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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4

       방학 내내 쭉 편하게 지냈다.

        

       더 이상 내가 신경 쓸 것이 없었다. 최나경은 정말로 경찰에 잡혀갔고, 최나경이 잡혀간 이상 그 호명 그룹의 노인네가 나한테 손주며느리라고 부를 명분도 사라졌고, 유진 그룹 내의 온갖 문제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셈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경영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해주세요. 저는 경영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으니까요.”

        

       “그래, 그렇게 하마.”

        

       ‘삼촌’은 내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지 대략적으로는 들어서 알고 있었으므로, 뉴스를 보고도 매우 놀란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가지고 있는 정보 간의 격차가 너무 크면 오히려 관계가 삐걱거리게 되니까.

        

       “그리고, 법적으로 도움을 받고 싶은데, 혹시 아는 변호사 있으신가요?”

        

       “아는 변호사는 없지만, 유진 그룹 내에서 운영하는 법무팀이 있다. 유명 법률사무소들과 제휴를 맺어 운영하는 곳이니 충분할 거라고 본다.”

        

       “그렇다면…… 나중에라도 최나경 ‘전’ 회장이 제 곁으로 오려고 하면 법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조처를 해주셨으면 하네요. 그리고 기왕이면 최대한 오랫동안 감옥에서 머리 좀 식힐 수 있도록 해주시고요.”

        

       “그건 변호사가 아니라 검사가 할 일이다만…… 뭐, 그래도 이쪽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협력해보도록 하마. 기업으로서도 그 사람이 밖으로 나오면 여러모로 곤란해질 테니까.”

        

       재산을 전부 빼앗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최나경이 누군가와 재혼해서 자식을 가지지 않는 이상은, 그 재산은 언젠가 나에게 돌아오게 되긴 할 거다. 부모·자식이라는 관계는 법으로도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뭐, 엄밀히 따지면 내가 딸인 것이 아니라 사라가 딸이지만. 이제 와서 신경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나마 내 앞에 앉아있는 ‘삼촌’도 내가 약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을 뿐이니, 우리 둘 중 누가 재산을 쓰더라도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주식은 조만간 다시 매입하도록 할게요.”

        

       “고맙구나.”

        

       더 이상 호명 그룹을 손에 쥐고 흔들 필요는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산 주식을 굳이 다른 사람에게 팔 생각도 없고. 나중에 혹시라도 나와 사라의 미래에 딴지를 걸고자 한다면, 그때부터는 다시 매입하기 시작할 거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주식을 더 이상 살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암 덩어리는 성장을 멈췄을 뿐이지 아직도 거기 달려있는 셈이다.

        

       “그리고…….”

        

       나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면서 또 말해야 할 것이 있는지 고민하다가, 이제는 더 이상 이쪽으로는 신경 쓸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 허무하기도 하지.

        

       물론 허무하다고 해서 인생을 그만둔다거나 목적이 사라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미래에는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벌써 한가득하였으니까.

        

       ……적어도 하늘이, 수아, 소희는 내가 책임져야겠지. 어쩌면 아름이도.

        

       나는, 나는?

        

       너는 어차피 끝까지 나랑 있을 거잖아.

        

       아마 죽는 날까지 같지 않을까.

        

       헤헤.

        

       사라가 헤실헤실 웃었다. 아마 의식 안에서 직접 봤다면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좋을까.

        

       “사라야.”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데, ‘삼촌’이 말을 걸었다.

        

       “회사 일은 언제부터 시작할 생각이냐?”

        

       “……제가 회사 일을 시작해야 하나요?”

        

       만약 시작하더라도 대학교는 졸업하고 시작하려고 했는데. 어쩌면 그냥 전문 경영인을 쓰고 나는 월급만 주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괜히 손댔다가 파탄만 날 게 뻔하니까. 살아생전 주식 한 번 안 해본 나였다. 주식을 사는 것은 자사주 매입 정도만 하고 싶은데. 괜히 올랐다 내렸다 하는 걸 생각하고 있으면 머리만 아프고.

        

       “언젠가는.”

        

       ‘삼촌’은 말했다.

        

       “이번 일로, 우리 회사에 대한 이미지가 큰 타격을 받았으니까. 무려 회장이 직접 자기 수양딸을 학대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으니, 한동안 불매운동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사실 유진 그룹에서는 사실이 새어 나가는 것을 최대한 숨기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특종에 눈이 먼 기자가 단독으로 보도해버리고, 다른 언론들이 죄다 그 기사를 물어버리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

        

       특히 경찰은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많기 때문인지 몸을 사리고 있었는데, 그 일로 온갖 비리들이 하나씩 터져나가는 중이었다. 다행히도 나를 도와준 사람들은 그 와중에 꿋꿋하게 자기 할 일 하고 있던 사람들이라 무사할 수 있었고.

        

       웬 공무원 하나가 자기 자리를 걸고 폭로해서 사라의 정신건강이 심각한 해를 입고 있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당연히 사라가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방치하고 있던 사라의 친척들도 엄청나게 곤혹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당연히 학교에도 관심이 쏠렸다. 예사라가 다니던 학교에선 대체 학생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한 아이가 그 정도로 학대당하고 있는 것을 그렇게 방치하게 되었나 알아내기 위해 온갖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과 뉴스 기자들이 마구 찔러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여기만 고요했다.

        

       뭐, 여기도 한때는 정문 밖에 기자들이 쫙 깔리기는 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몇몇 대형 언론사에서 ‘동시에’ 그런 기자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고 역으로 집 앞에서 대기 중인 기자들을 취재하고 따라다니며 부담스러울 정도로 카메라를 들이밀었고, 동시에 인터뷰를 시도해버린 덕분에 역으로 기자들이 기자들에게 쫓겨 달아나는 기이한 분위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인터뷰를 하건 안 하건 모자이크도 없이 방송에 마구 올라가 버린 덕분에 기자들이 비난받은 것도 있었다.

        

       그나마 아직은 학생들에게까지 마수가 뻗치지는 않았다. 다만, 그게 언제까지라고 장담은 할 수 없다. 어째서 그 학교에서 도망치듯 전학을 갈 수밖에 없었는지,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예사라와는 어떤 관계였는지, 벌써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궁금해하기 시작했으니까.

        

       ……돈이 참 좋아.

        

       이렇게 규모가 큰 사건을 동시에 다룰 수 있다니 말이다. 언제 써도 참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는 규모의 자금이다.

        

       “그래요. 저도 언젠가는 회사 일을 시작하기는 하겠죠. 그래야 회사에 이득이 될 테니까. 그렇죠?”

        

       “…….”

        

       “제가 피해자이니, 피해자로서 회사와 반목하는 게 아니라, 원래 가져야 했을 자리를 탈환한 것으로 보이도록 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요? 그 자리에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앉으면 마치 자리를 ‘강탈한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

        

       “그러면, 조금 더 기다리셔야겠네요.”

        

       내가 조금 쓰기는 했지만—

        

       ‘조금?’

        

       —많이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라가 물려받을 그 재산들은 원래 온전히 사라의 손에 들어갔어야 할 재산들이다. 당연히 그 받아야 할 권리를 포기할 이유도 없고, 괜히 그 재산의 가치를 깎아내릴 이유도 없었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그 정당한 자리로 가서, 정당하게 모든 것을 받아낼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저는 지금 당장은 회사 일을 배울 정신이 없어서요.”

        

       사실 별다른 일은 없다. 오히려 일이 끝났으면 끝났지, 바쁠 이유는 정말 하나도 없었다.

        

       없기는 했지만.

        

       ……나는 사라의 몸에 들어왔을 때, 사라에게 마땅히 친척이라고 부를 존재가 없는 줄 알았다. 당연하다. 사라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사라를 진심으로 돕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

        

       지금 앞에서 이렇게 친한 척을 하는 ‘삼촌’조차도, 얼마 전에 그 존재를 알게 되기 전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으니까.

        

       그저 회사가 잘 돌아가고 있으니까, 더 이상 손을 볼 필요가 없었으니까.

        

       사라가 어떻게 되든지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이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일평생 일구어온 회사가 잘 돌아가기만 하면 친척 아이 하나 정도 괴로워하고 있을지 몰라도 크게 관심 가질 필요는 없지. 괜히 긁어 부스럼이나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러다가, 최나경이 쫓겨나고 나서야 사라의 안위를 걱정했다. 회사의 이미지를 제대로 살리고 이어 나갈 사람을 찾아온 거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이전에 이미지가 좋았던 전 회장, 예인수의 친딸인 사라가 제격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가 감정적으로 이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회사가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한해서, 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괴롭히고 싶었다.

        

       “저는 쉬고 있을 테니까, 대신 말을 좀 전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저는 건강히 잘 있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잘 해결해나가고 있다고.”

        

       어차피 이 나이에 벌써 회장 자리에 오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인 내가 직접 얼굴을 드러내고 괜찮다고 하면 여론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 것이다. 친척들에게 향하던 화살도 조금은 누그러들겠지.

        

       내가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그래, 뜻은 알겠다.”

        

       ‘삼촌’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삼촌’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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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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