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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4

       나오나는 어떤 의미에서는 턴제 게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인체 관절의 한계와 스태미나 제약의 조합 탓에 계속 능동을 취할 수는 없으니. 내가 원하는 수를 두기 위해 한 턴을 사용했으면, 상대에게 턴을 넘겨주고 상대의 수에 대응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피지컬로 턴을 두 번씩 쓰는 비열한 놈들이 있기는 하지만……이제 와서 비난하는 것도 우습겠지.

        

       어차피 턴을 두 번씩 쓰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한 번씩 쓰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아무튼.

        

       함정을 파는데 턴을 한 번 썼는데, 상대가 함정에 대응하는 걸 넘어서 파훼해버렸다면- 이쪽은,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턴제 게임이란 그런 것이니.

        

       당연한 일이긴 한데……분한 건 어쩔 수 없어서.

        

       눈앞. 왼팔이 날아간 채 가까스로 서있는 도적이 비틀거렸다. 몇 십 초. 아니, 아마……십여 초만 있어도 실혈사 판정이 나올 터다.

        

       나오지 않을 판정이다. 이미 내가 천천히 쓰러지고 있기에.

        

       프로게이머, 진짜 아무나 하는 거 아니구나.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는 공격을 머리에 심어두고, 반대방향으로 날린 공격이었다. 그것도 바닥을 뚫으며. 시야의 사각이었는데……그걸 예측한 걸까.

        

       아니, 아니겠지. 아무리 홀레기사가 한번 유행했다고 해도, 너프 후에는 평범하게 딜이 센 빌드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바닥을 뚫는 걸 미리 알았을 것 같진 않은데. 격돌 모드가 출시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나도 실험해보기 전엔 생각도 못한 공격 방법이다.

        

       그러면, 그냥 반응속도와 감으로…….

        

       뭐가 더 분한 건지 잘 모르겠더라. 예측당했어도 분하고, 감에서 밀렸어도 분해.

        

       하지만, 그런 걸 고민한다고 하여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고-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겠지.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3판 2선승, 1승 1패. 다음 세트로 결승 진출이 결정되는구나.

        

       사실, 아무래도 좋긴 한데.

        

       조금, 조금 더 올라가고 싶었다. 복수도 해야 하고. 코스프레……그런 꼴을 보일 순 없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는 일이다.

        

       그리고-

        

       이기고 싶었다.

        

       다른 이유를 떠나서, 그저 즐거워서. 지금, 저 상대와 합을 겨루는 순간 순간이, 순수하게 흥겨워서.

        

       이런 마음으로 대회에 임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괜찮겠지.

        

       이기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니까.

        

       * * * *

        

       “치열한! 정말 치열한 승부의 끝! 두 번째 세트, 마지막에 서있는 건 오소독스 선수입니다!”

        

       “아- 정말, 정말 눈이 호강하는 경기였어요. 오가는 심리전이, 한 수 한 수가! 정말, 극한의 수싸움이었습니다. 이건 리플레이부터 봐야겠는데요.”

        

       “네, 맞습니다! 특히- 아, 여기, 여기입니다. 여기서 아따먹 선수가 바닥을 뚫으면서 대검을 휘두를 때, 이건 오소독스 선수가 볼 수가 없었어요. 지금 보이시죠? 시야각이 안 나옵니다. 그런데, 이걸 여기서 뒤로 뺍니다. 이 선수, 정말로 현실 살기 감지 스킬이라도 있는 거 아닙니까?”

        

       “저는 아따먹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사실, 오소독스 선수가 이 일격을 피한 순간, 경기가 7할 이상 도적 쪽으로 기울었거든요. 체력 내어주고 스태미나도 소모한 기사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끌고 온 거냐는 말이 절로 나와요. 오소독스 선수 입장에선 정말 소름이 돋았을 겁니다. 이렇게 해도 따라붙어? 이렇게 해도? 하는 말이 절로 나왔을 거예요!”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겨운 승부였다. 보면서도, 이게 뭘 보고 있는 건지. 같은 게임을 하고 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여서.

        

       ‘예나, 진짜……진짜, 진짜 잘하는 구나.’

        

       어느 정도야 알고 있었다. 아무렴, 아무리 솔로 랭크라도 1등 출신 아닌가. 마스터 끄트머리에서 손톱으로 버티고 있는 자신과의 실력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그 뿐일까. 경험상으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결코 원해서는 아니었지만, 그녀만큼 예나와 같이 게임을 한 사람도 드물 터였으니.

        

       그럼에도, 새삼 놀란 건 어째서일까.

        

       진희는 문득, 최근 들어서 예나와 아따먹을 잘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도적부흥운동을 해야겠다고 방송을 시작해서, 기어이 도적을 프로경기 필수 픽 지위까지 올려놓고- 프로게이머들을 상대로도 거침없이 검을 휘둘러, 끝끝내 승리를 쟁취해내는 아따먹.

        

       그리고, 현실에서 반 걸음 정도 떨어진 것 같은- 가끔씩 퍽 슬퍼 보이고, 또 이유없이 배시시 웃음을 흘리는……예나.

        

       동일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괴리감이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던가. 아니, 아니었다. 첫 통화나, 첫 만남에서는 분명 아따먹 그 자체였는데. 외모야 그렇다치더라도, 언행은.

        

       그러나 요즘의 예나에게선, 어쩐지 그때의 아따먹이 조금 흐려진 것만 같아서.

        

       진희는 그게 다행스러우면서도, 조금은 아쉽더랬다.

        

       그리하여, 대형 화면에 2세트의 리플레이가 재생되는 동안 저 앞의 예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사이.

        

       “저대로 프로 데뷔해도 볼만 하겠는데. 위키에 논란 항목이 좀 많이 길어서 그렇지.”

        

       옆자리에 앉아있던 시훈의 한 마디가 들려왔다. 흘려듣기는 어려운 말이었다. 프로들과 자주 교류하는 사이 아닌가.

        

       “……진짜? 예나, 프로 할 정도로 잘해?”

        

       “지금 보니 그렇네. 어지간한 프로보다 나아. 저 실력을 숨기고 내기를 걸고……진짜, 사기도 정도가 있지.”

        

       “그렇구나…….”

        

       “애초에 매번 방송 병행하거나, 하루 6시간씩 달리느라 체력 배분하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까. 원래 실력이 더 좋을 건 알았는데. 저건 진짜…….”

        

       그리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시훈은, 하는 말과는 달리 작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사기 도박에 당한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응원하는 맛은 있네.”

        

       헛웃음과 함께 흘린 말이, 진심에 가까워보였다.

        

       * * * *

        

       3세트 준비시간.

        

       VR로 진행되는 게임의 특성을 고려한 걸까. 세트 사이 휴식시간은 제법 길게 주어졌다. 복싱마냥 1분씩 휴식시간을 주면, 사실상 이스포츠가 아니라 스포츠가 되는 탓이겠지.

        

       실제 리그도 이러려나. 다음 시즌에는 챙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GP의 경기는 조금 궁금해져서.

        

       잡다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애써 한 켠으로 치웠다. 시간이 제법 길다지만, 낭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준비해온 빌드는 있지만……어떤 빌드를 어느 타이밍에 쓸지는 실전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고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다시 대검기사를 들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맴돌았다. 2세트를 내어준 탓일까. 갚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만.

        

       오소독스 입장에서도, 도적 미러전으로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갖고 싶겠지.

        

       마지막 세트다. 어느 한 쪽은 떨어져야 하는. 이런 무대에서 다시 만날 기회가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정말로 마지막이라고 할 수밖에.

        

       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2경기 연속으로 도적을 들고 나온 마음을 어쩐지 알 것만 같아서.

        

       결국, 마지막 순간에 내 손은 도적을 향했다.

        

       곧이어, 게임 부스 너머 관중석에서 울려퍼지는 환호 소리가 헤드셋을 뚫고 들려왔다. 어느 정도 크기인 거지. 경험이 없어서 알 수 없지만, 제법……제법 열광하는 것 같은데.

        

       역시 오소독스도 도적을 고른 걸까. 아니, 마지막이니 결국 광전사를 골랐을 지도 모르겠다. 은퇴한 선수가 주캐를 꺼낸 순간이면, 저 정도 환호를 할 만하니까.

        

       하지만, 나라면-

        

       나라면.

        

       .

       .

       .

        

       눈 내리는 설산. 저 멀리에서부터 천천히 걸어오는 상대의 움직임은 제법 가벼웠다. 가죽갑옷에, 신속 특성이겠지. 비격도 찍었을 거고.

        

       공격속도와 치명타에 비중이 압도적으로 실린 빌드.

        

       도적 미러전용 빌드다.

        

       나와 같은.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상대가 든 검의 예기가 보이는 거리.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멈춰섰다. 두 호흡이면 접근할 수 있는 간격이다. 한 호흡이면 투척할 수 있고.

        

       리드미컬한 심장 박동에 맞춰, 긴장감을 풀며 움직임을 살피던 그때.

        

       오소독스는, 오른손의 검을 뽑아 들어 비스듬히 바닥을 향했다. 둘 사이의 정중앙을 가리키듯. 사뭇 장엄하게 느껴질 정도로 진지한 움직임이다.

        

       ……저걸, 어떻게 알지.

        

       도적 유저들은 하나같이 비겁하다는 극찬이 커뮤니티를 휩쓸던 시절. 레딧의 도적 스레드에서 반쯤 장난삼아 시작된 움직임이었다. 우리도 명예를 아는 기사처럼, 적과 검을 나누기 전 경의를 표하자고.

        

       어둑한 지하에서 동료들의 승리를 위해 희생하는 자로서, 대지를 가리키며 명예로운 결투를 맹세하는 동작이다.

        

       물론, 취지가 오래가지는 않았다. 오른손으로 경의를 표하다가, 기사뽕 맞은 성기사나 광전사가 저 나름대로 비슷한 동작을 취하면 왼손으로 단검을 투척하는 것까지가 용례였던 고로.

        

       대개 도적을 고르는 친구들의 성향이 그러했다.

        

       손에 쥐고 싶은 건 승리다. 명예는, 영광은- 그런 건, 부차적인 것이다.

        

       다만-

        

       한참 후의 일이고, 한참 전의 일이다. 잊혀질 순 없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럼에도, 호응하지 않을 수는 없었던 고로. 좌수의 검을 천천히 뽑아 들어, 눈 덮인 바닥을 향했다.

        

       여기선, 정말로 경의를 표해도 되겠지. 최소한 저- 뚝심을 가지고 도적으로 찾아온 오소독스에게는, 연기할 필요도 없으니.

        

       물론,

        

       진정한 의미에서 상대를 존중하는 건, 승부에 최선을 다하는 거다.

       

       그리하여, 1초도 채 흐르기 전.

        

       -휘익!

        

       서로에게 투척한 단검을, 둘 모두 아슬아슬하게 회피하고-

        

       -콰앙!

        

       이어서, 격돌했다.

        

       * * * *

        

       [작성자: ㅇㅇ]

       [제목: 씨1발 내 감동 돌려줘]

       [와 낭만 지린다 하고 보고 있었더니 씨1발

        

       둘다 정신 팔리게 하고 투척으로 기선제압할 각만 보고 있었네]

       –     추하다 오소독스야 진짜루……

       –     아따먹은 그렇다치고 오독인 왜 저러냐

       –     ㄴ 뭔가 주변 인간을 타락시키는 파장이 나오는 순수한 악 아닌가 싶어 이제

       –     ㄴㄴ 취급 존나 너무하네

       –     2세트 존나 멋있게 해놓고 뭐하는 짓이야 진짜 ㅋㅋㅋㅋㅋㅋㅋ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트루구요 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푸른물결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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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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