신감이 돋보입니다. 자, 그러면 그 상대인 아따먹 선수는- 성기사! 성기사네요!”

        

       “네, 이게 아따먹 선수의 가장 무서운 점이죠. 뭘 들고 나올지 예측을 할 수가 없으니, 정석적인 픽의 무게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원래 변화구를 잘 던지는 선수의 직구가 정말 무서운 법이거든요!”

        

       관중석에는 묘한 기대감이 맴돌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아따먹을 단순한 아마추어라고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세기말에 프로들의 틈바구니에서 랭킹 1등을 거머쥔 그녀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 와서는, 숱한 프로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고.

        

       그럼에도, 아마추어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 자체도 고인지 오래다. 숨겨져 있던 고수가 어느 날 혜성처럼 데뷔하여 프로씬을 평정한다- 따위의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싹수가 있는 아이들은 진작에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고, 체계적인 훈련 속에서 일반인들과 격차를 벌려 나가니.

        

       정교한 움직임과 체력까지 요구되는 VR게임은 더더욱 그러했다. 아무리 보정이 있더라도, 결국 몸으로 하는 스포츠. 게임을 게임으로 즐기는 사람과, 직업으로 훈련해온 이들 간의 격차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수준이었다.

        

       운이 좋다면 아마추어가 프로를 한두 번 이길 수는 있다.

        

       그러나 다전제가 연속되는 토너먼트에서 계속하여 승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본래 낭만이란 불가능과 친한 단어인 고로.

        

       중계가 시작된 32강부터, 아따먹을 응원하는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어느 샌가, 관중의 과반수가 그녀의 아이디를 연호하고 있을 정도로.

        

       GP가 인기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의 분위기였다.

        

       “……뭔가 좀 그렇네. 우리 코치님이 뭐 넘어야 되는 벽, 그런 역할인 느낌이라.”

        

       오소독스를 응원하러 온 팀원들이 작은 목소리로 불만을 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으나-

        

       “저 형은 그런 분위기 안중에도 없을 걸요. 그런 거 신경썼으면 도적을 골랐을 리가 없고……저, 저 표정 봐요. 아주 그냥 신나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이잖아요.”

        

       “대체 뭐가 신나시는 건지 모르겠네. 한 세트 더 지면 탈락이잖아. 그리고……에이, 난 모르겠다.”

        

       정작 당사자들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일이었다.

        

       -와아아아!!!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과 함께 헐벗다시피 한 기사가 화면에 등장한 순간- 오소독스를 응원하던 이들도 신경쓰기 힘든 일이었다.

        

       “……홀레기사? 역시, 정석적인 픽은 개뿔……근데 저거, 핫픽스 하지 않았아?”

        

       “공격력 배율 조절해서 벽 못 부술 정도로만 너프한 거라……빌드는 이론적으로 아직 가능해요. 예전 포스가 안 나오긴 하는데, 그래도 뭐 한방 노리는 빌드로는 쓸만해서 괜찮을 거예요. 단지……대대대검기사 특성 생각하면 최소 중갑캐 저격하려고 고른 걸 텐데. 빌드는 역상성으로 먹혔네요. 어떡하지…….”

        

       “너 코치님 응원하는 거 맞지?”

        

       * * * *

        

       평소 상대하던 병장기에 비해 너무나 큰 검인 탓일까.

        

       거리감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머리로 계산하기로는 분명, 여기는 상대의 리치에서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곳일 텐데.

        

       본능은 계속하여 위험하다며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여기도 위험하고, 심지어 두 걸음 더 물러선 곳도 위험하다고.

        

       ‘아니, 거리감 탓이 아닌가.’

        

       시야 저편. 커스터마이징조차 하지 않은, 성기사의 기본 얼굴이 검 너머로 오소독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정에 맞게 어딘가 신실하고 굳건해 보이는- 그야말로 성기사 다운 외양이다.

        

       이렇게나 안 어울릴 수 있을까.

        

       오소독스가 아는 아따먹은, 신을 만나도 일단 단검부터 던지고 볼 위인이었다. 왜냐고 물으면, 신은 사람이 자기를 보자마자 단검을 던질 거라곤 절대 예상 못하고 있을 것 같아서 일단 던져봤다 하겠지.

        

       그러나 분명, 그리 하기 전에 신한테 단검을 던진 전승들을 찾아봤을 터였다. 적의 의표를 찌르려면, 그 누구보다도 적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법이니.

        

       그러니까, 아따먹은 의외로 성실하게 연구하고 분석하는 타입이었다. 그런 피지컬이 있으면, 피지컬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일일 텐데도.

        

       평소 하는 방송과의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의 노력파였다.

        

       그 모든 게 오로지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짓을 하기 위해서라는 건 조금 그렇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순수하게 승부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분명, 오소독스 자신에 대해서도 무수한 분석을 했을 터였다. 가장 예상 못한 순간에, 가장 허탈한 방법으로 승리를 가져가기 위해서. 1세트에서 그러했듯이.

        

       ‘그렇지만.’

        

       어쩐지, 지금이라면. 자신이 도적을 쥐고, 아따먹이 대검기사를 쥔 지금이라면.

        

       움찔, 기사의 왼발이 움직였다. 불필요한 생각을 이어나갈 시간이 끝났다는 신호.

        

       다행히도, 오소독스의 몸은 머리보다 빠르게 반응했고- 그 덕분에, 서로 이별하지 않을 수 있었다.

        

       -부웅!

        

       날카로운 공기소리. 급하게 숙인 머리 위로 육중한 쇳덩어리가 스치듯 지나갔다. 조금만, 몇 센티만 덜 굽혔다면 머리가 날아갔을 일격이다.

        

       무거운 대검이다. 한번 내지른 무기를 회수할 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터. 단검으로 기습적인 역습을 해볼 법한 타이밍이다. 찌르기로 경직을 주고 연계기를 이어나가면, 갑옷도 두르지 않은 기사에게는 제법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그러니까, 참는다.

        

       그렇게 한 호흡을 내어주며 자세만 바로잡은 오소독스의 눈에, 휘둘러지는 대검의 관성을 이용해 몸의 축을 비틀던 기사가 비쳤다.

        

       찌르기를 예측한 회피 동작이다.

        

       읽어냈다. 완벽하게는 아닐지언정, 분명하게 읽어냈다.

        

       희열에 가까운 감정이 오소독스의 가슴을 메웠다. 상대가 아마추어고, 여자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승부는 승부일 뿐이니.

        

       대검은 크게 당겨진 상태였다. 검끝이 바닥에 박힐 정도로 늘어트린, 회피동작을 겸한 준비동작. 그러나 회피할 공격이 오지 않은 이상, 그저 공격 방향이 제한되는 뻔한 자세일 뿐이다.

        

       공격의 사각. 검이 당겨진 방향의 반대편으로 크게 돌며, 이번에야말로 단검을 내지르자-

        

       -푸욱!

        

       확실한 손맛이 짜릿하게 느껴졌다. 허술한 갑옷이 독으로 작용하는 순간이다. 이 일격으로 승부가 3할 정도는 결정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그러나 방심할 생각은 없었다.

        

       오소독스의 눈은 기사의 어깨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 어깨가 조금씩 비틀리기 시작하자마자 반응하고 있었다.

        

       곧 대검이 휘둘러질 터. 조금 전 확인한 각도상, 우측 하단으로 파고들면 아슬아슬하게 회피가 가능한 타이밍이다. 약간의 허점을 노출해서 공격 타이밍을 유도하고- 저스트 회피에 성공하면, 하단부터 공략하고, 기동력을 이용해서-

        

       다만.

        

       ‘너무 길어.’

        

       예상한 대로라면, 이렇게 오래 생각할 시간이 있을 타이밍이 아니었다.

        

       뒤늦게 이상을 감지한 오소독스는, 본능적으로 땅을 박차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에, 하나뿐인 생존기를 아낌없이 시전하여 후퇴하고-

        

       대검이 바닥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광경을 마주했다.

        

       격돌의 전장. 설산의 바닥은, 단단하게 굳었지만 눈밭이다. 벽을, 돌바닥을 더 이상 뚫지 못하게 된 대검이라지만- 눈 정도는, 얼마든지 뚫고 갈 수 있는 것이다.

        

       바닥에 쌓여있던 눈이 흩뿌려지며, 검을 치켜세운 기사를 감싸듯 흩날리고 있었다. 눈발에 살짝 가려져 있음에도, 자신을 노려보는 기사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는 것만 같았다.

        

       어쩐지, 그 눈가루가 붉게 물드는 상상이 자꾸만 떠올라서. 

        

       오소독스는 섬찟한 느낌을 애써 억누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공지쓸 시간을 아껴 어서 마무리하고 올리자는 생각이었는데, 너무 길어졌네요…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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