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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5

       

       

       

       

       

       255화. 스스로 잠든 용 ( 3 )

       

       

       

       

       

       한동안 관문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이베르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앙증맞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무릎 정도의 높이로 하늘을 닐았다. 그러면서도 몸을 부르르 떨어 물 털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파닥파닥-

       

       “으음? 뭐냐 이베르! 벌써 내가 춤출 시간이던가? 좀 이르지 않냐?”

       

       얼굴에 검댕이 잔뜩 묻은 드워프가 이베르에게 알은체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일은 아는 이가 적을수록 좋을 것이니, 이베르는 평소처럼 대꾸했다.

       

       “삑, 삐이익? 삐히익ㅡ”

       “오, 그래? 하하. 이거 내가 방해했구만.”

       

       태연하게 반응하고 유유히 자리를 떠나는 이베르의 뒤로 다른 드워프가 다가와서 쑥덕였다.

       

       “형. 형은 이베르가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는 거야? 난 아무리 들어도 그냥 삑, 삐익ㅡ 삐히익. 이렇게밖에 안 들리는데?”

       “뭐? 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이베르와 인사한 드워프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못 알아듣지. 저 말을 어떻게 알아들어? 그냥 적당히, 아- 대충 이런 뜻인가? 하고 넘어가는 거지.”

       “…뭐야. 그런 거였어?”

       “그런 거지.”

       

       그런 적당한 대화를 뒤로 하고, 이리저리 드워프와 엘프를 피해 우뚝 솟은 차원 관문에 도착한 이베르.

       

       슬쩍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폈다.

       

       “…”

       

       하늘은 깨끗하다.

       위대하신 분께서는 지금 성지를 보고 계시지 않았다.

       

       마지막 확인까지 마친 이베르가 작게 숨을 골랐다. 지금부터 하는 행동은, 어찌 보면 위대하신 분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위대하신 분께서는 이베르가 성지에 있기를 원하셨으니까.

       

       허나ㅡ

       

       “다시 태어난 이후로 처음으로 느끼는 동족의 기운… 부디 용서하시길.”

       

       이베르가 각오를 다지며 표정을 굳혔다.

       덕분에 앙증맞은 볼살이 앙 다물려 팥빵 같은 모양새로 부풀었다.

       

       작은 날개를 퍼덕인 이베르가 관문을 향해 휙ㅡ 몸을 던졌고.

       

       “삐이이이이ㅡ…!”

       

       이베르의 작은 비명만이 메아리치다가, 그마저도 점점 작아졌다.

       

       

       

       *****

       

       

       

       파다다닥-!

       

       “삐이이이… 이이익ㅡ…!”

       

       차원과 차원 사이를 넘나드는 기나긴 틈으로 떨어진다. 구슬픈 이베르의 비명이 길게 늘어졌다가, 줄어들었다가 메아리치며 툭툭 끊어지기도 했다.

       

       사아아ㅡ

       

       그리고 그런 이베르의 몸에 스며드는 익숙한 기운.

       신성하고 이질적이며, 너무나 낯익은 것이다.

       

       ‘안 돼…!’

       

       이베르가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어 제 몸에 흡수되려는 기운을 떨쳐냈다. 지금부터 그가 하려는 일에는 은밀함과 기동성이 필수였다.

       

       이 기운을 받아들인다면 대번에 거대한 몸으로 자라나서 모두의 시선을 끌고 말겠지.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안 돼!’

       

       “삐히이이!”

       

       이제는 습관처럼 붙어버린 비룡의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퍼진다. 이베르의 뜻을 알아차렸는지, 스멀스멀 달라붙던 기운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됐다…!’

       

       파닥파닥-

       

       열심히 작은 날개를 재촉해 길고 긴 차원의 틈을 빠져나온 이베르가 퐁- 하고 커다란 문에서 튀어 나왔다.

       

       허나, 이베르가 미처 예측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저기! 저기 있다!! 저 작은 도마뱀 같은 것이 문에서 나왔어!”

       “오오오오!! 성지의 문이 다시 한번 열리는구나! 오오, 신이시여! 저희 가족을 부디 굽어살피소서ㅡ!!”

       

       성도의 한복판에 위치한 성지의 문은 아주아주 조금 움직여서 작은 틈을 만들었지만, 워낙 거대한 크기 때문에 문이 열리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삐ㅡ! 이런 미…!”

       

       거기에 성지의 문 주변에는 늘 기도하는 인파와 경비를 위한 성기사들이 상주하고 있었으니.

       

       문을 빠져나온 이베르를 반기는 것은, 거대한 인파의 무수한 환호성과 눈길이었다.

       

       낭패다.

       

       당초에 계획했던 암행의 첫 단추부터 거하게 틀어진 상황.

       

       “삐, 삐이이이ㅡ!”

       

       열심히 날개를 파닥여 도망쳐 보려 했지만, 비룡의 몸은 너무나도 여리고 나약한 것. 

       

       얼마 가지 못하고 성기사의 손에 정중하게 들려서 만신전으로 향하게 되었다. 

       

       “삐익…”

       

       이베르의 통통한 꼬리가 힘없이 축 처졌다. 

       

       이베르의 곁에 성기사들이 딱 달라붙어서 철통같은 경호를 보여주고 있었다.

       

       쉽게 도망치지 못하리라.

       

       물론 이베르가 진심으로 저항한다면 성기사들을 뚫고 도망칠 수는 있었다. 허나, 그 과정에서 다소 심하게 다치거나 죽는 이가 나올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만약 성지에서 몰래 나온 마당에 인간까지 다치게 한다면…

       

       부르르.

       

       “삐, 삐이이ㅡ…”

       

       이베르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한숨을 푹 내쉬고는, 발라당 드러누웠다. 설마 인간들이 자신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니, 어떻게든 되지 않겠는가.

       

       무책임하다면 무책임한 태도.

       

       …성지에서 말랑한 시간을 보낸 탓에, 서리고룡 이베르의 성정이 제법 말랑말랑하게 변해 있었다. 아니면 아직 어린 비룡의 육체 때문에 성격이 변한 것일까?

       

       “삐…”

       

       화창한 하늘이 괜히 얄밉다.

       

       

       

       *****

       

       

       

       달그락- 달그락-

       

       케니스가 멍하니 풀린 눈으로 허공을 주시하며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린 모습이다. 이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프리가가 짝ㅡ 박수를 쳤다.

       

       “야, 야! 너 뭐해? 뭔 생각하는 거야?”

       “아…! 죄송, 죄송해요…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뭔데 그렇게 정신을 놓고 다녀? 오늘 너희 아빠한테 샌드위치 만들어 준다며. 이런 식으로 굴면 곤란하지.”

       

       프리가의 말대로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던 손은 어느새 부엌칼을 잡고 있었고,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니 도마가 통째로 동강난 것이 보였다.

       

       “아.”

       “…좀 쉬었다가 할까?”

       

       프리가가 드물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해는 한다. 쉽지 않은 도전일 테지. 특히 케니스에게 있어서는 더 없는 역경일 것이다.

       

       “그래. 좀 쉬었다가 하자. 천천히 하자고. 샌드위치라는 게 그, 음… 그렇게 만들기 쉬운 요리는 아니니까.”

       

       사실 빵을 자르고, 고기와 채소를 넣고, 간단하게 만든 소스를 올리면 끝나는 매우 매우 간단한 요리였지만…

       

       상대는 케니스다.

       

       곰 대가리를 잘라서 꼬치구이를 시도하는, 파멸적인 요리 감각의 소유자. 심지어 맛은… 고블린의 똥을 구워 먹는 게 더 맛있을 지경.

       

       “천천히, 여유롭게 하자고 우리.”

       

       프리가는 케니스가 평범한 요리를 만드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케니스의 요리 실력은 어떤 의미에서는 재능이었다. 괴식이라는 영역의 하늘 끝에 닿은, 그야말로 범인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

       

       방향성이 약간 뒤틀린 천재라고 볼 수도 있겠지.

       

       ‘그런 녀석이 평범한 요리를 만든다는 건… 분명 쉽지 않겠지…’

       

       프리가는 사명감마저 느꼈다.

       

       샌드위치를 만들어 데모닉에게 줄 것이라고 했던가?

       

       한 아버지의 목숨과 인생, 그리고 혓바닥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 기필코 멀쩡한… 아니, 최소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요리를 만들고 마리라.

       

       프리가가 멋대로 오해하며 의욕에 불타고 있을 때, 케니스는 간밤의 꿈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용은 도대체…’

       

       끔찍한 악취, 악마의 비명, 이글거리는 동공과 열두 개의 뿔로 이루어진 왕관, 그리고 사슬 소리.

       

       너무나 강렬한 기억은 낙인처럼 새겨져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잠에서 깬 지금도, 환상처럼 아른거리며 케니스의 주변을 맴돌았다.

       

       요리하면서도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는 이유였다.

       

       ㅡ…!! 지금ㅡ…!!

       어서ㅡ…!! ㅡ… 빨리!

       

       문밖에서 시끄러운 아우성이 들려왔다.

       

       “바깥이 너무 시끄러운데?”

       

       프리가가 팔짱을 끼며 미간을 구겼다.

       

       이 중대하고 엄격한, 누군가의 혓바닥이 걸린 중요한 요리 시간을 해치는 자가 누구인가?

       

       참다못한 프리가가 벌컥 문을 열었다. 어느 녀석이 이렇게 떠드는지 몰라도, 이쪽은 지금 한 아버지의 인생이 걸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누가 만신전에 시장…을… 열었…”

       

       우렁차게 외쳤던 프리가의 목소리가 끝으로 갈수록 점점 작아진다. 계속해서 흐려지더니, 종래에는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허?”

       “……”

       

       프리가의 검은 눈동자가 천천히 아래로 향한다. 

       

       제일 먼저 성기사들이 보였다.

       

       누군가를 엄중히 호위하는 것처럼 철저하게 무장한 성기사들의 중앙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금빛 바구니가 있었는데, 호화로운 바구니 안에는 푹신한 붉은 베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붉은 베개 위에 장식된 인형처럼, 얌전히 누워있는 연푸른빛의 작은 생명체.

       

       대번에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프리가가 나른한 신음을 흘렸다. 웃음기가 가득 들어간 소리가 길게 늘어진다.

       

       “흐으으으음ㅡ”

       

       프리가의 눈이 샐쭉 얇아지며 기묘한 빛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장난기와 적당한 가학심, 즐거움 따위가 혼합된 색채가 인상적이다.

       

       마치, 뭐라고 해야할까… 딱 가지고 놀기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눈빛? 혹은, 평생 놀릴 거리를 찾은 친구의 눈빛?

       

       어느 쪽이라도 연푸른빛의 생명체, 이베르에게 그닥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

       “……

       

       프리가와 이베르는 아무 말도 없이, 아주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봤다. 한쪽은 미칠 듯이 즐겁다는 눈빛으로, 한쪽은 낭패라는 눈빛으로.

       

       “…..삐ㅡ…!”

       

       프리가를 보며 부르르 떨던 이베르가 습관적으로 흘러나오던 비룡의 울음소리를 텁 멈췄다.

       

       망했다. 망했다.

       들었을까? 제발 듣지 못했으면 좋을 텐데.

       

       조마조마한 눈빛의 이베르가 천천히 프리가와 눈을 맞췄다.

       

       “…..흐으으으음ㅡ?”

       

       프리가의 웃음 섞인 비음이 아주 길게, 아주아주 묘한 뉘앙스를 품고 쭉 늘어진다. 곱게 휘어진 눈에서는 이제 참을 수 없는 즐거움과 웃음기가 펑펑 피어나고 있었다.

       

       아.

       들었구나.

       젠장.

       

       이베르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자신은 용이라 땀 따위는 흘리지도 않을 것인데, 어째서 식은땀이 이리도 줄줄 흐르는 기분인 걸까.

       

       “저기… 프리가 님?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한참이나 길을 막고 있는 프리가에게 선임급 성기사 한 명이 넌지시 물었다.

       

       “아? 아, 아냐. 얼른 가. 이거야 원, 귀하신 분을 모시고 있었네…”

       

       프리가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슬쩍 옆으로 비켰다. 

       

       그리고.

       이베르는 봤다.

       

       프리가의 까만 눈이 불길한 빛을 머금고 희번득 빛나는 것을.

       

       “아주, 아주… 귀하신 분을 모셔왔어.”

       

       아. 

       위대하신 분이시여.

       

       성지에서 몰래 가출한 지 채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

       

       이베르는 벌써부터 성지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베르베르야… 지금까지 우리를 속인거니…?? 도대체 성지에서 무슨 생각으로 그런 모습을…!!! 용 사냥꾼 프리가와 만나 버린 응애 서리비룡 이베르…!! 그야말로, 대위기…!!! 올 때 3연참은… 휴재를 휴재하는 저의 비기로 무효화에…!!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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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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