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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6

    루크가 아린세이아에서 돌아온 뒤, 예르나의 집. 

    루크는 예르나에게 레니에에 대한 것을 이야기할 수 없었기에 한참이나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자신은 여신의 창조물이 아니니 별로 상관이 없다고는 해도,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여신이 그들의 창조자이기 때문에.

    레니에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다면 그녀의 노력은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 터이다.

     

    게다가, 그리 서둘러서 그녀를 만나려고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제 때가 되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반드시.

     

    그래서 루크는 예르나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얘가 진짜. 전혀 반성을 안 하네? 언니 말, 제대로 안 듣고 있지?”

    “아니, 오해다. 나는 정말 반성하고 있어. 그대의 말도 다 듣고 있었다.”

    “그럼 언니가 한 말 그대로 다시 말해봐.”

     

    예르나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제대로 들었는지 검사하겠다는 뜻이다.

     

    루크는 예르나가 했던 말을 다시 읊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말도 없이 위험하게 이렇게 나가지 말고, 어디를 갈 때는 항상 주변에 말을 하고, 가능한 다른 사람이랑 함께 다니라는 말이었지.”

     

    예르나는 루크가 똘망똘망하게 잘 대답하자, 별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잘 들었네. 다음에 또 그러면, 엉덩이 맞을 줄 알아. 울어도 소용없을 테니까, 그 때는.”

    “으, 으음……. 알겠다. 주의하지…….”

     

    루크는 조금 긴장하며 침을 꿀꺽, 하고 삼켰다.

    솔직히 루크에게 엉덩이를 맞는 건 그다지 아프지 않은 것이지만, 굉장히 치욕스러운 형벌이었다.

    이 나이에……. 아니, 자신에겐 딱히 나이가 의미 없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여전히 치욕스럽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비록 자신이 서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곤 하더라도, 그동안 루크로써 쌓인 기억도 깡그리 날아간 것이 아니다.

    여전히 자신은 루크 이루시의 서클, 대마법사 였던 것이니 말이다.

     

    그런 것이 어머니에게 벌로 엉덩이나 맞고 있어서야,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 광경을 곁에서 지켜볼 파이리스에게도 꽤 부끄러운 일이고.

     

    “그럼 반성하고 있는 거지?”

    “그래, 정말로 크게 반성하고 있다.”

    “후우…….”

     

    예르나는 귀까지 늘어트린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루크에게 더는 잔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결국 하는 수 없이 팔짱을 풀고는, 조금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로 약속이다?”

     

    예르나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루크도 그것에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이미 입으로 맹세한 시점에서 딱히 의미가 있는 행동이 아니었지만, 단지 예르나가 그것을 바라는 것 같아서.

     

    “그럼, 오늘은 다른 데 가지 말고 집안에 있어야된다? 이번 주말동안 외출금지니까.”

    맙소사, 외출금지라니?

    루크는 빠르게 항의했다.

    “……하지만, 언니……. 저, 나가서 첼로 연주도 하고 싶은데…….”

     

    루크가 불쌍한 표정을 지어내며 자신을 올려다 보려하자, 예르나는 고개를 옆으로 휙 돌리며 애써 그 시선을 무시했다.

     

    “안 돼. 언니가 항상 넘어가 줬잖아? 이번엔 진짜 벌이야. 연주는 다음에 해.”

     

    루크는 단호한 예르나의 말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녀의 옷깃을 꼬집으며 말했다.

     

    “그치만…….”

    “……그, 그래도 소용 없어. 이번에 언니는 진짜 화났으니까.”

     

    그럼에도 예르나는 정말로 단호하다.

     

    맙소사, ‘올려다보기’에는 이런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단 말인가!

    상대가 시선을 피해버리면 자신이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적당히 분위기에 묻어가려고 했는데, 역시 외출금지는 당할 수밖에 없나.

    멋대로 나가서 걱정을 끼친 것에 대한 벌로서는 뭐라고 할까…….

    일체감이 느껴지는 체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 어쩔 수 없지.’

     

    루크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알겠다, 그 처벌은 달게 받아들이지.”

     

    —————-

     

    뭐, 외출을 할 수 없다고 해도 사실 루크가 할 것은 많았다.

    당장 아공간과 좌표를 연결시긴 월영석 목걸이의 안정화 작업도 해주어야 하고, 그곳에서 가져온 마력초들도 달여서 예르나의 화상 치료제로 쓸 연고를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루크는 품 속에서 푸른 결정을 하나 꺼냈다.

     

    그것은 다름아닌, 리빙아머의 마력코어다.

     

    “리브, 조금만 참고 기다리거라. 내가 곧 네가 쓸 몸을 만들어 줄 터이니.”

     

    루크가 직접 부수며 작동을 정지시킨 리빙아머는, 복도를 내려가자 역천의 모래시계로 시간을 돌린 영향을 받고 다시 작동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루크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루크는 그 아이가 자신을 인식하기 전에 빠르게 코어를 분리해 가져왔다.

     

    분명 ‘바알’이라는 자가 손을 써서 자신에게서 빼앗아 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자신을 알아볼 수가 없었을 뿐이지.

     

    리브, 그 아이는 ‘침입자를 벤다’라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다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자신도 침입자라고 분류가 되었다는 것이지만.

     

    그 부분에 대한 것은 ‘재교육’을 실시하면 되는 부분이니 상관없다.

     

    루크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어디 리브를 안착시킬 만한 물건이 있나 해서.

     

    “어디보자…….”

     

    리빙아머, 그러니까 골렘의 핵을 넣기 위해선 되도록이면 생명의 형상을 본 뜬 것이 좋다.

    그 중에서도 일단 팔과 다리가 각각 한쌍 존재하고 있는 물체가 권장된다.

    그게 아니라면 그 조정작업은 상당히 힘들어지고 만다.

    그것은 본래 리브의 설계가 리빙아머의 것으로 제작된 탓이다.

     

    조정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인격마저 건드려야 할 지도 모르고.

    그건 루크도 바라지 않는 일이다.

     

    리브는 자신이 만든 창조물, 아이나 다름없는 것이니.

     

    아무튼, 방에 리브가 들어갈 수 있을 만 한 것은 미완성된 임시인격이 들어간 거대 고양이인형 ‘케이트’와, 아이들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작은 곰인형 정도 뿐이다.

     

    “흠, 하지만 케이트는 안돼.”

     

    게다가 이미 ‘케이트’라는 이름도 있고.

    케이트도 아직 제대로 인격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나, 일단은 어느정도 자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즉, ‘케이트’라는 자아의 살해.

     

    ‘케이트’역시 자아를 넣은 이상 자신의 자식이다.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리브’를 집어넣기엔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저 작은 곰인형 뿐인가.

     

    “흐음, 반짇고리를 예르나가 어디에 뒀더라.”

     

    ———

     

    “자, 이제 다 되었다.”

     

    마침내 루크는 바느질을 완성시켰다.

    너무 커서 거의 짊어지듯 해야 하는 케이트와는 달리, 품 안에 쏙 들어오는 귀여운 크기의 곰인형.

    루크는 그 곰인형을 손가락으로 톡 톡 건드리며 말했다.

     

    “어떠냐, 리브? 몸은 움질일 수 있겠느냐?”

     

    그 때, 루크의 손가락으로 마력을 주입받은 곰인형은, 벌떡 고개를 쳐올린다.

    이내 리브는 주변을 몇차례 둘러보기 시작하더니,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고는 벌떡 일어난다.

     

    가동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루크는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며 팔에 턱을 괴고 엎드렸다.

    솔직히 말해, 리빙 아머정도의 규격으로 제작된 리브를 곰인형에 이식하는 것은 루크에게도 꽤나 피곤한 일이었으니까.

     

    “5000년만이로구나, 리브.”

     

    루크는 살갑게 리브를 반겼다.

    무려 5000년이라는 시간을 넘어온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다.

     

    하지만 리브는 그런 루크의 인사를 받을 겨를이 없었다.

    고개를 젖혀 자신의 뒤를 보고 또 금방 짜리몽땅한 팔과 다리를 보고.

    그렇게 허둥지둥 거리는 모습이 마치, ‘내 갑옷은 어디갔어?’라며 당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하하, 네가 가지고 있던 그 찬란한 아세릴 갑옷은 이제 없다. 너도, 이제는 나랑 비슷한 꼴이구나.”

     

    루크는 그 모습이 정말,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5000년 전의 것이, 맞지 않는 몸에 갇혀서 깨어났다는 것이 아닌가?

    루크는 현재 리브의 심정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한참을 당황하며 자신의 몸을 살피던 리브는 곧 루크와 눈이 마주치더니, 책상에 놓아 둔 바늘을 움켜쥐고는(도대체 리브가 그것을 어떻게 ‘움켜 쥘’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녀석에겐 손가락이 없었는데.) 루크를 향해 내밀며 자세를 잡았다.

    마치, 침입자를 마주한 리빙아머의 반응과도 같다.

     

    심지어 그 뿐만 아니라, 바늘의 끝이 푸른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은 소드오러, 바로 검기다.

     

    ‘음, 이런 몸에 담아두어도 여전히 소드마스터라는 건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서클이고 뭐고 없어서 크게 당혹스러웠던 자신에 비하면 리브의 형편이 나은 편이다.

     

    뭐, 사실은 이런 태평한 생각을 하고 있기에는 꽤나 위험한 상황이긴 하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귀여운 곰인형이 바늘을 쥐고 자세를 잡은 것 뿐이지만, 그 실상은 소드마스터가 눈앞에서 검기를 뿜어내며 자신을 경계하는 장면이니 말이다.

     

    하지만 루크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리브, 날 못 알아보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

     

    리브가 마치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는 듯 자세를 고쳐잡자, 루크는 빠르게 손을 움직여 검기가 둘러진 바늘을 빼앗고는, 곧장 리브를 품 안에 안아들었다.

    역시 곰인형의 몸이라, 꽤 폭신한 감각이다.

     

    하지만 리브는 품 속에서도 발버둥쳤다.

    전투불능이 되는 상황을 경계하는 것이겠지.

     

    루크는 그런 리브를 안심하라는 듯이 토닥이며 말했다.

     

    “리브. 잘 느껴봐라, 이 서클을. 익숙하지 않느냐?”

     

    5000년 전의 루크 이루시와 자신은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단 한가지 만큼은 확실히 동일했다.

    바로, 서클의 패턴.

     

    그것이 자신이 한때 루크이며, 리브의 아버지라는 것을 증명할 증거다.

     

    리브도 곧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발버둥을 멈추고 심장의 고동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루크는 그런 리브를 한동안 가만히 안고 있다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곰인형의 눈동자를 보고, 다시 책상 위에 앉혀 주었다.

     

    그러자 리브는 마치, 혼이 빠져나간 것 처럼 책상 위에서 일어날 생각도 못하고 떨고 있었다.

     

    마치, ‘정말로……?’라고 묻는 듯한 모습이다.

    루크는 그런 리브에게 씨익 웃어주며 말했다.

     

    “그래, 정말로 오랜만이로구나, 아이야.“

     

    그러자, 리브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바늘을 주워들고 다시 한번 루크에게 겨눈다.

    하지만 이번의 것은 그 의미가 조금 달랐다.

     

    침입자의 경계가 아닌, 주군에게 행하는 기사의 맹세.

    루크는 그런 리브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손을 저었다.

     

    “그런 것은 하지 말자꾸나. 너도 이제 리빙아머가 아니고, 나도 이젠 대마법사가 아니니까. 오늘은 단지…….”

     

    루크는 잠시 뜸을 들인 뒤에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와 5000년만의 재회를 축하하지 않겠느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 오늘 밤은 400년만의 재회를 축하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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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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