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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3

       “너희들은…… 하, 됐다.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지, 뭐.”

        

       ‘사라’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까 소희가 때린 그 아저씨는…… 상황이 어떤 줄 알고 있으니까 그냥 넘어가 주겠다고 하셨어. 서로 오해가 있었을 뿐이라고.”

        

       “미, 미안…….”

        

       소희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수아, 너는 괜찮아?”

        

       “으, 응.”

        

       아까 달리다가 유일하게 잡혔던 수아도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사실 잡혔다는 사실보다는 앞뒤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달려들었던 것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만약 너희들이 조금만 일찍 왔어도 진짜로 큰일 날 뻔했어. 최나경이나 그 무리랑 동선이 겹칠 뻔했으니까. 그나마 상대가 깊게 생각하지 않아서 문제가 없었던 거지, 너희들이 잡혔다고 생각해봐.”

        

       “…….”

        

       세 사람 다 불편하다는 듯 몸을 꼼지락거렸지만,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사라’의 말 그대로였으니까.

        

       모든 일을 전부 망쳐버릴 뻔했다……고는 할 수 없다. 경찰 인원이 대규모로 모여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병원 밖에서 대기 중인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한 번 위치가 탄로 난 이상 잡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이 깔끔하게 끝나지 않았을 거라는 것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며칠, 혹은 몇 주를 더 불안에 떨면서 지내야 했을지도 모르지.

        

       “후우…….”

        

       ‘사라’는 한숨을 쉬고, 눈을 비볐다.

        

       “다들, 다친 곳은 없지?”

        

       사실 다들 어디를 조금씩 부딪혀서 아프기는 했지만, 그 말을 일부러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사라’나 사라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아직, 알아야 할 것들이 많기는 하지만…….”

        

       최나경은 어째서 일이 이상하게 굴러갈 것을 알고서도 사라를 ‘납치’하려고 했던 것인지, 어디에 숨어 있었고 호명 그룹은 어떤 식으로 최나경을 돕고 있었는지, 그리고 이번에도 어떻게든 들킬 거라는 걸 알고도 어째서 바로 그렇게 ‘사라’에게 접근할 수 있었는지.

        

       사실 최나경이라는 인물 자체가 엄청나게 계획적으로 움직인다기보다는 비이성적인 사고에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서 추측하기 힘들 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들어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끝났다.

        

       그 사실이 ‘사라’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주었다.

        

       “그럼, 일단은…… 잠이나 잘까.”

        

       ‘사라’는 하품 같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까 낮부터 자긴 했지만, 한 번에 그런 상황을 다 겪었다 보니 그만큼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사실, 의식 안에서 그 사람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모든 것이 끝난 이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좋을지.

        

       적어도, 둘이 나눌 이야기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를 것이다. 조금은 더 희망차고, 조금은 더 미래지향적인 이야기가 되겠지.

        

       ‘사라’는 그 생각을 하고 나서야 입에 조금 미소를 띨 수 있었다.

        

       “……내가 다른 방에서 자라고 해도, 다들 여기서 잘 생각이지?”

        

       아무도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대답이 없었기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너무 명확했다.

        

       ‘사라’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뭐, 다시 깨어날 때는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깨어날 테니까.

        

       그 사람이 들었다가는 기겁할만한 생각을 하며, 사라는 침대 위에 천천히 몸을 뉘었다.

        

       *

        

       의외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최나경은 경찰들에게는 입을 열지 않았다. 무조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뭐, 정확히는 사라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겠지만, 최나경이 원하던 것은 ‘사라’가 아니라 ‘사라의 몸’일 뿐이었으니 아무래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참 친절하게도, 형사는 내가 경찰서에 들어가기 전에 몇 번이나 물었다.

        

       “괜찮아요. 정말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까.”

        

       원래 피해자와 가해자가 마주치는 일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살아생전 경찰서에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까.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란히 앉아서 조서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실제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고.

        

       특히, 취조실에 일부러 피해자를 데리고 가는 일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이런 종류의 취조실이 실제로 있는 거였나? 경찰서가 큰 곳이라서 그런 건가?

        

       현장에서 체포된 최나경은 내가 사는 지역의 경찰서로 왔다. 사건이 발생한 지역에서 사건을 담당하는 모양이었다. 서울에서도 사람이 많은 구였으니, 당연히 경찰서도 꽤 컸다. 어쩌면 이런 종류의 취조실이 있는 것도 당연할지도.

        

       위법인지 어떤지는 사실 내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최나경에게서 듣고 싶었던 것이 있었을 뿐이다.

        

       만약 위법이라도, 경찰 쪽에서 뭐 알아서 해 주겠지.

        

       취조실 문이 열린다. 어두침침한 방 안에 하얀 조명이 몇 개 켜져 있었다. 한 쪽 벽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울—아마 실제로는 창문일 것이다—이 있었고, 방 중앙에 탁자가 하나 있었다. 탁자 위에는 녹음기인지 뭔지 작은 기기가 하나 올려져 있었다.

        

       저 위쪽 구석에는 CCTV가 있어서 방 안의 상황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었다.

        

       “저는 이 뒤에 서 있겠습니다.”

        

       문을 열어두고, 그 옆에 형사가 서면서 말하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여기서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누건 전부 기록이 되긴 할 테니까.

        

       내가 말없이 최나경 쪽으로 다가가자, 그때까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녀가 얼굴을 천천히 들었다.

        

       참 아름답게 생긴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다. 지금은 조금 더 마르고 눈이 퀭하기는 했지만, 그 미모를 완전히 가릴 수는 없었다.

        

       이렇게 예쁜 사람이, 어째서 그런 짓을 하게 된 걸까.

        

       외모와 실제 성격은 별 상관이 없지 않아?

        

       ……그건 그렇지.

        

       원작에서의 예사라도, 별로 좋은 성격이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거, 내 욕이야?

        

       아니야.

        

       우리가 있어서 성격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사라는 원작 속의 예사라와는 확실하게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남을 생각할 줄 알고, 친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생각해보면, 주요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은 전부 바뀌었다.

        

       원래대로라면 유하늘과 이어져야 했을 히로인 포지션들이 전부 나를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내가 일부러 노린 것도 아니고, 그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치다 보니 다들 나만 바라보고 있게 되어서 조금 당혹스럽기는 했다.

        

       그 사랑이 싫다는 말은 아니기는 했지만.

       

       

       ……바람둥이.

        

       아니, 그러니까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니까.

        

       어쩌면 이쪽 세상으로 넘어오면서 나름대로 이세계물 주인공이라는 속성 비슷한 게 생겼는지도 모르지.

        

       그저 그런 것 때문에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슬프지만.

        

       절대로 아니야.

        

       사라는 강하게 부정했다.

        

       나는 그런 사라에게 어깨를 살짝 으쓱해 보이고는 천천히 걸어가 최나경의 앞에 앉았다.

        

       최나경의 우울했던 표정이 단박에 밝아졌다.

        

       “사라야.”

        

       “그래도 이름은 불러주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얼굴의 미소가 급속도로 식어간다.

        

       “너는 사라가 아니구나.”

        

       용케도 알아봤네.

        

       “……내가 평생 계획한 목표를 부숴버린 게 그렇게 좋아?”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라를 지켜낸 게 좋아. 당신의 계획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진심이다. 최나경의 계획이 전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드는 것이건, 대통령이 되는 것이건, 사라에게 영향이 가지 않는 것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최나경의 계획을 묻고 싶은 것이다.

        

       “정신병원에 와서 어떻게 하려고 했어? 또 납치라도 하려고? 이미 한 번 시도했다가 실패했잖아? 또 똑같은 짓을 해도 결국 잡힐 텐데.”

        

       “…….”

        

       최나경은 나를 한동안 빤히 바라보았다. 설마 말해주지 않을 생각인 걸까?

        

       “……똑같은 짓을 할 생각은 없었어. 경찰에 잡히는 것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거였으니까.”

        

       “……뭐?”

        

       “왜, 겁나니?”

        

       최나경은 한쪽 입술을 살짝 끌어올렸다가, 이내 재미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세상에 정신병을 앓는 것이 너뿐만은 아니잖아? 나도 경찰한테 잡혀서, 제대로 재판받을 생각이었어. 그래서 네가 정신병원에 갇혔어야 하는 거였는데.”

        

       “나를 없애기 위해서?”

        

       “그건 겸사겸사.”

        

       최나경이 내 쪽으로 살짝 몸을 숙였다. 뒤쪽에서 신발이 바닥에 살짝 비벼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고 어떤 자세를 취한 모양이다.

        

       “나도, 정신병이 있거든.”

        

       최나경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마치 장난을 치려다 들킨 어린아이처럼.

        

       “정신적인 치료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면, 범죄자도 정신병원에 가곤 하니까.”

        

       “……그렇구나.”

        

       그렇다.

        

       최나경은 자신도 정신병을 앓는 사람으로서 정신병원에 갇히려고 한 것이다.

        

       ……사라와 같은 정신병원에.

        

       그리고 아마, 돈을 이용해서 언제나 사라와 같이 있으려고 했겠지.

        

       정말이지, 끝까지 사라를 자기 소유로만 본 인간이었다.

        

       “나중에, 감옥을 나오게 되면, 그때도 사라를 찾아올 생각이야?”

        

       “어떻겠어?”

        

       “글쎄, 만약 찾아올 생각이라면…….”

        

       나는 최나경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그러면, 내가 반드시 막을 거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지금은 내 손에 당신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넘쳐나거든.”

        

       “…….”

        

       최나경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접근하려면 한 번 접근해 봐. 그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고.”

        

       최나경의 재산은 아직 많지만, 그것도 법적으로 어떻게든 내 쪽으로 옮겨올 수 있도록 할 거다. 걸 수 있는 소송은 전부 걸어보도록 할까.

        

       돈 쓸 생각에 신난 한가람 팀장의 얼굴이 벌써 떠올랐다.

        

       “……전부 너 때문이네.”

        

       최나경이 한숨 쉬듯 말했다.

        

       “전부 너 때문이야. 대체, 너 같은 존재가 어떻게 사라에게서 자라날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

        

       그 눈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자라난 것이 아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거지.

        

       물론 나는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우리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사라가 말했다.

        

       ……정말로, 신께서 보내주신 기적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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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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