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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5

        

         

       “사제시라고?”

       “그렇습니다. 성공회 윈체스터 교구(Diocese Of Winchester)에서 교구장이라는 과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허.”

         

       교구장 주교(Episcopus Dioecesanus).

       결코 낮은 위치가 아니었다.

       아니, 낮은 정도가 아니라 위에서 세는 것이 빠를 정도의 위치였다.

         

       윈체스터 교구는 세가 많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오래된 교구 중 하나였고, 그 영향력이 아직 남아있는 곳이었다. 당연하게도 윈체스터 교구장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토마스 역시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리라.

         

       “윈체스터 교구장이라…. 대단한 분이 오셨구려.”

       “그렇지 않습니다. 신 아래 존재하는 이들일 뿐인데 어찌 그사이에 높고 낮음이 있겠습니까?”

         

       토마스는 송구스럽다는 듯 자신을 한껏 낮췄다.

       자신은 그저 신의 말씀을 전하는 존재일 뿐이라고.

       신의 앞에 서면 그저 심판받을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이 짜증 났던 것일까?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모리스가 툭 말을 던졌다.

         

       “영국 성공회 서열 6위가 그런 말을 하니 참 설득력이 없습니다.”

         

       서열 6위.

         

       그 말을 듣자 모두의 시선이 달라졌다.

       겸손함을 뽐내는 성직자에서, 성직자의 이름을 걸고 있는 권력자를 보는 시선으로 말이다.

         

       “그저 보잘것없는 재주가 있어 그 자리에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토마스는 모두의 시선이 바뀐 것을 눈치챘음에도 겸손하게 몸을 낮췄다.

       아니, 되려 자신을 그저 성직자로 보이게 하려는 듯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소탈하게 다가갔다. 그는 장영철과 이양훈에게 악수를 청한 뒤 그들에게 명함을 받았고, 이윽고 모리스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모리스는 토마스가 오는 것이 꺼려졌는지 그가 일정 범위에 들어오자 슬쩍 뒤로 물러나 그와 멀어졌고, 그것을 눈치챈 토마스는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섰다. 그리곤 미소를 지은 채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런. 혹시 제가 불편하신지요?”

       “우문(愚問)이로군요.”

         

       모리스는 딱딱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신성술사의 접근을 어찌 달가워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신성술사.

       그 단어가 나오자 토마스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요.”

       “알면 되었습니다. 몸에 풍기는 피 냄새 때문에 제가 부리는 것들이 흥분할 것 같으니, 제 주위로는 다가오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토마스는 알겠다는 듯 그에게서 멀어졌다.

       그를 존중해주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토마스가 순순히 뒤로 물러났음에도 모리스는 토마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음흉한 신성술사 녀석.’

         

       신성술사와 강령술사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

         

       종교의 가르침이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다.

         

       ‘강령술사에게 신성술사가 다가가면 어떻게 되는지 뻔히 알 텐데.’

         

       강령술사는 죽은 자를 다룬다.

       그것도 귀(鬼)와 영(靈)을 다루고, 혼(魂)과 백(魄)을 다룬다.

       그들을 말로 구슬려서 데리고 다니기도 하고, 강압적으로 꿇려서 데리고 다니기도 하며, 자아를 거의 잃어버린 망령(亡靈)을 도구처럼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넋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날수록 더욱 강한 넋을 부리고 다닐 수 있게 되며, 악령과 악귀를 사역하고 끝내 대악령과 대악귀마저 데리고 다닐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넋은 사람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넋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아가 희미하게 변하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존재에 대하여 적의를 보이거나 질투를 느낀다. 그것은 날 것의 형태로 표출되어 폭력적인 성향으로 표출되기도 하며, 몇 없는 자아와 함께 날카롭게 정련되어 음습하게 파고들어 해하는 칼날 같은 성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한 폭력이 발전하고 발전한다면 악귀(惡鬼)가 되어 물리력으로 사람을 해하며.

       음습한 형태가 발전하고 또 발전하면 악령(惡靈)이 되어 사람을 홀려서 해한다.

         

       그렇기에 귀신을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언제 멋대로 튀어 나가서 사람을 해할지 모르고, 언제 자신을 부리고 있는 강령술사의 목을 조를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실제로 적지 않은 수의 강령술사들이 자신이 부리는 악령과 악귀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미치곤 했으니, 그 난이도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강령술사는 온갖 수단을 이용해 귀신을 통제한다.

       물건에 깃들게 한 뒤 원할 때만 부르기도 하고, 디북 박스( קופסת דיבוק)처럼 악령을 봉인시켜놓고 필요할 때만 소모품처럼 쓰기도 하며, 온갖 금제와 세뇌를 이용해 자신을 맹목적으로 따르게 만들기도 한다.

         

       필요하다면 자기 신체 일부에 깃들게 하거나, 자기 신체 일부를 주기적으로 악귀와 악령에게 줌으로써 친밀도를 높이는 방법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한 방법은 강령술사들은 잘 사용하지 않았고, 자기 몸에 귀신을 깃들게 해서 다루는 빙의술사라 불리는 주술사들이나 사용했다.

         

       귀신을 다루는 주술사는 온갖 방법을 써서 그들을 통제했다.

       정말 온갖 방법을 이용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통제에 방해가 되는 주술사가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신성술사라 불리는 이들이었다.

         

       신성술사라 불리는 이들은 아브라함 계통 종교에 속해있는 주술사이며, 주로 ‘피’를 다룬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신성술사를 성혈술사(聖血術師), 혹은 혈술사(血術師)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피라는 것은 귀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

       게다가 그 피가 사람의 것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 피 냄새가 나요. ]

       [ 맛있겠다. ]

       [ 향긋해. ]

       [ 손으로 집어서 덩어리를 만들어서 코로 맡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

       [ 맡을수록 진해지는 향기. 마치 와인의 왕이 이러할까. 참으로 감미로운 피의 냄새로다. 나를 내보내달라. ]

         

       귀신들은 토마스의 몸에서 피어나는 신성술사 특유의 기척, 짙은 피 냄새를 맡고는 눈이 돌아가 버렸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진미를 발견했다는 듯 아우성을 쳤고, 당장 자신을 꺼내서 저 ‘맛있어 보이고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성직자에게 날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모리스는 자신의 귓가에 속삭이는 귀신들의 아우성을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한 모습을 본 토마스는 정말로 실수라는 듯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도와주겠다는 듯 성호를 긋고는 눈을 감았다. 그리곤 손톱으로 자신의 왼쪽 손바닥을 십자가 형태로 그었다.

         

       찌이익.

         

       토마스가 손톱을 움직이자 손바닥은 마치 칼로 베는 것처럼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뭉뚝해 보이는 손톱은 날카로운 칼처럼 피부를 찢고 혈관을 터뜨렸고, 십자 모양의 상처에서 피를 왈칵 뿜어내게 했다.

         

       그는 밖으로 새어 나오는 피를 검지로 콕 찍더니 십자 상처를 감싸는 원을 그렸고, 살짝 감아쥐듯 허공을 쥐고는 천천히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나온 핏방울은 중력을 거스르기라도 하듯 허공으로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핏방울은 우주에서처럼 허공을 부유했고, 루비가 녹아내린 것처럼 황홀한 빛을 뽐냈다.

       토마스는 품속에서 쭈글쭈글한 비닐을 꺼내 그것을 감쌌고, 찰흙을 빚어 모양을 만들어내듯 이리저리 움직여 구체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곤 그것을 손가락으로 톡 튕겨서 모리스 쪽으로 보냈다.

         

       “제가 경험이 부족하여 폐를 끼쳤습니다. 제 피를 이용하여 그 귀신들을 진정시켜주시지요.”

       “…흐음.”

         

       모리스는 핏방울이 들어간 구체를 받아들고는 의외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음흉한 마음을 품고 그에게 엿을 먹였다고 하기에는 그 태도가 너무 정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주술까지 사용해 자기 피를 뽑아내고, 그것을 건네주기까지 했다.

         

       보잘것없는 주술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주술은 주술.

       사과 한마디만 하면 되는 것을 굳이 제 손바닥에 상처를 입고 대가까지 받으며 할 이유는 없었으리라.

         

       모리스는 토마스가 정말로 몰라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하며 구체를 품속에 집어넣었고, 금속 액세서리를 손가락으로 튕겨 그들에게 참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곤 사과를 받아들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토마스는 모리스가 자기 사과를 받아들이자 기쁘다는 듯 웃었다.

       그리곤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보이곤 진성에게로 향했다.

         

       저벅.

         

       토마스는 거침없이 진성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진성 박, 맞으시죠? 윌리엄 도련님께 이야기 들었습니다.”

         

       진성은 자신에게 악수를 청하는 토마스를 보고는 기쁘다는 듯 눈웃음을 지었다.

       그의 눈은 호선으로 그려지며 휘었고, 눈썹 역시 힘이 빠지기라도 하듯 같이 움직였다. 그리고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다.

         

       진성은 너무나 큰 영광이라는 듯 그의 손을 잡았다.

         

       “토마스 교구장님, 만나 뵈어서 영광입니다.”

       “저 역시 만나서 너무나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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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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