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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4

        

         

       “혹시 독일에는 가보셨습니까?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가 그렇게 장관이라고 들었습니다.”

       “검은 숲을 말하는 것이군요. 마녀들이 꽤 많이 있는 곳이죠. 외부와 격리되기 좋은 조건 덕분에 마녀들이 위치크래프트를 시험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고요. 잘못 만들어진 기괴한 생명체들이 가끔 목격되는 일도 있기는 합니다만, 그거야 뭐 크게 문제가 되겠습니까. 저도 당신도 그런 것은 문제가 없을 테지요.”

       “과찬이십니다. 모리스 씨야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저는…. 하하하. 나이가 이렇게 어린데 어찌 그곳을 함부로 돌아다닐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겠습니까?”

       “나이야 그저 숫자에 불과한 것이지요. 가우타마 붓다(Gautama Buddha)가 나이가 많아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이가 어리다고 한들 깨달음이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이고, 경지야 깨달음이 뒷받침된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깨달음이라. 참으로 머나먼 이야기입니다. 벽이라는 것은 항상 높고 널려있으니.”

         

       진성과 모리스는 거리를 둔 채 이야기를 나눴다.

       그 모습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베테랑 주술사와 갓 성인이 된 주술사가 사이좋게 담소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으며, 진성은 겸손하고 모리스는 어린 주술사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겉보기에는 말이다.

         

       “진성 박은 그 벽을 손쉽게 뛰어넘을 수 있을 겁니다. 몸에 언제든 타오를 수 있는 뜨거운 불씨를 끌어안고 사는 사람인데 어찌 그것이 불가능하겠습니까? 그 어떠한 벽이라도 잿더미로 만들고 증발시키며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런, 제 열정에 대해서 그렇게 칭찬해주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겉보기에 화기애애해 보이는 둘의 대화.

       하지만 둘의 대화를 자세히 살펴본다면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 있으리라.

         

       저 둘의 대화가 겉을 맴돌기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진성 박은 아주 훌륭한 주술사입니다. 진성 박의 스승님이 누구인지 매우 궁금해지는군요. 아주 흥미롭습니다.”

       “스승이라. 안타깝게도 저는 스승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학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독학이라. 정말로 대단하시군요. 한국 쪽의 주술이 많이 소실되었다고 들었는데, 혹시 중국 쪽의 주술과 관련된 자료를 보고 주술을 습득하셨는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중국에 관련된 주술은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듣기로는 화교들이 전 세계로 흩어질 때 같이 흩어졌다고는 하는데, 저에게는 연이 없었지요.”

         

       마치 맹수 둘이 원을 그리며 탐색하듯, 진성과 모리스는 겉을 맴도는 대화를 하며 서로의 신상에 대해 캐내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은근하게 말이다.

         

       둘은 비언어적 표현과 반언어적 표현을 총동원하고, 아주 교묘하게 자신의 의문점을 작게 쪼개서 말에 숨겨놓음으로써 상대방의 근원을 탐색하려 했다.

         

       진성은 모리스의 활동 지역과 고향을 탐색하며 그의 주술에 대해서 추측하려 했으며, 모리스는 진성이 어떤 종류의 주술사인지 알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렇게 질문을 던지는 와중에도 둘은 한 발자국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려는 듯 말이다.

         

       물론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둘의 태도에 차이가 있기는 했다.

         

       경계를 하는 것은 모리스였고, 진성은 모리스의 경계심을 존중한다는 듯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둘은 계속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았다.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만 아니라면 말이다.

         

       “하하하. 사위, 여기서 보네?”

         

       아르투아 가문의 망나니.

       윌리엄이었다.

         

       윌리엄은 진성에게 친한 척을 하며 비어있는 공간으로 쑥 들어왔다. 그리곤 진성의 목을 팔로 와락 감싸 안고는 헤드록을 걸듯 장난을 쳤다. 하지만 실제로 헤드록을 걸지는 않고 그냥 시늉만으로 끝냈으며, 만나서 반갑다는 듯 진성의 어깨를 탁탁 두들기더니 몸을 돌렸다.

         

       그리곤 이양훈을 똑바로 바라보며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빌어먹을 저택 주인 놈도 있고.”

         

       악의가 한껏 담겨있는 미소였다.

         

       윌리엄은 이양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목을 풀었고, 오른쪽 어깨를 슬쩍 회전시키며 당장이라도 주먹질을 할 것처럼 이양훈에게 접근했다.

         

       이양훈에게 접근하는 윌리엄의 행동에는 분명히 분노가 잔뜩 담겨있었고,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주먹을 휘두를 것 같은 긴장감이 존재했다.

         

       “멈추게.”

         

       그것을 본 장영철은 이양훈의 앞을 가로막았다.

       웬 미친놈이 이양훈을 후려치려고 하는데 그것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곳에서 소란을 피우지 말게나. 그게 예의 아니겠는가?”

         

       장영철은 근엄한 표정으로 윌리엄에게 훈계하듯 말했다.

         

       “뭐야, 이 꼰대 새끼는? 앞 가로막지 말고 꺼져.”

       “뭐, 뭐라?”

         

       하지만 안타깝게도 장영철의 앞에 있는 것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인간이었다.

         

       예의?

       그런 것은 마음에 드는 여자 앞에서나 잠깐 내보일 뿐인 망나니.

         

       윌리엄은 ‘감히’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웬 꼰대 새끼에게 다짜고짜 폭언을 박아버렸다. 게다가 폭언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치매라도 걸렸어? 옆으로 꺼지라고 늙은이야. 죽는 날까지 수프만 마시고 싶지 않으면 당장 꺼져.”

       “이, 이….”

         

       폭언.

       어마어마한 폭언.

         

       심지어 그 폭언을 날린 놈이 한참이나 어린 것 같은, 머리에 피가 간신히 말랐을 것 같은 서양 놈이다.

         

       아들보다도 나이가 어려 보이는 놈이!

       감히 지긋하게 나이를 먹은 자신에게 욕을 날리다니!

         

       “이놈! 네놈은 아비·어미도 없느냐! 어딜 어른에게 그따위로 말을 해!”

         

       장영철은 결국 폭발했다.

       위아래도 없이 날뛰는 젊은 서양 놈을 보자 도저히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 당장 꺼지라고! 내 주먹맛 좀…!”

         

       그리고 그런 장영철의 태도를 본 윌리엄 역시 분노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감히 개 같은 조형물을 설치해서 자신에게 엿을 먹인 이양훈을 후려치고 싶은데, 웬 꼰대 새끼가 길을 가로막고 자신에게 훈계를 늘어놓는다.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윌리엄은 거친 몸짓으로 장영철에게 접근했고,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처럼 팔과 허리에 힘을 주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금방이라도 윌리엄과 장영철이 싸움을 벌일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일이 막 터지려고 할 때.

         

       “윌리엄 도련님. 이게 무슨 소란이십니까.”

         

       또 다른 누군가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 젠장.”

         

       엄한 목소리로 윌리엄을 부르며 나타난 사람을 보자 윌리엄은 짜증을 내며 장영철에게 달려들려는 것을 그대로 멈췄다.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면 곤란합니다. 이런 태도를 보이시니까 화가 미쳐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도련님께서는 신실함과 겸손함, 인내심이 부족합니다. 어찌 선과 악의 저울에서 죄악 쪽으로 쏠리려 하십니까.”

       “아, 그만 좀 해, 빌어먹을 예수쟁이야! 알겠다고!”

         

       중년 정도로 보이는 남성은 진절머리를 치는 윌리엄에게 설교를 늘어놓았다.

       마치 자신이 예절 선생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자 윌리엄은 말을 섞기도 싫다는 듯 대충대충 대꾸했고, 분노와 짜증이 가득 담긴 얼굴로 이양훈을 한 번 노려보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칵테일 하나를 들어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곤 잔을 테이블 위에 얌전하게 놓는 대신, 그대로 바닥에 집어 던졌다.

         

       쨍그랑!

         

       “엿 같은 동양 놈아. 네 얼굴 똑똑히 기억했어. 언제고 기회가 되면 보자고. 저택에 만들어놓은 엿 같은 산타클로스 배처럼 네 배때기에 오물을 쳐 집어넣어 주마.”

         

       윌리엄은 이양훈에게 살벌한 말을 남기곤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렇게 윌리엄이 떠나가자, 마치 폭풍이 왔다 간 것처럼 침묵이 감돌았다.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 장영철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채 씩씩대고 있었고, 이양훈은 불쾌감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으며, 진성은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무표정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모리스는 윌리엄에게 별 관심도 보이지 않은 채 계속해서 진성을 관찰했다.

         

       침묵.

       시끌벅적한 행사장에서 그들이 있는 곳만 떼버린 것처럼, 침묵이 계속해서 감돌았다.

         

       그리고 이러한 침묵 속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윌리엄을 말리러 온 남성이었다.

         

       “크흠. 이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윌리엄 도련님께서 소란을…. 폐를 끼치고 말았군요.”

         

       남자는 가장 먼저 윌리엄이 보인 추태에 대해서 그들에게 사과했다.

         

       “크흠, 아닐세. 그나저나 윌리엄이라고? 윌리엄이라면, 크흠!”

         

       장영철은 ‘윌리엄’이라는 이름을 듣자 자신에게 시비를 건 미친 젊은 놈의 정체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쯧, 제 부모도 통제 못하는 놈이니 어찌하겠나. 자네가 사과할 필요는 없네. 그런데 그, 자네는 누구인가?”

       “아.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남자는 호감 가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저는 토마스 B 스티븐슨(Thomas B Stevenson)이라고 합니다. 미욱한 몸이지만 신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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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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