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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4

       

       

       

       

       

       254화. 스스로 잠든 용 ( 2 )

       

       

       

       

       

       성도의 상공에 두 번이나 폭발을 일으킨 전무후무한 사태의 주인공이 된 케니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성기사와 병사들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고생했고.

       그동안 데모닉과 케니스는 신전 구석에 얌전히 쭈그러져 있었다.

       

       그 둘을 찾아온 것은 얼굴이 붉그락푸르락하게 변한 대사제 안토니오였다. 때아닌 불꽃쇼를 수습하느라 제법 고생했는지, 굵은 땀을 잔뜩 흘린 모습이었다.

       

       “데모닉 팔라딘!!! 용사님!!!”

       

       관자놀이 옆에 불룩하게 솟은 핏줄과 파들파들 떨리는 두 손. 지은 죄가 있는 케니스와 데모닉이 바짝 자세를 낮췄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대사제님.”

       “도대체 둘이서 무슨 짓을 벌이고 다니는 겁니까!!! 스스로의 위치에 대한 경각심과 언행에 대한 주의가 이렇게나 부족하면 어떡합니까! 자고로 책임질 것이 많은 자는 행동하기 전에ㅡ”

       

       그렇게 점심에 시작된 안토니오의 분노 어린 설교는 저녁이 되어서야 끝났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것도 성도의 한복판에서 이런 대형 사건을 벌인 것치고는 유하게 넘어갔다고 볼 수 있겠다.

       

       “후… 마음 같아서는 더 길게 하고 싶지만, 이 정도면 두 분께서도 제가 말씀드리고 하는 바를 충분히 알아주셨으리라 믿습니다.”

       ” 네, 네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이번 일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 짓도록 하지요.”

       

       귀에서 피가 흐르는 기분이다.

       

       “아. 그리고 용사님?”

       “네, 넵!”

       

       또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는가 싶어 바짝 긴장한 케니스.

       

       “말씀해 주신 새로운 신검과 부유섬에 대한 이야기… 매우 흥미롭더군요. 다음 같아서는 조금 더 천천히, 자세하게 듣고 싶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지요?”

       “아, 하하… 내일! 내일 제가 꼭 찾아갈게요.”

       “좋습니다. 그럼 내일 뵙도록 하지요.”

       

       안토니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섰다. 그 뒤로 영혼까지 탈탈 털린 케니스와 데모닉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일단… 미안하구나. 너도 고생 많았다.”

       “아니에요…”

       “남은 샌드위치는 네가 가져가서 먹거라. 나는… 경위서를 좀 작성해야 할 것 같구나. 먼저 들어가서 쉬거라.”

       “네…”

       

       용사에게 주어지는 면책권과 달리, 팔라딘에게는 그딴 것 없었다. 데모닉은 안색이 푸르죽하게 죽은채로 사라졌고, 케니스는 지친 몸을 이끌고 방에 돌아왔다.

       

       풀썩.

       

       “아그윽… 지친다아…”

       

       픅신한 침대가 부드럽게 케니스의 몸을 감싸 안는다. 육체적으로는 멀쩡했지만 정신적으로 매우 고단한 하루였다.

       

       “얼른 씻고 자야지…”

       

       땀 흘린 채로 잘 수는 없는 법.

       

       대충 샤워를 마친 케니스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묵 빛의 신검은 침대 머리맡에 세워둔 채였다.

       

       신검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으면 묘하게도 어떤 존재의 손을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멍하니 신검을 바라보다가 침대에 몸을 던진다.

       

       ‘그러고보니… 아빠는 경위서 다 쓰셨으려나?’

       

       팔라딘의 기본 업무도 있을 텐데, 자신 때문에 경위서까지 쓰게 된 것이 영 마음에 걸린다.

       

       “다음에… 하암- 내가 샌드위치라도 만들어서 가야겠다…”

       

       데모닉이 들었다면 안색이 파랗게 죽었을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케니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데모닉에게 험난한 미래를 약속한 케니스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는 이내 곤히 잠에 빠졌다. 

       

       “…새액ㅡ…”

       

       밤은 점점 더 깊어지고, 고고하게 걸린 달이 조용히 지상을 비출 때.

       

       덜그럭. 덜덜덜덜ㅡ

       

       묵 빛의 신검이 잠시 흔들렸다가.

       

       “…”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

       

       

       

       몽중몽.

       

       꿈에서 꾸는 꿈.

       

       “…아.”

       

       케니스는 문득 자신이 꿈 중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닥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 주변을 살펴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여기는…”

       

       끼히히히히!

       ㅡㅡㅡㅡ!! ㅡㅡㅡㅡ!!

       

       모든 곳에 어둠이 즐비하였으며 혼돈으로 가득 찬 무질서의 공간.

       사방에서 지독한 악취가 풍겨왔다. 

       

       “커, 흐읍ㅡ! 내, 냄새가 무슨…”

       

       세상에서 가장 지독하고 순수한 악의로 가득 찬 악마의 향기다.

       

       주변에 악마가 가득하다는 걸 깨달은 케니스가 다급하게 주변을 훑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혼돈, 그리고 무질서.

       

       저 멀리 있는 땅에서는 뭔지 모를 거대한 촉수가 기괴한 얼굴 모양을 만들어 꿈틀거렸고, 태양은 어둡고 불길하게 타오른다.

       나무를 닮은 것에는 주둥이가 가득하여 침을 질질 흘렸다.

       

       이 공간을 감히 무어라 정의할 수 없었다.

       

       이곳은…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며, 모든 것을 죽이려는 공간이었으니까.

       

       세상에 이렇게 불경하고… 끔찍한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적어도 케니스가 아는 선에서는 그랬다.

       

       “심연……?”

       

       인간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고이고 고인 가장 밑바닥의 무저갱.

       모든 악마와 온갖 악한 것들이 태어나고 만들어지는 가장 어두운 곳.

       

       자신이 어떤 공간에 있는지 깨달은 케니스의 행동은 재빨랐다. 주변의 커다란 벽에 몸을 숨기고, 필사적으로 기척을 죽였다.

       

       저급한 하급 악마 따위는 아무리 몰려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허나 악마들이 끝도 없이 태어나는 무저갱의 심연이라면 말이 달랐다.

       

       혼자 싸우는 것은 인간의 몸으로 하나의 차원에 맞서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후우, 후우… 뭐야? 도대체 뭐지?”

       

       온 사방이 악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움직이는 것이 그녀의 적이다.

       

       갑작스레 악마의 주둥이에 던져진 상황.  심장이 거세게 쿵쾅거렸고, 식은땀이 몸을 흠뻑 적신다. 

       

       한 손에 묵 빛의 신검이 들려 있다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신께서 자신을 꿈으로 부르셨나? 

       

       “아냐. 그럴 리 없어… 이런 위험한 공간에 대해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잖아.”

       

       몽중몽. 

       꿈속의 꿈.

       

       “꿈… 그래 이건 꿈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 상황 자체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다. 필멸자여.》

       

       거대하고 중후한 울림이 들려왔다. 너무 커다란 목소리는 도리어 어디에서 들려왔는지 알기 힘들었다.

       

       “어디지? 어디냐!”

       

       검을 꽉 쥔 케니스가 사방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아무리 둘러봐도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쿠구구구구ㅡ

       

       《필멸자여… 그대에게서 참으로 반가운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어어엇! 꺄아아아앗!”

       

       케니스가 몸을 숨겼던 벽이 크게 흔들리며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벽이 아니었다. 벽이라고 착각했던 것은, 그 자체로 거대한 생물의 무언가였다.

       

       “무, 무슨…”

       

       거대하다. 끝도 없이 거대한 무언가다.

       산맥이 몸을 뒤틀며 대지에서 일어나는 착각마저 들 지경이다.

       

       쿠구구구구ㅡ

       

       “하늘… 이…”

       

       밤이 도래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거대한 가죽을 두른 날개가 펄럭이며 일대를 모조리 뒤덮어 태양이 가려진 탓이었다.

       

       검은색의 비늘은 빛을 끝없이 흡수하는 듯 어둠 그 자체의 것이었으며, 그 위로 거대하게 솟은 열두 개의 뿔이 이리저리 뒤틀리며 자라났다.

       

       압도적이고, 폭력적이다.

       붉게 번들거리는 도마뱀의 눈동자. 그것이 케니스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필멸자여… 그대는 누구인가. 그대는 누구이길래 나의 잔념과 파편을 헤아려 찾아왔는가?》

       

       “찾아… 왔다고?”

       

       케니스가 거대한 존재의 말을 더듬거리며 간신히 이해했다.

       저 말은 마치 자신이 이곳으로 찾아왔다는 소리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무… 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이런 곳에… 오고 싶지 않았어!”

       

       덜덜 떨리는 턱을 간신히 움직여 소리쳤다. 그러면서도 차마 저 존재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피처럼 번들거리는 눈동자에는 가장 원초적인 폭력이 가득했다.

       폭력과 충동이 번들거리는 붉은 눈동자, 그 안에는 기이하게도 현기와 지혜의 일부가 엿보였다.

       

       《호오…》

       

       붉은 눈동자가 살짝 움직여서 케니스를 훑었다. 뚫어져라 향하는 시선의 끝에는, 묵 빛의 신검이 있었다.

       

       《그런가… 운명의 끈이 기묘하게도 엮였구나.》

       

       “무, 슨 소리야… 도대체 넌 누구냐…!”

       

       케니스가 비명처럼 외쳤다. 

       

       쿠웅! 쿠구구구ㅡ

       

       땅이 울린다. 저 거대한 존재가 엎드려 있던 자세를 가볍게 움직이는 것 만으로 대지가 괴로운 듯 몸을 뒤틀었다.

       

       차르르르륵ㅡ!

       

       거대한 쇠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우렛소리와도 같이 들려온다.

       

       《나를 기억하라… 필멸자여. 나의 존재를 기억하라… 나의 희생과 일족의 역사를 기억하라…》

       

       “도대체 무슨 말을ㅡ”

       

       붉은 눈동자가 폭력과 지혜가 뒤섞이며 불길하게 타오른다. 

       

       《나의 이름은…ㅡㅡㅡ… 필멸자여. 기억하라.》

       

       검은 비늘과 열두 개의 뿔을 가진 존재의 잔념이 입을 열었다.

       

       《나는 스스로 영원한 잠에 빠졌으며, 가장 비참하게 쇠락한 존재일지니… 필멸자여, 나를 기억하라…》

       

       케니스의 동공이 잔뜩 축소되며 ‘그 존재’가 무엇인지 알아챘다.

       도리어 너무나 가깝고 거대하여 단박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용?”

       

       《그 또한 진창에 빠진 나의 옛 왕관일지니…》

       

       검은색 비늘, 열두 개의 뿔을 왕관처럼 쓴 고룡이, 케니스와 눈을 마주쳤다.

       

       몽중몽을 통하여, 가장 어두운 심연의 한가운데에서.

       

       

       

       *****

       

       

       

       “흐하하하하! 일이다, 일!!”

       “손을 열심히 움직여!! 광석이 모자라잖아! 곡괭이를 쉬지 말란 말이야!’

       “흐에에에… 쉬, 쉬게 해주세요오오…”

       

       성지는 정말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부유섬 아르고스가 성지의 하늘에 자리 잡은 이후, 위대하신 분께서 성지를 살피는 횟수가 비약적으로 늘었다.

       

       덕분에 드워프의 대장간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올랐고, 니트히키코모리 밤의 일족이 작업하는 세공소에서는 비명과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삑, 삐이히익ㅡ”

       

       그리고 시끄러운 소란에서 한 발 떨어진 노천 온천.

       뜨끈하게 몸을 지지는 이베르는 작게 콧노래를 부르며 온천을 즐기고 있었다.

       

       자신이 할 일이라고는 틈틈이 엉덩이춤을 추는 것뿐이고, 그 외의 시간에는 이렇게 놀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즐겁고 보람찬 생활인가?

       

       “삐익ㅡ!”

       

       이베르가 흥에 겨워 크게 하울링 했다. 앙증맞은 외침이 온천 내부에 잠시 메아리쳤다.

       너무나 위협적인 하울링에 온천 수면이 조약돌을 던진 것처럼 흔들렸다.

       

       첨벙첨벙ㅡ!

       

       성지의 분위기가 축축 처지던 것도 해결됐으니, 남은 것은 일상의 여유를 만끽할 뿐!

       

       이베르가 마구 첨벙거리며 온천을 뿌옇게 만들었다. 날개와 꼬리를 있는 힘껏 흔들어 사방으로 물을 튀긴다.

       

       순수함과 천진함이 가득한, 보는 이를 절로 웃음 짓게 만드는 전력의 첨벙거리기!

       

       “…삑?”

       

       그리 신나게 물장구치던 이베르가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휙 돌렸다. 

       

       사아아아ㅡ

       

       커다랗게 반짝이던 눈망울이 세로로 길게 찢어져 어느 한 곳을 노려보았다. 섬뜩하리만큼 크게 떠진 눈과 길게 찢어진 동공. 

       

       바늘처럼 얇아진 동공에 알 수 없는 싸늘함이 번들거린다.

       

       “……”

       

       이베르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무표정한 모습으로 일체의 미동도 없이 뚫어져라 한 곳을 응시하는 모습은 어딘가 섬뜩하기도 했다.

       

       성지의 애교쟁이 이베르가 아닌, 신화의 지배자 서리고룡 이베르의 시선이 향한 곳은.

       

       “…살아 있었나?”

       

       커다랗게 우뚝 솟은, 차원 이동 관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랄까 : 도대체 언제부터ㅡ 내가 글을 안 쓰고 있다고 착각한거지?

    Ilham Senjaya : 뭐…라고…!!

    ‘휴재’를 ‘휴재’한다…

    집필이란, 글에 매달리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Ilham Senjaya님, 휴재를 휴재했습니다…!! 이것이 랄까의 비기…!! 휴재 휴재술…!!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파멸적인 요리 실력을 유전받은 케니스…!! 다가올 파멸에 두려워하는 데모닉..!! 끼요오옷…!! 그리고… 공기처럼 비중이 사라진… 에스텔… 황금 나무의 대궁…!! 작가인 저의 부족함이 불러온 끔찍한 참사…!! 크읏…!! 녀석들을 위한… 플롯… 플롯!! 작가인 저의 부족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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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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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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