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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6

        

         

       진성은 호의를 담은 눈으로 토마스를 바라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젊은이의 설렘을 얼굴에 띠었고, 토마스가 자신을 그냥 유망주로만 볼 수 있도록 조금은 조급하면서도 감정적인 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게다가 그저 근육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 품고 있는 불씨와 냉기를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얼굴에 살짝 홍조를 띠기까지 했다.

         

       마치 지나가던 사람이 연예인을 봤을 때처럼.

         

       “윌리엄 도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꽤 미래가 보이는 인재가 있다고 말이죠.”

       “이런. 너무 과분한 평가를 하셨군요.”

       “아닙니다. 그분이 기분파이기는 해도 의외로 사람 재능은 잘 보시는 분이지요.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진성 박 역시 그만한 재능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주 기대되는군요.”

         

       토마스는 그렇게 말했다가 살짝 걱정된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다만 주술사의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이 걸립니다. 주술사의 숫자가 많지 않은 만큼 또 한 명의 주술사가 생기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 길의 고됨은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가는 것과 같지요.”

       “주술사의 길이…쉽지는 않겠지요.”

       “그렇습니다. 고난과 역경이, 고통과 인내가 가득한 길일 것입니다. 주술의 종류가 많은 만큼 그 고난의 숫자 역시 그만큼 있을 것이고, 그 숫자만큼 고통이 가득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 고통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어 할 수도 있겠지요. 수많은 사람이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토마스가 하는 말은 정론이었다.

       주술사를 하려고 하는 이들 대부분은 기약이 없는 고통과 끔찍할 정도로 무거운 주술의 대가 때문에 길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주술과 고통은 떼어놓을 수 없는 것.

       주술은 고통을 주고, 고통을 대가로 주술을 사용해야만 한다.

         

       내장이 뜯겨나가고, 조각나고, 피를 토하고, 병이 온몸에 퍼지고, 피부가 썩어 문드러지고, 뼈가 가루가 되었다가 재생하고, 사지를 잃고,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겪고, 때에 따라서는 세포 단위로 신체가 붕괴하는 것도 감내해야 한다.

         

       그나마 이것도 육체에 한할 뿐.

         

       정신과 영혼은 더더욱 심각하다.

       귀신을 다루다가 잡아먹혀서 아예 육체를 빼앗길 수도 있고, 주술의 부작용으로 무의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며 정신이 붕괴할 수도 있고, 고통을 잊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너무 많이 사용했다가 마약 중독자가 되어서 길거리에 널려있는 마약 중독자처럼 인생을 허망하게 마무리할 수도 있다. 게다가 그렇게 견디고 견딘다고 한들 밝은 미래가 올 일은 없다.

         

       무인처럼 환골탈태로 새 몸을 가질 수도 없고, 수명을 늘릴 수도 없고, 건강을 되찾을 수도 없다.

         

       그저 주술의 대가에 찌든 몸을 끌고 고통 속에 살다가 죽음으로 안식을 얻는 길뿐.

         

       “진성 박은 아직 젊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걱정되는 것이지요. 아, 주술사를 포기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포기하지는 않되 가끔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으면…. 그러니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을 때 의지할 곳을 만들어주겠다는 이야기입니다.”

         

       토마스는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힘들고 지칠 때 언제든 교회를 찾아주십시오. 성공회에 방문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다른 곳도 좋습니다. 개신교도 좋고, 가톨릭도 좋습니다. 정교회도 좋고, 모스크(مسجد)라도 좋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 방문하셔서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험난한 길을 걸으려는 후배를 격려하듯 따뜻한 눈초리로 진성에게 그렇게 말했고,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무언가 주겠다는 듯 가지고 온 자그마한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리곤 거친 천으로 만든 주머니 하나를 진성의 손에 올려주었다.

         

       “선물입니다. 받아주시지요.”

       “선물이라니, 이거 너무 죄송스러운데….”

       “아닙니다. 그냥…. 그렇군요. 앞서 괴로운 길을 걸어간 선배가 후배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셔도 좋고,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하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그리 귀하지 않은 것들이니 부담 없이 받아주시지요. 그저 실생활에 쓰기 좋은 것들일 뿐입니다. 아, 확인하셔도 좋습니다.”

         

       주머니 안에는 토마스의 말대로 별것 없었다.

         

       투명한 액체가 담긴 자그마한 병 몇 개.

       멋들어진 필기체로 성경 구절이 적혀있는 자그마한 수첩.

       홍차 티백 몇 개.

         

       그것이 전부였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이로구나.’

         

       수첩에 적혀있는 글씨는 그것을 보며 고통을 견디라는 것처럼 위로가 되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홍차 티백 때문인지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 그리고 자그마한 병은 투명해 보이면서도 무언가 물 말고 다른 것이 들어가기라도 한 듯 일반적인 물과는 달라 보였다.

         

       “제 피를 약간 섞어 만든 성수입니다. 삿된 것을 물리치는 효과가 있지요. 잡념이 가득하고 신체와 정신이 허약해졌을 때 사용하시면 됩니다. 어지간한 귀신은 접근 못하게 막아줄 것입니다.”

         

       토마스는 방긋 웃으며 선물을 설명했다.

         

       “수첩은 영국의 수도원에서 수도사가 직접 만든 것입니다. 정성 들여 만든 것이니만큼 쉽게 망가지지 않고 끝까지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건….”

         

       그는 긴장을 풀어주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티백을 가리켰다.

         

       “영국의 홍차 맛 좀 보시라고 넣어놨습니다. 영국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한 게 홍차와 스콘 아니겠습니까?”

         

       토마스는 자국의 음식을 소재로 삼아 농담을 날리며 하하하 웃었다. 그리곤 자신의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진성에게 건네주며 언제든 힘들 때 자신에게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곤 자리에서 떠나갔다.

         

       윌리엄 도련님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나가봐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토마스가 떠나간 뒤, 장영철 역시 자리를 떴다.

         

       다른 이들과도 만나야 하는데 여기서 너무 시간을 빼앗겼다면서 말이다.

         

       장영철이 자리를 이동하자 자연스럽게 모리스 역시 그를 따라나섰다.

       모리스는 이양훈에게 만나서 반가웠다는 인사를 건넸고, 진성에게는….

         

       “우리가 연이 있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요. 다만 얼굴을 마주하였으니 다음부터는 그 연이 뚜렷해지지 않겠습니까?”

         

       선문답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진성은 그러한 선문답 같은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받았고, 그 답을 들은 모리스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곤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몰려있었던 자리는 다시 두 사람만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양훈과 박진성.

       그 두 사람만 말이다.

         

       이양훈은 잠시 침묵하다가 진성에게 물었다.

         

       “다른 주술사라. 어떻더냐?”

       “흥미롭더군요.”

         

       진성은 ‘모리스’의 인상을 물어보는 이양훈의 질문에 미소를 지었다.

       아주 흥미롭다는 듯한 미소였다.

         

         

         

        * * *

         

         

         

       「 귀신은 사람을 현혹하고 세상을 어지럽힌다.

       이는 귀신이 보잘것없는 재주를 뽐내 신령한 것처럼 속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그마한 재주라도 신통한 데가 분명히 있기는 하니, 속지만 않는다면 능히 이득을 볼 수 있으리라. 」

         

       옛날부터 귀신은 유용하게 쓰여왔다.

         

       강령술(降靈術)을 이용해 망자를 불러 자신이 모르는 지식을 묻기도 하고, 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귀신의 힘을 빌려 점괘의 정확함을 높이기도 하며, 그들을 수족처럼 부려 나쁜 일에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귀신에게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한들 그것이 꼭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귀신은 신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다.

         

       예언자의 예언조차도 가변적이라고 여겨지는데, 고작 귀신의 예측이 무어 그리 대단하겠는가?

       그저 조상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그마한 재주, 신통해 보이는 재주일 뿐이다.

         

       잔재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귀신의 시선은 사람의 시선과 분명히 다르므로.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사람이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끼고,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일깨워줄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귀신이 전지전능하다는 생각도 버리고, 그들이 대단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버리고, 그저 조언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한다면 꽤 쓸만한 편이었다.

         

       모리스 역시 귀신을 그렇게 사용해왔다.

         

       인터넷의 확장프로그램처럼.

       궁금한 게 있을 때 확인하는 도움말처럼.

       혹은 위험을 알려주는 개처럼.

         

       그렇게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모리스는 그 도구의 경고를 들었다.

         

       [ 저 녀석, 손이 고양이 같네? ]

         

       손이 고양이 같다.

         

       꽤 귀여운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 귀여운 표현 안에는 분명한 경고가 숨어있었다.

         

       발톱을 감추고 있으며, 언제 발톱을 꺼낼지 모른다는 경고가.

         

       ‘한국, 주술 불모지라더니….’

         

       모리스는 진성과 마주했을 때 귀신들이 쉴 새 없이 떠들던 말을 떠올렸다.

         

       [ 석관 안에 있을 때를 생각나게 만드는 인간이다. ]

       [ 아, 무덤 깊숙한 곳에서의 향기여. ]

       [ 사람인데 시체고, 시체인데 죽지 않았고? ]

       [ 벌레가 느껴진다. 내 살을 파먹고 밖으로 빠져나왔던 끔찍한- 아, 그 꿈틀대는 역겨운 그것들! 아! 아아악! ]

       [ 싸늘함, 뜨거움. 그 두 가지가 느껴져요. 화장터에 갓 들어갔을 때를 떠올리게 만들어요. 화장? 화장터? 화? 장터? 오, 이보세요. 직원 여러분! 직원, 여-러-분-! 나는 죽지 않았어요. 나는 살아있어요. 나는 깨어있어요. 아직 정신이 살아있는데 불에 태우지 말아 주세요. 나는 아직 죽지 않았어— ]

       [ 귀신의 냄새, 무덤의 냄새, 석관의 냄새, 시체의 냄새, 벌레의 냄새. ]

       [ 벌레의 냄새? 아니야. 벌레의 기척? 아니야. 뭐지? 무엇이지? ]

       [ 싫어. 나는 저게 싫어요. ]

         

       귀신들은 진성에게 묘한 친근함과 꺼림칙함을 같이 느꼈다.

       모리스가 진성에게 가까이 가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고했으며, 진성을 관찰하려다가도 그의 시선이 닿을라치면 재빠르게 물건 안으로 숨었다.

         

       마치 움직이는 무덤이 자신을 잡으러 온 것을 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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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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