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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4

     사람의 몸에는 피가 흐르고, 이 피의 양은 많아봐야 몸 전체의 1/10보다 적은 편이다.

     성인 남자를 기준으로 잡았을 때, 몸에서 피를 전부 뽑아낸다면 대략 6L정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 피가 만일 황금이라고 한다면, 과연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도 출혈이 최대한 일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사람을 죽이려고 할 것이다.

     기절시키거나 피가 부패되지 않도록 교살이든 뭐든 방법을 생각해낸 다음, 아래로 흘러내리는 피를 받아낼 천을 펼쳐놓고 몸에서 피를 뽑아낼 것이다.

     피가 만일 황금이라면.

     “당황스럽군요. 몸에 황금이 흐르는 언데드라니.”

     나리아는 몸 곳곳에 마석탄환이 박힌 언데드 조각들을 마탄이 2호-1호는 과거 13살 때 내가 총검술 연습을 위해 들고 다니던 그것-의 끝을 툭툭 건드렸다.

     “이거 정말 안 일어나는 겁니까, 그레이 경?”

     “부활하더라도 움직이지 못하게 관절을 큰 부분마다 죄다 박살내놨으니 움직이지는 못할 겁니다.”

     비밀통로에 즐비하게 늘어진 언데드의 흔적.

     특이점이 있다면 일반적인 언데드와 달리, 몸 속에 흐르는 것이 ‘금’이라는 것.

     “그레이 경. 여기 벽에 튄 거 말입니다. 원래는 혈액처럼 튀어야 하는 거였죠?”

     “혈액 맞습니다.”

     비밀통로 곳곳에는 피가 흥건하게 뿌려져 있었다.

     몸이 비쩍 마른 언데드들도 몸 안에 흐르고 있던 무언가를 맞았을 때는 일반 사람들처럼 그 진액을 줄줄 흘렸던 것 같다.

     ‘마탄을 맞을 때마다 몸에서 금이 튄 흔적이지.’

     나리아가 마석탄환을 쏠 때마다 피가 튀었다.

     나는 그걸 어둠 속에서 봤지만, 일부러 따로 말하지 않았다.

     사람이 머스킷에 맞을 때마다 금색액체가 튄다는 건 너무나도 인상적이라, 나리아의 기억에 남아서 항상 떠오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군요. 피가 금이라.”

     “그냥 수상할 정도로 금이랑 비슷하게 생겼을 뿐입니다.”

     “금이잖아요.” 

     “사실 시신의 썩은 피가 금처럼 보이게 되는 환각마법에 걸린 겁니다, 여왕님.”

     “어디서 씨알도 먹히지 않을 헛소리를. 고작 이런 거 가지고 욕심 부리고 그러면 아스타시아가 싫어할 겁니다.”

     “하.”

     어처구니가 없다.

     “자신이 불리하다 싶으니 아스타시아를 들먹이면 제가 그냥 넘어줄 것처럼 생각하시나본데, 아스타시아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대머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무슨 미친 소리를.”

     “황금을 밝히면 대머리가 되는 겁니다, 그레이 경. 탐욕에 대한 욕망은 지브롤터의 피로도 이겨낼 수 없겠죠.”

     “…….”

     할 말은 많지만, 나는 말을 아꼈다.

     금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챙겨보려고 하는 게 추한 발악처럼 보인다면, 그냥 인정하고 포기하는 수밖에.

     “나리아. 제가 직접 개조한 마도소총까지 가져갔잖습니까. 이거 금 다 합쳐봐야 100kg 안 나올 겁니다. 수습하고 정리하는데 들어가는 인적 비용도 상당할 거고.”

     “…….”

     “쳇. 알았습니다. 반으로 나누죠. 대신 입 다무는 겁니다. 이거, 어차피 공식적으로 처리하지도 못하는 겁니다.”

     나는 비쩍 마른 상태로 목이 잘린 언데드 하나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이런 게 세상에 드러나면 두 가지 국가적 혼란이 생길 겁니다. 하나는 언데드가 돌아다닌다는 혼란 그 자체. 다른 하나는….”

     “개나소나 묘를 파내느라 난리가 아니겠군요.”

     “그런 거죠.”

     시체의 몸에 황금이 흐른다.

     피가 황금으로 변하여, 죽은 사람이 황금의 힘으로 움직인다.

     혹시 심장을 꺼낸다면 그 심장이 황금으로 변한 게 아닐까?

     온갖 곳에서 시체가 발견될 것이며, 심장 부근이 열린 채 황금인지 아닌지 확인한 흔적이 가득할 것이다.

     “지브롤터로서는 악재 중의 악재가 되겠군요.”

     “제가요?”

     “바르셀로나에 있는 금맥을 건드린 것에 대한 수호룡의 저주라고 사람들이 인식하지 않겠습니까?”

     “미신이라고 하기에는 확실히 눈에 보이는 시각적 충격이 상당하기는 하죠.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날 거고, 설령 아니더라도 정적들은 그렇게 지껄일 겁니다.”

     나는 나리아와 그 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당신의 아래에 있는 수많은 충성병자들이.”

     “그들은 충성병자들이 아닙니다. 차기 국왕을 밀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주의자들이죠.”

     “그런 자들이 당신에게 감화되어, 당신만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겠다는 친위대가 되면 그게 충성병자가 되는 셈이죠.”

     “그들에게 던져주기 딱 좋은 게 이거 아닙니까?”

     

     나리아는 아래로 몸을 숙여 팔 하나를 덥썩 집어들었다.

     “아니, 그.”

     “괜찮습니다. 시체라고 생각하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안에 황금이 들었다고 하면 또 이게 느낌이 그래서.”

     “하아….”

     “포기하세요, 그레이 경. 이 많은 황금을 혼자 먹으려고 하면 배탈 납니다.”

     “나리아 여왕님.”

     잠시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가 그저 황금을 비자금 조성을 위해서 먹으려고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줄 아십니까?”

     “그러면요?”

     “이들이 어디에서 왔고, 정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몸 속에 황금이 흐르는 걸로 이렇게 오래 땅속에 묻혀있던 것 같은 시체들이 비밀통로를 기어들어왔으며….”

     따질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이거, 나리아 여왕님이 제일 먼저 머스킷-”

     “마탄이 2호.”

     “…마탄이 2호를 쐈을 때, 가장 먼저 미간부터 터진 언데드부터 시작하여 하나같이 전부 하관이나 생김새가 죄다 바르셀 후작가의 인간들과 닮아있는 건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이 비밀통로로 지금에서야 나타난 건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레이 경.”

     나리아는 팔을 아래로 툭툭 휘둘렀고, 안에서 이제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하는 금덩어리가 핏방울처럼 잘린 단면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때로는 황금의 출처를 묻지 않는 게 현명할 때도 있습니다.”

     “하아, 나리아.”

     “황제의 짓입니까?”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그러면 그냥 속 편하게 생각하세요. 이 짓을 저지른 범인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다.”

     나리아는 언데드의 몸통을 발로 굴리더니, 곧 몸통의 심장 부위를 발로 쿡쿡 누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유능할정도로 무능한 국왕 전하께서 시신을 훔치기 위해 흑마법에도 기어이 손을 대시어, 이렇게 후작가의 비밀통로를 통해 황금을 채운 언데드를 보내어 지브롤터를 괴롭히려고 했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

     “표정이 딱 그렇게 묻는 것 같군요. 아니, 세상에 이렇게 쉽게 제압당하는 언데드에 그냥 마석도 아니고 황금을 집어넣어서 보내는 머저리가 어디에 있는가.”

     “예.”

     “여기 있잖습니까.”

     “…….”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라는 이름 앞에, 상식은 없습니다. 그레이 경. 아니면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고.”

     나리아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자신의 목덜미를 손등으로 쓱 문질렀다.

     “지금의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게 있어 이런 곳에 쓰인 황금은 죽은 시체를 조종하는데 쓰이는 마석의 대용만도 못한 가치인 겁니다.”

     “나리아.”

     “그 자에게는 현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잠시 나리아가 씁쓸하게 웃었지만, 곧 몸을 일으키며 복도의 끝을 가리켰다.

     “계속 적이 들어올 것 같지도 않으니, 슬슬 여기로 사람 데려와서 수습하는 걸로 하죠. 시간을 너무 지체했습니다.”

     “…수습하는 건 수습하는 건데, 일단 불러오는 사람을 좀 선택을 해야겠군요.”

     “누구를 부르시려고…?”

     “이런 쪽으로는 빠삭하게 알 것 같은 사람.”

     연금술이라면 몰라도, 이런 마법과도 같은 일에는 그 사람이 제격이다.

     “마침 누아르도 지금쯤 도착했을 시간이니까요.”

     누아르의 옆에는 이런 쪽으로 빠삭하게 알고 있을 사람이 하나 있다.

     정정.

     엘프.

     

     * * *

     약 30분 뒤.

     “[에스클라보 디 오로].”

     “예?”

     “황금의 노예라는 뜻이다. 골드 드래곤이 자기 레어를 지키기 위해 부리던 언데드들을 일컫는 말이었지.”

     양갈래머리에 아카데미 제복을 입은 수수께끼의 미소녀…를 연기하며 누아르를 지켜주고 있던 백금경 에이페리아가 자신의 검은색 제복을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골드드래곤은 자신의 레어를 지키기 위해 영원히 먹고 자지 않아도 되는 수호자들을 마법으로 부렸다.”

     “시체를 말입니까?”

     “정당한 계약에 따른 것이었지. 살아생전에는 부귀영화를 누린 대신, 죽음 이후의 시체에 대한 권리를 드래곤이 가지는 방식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지금 이게….”

     “골드드래곤의 것이 아니다. 아마도 저기 여왕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현 국왕의 짓이 아니겠더냐.”

     백금경은 발자크 남작의 관 옆에 기대어 선 나리아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예법은 생략하겠네. 나는 백금경. 숲을 지키는 엘프들의 최고장로지.”

     “노스트럼의 공동왕,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입니다. 내년이면 단독으로 여왕이 될 사람이죠.”

     “과연. 포부 하나는 당차군.”

     내년이면 혼자서 왕이 될 것이다.

     그 말 하나만으로도 이미 나리아가 속에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명백했다.

     “학생회장으로서 볼 때도 느낀 거지만, 확실히 당차서 좋아. 그 의지를 잃지 말게. 우리 엘프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계속 왕의 자리에 있으면 상당히 곤란하거든.”

     “엘프들에게도 뭔가 사고를 친 적이 있습니까?”

     “엘프의 숲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네. 정확히는 부하들을 보내서 엘프를 만나려고 했던 것 같았지.”

     백금경은 자신의 트윈테일을 양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외적으로는 그냥 ‘엘프가 그렇게 예쁘다던데’라고 하면서 한 번 만나보려고 했다거나 그런 말이 들려서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 같아.”

     “무슨 목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 그대와 같지 않겠나? 엘프와 만나서 무언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마법과도 같은 기적의 실존에 대해 물어보려고 한 걸수도.”

     백금경은 나리아를 의식하며 옅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여튼 그런 것보다 지금 이 황금의 노예들 말이네만, 이거 아무에게나 사용할 수는 없는 기적으로 알고 있네. 계약자의 가문…어, 그러니까….”

     “바르셀?”

     “그래. 바르셀이라는 자의 피를 이어받은 자만이 이렇게 죽어서도 노예가 되어 술자의 의지에 따라 시신이 움직이게 되는 셈이지. 시체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보시다시피, 황금.”

     “계약을 계속 대를 이어 갱신한 게 아니라면, 바르셀이라는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후손들은 황금의 노예가 되는 겁니까?”

     “그렇지. 그 대신, 대대로 바르셀 후작가는 왕가에 충성하며 후광을 누리지 않았나. 황금여명으로서. 지금은 대가 끊긴셈이나 마찬가지지만. 후후후.”

     500년,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길었을 지도 모르는 바르셀 가문은 끝났다.

     아직 그 피가 이어진 이도 있겠지만-

     “백금경. 렘부르 군터 남작이 혹시 이 황금의 노예라는 게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까?”

     

     나리아의 질문에 나는 바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리아. 그 무슨 끔찍한 소리를.”

     “가능성이라고 해도,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 지브롤터의 핏줄 자체에는 바르셀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지만, 렘부르 군터는 또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죽어서도 민폐 그 자체로군요. 발자크 남작은.”

     만일 나리아의 걱정대로라고 한다면, 이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나와 내 동생들, 그리고 어머니의 피에 바르셀의 피가 섞여 몸 속에 황금이 흐르는 언데드가 되어버린다면-

     “끔찍한 일이군요. 몸 속에 있는 피 중 바르셀의 피만 따로 빼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직 바르셀의 피가 섞였다고 단정할 수도 없으니,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네. …여왕님은 다른 쪽으로 생각하고 있는듯 하네만.”

     백금경이 어깨를 으쓱이며, 생각에 잠긴 나리아를 가리켰다.

     “백금경.”

     “무엇이 궁금한가, 여왕?”

     “이 황금의 노예라는 거 말입니다, 죽고 난 뒤에 몸 속에 피 대신 황금을 집어넣어 부활시킬 수 있는 거잖습니까?”

     “그렇지?”

     “그렇다면, 실제 살아있을 때처럼 다룰 수도 있는 겁니까?”

     어딘가.

     “영원히 죽지 않는, 나의 사람처럼?”

     나리아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빛이 어딘가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꾼과도 같았으나, 나는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어딜 죽은 사람을 강제로 일으켜세워서 노예로 써먹으려고 하십니까?”

     “그레이 경.”

     “불태울 겁니다. 차라리 뼛가루가 되어서 피 한 방울 흐르지 않게 만들고 말지.”

     ….

     ….

     잠시 뒤.

     화륵. 

     우리는 약 60kg의 불순물 좀 섞인 황금을 손에 넣었다.

     “…이런 암살자면 좀 더 보내줘도 되는데.”

     제국 암살자는 죽어서 백은을 뿌리던데, 왕국 암살자는 황금을 뿌린다.

     “위대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께.”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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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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