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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5

       상대의 상체가 앞으로 쏠린다. 당장이라도 돌격하겠다는 듯이, 검을 내지를 준비를 마친 채.

        

       무시할 수는 없겠지.

        

       활시위를 당기듯 허리를 비틀어 화답했다. 노골적인 유혹에 가까운 움직임이다. 대놓고 보여준 준비동작에서 정말로 강공격이 튀어나올 거라 믿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대비하지 않을 수는 없으리라.

        

       역시나, 멈칫거리는 상대. 정말로 공격할 생각까진 없었던 모양이다. 신중하고……계산적인 타입. 까다로운 상대다.

        

       다시 벌어진 거리를 유지하며, 시계방향으로 돌듯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잠시 후.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단검을 등진 채 대치했다.

        

       동시에 이루어진 투척으로부터 약 2분여. 상대를 현혹시키며 다시 단검을 줍기 위한 수싸움이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피차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슬슬 포기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심리적 우위는 내게 있었다. 나는 던져버린 단검을 피차 회수하지 못해도 그만이었고, 상대는 반드시 회수해야만 하기에.

        

       작은 차이지만, 그 입장차는 한번 부딪힐 때마다 분명한 이득으로 치환되고 있었다.

        

       빌드 최적화의 문제다.

        

       도적 미러전에서는 생각보다 투척이 자주 나오고, 그 후 얼마간 한손검으로 버텨야 하는 시간이 생기곤 하므로- 이에 대비해야만 한다.

        

       예를 들면, 애초에 한쪽 단검의 길이를 줄여 무게를 확보하고……대신 건틀릿을 하나 찬다든가.

        

       오소독스는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경험 부족 탓이겠지. 동급의 도적을 상대할 경험이 부족했을 테니.

        

       그러나, 감은 좋아서.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다는 걸 직감한 걸까. 횡으로 스텝을 밟던 오소독스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빠르게 달려들었다.

        

       던졌던 단검을 주워들 수 있는 포지션을 확보하려 드는 움직임.

        

       물론, 정말로 단검을 회수하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손해를 봐가면서 내 머리에 몇 번이나 기억을 심어둔 성과를 수확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둘 중 무엇일지……예측은 쉽지 않다. 페인트 속에 의도를 숨기는 데 능한 상대이기에.

        

       검을 길게 뻗은 채, 뛰어드는 상대를 신중하게 살피던 순간.

        

       -쿵!

        

       발을 구르며 힘차게 돌진하던 상대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림자 걸음……역시, 돌진기로 쓰는구나.

        

       상대는 주사위를 던졌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도박수처럼 던져진 이지선다. 

        

       세트 내내 서로가 준비해온 순간이다.

       

       단검을 회수할 수 있는 위치일지, 공세로 돌입하기 위한 위치일지……도착 지점을 어디로 예측하는지에 따라 승패가 갈릴 터.

        

       뒤로 피하며 선택 자체를 회피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순 없지.

        

       이런 순간이야말로, 도적 미러전의 참맛이니.

        

       사라지기 직전. 오소독스의 시선은 분명, 바닥에 널브러진 단검을 향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단검을 노린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 사람의 눈은 의외로 정직한 법이니.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터다.

        

       다만, 오소독스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나는 VR보다 모니터 화면이 익숙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리 출력되는 화면에서 캐릭터의 시선은 중요도가 한참 떨어지는 정보다. VR과 달리, 유저의 시선과 일치하지 않으니.

        

       진짜 의도는 근육의 움직임에서, 발의 각도에서, 손의 위치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그리고-

        

       오소독스의 디딤발은, 미세하게나마 나를 향해 틀어져 있었다. 처음으로.

        

       -퍼억!

        

       * * * *

        

       흔들리는 시야와, 튀어 오르는 피.

        

       머리에 가해진 충격이 심상치 않았다. 흘긋 확인한 체력은, 3분의 2 이상이 사라진 상태. 연격을 당하면 끝이다.

        

       -부웅!

        

       뒤로 구르듯 가까스로 물러섬과 동시에, 날카로운 단검이 눈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판단이 아주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끝났을 일격.

        

       그러나, 피해냈다는 희열 따위는 없었다.

        

       분명 단검의 사각으로 파고들었는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상대의 건틀릿에 묻은 피를 보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정확하게 읽혔다.

        

       1세트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림자 걸음의 도착지점을 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읽어내는 건지. 무리한 시도였을까. 아니, 그 순간을 놓치면 역전의 기회는 없었을 터였다.

        

       -챙!

        

       가슴팍을 향해 쇄도하는 단검을 가까스로 쳐냈다. 상대는 자책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달려들고 있었다. 여태까지 신중하게 지켜보던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는 공격성이다.

        

       회피. 회피. 방어. 회피.

        

       필사적으로 연명하고 있었지만, 상대는 한번 잡은 공세의 흐름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데미지를 주기보다는, 무리한 움직임을 강요하기 위한 공격들이다. 하나의 공격을 회피하면, 다음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더 큰 동작을 취해야만 하는. 

       

       상대는 집요할 정도로 그의 스태미나를 노리고 있었다. 이미 대폭 깎아낸 체력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선택해야만 했다.

        

       이렇게 계속 휘둘리면, 어차피 승산은 없으니. 차라리 데미지를 주려고 파고드는 상대는 카운터라도 쳐볼 수 있지만, 이렇게 조여들면……결국 사냥당할 뿐이다.

        

       -채앵!

        

       팔을 노리고 쇄도한 공격을 다시 한번 쳐낸 순간.

        

       오소독스는 아주 작게나마 열린 틈을 향해 몸을 던져 넣었다.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의 거리. 숨을 참고, 본능과 반응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영역이다.

        

       회피도, 공격도- 더 이상 계산하거나 생각할 수 없었다. 단검이 몇 번이나 번뜩이고, 핏방울이 튀는 것을 보며, 다시한번 온 힘을 다해 검과 검을 맞댈 뿐.

        

       몇 초나 흘렀을까. 숨이 막혀왔다. 체력으로 밀리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인파이팅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너무나 많은 체력을 허비한 탓이겠지.

        

       조금 더 빨리 결단을 내렸어야 했으나- 뒤늦은 후회였다. 아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그런 판단을 할 틈도 주지 않았으니. 처음부터 정교하게 설계한 그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오소독스의 머리를 섬뜩하게 스쳐갔다.

        

       스태미나가, 체력이 얼마나 남았을까. 우측 상단을 잠시나마 확인할 시간조차 부족했다.

        

       기동력을 제한하고, 물러서야 한다. 턱 끝까지 차오른 호흡을 한번이라도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부웅!

        

       빠르게 쇄도한 상대의 검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상대의 가슴팍을 강하게 찌를 듯이 달려들다가-

        

       -휘릭

        

       허공에서 단검을 반 바퀴 회전시켜 역수로 쥐며, 팔을 내리 찍었다. 

       

       실패하면 뒤가 없다는 각오로 내지른, 온몸의 힘이 실린 공격.

        

       그 절박함 덕분일까.

       

       오소독스의 단검은, 상대의 갑옷을 뚫어내며 허벅지에 파고들었다.

       

       기동력을 앗아가는데 성공했다. 아직 기뻐할 때는 아니지만, 자그마한 희망이 생겨나는 순간이다. 

       

       ‘한번만, 뒤로-’

        

       잠시 재정비를 하고 아웃파이팅을 하면, 역전의 기회를 노릴 수 있을 테니.

       

       그리 생각하며 뒤로 물러나려던 찰나.  

       

       -퍽!

        

       상대의 건틀릿이 단검의 손잡이를 찍어 눌렀다.

        

       허벅지에 칼날이 더욱 깊이 박히며, 다시한번 튀어 오르는 피. 상당한 데미지지만, 조금도 기뻐할 수 없었다.

        

       단검 째로 오른손을 붙들렸으니.

        

       ‘……당했-!’

        

       일단 살아야 한다. 마지막 단검조차 놓아버리며 필사적으로 손을 뿌리쳤으나- 스태미나에 한계가 온 걸까.

        

       반응은 한 템포 늦었다.

        

       -푸욱

        

       오소독스의 시야 최하단.

        

       검날이 삐죽, 목에서부터 솟아나와 있었다.

        

       .

       .

       .

        

       상대를 껴안은 듯한 자세.

        

       왼팔로 상대의 어깨를 감싼 아따먹은, 다시 한번 오른손을 움직였다.

        

       -푸욱!

        

       이어서, 섬뜩한 소리와 함께 품에 안긴 상대의 몸이 허물어지고- 쓰러지는 상대를 지탱한 그녀는, 힘을 잃어가는 그를 천천히 바닥에 뉘어 주었다.

       

       부드럽고도, 진중한 움직임이었다. 

        

       서로의 피로 붉게 물든 눈밭 위.

        

       마지막까지 서있는 건 누구도 없었다.

        

       패자는, 흐드러진 꽃밭처럼 펼쳐진 피 위에 편안하게 누워 있었고-

        

       승자는, 스러진 적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고 있었으니.

        

       * * * *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의 경기였다.

       

       “아따먹! 아따먹 선수가 승리를 가져갑니다! 두 선수의 피로 물든 전장에서, 끝끝내 승리를 쟁취해낸 건 아따먹 선수입니다!”

        

       프로들 간에도 잘 나오지 않는 수준의 경기력에, 아슬아슬하게 갈린 승부의 쾌감까지.

       

       “아따먹 선수, 정말- 정말, 이런 선수가 어떻게 여태까지 숨어 있었나요! 소름돋는 경기력이었습니다! 아- 관객들의 연호가 여기까지 들려오네요!”

        

       그에 더하여, 서로 끝까지 달려드는 집요함은 관객들마저 손에 땀을 쥐게 했으니.

        

       『와 미친』

       『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나 잘하네』

       『뭘 본거지』

       『저도 안아주세요』

       『아따먹! 킹따먹! 갓따먹!』

       『이딴게 프로? 이딴게 프로? 이딴게 프로? 이딴게 프로? 이딴게 프로?』

       『이게 결승이죠?』

       『좆된거 같은 파골이면 개추』

       『눈나ㅏㅏㅏㅏㅏㅏ』

       『센세 왜 정상인인 척 하냐』

       『미쳤다 진짜』

       『도적 미러전이 이렇게 비장할 수가 있구나』

       『얘 진짜 왜 프로 안함?』

       『그냥 미친년인줄 알았는데 존나 잘하는 미친년이었음;;』

       『표정 ㅈㄴ섹시하네 진짜』

        

       그리하여, 현장에서의 폭발적인 반응만큼이나 열광하는 시청자들에 의해 공식 중계 방송의 채팅창이 폭주하는 와중.

        

       ‘……씨발, 저거, 아니……뭐야? 무슨, 저 정도라고?’

       

       선수 대기실에 앉아있던 한 사람은, 조용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두부는귀엽다 님, 2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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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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