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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4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흐르는 시간 동안 크라슈는 내면에 깃든 백룡왕의 힘에 집중했다.

     

   [ 백룡왕의 힘을 완벽히 흡수하려면 환골탈태(換骨奪胎)가 필요할 거다. ]

     

   처음에는 무슨 생각으로 용왕족의 힘을 흡수하려 드는 거냐고 크림슨가든에게 혼이 났던 크라슈였으나.

   시간이 흐르고, 결국 크림슨가든도 한숨을 내쉰 뒤.

   크라슈가 백룡왕의 힘을 흡수하는 것을 도왔다.

     

   [ 이걸 완벽히 흡수하게 된다면 너는 이제 사실상 인간이 아니게 될 텐데 괜찮느냐. ]

   “세계 침식의 힘을 흡수한 시점에서 새삼스럽네.”

     

   인제 와서 그런 걸 걱정하냐며 크라슈가 짧게 웃었다.

   그러자 크림슨가든은 크라슈의 머리를 콱콱 짓밟았다.

     

   [ 내가 말하는 건 네가 원하는 바를 이룬 뒤에 세계의 이야기다. ]

     

   멸망에서 지켜내고 난 뒤에 세계.

   그곳에서 과연 크라슈는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까.

     

   그의 몸에는 수많은 저주와 세계 침식의 힘, 거기에 용왕족의 힘까지 깃들어 있다.

   거기에 다른 용왕족과 같이 한때 불사를 희망했던 크림슨가든의 불사까지.

     

   그러한 모든 것들을 지닌 크라슈는 언젠가 사람들에게 기피 대상이 될지도 몰랐다.

     

   [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극히 싫어한다. 각인된 특성이지. ]

     

   다른 존재를 용납하는 순간 그 존재가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을 두려워하기에.

   인간은 끝도 없이 다른 존재를 부정하고, 지우려 한다.

     

   온전히 이 세계에 자신들만이 존재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 같은 녀석도 있잖냐.”

     

   크림슨가든과 에벨아스크.

   이러한 두 사람과 어울려 지내는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자 크림슨가든은 더더욱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 너 같은 녀석이 있는 게 문제인 게다. 무심코, 다른 이들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착각에 빠지게 하곤 하니까. ]

     

   크라슈는 크림슨가든의 삶을 전부 알지는 못한다.

   단지, 그녀의 끝이 아서에 의해 모든 종을 잃고, 용암 속에서 영원히 녹아들었다는 것뿐.

     

   그러니 크라슈는 그녀의 말을 곱씹은 채 덤덤히 웃었다.

     

   “돌아갈 생각도 없고, 이미 돌아가기에는 많이 늦었다는 건 너도 알잖냐.”

   [ ……조금은 뒤를 생각하고 살면 안 되겠느냐? ]

   “뒤를 생각하니까. 이렇게 사는 거야.”

     

   그 뒷편의 세계를 보기 위해.

   크라슈는 오늘을 가장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크림슨가든도 그걸 모르지 않았기에 핀잔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 알았다. 당분간 틀어박혀서 밖에 나갈 생각은 하지도 말거라. ]

   “나야, 환영이지.”

     

   익시온의 계획을 부수기 위해서라도 크라슈는 반드시 용왕족의 힘을 온전히 흡수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크라슈는 크림슨가든의 이야기를 오히려 환영했다.

     

   그렇게 크라슈는 폐관 수련하고자 걸음을 옮길 때였다.

     

   저 앞 익숙한 머리색이 하나 보였다.

   바다 빛의 머리카락.

     

   원래라면 크라슈가 가장 싫어하던 색 중 하나였으나.

   이제는 다른 인물 덕분에 괜찮아진 색이기도 했다.

     

   “시즐리.”

     

   크라슈가 그 이름을 부르자 저쪽에서도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로 무학관까지 찾아왔냐.”

     

   이곳은 무학관 건물인 만큼.

   그녀가 만나러 올 만한 사람은 정해져 있었지만, 크라슈는 장난을 섞으며 물었다.

     

   질문을 들은 시즐리는 한차례 웃음을 흘렸다.

     

   “누굴 만나러 오긴 내 낭군님을 만나러 온 게지.”

     

   다음 말을 듣고 크라슈가 기막힌 반응을 보였다.

   시즐리도 크라슈의 반응을 예상했던 만큼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겠느냐. 황가에서 제멋대로 진행 시켜버린 일인걸. 무려, 황제 공인으로 해버린 일이라 사실 나도 이쪽은 어쩔 도리가 없다.”

     

   시즐리는 조금 미안한 듯이 옆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시즐리의 말대로 이번 일은 순전히 권력에 의한 불가항력이었다.

     

   크라슈가 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제국과 발하임을 한 번에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밀어붙여진 약혼은 어떤 식이든 체결될 수밖에 없겠지.

   시즐리도 크라슈와 마찬가지로 폭탄을 맞은 셈이었다.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어. 미안해.”

     

   일을 저지른 당사자는 크라슈인 만큼.

   휘말린 시즐리에게 사과하자 시즐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이내 키득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이런 거에도 책임감을 느끼는 게냐?”

   “저지른 짓이 있으니까.”

     

   크라슈의 말을 들은 시즐리는 흐응 하는 콧소리를 한차례 내었다.

   그러고는 한 발짝 크라슈에게 더 다가오며 눈꼬리를 휘었다.

     

   “그러면 나도 책임져 주는 게냐?”

   “……혼자서도 잘 사는 녀석을 책임질 필요가 있기나 하냐?”

   “내 사정이 이렇지 않으냐. 이대로 약혼이 파기 된다면 제국에서도 구박만 잔뜩 받을 테고.”

     

   시즐리는 자신의 처지가 불쌍하다는 듯 눈가에 손을 올리며 우는 척을 했다.

     

   제국에서 한자리할 생각 따위 하나도 없어 황제 다툼에서도 손을 뺀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그래서 나랑 약혼해서 결혼이라도 하겠다고?”

     

   크라슈의 말을 들은 시즐리는 우쭐거리며 가슴을 폈다.

     

   “이래 봬도 외모 하나는 귀엽게 태어나지 않았느냐. 게다가 머리도 좋으니 어련히 내조도 할 테고, 데리고 살기에는 최고지 않느냐?”

     

   무슨 자기 어필이람.

     

   크라슈가 황당한 눈으로 시즐리를 바라보았다.

   시즐리도 조금은 부끄럽긴 한 듯 헛기침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거라. 단지, 크라슈 너와 사는 게 꽤나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라 그런 게다.”

     

   시즐리는 조금 씁쓸한 눈과 함께 자기 팔을 손으로 감싸 안았다.

     

   “나는 제국에 있을 곳이 없으니까.”

     

   시즐리는 제국을 아낀다.

   그러나 제국은 그녀에게 늘 자리를 주지 않는다.

     

   타고나기를 유약한 육체와 황족의 막내라는 점이 늘 그녀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시즐리의 머리라면 그러한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 터이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면 제국이 분열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렇게 사느니 제국을 떠나는 것도 괜찮지 않더냐?”

     

   성녀, 아스트리아도 그렇고.

   염제, 아슬란도 그렇고.

   약혼자인 비앙카까지.

     

   어째 주변에 있는 녀석들이 죄다 자기 살 곳을 버리는 느낌인데.

     

   ‘왜 죄다 인생이 반푼이인지.’

     

   갈 곳 없는 녀석들을 거두는 보호자가 된 기분과 함께 크라슈는 한숨을 쉬었다.

     

   “연기는 정도껏 해라.”

   “티 났느냐?”

     

   시즐리는 딱히 제국에 있을 곳이 없다고 해도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니 크라슈는 그녀의 거짓말을 금세 눈치챘다.

     

   그때 어느새 크라슈의 코앞까지 시즐리가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시트러스 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시즐리는 항상 짓는 잔망스러운 웃음과 함께 크라슈의 가슴팍을 검지로 툭 두드렸다.

     

   “그래도 방금 한 말 중에 장난만 섞여 있는 건 아니란 걸 알아주거라.”

     

   크라슈와 함께 사는 것이 나쁘지는 않겠다.

   이것만큼은 진심이었다.

     

   “네 옆자리를 꿰차는 것도 재밌을 거 같긴 하지만 딱히 그냥 있을 곳만 만들어 줘도 신경은 안 쓰니 말이다.”

     

   옆에 있는 약혼자 자리까지 꿰찰 생각은 없는 걸 알아두라며 시즐리는 한걸음 물러섰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크라슈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얼마 전에 아스트리아의 건도 있었고, 시즐리 건에도 책임은 있다.

     

   “……최소한 나 몰라라 하지는 않을 거다.”

     

   크라슈라고 해서 마냥 내버려 둔다는 생각은 없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굴러가고 있으니 언젠가 해결책을 내야겠지.

     

   ‘아서 놈도 같은 기분이었던 건가.’

     

   왜 아서가 세 명의 여성을 꾸렸는지 어렴풋이 알 거 같기도 했다.

   문제는 그 선택이 크라슈가 보기에 한참 잘못된 거라는 점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내 곁에 있는 이들이.’

     

   아서의 눈에는 가장 반푼이 같은 이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같은 동류의 사람과 모인다더니.’

     

   나원.

   스스로의 상황을 곱씹으며 크라슈가 헛웃음을 흘렸을 때였다.

     

   또각-

     

   복도 끝에서 또 다른 발소리 하나가 울려 퍼졌다.

   크라슈와 시즐리의 고개가 동시에 그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거기에 나타난 것은 시즐리와 같은 바다 빛의 머리카락이었다.

   그러나 그 머리카락과 마주한 크라슈의 눈은 곧바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시그린.”

     

   그 이름을 꺼낸 순간 그녀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어 섰다.

     

   늘 당당하기 짝이 없던 얼굴과는 다르게 시그린의 얼굴은 오늘따라 많이 상해 있었다.

     

   최근 들어 불면증이 생긴 그녀는 거의 잠을 자지 못한 탓에 눈두덩이 두 개가 퀭한 상태였고, 피부도 꽤나 푸석푸석해졌다.

     

   하지만 흘러나오는 기운 만큼은 예전보다도 더욱 거세졌다.

   크라슈의 눈동자가 미묘하게 떠졌다.

     

   ‘이 녀석.’

     

   불면증에 걸린 시간 동안.

   시그린은 도피하듯이 자신의 단련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백룡의 기세가 훨씬 더 강해져 있었다.

     

   ‘일부러 알을 깨고 있다.’

     

   크라슈가 훔쳐 온 건 황제의 알뿐이었으니.

   시그린의 몸속에는 여전히 백룡왕의 알이 남아 있다.

     

   그러니 그녀는 자기 몸속에 있는 알을 일부러 깨어 내부에 담긴 백룡왕의 힘을 끌어내고 있었다.

     

   자칫하면 백석증을 앞당기는 자살 행위와도 같은 짓인데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곧 그만큼 그녀가 내몰려 있다는 소리기도 했다.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세상은 그녀를 비추지 않았다.

   오히려 자꾸만 자신의 것을 빼앗겨 가는 시그린은 초조함에 빠졌고, 결국 백룡왕의 힘까지 손대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미 크라슈가 삼켜 버린 빈껍데기인 것도 모른 채 말이다.

     

   “…….”

     

   들어 올린 고개와 함께 시그린이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퀭한 그녀의 눈동자는 이내 천천히 시즐리에게 닿았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자 그녀의 눈에 확신이 차며 서서히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너, 따위가.”

     

   으드득 이가 갈린 시그린의 눈동자가 분노로 들끓었다.

   크라슈는 곧장 그녀의 분노 출처를 눈치챘다.

     

   시즐리와의 약혼 소식.

   그 소식에 관해 시그린 또한 들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시그린의 눈에서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시즐리와 크라슈가 식을 올리는 순간.

   크라슈는 황가의 가족이 되어 버린다.

     

   하물며 그의 자식은 황가의 계승권까지 얻을 수 있는 마당.

   최근에 병세를 회복한 황제가 직접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문까지 있다.

     

   그래서일까.

   지금 시그린의 눈에 비춘 크라슈는 자신은 물론 아서의 것까지 모두 앗아 가고 있는 파렴치한 인물로 보였다.

     

   “이건, 이 전부는 아서 님의……!”

   “언니?”

     

   소리치려던 시그린이 시즐리의 목소리를 듣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불면증과 피로로 인해 눈에 뵈는 게 없어진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을 너무 드러냈음을 깨달았다.

     

   “윽.”

     

   시그린이 침음을 삼키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는 스스로 언제 여기 왔는지 자각이 없을 정도로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저번 첫 학생단 대항전 이후로 그녀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녀 스스로도 자각이 있었으나 자각을 한다 한들 악화한 정신 상태가 회복되는 건 아니었다.

     

   “시그린 님.”

     

   그때 크라슈가 시그린을 불렀다.

   그녀가 흠칫하며 고개를 들자 크라슈는 친절함 섞인 미소를 지었다.

     

   마치, 회귀의 기억이 없는 것처럼 천연덕스러운 웃음이라 시그린의 머리를 더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많이 피곤하신 듯하신데. 방으로 돌아가 조금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쉬라고?”

     

   시그린이 멍하니 크라슈의 말을 중얼거렸다.

     

   쉬라고.

   누가 자신한테 살면서 쉬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평생토록 위로 올라가기 위해 자신을 뽐내던 시그린은 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

   무척이나 기분 나쁜 감정이 서서히 머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그러한 감정이 전신으로 뻗어 나가자 손끝과 발끝이 저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크라슈가 내뱉은 단순한 쉬라는 말 하나가 그녀의 기분을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마치, 자신이 이 세상에 필요 없다고 고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씨발.”

     

   평소 고운 말만을 쓰던 시그린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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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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