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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5

       “이번 세계수 견학 때 학생들을 인솔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세실의 부탁에 에테르의 움직임이 멎었다.

       

       “기숙사 옥상에서 하셨던 말씀이시군요.”

       

       이건 함정이다.

       

       세계수로 유인한 뒤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곧장 죽여버리려는 속셈이다.

       

       여기서 옳다구나, 하고 미끼를 문다면 곧바로 낚여버리고 말 것이다.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에테르는 흐흐, 하고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저는 자격이 안 됩니다.”

       “선생님, 아스테야 선생님이 아니시면 맡으실 분이 없어요.”

       

       세실 총장은 두 손을 모아 간청했다.

       

       이것 봐라?

       

       “대륙 최고의 아카데미인데 저 말고 인솔할 분이 없으시다니요?”

       “원래 담당자가 계셨지만, 리바이어던의 습격으로 인해 일부는 돌아가시고 일부는 중태에 빠지셨어요.”

       “저런.”

       

       에테르는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를 지내는 입장으로서 영가들을 위하여 잠시 묵상을 올리겠습니다.”

       

       고개를 숙이자 세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에테르는 슬쩍 눈을 굴려 그 미묘한 표정 변화를 잡아냈다.

       

       “그래도 저는 어렵습니다.”

       “이유를 여쭈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에테르가 급조한 거절 이유는 총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제가 아직 미숙한 신임 교수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제가 마수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임이기 때문에 세계수 영접에서 많은 사람의 눈총을 살 수 있었다.

       

       또한 에테르가 정말 마수라면, 세실은 총장으로서 큰 과오를 범하는 것이 된다. 적을 아군 본진에 데려다 놓는 것이었으니까.

       

       “특히 두 번째, 제가 만약 마수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스테야 선생님.”

       

       세실의 눈동자가 사색으로 빛났다.

       

       “선생님께선 꼭 자신이 로드스톤을 찬탈하실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제가 정말 그런다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눈동자와 눈동자가 맞붙었다.

       

       잠시간의 정적. 그 사이에 두 사람은 서로를 훑었다. 에테르는 세실의 의중을, 세실은 에테르의 의중을 파악하는 듯 보였다.

       

       먼저 고개를 돌린 건 세실이었다.

       

       “선생님께서 정녕 마수였다면 애당초 그 말을 꺼내지 않았을 거예요.”

       “혹시 모르지요. 상상 이상의 고단수일 수도.”

       

       에테르는 비릿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어떤 악의도 내비치지 않았다. 세실의 정령들을 자극하는 일은 없었으리라.

       

       “제가 마수였다면 이 자리에서 진실을 거짓처럼 고해 총장님의 안심을 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총장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툭, 툭.

       

       세실이 에테르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제 눈은 사람과 괴물을 분간할 수 있거든요.”

       

       그 말에는 묘한 확신이 담겨있었다.

       

       에테르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사람과 괴물을 분간해? 그렇다면 어디 한번 해 보라지.

       

       세실은 이러쿵저러쿵 말을 꺼내며 에테르를 세계수 견학의 인솔자로 세우려고 했다. 에테르는 몇 번 더 거절한 뒤에야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세실은 환히 웃으며 다음에 보자고 손을 흔들었다.

       

       “아, 그리고 말이에요.”

       

       가기 전, 세실이 뒤를 돌아보며 입을 샐긋거렸다.

       

       “원래 교수도 마수의 일종이랍니다.”

       “…재미있는 농담이십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세실이 떠나기 무섭게 에테르는 입가에 침을 발랐다. 차게 식은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목이 턱턱 막혀왔다.

       

       “보통 머리가 아닌데?”

       “아카샤.”

       

       반대편 벽 뒤에 숨어있던 아카샤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이. 그녀가 쿡쿡 웃으며 곁으로 다가왔다.

       

       “언니는 저 사람의 의중이 뭔지 알겠어?”

       “알다마다.”

       

       자신을 떠보려는 것이다.

       

       “내가 인간이면 학생들을 별 탈 없이 인솔하고 돌아오겠지.”

       “아니라면?”

       “내가 마수라면 로드스톤에 조금이라도 접근하려 한다 생각할 테고….”

       

       그 경우에는 시나리오가 뻔했다.

       

       “…르네이 총장은 정령을 매복해 두었다가 때를 봐서 날 죽이려고 할 거다.”

       

       인간으로 믿는 것이냐, 마수로서 의심하는 것이냐.

       

       선택의 갈래는 두 가지였다.

       

       “총장이 저런 의심을 품게 만든 거, 일부러 그런 거 아냐?”

       “맞아.”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의중을 알아맞히는 것도 귀신같다.

       

       에테르는 인간으로서 신뢰받을 행동과 마수로서 의심받을 행동 모두를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서 했다.

       

       유피엘과 레니냐가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엘프족을 절멸하고 싶다는 악의를 내비친 것.

       

       그러나 그런 악의는 금안족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나온 것이었고, 이에 세실은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의심하게 되었다.

       

       게다가 지향등을 깜빡인 지 얼마 안 되어 폭우가 멈추었으니.

       

       “그때 자세히 못 봐서 그런데, 정확히 무슨 신호를 주고받은 거야?”

       “알면 다쳐.”

       

       에테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호를 주고받을 때 리바이어던은 천둥을 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암호를 해석한 결과가 사실이라면, 머리가 조금 아파진다.

       

       “우선 세계수에 들어가더라도 로드스톤엔 손을 대지 않을 계획이다.”

       

       마시멜로도 참았다가 나중에 노릇하게 구워먹는 것이 맛있는 법.

       

       굳이 날것으로 손을 댔다가 배탈이 나는 건 사양이다. 어차피 원래 계획은 원자폭탄을 사용하는 것이었으니, 에테르는 본진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

       

       

       마왕성 내부.

       

       긴급 팩스에서 종이 한 장이 출력되고 있었다.

       

       [해룡은 들어라.]

       – 말씀하십시오.

       

       [상천(上天)의 이름으로 고하니, 즉각 해일과 폭우를 중단하라.]

       – 호천께서 명령하신 것이니, 저는 따를 뿐입니다.

       

       [아직 일리야드를 칠 때가 아니다.]

       – 호천께선 지금이 적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각 멈추지 않는다면 군법에 의하여 엄중하게 처벌하겠다.]

       – 알겠습니다.

       

       [그리고 창천과 호천에게 보고하라.]

       – 말씀하십시오.

       

       [이 이상 내 임무를 방해하면 뒈진다고.]

       – 알겠습니다.

       

       일련의 대화 기록이었다. 수신자는 상천이었으며, 답신자는 구천 중 말예를 담당하는 누군가였다.

       

       갈고리팔을 한 남자는 그 기록을 두 눈으로 읽으며 폭소를 터뜨렸다.

       

       “그 천한 년이 이런 소리를 했다, 이 말이죠?”

       

       남자의 이름은 길라흐.

       

       ‘교월’이라는 이명을 지닌 마왕군 최고간부 중 한 명이었다.

       

       길라흐는 하염없이 웃다가, 곧 미소를 거두었다. 그의 얼굴에 우중충한 먹구름이 드리웠다.

       

       “감히 내 노예를 빼앗아 간 걸로도 모자라, 이젠 공적까지 혼자 처먹으려고 해?”

       

       촤아악─!!

       

       인쇄된 종이가 무차별하게 찢어진다. 콰앙! 길라흐는 책상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팩스와 데스크가 한순간에 작살났다.

       

       참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길라흐는 양쪽 팔을 휘두르며 팩스기를 수십 조각으로 잘라냈다.

       

       “꼬챙이로 꿰면 뼈도 못 추릴 년이, 감히 제 분수도 모르고 설쳐─!!”

       “진정 좀 하게, 호천.”

       “제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또 다른 사천인 파스모가 끌끌거리며 웃었다.

       

       “자네 그 불같은 성격이 언젠가 화를 자초할 수도 있어. 지금부터라도 삭이는 연습을 하는 게 좋을 게야.”

       

       파스모는 기다란 팔로 길라흐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위로인지, 아니면 볶아대는 건지.

       

       “자네와 상천은 모든 면에서 다르지 않나.”

       

       길라흐는 하이엘프 출신이었고, 에테르는 미천한 부랑아 출신이었다.

       

       길라흐는 잔학무도하고, 에테르는 포로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또한 길라흐는 무(武)에 출중한 반면, 에테르는 문(文)에 뛰어났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건 당연하지.”

       “창천, 대체 무얼 말하고 싶은 겁니까.”

       “상천이 자네 노예를 강탈한 것도 모자라 리바이어던의 공격도 갑작스레 중지시켰다는 것에서 화가 났다는 건 아네.”

       

       이번 리바이어던의 공세는 호천이 지시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는 상천이 마왕님을 부활시키는 공적을 독식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기껏 정이 있어서 도와주려 했거니만, 설마 알아차리고 해룡을 물리게 했을 줄이야.

       

       “저는 그것 때문에 누구 하나 죽이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군요.”

       “그렇다면 죽이게.”

       “…흐흠?”

       

       길라흐의 기다란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갔다. 파스모도 따라서 씩 웃었다.

       

       “자네, 갑작스럽지만 자네에게만 알려줄 비밀이 있어.”

       “말씀해 보십쇼.”

       “마왕님께서 정말 정령왕과 여신에게 토벌당하여 로드스톤에 갇히셨다고 생각하나?”

       

       그 말을 들은 길라흐의 눈동자가 보름달처럼 커졌다.

       

       “창천, 갑자기 뭔 뚱딴지같은 소립니까?”

       “어휴, 일단 들어보게. 내 말은, 전계의 정령왕 자리를 찬탈하신 주군께서 감히 다른 정령왕을 못 이기셨을 것인가….”

       “흐흠?”

       

       자신도 봉인당할 때 그 점이 이상하긴 했다.

       

       사천이라도 정령왕은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마왕은 압도적인 지력과 무력을 보유했다. 하여 전계의 정령왕을 정면에서 먹어치우고, 그 자리를 찬탈했다.

       

       “생각해 보게. 마왕님께선 전계정령왕의 능력을 얻으셨네. 본연의 능력에 그만큼이 더해졌으니, 대전쟁 당시 얼마나 강하셨겠나?”

       “그렇다면 왜 그때…….”

       “일부러 봉인되신 거지.”

       

       설명을 들은 길라흐는 입맛을 다셨다. 그가 크게 놀랄 때 보이는 습관이었다.

       

       “그걸 왜 지금 말씀해 주시는 겁니까?”

       “원래 이건 마왕님께서 나에게 함구하라고 하셨어. 절대로 정보가 새어 나가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말이야.”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괜찮다.

       

       로드스톤을 하나만 얻으면 되는 상황. 심지어 얻는 것조차도 기정사실이다.

       

       사천들이 설렁설렁 하더라도, 마왕 정도의 치밀함이라면 무조건 부활할 수밖에 없는 장치를 마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봉인석은 이미 마왕님의 지배하에 있겠군요.”

       “호천답지 않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누군가가 워밍업을 시켜 놓았으니까 말이죠. 흐하하하!!”

       

       결론은 간단했다.

       

       에테르가 애를 써 봤자다. 그녀가 공적을 치하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왕님께선 상천이 있든 말든, 우리가 움직이든 말든 필연적으로 부활하실 걸세.”

       “언제 말입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다만,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네.”

       

       그게 과연 언제일까.

       

       길라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파스모와의 대화를 반추하던 때였다.

       

       “아, 그렇군요!”

       

       이제야 알겠다.

       

       “주군께선 정령왕 따위 안중에도 없으셨던 겁니다!”

       “그래! 계속해 보게!”

       “여신.”

       

       마왕께선 여신의 죽음을 노리고 계시다.

       

       “신을 절멸하실 계획이십니다!”

       “그래. 그 정도의 힘을 얻으려면 누굴 잡아 드셔야 하지?”

       

       길라흐는 눈동자를 뒤룩 굴렸다. 입은 슬쩍 벌어졌고, 광대는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분노는 온데간데없고,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그야 상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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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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