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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4

       별채의 문을 열고 나가자, 세상 듬직한 풍채가 눈에 확 들어왔다.

         

       황군은 잔잔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마치 이곳에 온 것이 무척 오랜만인 것처럼 보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일행수님.”

         

       백우진이 그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러자 황군도 뒤로 돌아서며 그의 환대에 화답했다.

         

       “하하, 오랜만일세. 지난 연회 이후로 처음인가?”

       “그렇지요.”

       “한 번쯤 봐야지, 봐야지 했는데 내 업무가 바빠 쉬이 찾질 못했네. 이해하게나.”

       “괘념치 마십시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인사를 주고받는 두 사람.

         

       멀리서 보면 그들의 사이가 썩 괜찮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정작 그들은 묘한 기류를 느끼고 있었다.

         

       ‘경계…인가.’

         

       황군에게서 어렴풋이 느낀 감정은 경계심이었다.

         

       그는 한껏 여유롭고 친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으나, 바삐 움직이는 눈동자는 분명 자신을 경계하고 있었다.

         

       ‘왜일까.’

         

       그가 자신을 경계할 이유? 많다.

         

       그렇기에 어느 쪽인지 궁금했다.

         

       적으로서 자신을 경계하는지, 아니면 금여울의 숙부 된 자격으로 자신을 경계하는 건지.

         

       백우진은 속내를 꽁꽁 감추기 위해 친근한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들어가서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그러도록 하세.”

         

       그는 황군을 이끌고 집무실로 향했다.

         

       “듣자 하니, 자네의 신룡조가 백흑전의 대표로 나선다고 들었네.”

       “조원들의 능력이 출중하여 그렇게 되었습니다.”

       “으음, 확실히 하나 같이 대단한 친구들이더군. 내 평생을 바쳐 발을 들인 경지거늘….”

         

       황군의 경지는 초절정 중입 수준.

         

       조원들과 엇비슷한 경지이기에 느껴졌을 것이다.

         

       신룡조원들 전부가 초절정에 이른 고수들이라는 것을.

         

       “내 알기론 자네와 엮이기 전의 그들은 그렇게까지 고수가 아니었던 것으로 아는데…, 혹 자네만 알고 있는 어떤 비법이라도 있는 겐가?”

         

       일견 농담처럼 들리는 말에는 어느 정도의 진심이 숨어 있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전투, 전쟁에 앞서 상대의 전력을 가늠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 바.

         

       어쩌면 이쪽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그가 직접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이에 백우진은 맞불을 놓기로 했다.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뭐든 낮추기만 하는 건 옳지 않다.

         

       때때로 허장성세를 통해 상대에게 혼란을 심어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다.

         

       “허어, 무언가 있기는 있다는 것인가….”

         

       백우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농입니다. 제가 그럴 능력이 있다면 조원들을 꽉꽉 채워서 받았을 테지요. 저들이 열심히 한 덕분에 실력이 크게 성장했을 뿐,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혼란을 심어주기 위해선 앞선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헷갈리게끔 해야 하는 법.

         

       실제로 황군의 눈빛이 조금 오묘하게 변했다.

         

       혼란…까지는 찾아오지 않은 듯하지만, 약간의 헷갈림이라도 전해졌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이내 진중한 태도로 백우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사실 자네를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여울이 때문일세.”

         

       황군은 차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뒤, 말을 이었다.

         

       “듣자 하니, 자네와 여울이가 애틋한 관계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

       “글쎄요….”

         

       백우진은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옅은 미소를 그렸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뭐라 확답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만, 현재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허어…, 그렇담 소문이 영 거짓은 아니었다는 것이로구먼.”

         

       황군은 제 턱밑으로 길게 늘어진 수염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백우진은 차분히 그의 표정을 관찰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데,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시간이 조금 흐른 뒤, 황군의 시선이 백우진에게로 향했다.

         

       “내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네.”

       “제가 답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답해드리겠습니다.”

       “어쩌면 자네에게 조금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네만, 괜찮겠나.”

       “예.”

         

       황군이 조금 더 낮아진 음성으로 백우진에게 하문했다.

         

       “자네가 여울이에게 마음을 주는 것은, 혹 그 아이의 배경 때문인가?”

         

       그의 말을 직역하면 ‘너 돈 보고 여울이 좋아하는 거 아니냐?’였다.

         

       이를 들은 백우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설마 이렇게까지 돌직구를 날릴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탓이었다.

         

       놀란 마음과는 달리, 백우진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저를 비난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다고 답하는 수밖에.

         

       황군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금가의 재산 일부가 섬서백가로 흘러 들어갔다는 것을.

         

       애초에 그에게 알려지길 바라며 숨기지도 않고 행했기에 모를 리가 없다.

         

       여기서 잡아떼는 것은 우스운 일.

         

       그래서 백우진은 솔직하게 대답한 뒤, 이어지는 그의 태도를 차분하게 살폈다.

         

       “아니, 아닐세.”

         

       황군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는 법. 그것이 상대가 가진 돈이라고 해서 비난의 이유로 삼을 수는 없지 않겠나.”

         

       그가 상인이기 때문일까.

         

       상당히 정략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다만,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네.”

       “무얼 말입니까.”

       “자네와 내가 아군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말일세.”

       “…아군이라고요.”

       “그렇네.”

         

       황군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그려졌다.

         

       “자네와 내가 서로 한 발씩만 양보한다면 아주 좋은 관계가 될 듯한데…, 어떤가.”

         

       나와 손을 잡지 않겠나?

         

         

       * * *

         

         

       장삼은 봉팔에게 이끌려 인근 공동묘지에 도착했다.

         

       “빌어먹을.”

         

       욕지거리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이유인즉, 장삼은 이런 곳을 무척이나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지박령들이 널리고 널렸구나.”

         

       수많은 사람들이 묻혀 있는 공동묘지엔 온갖 원귀들이 가득했다.

         

       억울하게 죽은 귀신, 이승에 두고 온 것이 눈에 밟혀 떠나지 못하는 귀신 등.

         

       각각의 이유는 다를지언정 그들은 결국 똑같은 것들이 되어버린다.

         

       지독한 원념을 가득 품은 지박령으로 말이다.

         

       장삼은 그들이 무서웠다.

         

       차라리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다면 모를까.

         

       그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볼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에 더욱 그러했다.

         

       원귀가 된 귀신들은 하나 같이 끔찍한 형태를 하고 있어서, 이들이 모여 있으면 꼭 자신이 지옥에 떨어진 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일게 했다.

         

       ‘절대로 눈을 마주쳐선 안 된다.’

         

       그는 자신보다 서너 걸음 앞서 나아가고 있는 자객…, 아니, 봉팔의 등에 시선을 고정했다.

         

       눈이 마주치면 원귀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 뻔했기에.

         

       그러다 괜히 화가 났다.

         

       “야, 봉팔아. 정말 여기로 오라고 한 것 맞냐?”

       “…그렇소.”

       “이 새끼가 또….”

         

       장삼이 눈을 부라리자, 봉팔은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그, 그렇습니다.”

         

       그제야 장삼의 눈에 차오른 분노가 가라앉았다.

         

       “진즉에 그럴 것이지.”

       “큭….”

         

       봉팔은 아랫입술을 짓씹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더욱 치욕스러운 건 자신이 파혈고를 먹지 않았어도 마찬가지라는 점 때문이었다.

         

       ‘저 허술하기 짝이 없는 놈이 나보다 윗줄의 고수라니.’

         

       봉팔의 경지는 고작해야 절정 중입.

         

       반대로 장삼은 초절정 초입에 다다른 고수였다.

         

       말인즉, 정정당당히 맞붙어도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뜻.

         

       ‘참자, 참아야 한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 하나 싶을 정도로 처참한 삶을 이어 나가고 있는 것은 본격적인 첩자 활동을 시작하기 전, 백우진과 장삼은 그에게 약조했다.

         

       일이 깔끔하게 마무리되면 고독을 제거해줄 뿐만 아니라, 고이 보내주겠다고.

         

       ‘일만 끝내면 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모든 굴욕을 감수하기로 했다.

         

       자유의 몸이 될 수만 있다면 이런 것쯤,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고 스스로 되뇌며 말이다.

         

       묘비라고 부르기에 미안한 것들을 수도 없이 지나친 끝에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귀신이 가득 들어차 있을 것만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뽐내는 폐가.

         

       “저깁니다.”

         

       봉팔의 손가락이 그곳을 가리켰다.

         

       장삼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폐가의 앞에 당도했다.

         

       그가 이곳까지 온 이유는 단 하나.

         

       봉팔을 자객으로 부리는 상급자가 그들을 불렀기 때문이었다.

         

       아마 확인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역할을 바꾸어야만 했다.

         

       장삼이 고독을 먹은 비루한 첩자고, 봉팔이 그를 개처럼 끌고 다니는 상급자로.

         

       “…연기 잘해라.”

       “흐흐, 걱정 마십시오.”

         

       봉팔이 희게 웃으며 허리를 폈다.

         

       잠시지만 장삼에게 하대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으니, 이를 적절히 이용할 셈이었다.

         

       과도하게 하지만 않는다면 애초에 그런 연기였는데, 자기가 뭐 어쩔 텐가.

         

       “크흠, 그럼 들어가지.”

       “…예.”

         

       봉팔이 안가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똑! 똑똑! 똑똑똑!

         

       일정한 주기와 박자로 보아 자기들만 알고 있는 신호를 보내는 모양.

         

       곧이어 내부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

         

       허락이 떨어지자, 봉팔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장삼은 그의 뒤를 따랐다.

         

       허름하고, 좁고, 으스스한 방 안.

         

       맞은편 끝에 웬 사내가 가부좌를 튼 채로 앉아 있었다.

         

       장삼의 존재를 아직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러는 건지.

         

       사내는 복면으로 얼굴 절반 이상을 가리고 있었다.

         

       밖으로 드러나 있는 것은 오직 눈뿐.

         

       봉팔이 그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부복했다.

         

       “단주님을 뵙습니다.”

         

       멀뚱멀뚱 서 있던 장삼 또한 그를 따라 눈치껏 행동했다.

         

       “다, 단주님을 뵙습니다.”

         

       사내의 시선이 장삼에게로 향했다.

         

       “파혈고를 먹였다는 게 이 녀석인가.”

       “예, 맞습니다.”

       “흐음…, 확실히 신룡조원이기는 한데…, 너무 말단 아닌가?”

         

       장삼은 이곳에 오기 전, 당선영을 통해 단전에 제약을 걸어두었다.

         

       그것은 그의 경지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 위해 단전의 일부를 잠시 막아둔 것.

         

       그로 인해 현재 장삼의 경지는 기껏해야 일류 상입경 수준이었다.

         

       “전서구로 보고드린 바 있듯, 이놈은 전투가 아닌 술법 담당이라 그렇습니다.”

       “아, 맞아. 술법을 조금 할 수 있다고 했던가.”

       “예. 그것 때문에 백우진에게 상당히 신임받고 있지요.”

       “호오, 그렇단 말이지.”

         

       신임받고 있는 조원이라면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사내의 머릿속에 아주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네놈에게 지시를 내리겠다.”

       “예.”

         

       사내는 제 품을 뒤적여 나온 주머니 하나를 장삼의 무릎 앞에 던졌다.

         

       “그것을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백우진 녀석에게 먹이거라.”

         

       장삼이 손을 뻗어 주머니를 잡아 살짝 열어보았다.

         

       열린 틈 사이로 보이는 것은 갈색의 환약이었다.

         

       “이건 혹시….”

         

       사내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그래, 고독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몇 번 말씀드린 바 있지만, 저는 몇몇 큼지막한 사건의 개요를 짜둔 다음에 세세하게 채워넣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데요.

    요즘 세세하게 채워 넣는 순간에서 여러모로 애를 먹고 있네요.

    속도를 중시하면 내용이 너무 날아가고, 내용을 중시하면 속도가 안 나고…

    이게 성장통이란 걸까요,,,

    최대한 부지런히 쓸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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