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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5

       여름방학은…… 즐거웠다.

        

       물론 아직도 기자들이 성가시게 달라붙을 것이 걱정되어서 나는 거의 항상 집에 있기는 했지만.

        

       하지만 이 집은, 안에서 뭘 하고 놀아도 신나게 놀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도심 한가운데에서 호텔 하나를 통째로 전세 내서 사는 셈이기도 했으니까. 뭐, 호텔이라기보다는 백화점에 가까운 건물이긴 했지만 놀기 좋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방에서 다 같이 뒹굴거린다. 그러다가 할 게 없으면 방에 불을 다 꺼두고, 새로 구매한 프로젝터로 다 같이 영화를 보았다. 일하던 양혜인도 불러 같이 보곤 했다. 사실 너무 많은 영화를 봐서 오히려 특별히 생각나는 영화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름인데 캠핑 한 번 가지 않는 것은 서운하다는 소희의 말에, 저택의 뒤뜰에 텐트를 세워두고 바베큐 파티를 한 적도 있다. 하는 김에 소희 동생인 소리도 부르고, 아름이도 불렀다. 잔뜩 신이 나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나한테 열심히 매달리는 소리 때문에 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무척 즐거운 기억이었다.

        

       굳이 해변에 가고 싶지는 않다는 나의 말을 받아들여서, 뒤뜰에 이동식 풀장을 가져다 두고 물을 채운 것을 보고 어떤 의미로는 감탄했다.

        

       내가 입기에 딱 맞는 사이즈의 수영복을 미리 준비해둔 것을 보고는 거의 감동할 지경이었다.

        

       물론 반어법이다.

        

       아니, 나도 모르는 내 사이즈를 대체 어떻게 알고서……?

        

       무서워…….

        

       참고로 그때 사라의 반응이 이랬다.

        

       솔직히, 나도 좀 무서웠다.

        

       자는 사이에 쟀다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무서웠고, 언제나 직접 매달리고 끌어안던 감각으로 때려 맞춘 거라면 그건 그거대로 무서웠다.

        

       “사라야, 너무 귀여워!”

        

       레이스 달린 붉은 비키니를 입은 나를 보고, 하늘이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하늘이는 정말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참고로 하늘이는 나와 비슷하게 비키니 차림이었다. 다만 색은 노란색이었다. 디자인도 훨씬 심플했고. 노출이 아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충분히 잘 어울렸다. 균형 있는 몸매가 잘 드러나는 멋진 차림이었다.

        

       정작 본인 사진은 찍을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아, 역시 이걸로 고르길 잘했다…….”

        

       소희는 자기 혜안에 진심으로 감동한 모양이었다. 역시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찰칵찰칵, 쉴 새 없이 사진 찍는 소리가 울렸다.

        

       소희는 래시가드 수영복이었다. 크롭형태라서 살이 묘하게 드러나 보이는 게 엄청나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늘이보다도 한층 큰 미드 사이즈 덕분에, 래시가드라는 노출이 거의 없는 수영복 차림인데도 그 부분이 엄청나게 강조되어 보였다.

        

       물론, 하늘이와 마찬가지로 소희는 굳이 그런 자신의 사진을 찍을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역시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에 가지 않은 건 잘한 일인 것 같아.”

        

       어떤 의미에서는 조금 섬뜩한 소리를 하는 수아는, 마찬가지로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수아는 하늘이나 나처럼 비키니였다. 조금은 레트로풍이라고 해야 할지, 하얀 바탕에 꽃무늬가 그려진, 나보다 더 레이스가 많이 달린 수영복이었지만, 본인이 워낙 세련된 분위기라 어렵지 않게 그 수영복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나보다도 작은 키에, 정작 흉부는 하늘이보다 거대해서 몸매가 엄~청나게 강조되어 보였다. 절대적인 크기는 소희보다는 작았지만, 비율 때문에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너무 노출하는 것은 좀 그렇다 생각했는지 하얀색의 얇은 외투를 입고 있었지만, 앞이 열려있어서 제일 자극적인 부위는 다 보였다.

        

       이제는 말로 하면 입이 아플 정도지만, 굳이 또 한 번 묘사하자면, 수아도 나를 참 열심히 찍고 있었다.

        

       수아가 했던 말에 하늘이와 소희가 동의한다는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서 조금 무서웠다.

        

       ……그나저나, 이 세 사람처럼 몸매가 엄청 좋은 것도 아닌 나에게 붉은 비키니를 입히다니,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긴, 나는 수영복을 입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어서 뭘 어떻게 입어야 할지도 잘 모르긴 했지만.

        

       ……괜찮은 건가?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렇다. 사라도 지금까지 수영복을 입어본 기억이 없는 아이였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엄청나게 어린 시절이겠지. 기억도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어린 시절.

        

       “응?”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셔터 소리가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그래?”

        

       기이할 정도로 말없이 나를 보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그렇게 물었더니, 세 사람은 한순간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세 사람이 동시에 나한테 달려들었다.

        

       “앗, 잠깐, 으앗!”

        

       그대로 번쩍 들려 세 사람과 동시에 풀장에 들어간 것은, 뭐 사실 예견된 것이었다.

        

       *

        

       그렇게 방학 내내 거의 저택 안에서만 지냈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어쩌면 직장이고 학교고 가지 않고 그냥 늘어지게 있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삶이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그저 하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는 삶.

        

       앞으로도 계속 이런 삶이 이어질 수 있을까.

        

       사실,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벌써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의 미래는 나도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니까.

        

       사실 뭐, 지금까지도 모르긴 했지만.

        

       그리고, 그런 미래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나는 마지막으로 가야 할 곳으로 갔다.

        

       “뉴스는 봤지?”

        

       일의 끝에 봐야 하는 사람이 윤다호라니, 참 얄궂다고 생각은 하지만 말이다.

        

       “그래.”

        

       윤다호는 여전히 힘이 없어 보였다. 여전히 그 노인네한테 샌드백 취급이라도 당하는 건가?

        

       “……오늘은 맞아서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인다는 표정으로 윤다호는 그렇게 말하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몹시 ‘남주인공’다운 포즈였다.

        

       개 열받네.

        

       “그럼, 역으로 때리기라도 했어?”

        

       “글쎄.”

        

       더 열받네.

        

       뭐,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놈의 상쾌한 표정을 보고 있으니 절로 기분이 나빠진다. 뭐, 나랑 이어질 확률이 없어졌다는 걸 알고 노인네가 난리 치는걸 제압했거나 그랬던 모양이지.

        

       더 보고 있었다가는 내 쪽에서 싸움을 걸 것 같아서, 나는 굵고 짧게 전할 말만 전하기로 했다.

        

       “이제 우린 파혼하면 그만인 거지?”

        

       “파혼이고 뭐고 할 것도 없지. 서로 시작한 적도 없는 셈이 되었으니까.”

        

       “응?”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윤다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 아까 나한테 뉴스 봤냐고 물어보지 않았냐.”

        

       “그랬는데?”

        

       “그러는 너는 뉴스 안 봤냐?”

        

       “안 봤는데?”

        

       윤다호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들도 입이 살짝 벌어졌다.

        

       “내가 왜? 어차피 뉴스 안 봐도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아니, 그러면 할아버지가 한 말은 모르지…… 아니다, 됐다. 그냥 몰라도 상관없어. 어쨌거나 다 끝났으니까.”

        

       뭐, 나중에 인터넷 기사라도 찾아보면 그만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윤다호는 상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누가 할 소리를.”

        

       적어도 마지막만큼은 의견이 일치해서 다행이다.

        

       *

        

       그렇구나.

        

       최나경의 문제가 기사로 난 뒤, 호명 그룹의 전 회장과 현 회장은 나와 윤다호 사이의 소문을 전면 부정했다. 나와 엮어서 좋은 이야기가 나올 일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내가 입을 열어서 강제로 약혼했다는 말이 나오거나, 최나경과 결탁했다는 증거가 나오거나…… 뭐 그런 일을 경계하는 것 같았는데—

        

       참, 똥꼬쇼도 이 정도면 어마어마하게 화려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날 정신병원에서 잡힌 자 중에 대부분이 호명 그룹의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최나경을 숨겨줬던 이상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도 없었고.

        

       뭐, 부인한다고 해서 내가 입을 다물고 있을 것도 아니다. 경찰이 바보도 아니고.

        

       설령 호명 그룹 측에서 돈을 먹은 자가 있어도 이제 그게 썩은 동아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이 나올 타이밍이다. 여기서 더 엮였다가는 같이 끌려들어 갈 테니까. 아니면 썩은 동아줄에서 세균이라도 옮던가.

        

       일단은 지켜보도록 할까. 만약 수사에서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마다, 슬쩍 하나씩 증언해야겠다. 윤다호 몸에 아직 멍이 남아있을까?

        

       “너, 기분이 엄청나게 좋아 보인다.”

        

       남다운이 의아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방학 이후 처음으로 하는 달리기였다.

        

       그래도 한 학기 내내 열심히 뛰어다닌 것이 나에게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된 모양이다. 이제는 한 바퀴 정도는 안정적으로 뛸 수 있었다. 컨디션이 좋으면 그보다 더 뛰고도 바닥에 퍼지지 않을 수 있었고.

        

       여전히 운동하는 것은 좀 많이 귀찮기는 했지만.

        

       “드디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으니까요.”

        

       “그러냐.”

        

       남다운은 나의 말을 듣고, 내 뒤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하늘이, 수아, 소희가 나란히 서 있었다. 세 사람 다, 모두 엄청나게 개운한 표정이다.

        

       아마도, 나도 저런 표정을 짓고 있겠지.

        

       손을 가슴 위에 올렸다. 바로 조금 전까지 뛰었던 나의 심장이 힘차게 뛰고 있었다.

        

       살아 있었다.

        

       더는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힘차게 뛰는 심장은, 나의 것이기도 하고, 사라의 것이기도 했다.

        

       “후우.”

        

       숨을 고르듯이 길게 내쉬었다.

        

       수고했어.

        

       지금까지.

        

       그리고, 그렇게 다독이듯 말했다.

        

       …….

        

       사라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잠시 기다린다. 의식에 집중해서일까. 주변의 소리가 멀어진다.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감각이 조금씩 둔해지고, 오로지 나 혼자 이곳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혼자가 아니다.

        

       내 앞에는, 사라가 서 있었다.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몸이 보이지도 않는다.

        

       사라는 나와 함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사라가 환하게 웃는 것을 보았다고 확신했다.

        

       내 바로 앞에 선 사라가, 웃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고마워.

        

       그리고 한 발자국 나에게 다가와—

        

       좋아해.

        

       그렇게 속삭이듯 말한다.

        

       내 표정도 나에게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아마 나도 사라만큼이나 환하게 웃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십삼중수소입니다.

    이로서 본편의 대부분의 사건이 일단락되었네요. 아직 완전히 완결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직 마무리지을 몇 가지 이야기가 남아있고, 본편의 후일담들도 조금 남아있습니다. 후일담이 끝날 때까지만 외전과 본편이 병행되고, 그 이후에는 외전만 쭉 쓰도록 하겠습니다. 외전의 길이는 외전마다 조금씩 다를 예정입니다. 천천히, 계획해놨던 외전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도록 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소설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올해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소설을 쭉 읽어주신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제가 여기까지 글을 쓰는 것은 아마 있을 수 없었던 일일거라 생각합니다. 저의 부족한 소설을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의 소설은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언제나 다시 생각나셨을 때 돌아오셔서 읽어주실 수 있는 소설을 쓰기 위해, 여러분의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은 소설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지금까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후일담과 외전도 부디 편하게 즐겨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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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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