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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6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고 했던가.

        

       내 원래의 십 대 시절이 그랬듯, 남은 시간도 그렇게 빠르게 흘러갔다.

        

       물론 열받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짜증 나는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아이들과 한 번도 싸우지 않은 것도 아니다. 자주 티격태격하기도 했고, 가끔은 울기도 하고 울리기도 했다.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보듬어주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완전히 다 알고 있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었다. 하긴, 우리가 많은 일을 함께 겪기는 했지만, 당시 우리는 만난 지 1년도 되지 않았었으니까. 서로를 온전히 파악하기에는 조금 짧은 시간이긴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 싫어하는 음식이 뭔지도 몰랐고, 상대가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도 잘 몰랐다. 나는 하늘이 부모님을 직접 본 적도 없었다. 하늘이 부모님께서 뭘 하시는지, 위협당했던 회사가 어떤 회사였는지도 잘 몰랐고.

        

       하긴, 이런 것은 원래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다. 집에 몇 번이나 방문했던 십년지기 친구의 형이나 누나 얼굴을 전혀 모르거나, 그 아이들의 가족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었으니까.

        

       누구나 친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는 법이다. 아니, 비밀이 아니더라도 굳이 말할 필요가 없어서, 혹은 말할 생각을 하지 못해서 서로 본의 아니게 모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친구’ 관계니까 괜찮은 거다.

        

       그렇다. 친구 관계에서는 모르는 것이 있어도 된다. 나중에 정 알아야 할 일이 생기면 알아도 되고, 사실 그렇게 무조건 알아야 할 일은 거의 생기지도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친구 결혼식에 초대받아 갔을 때 정도려나. 이쪽으로 넘어오기 전에 친구가 결혼하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기는 했지만.

        

       하지만, 그 결혼식이 ‘나의’ 결혼식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부의 가족도 모르는 신랑……은 아니고, 또 다른 신부가 되면 안 되니까.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역시 안 되는 걸까…….”

        

       정말 오랜만에 나는 하늘이와 단둘이 있었다. 비록 그 후로도 친구들과 그런 관계를 계속 이어 나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간 집까지 따라갈 정도로 아이들이 눈치 없이 집착하지는 않았다.

        

       이건 하늘이 집에 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소희나 수아의 집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수아와 소희는 내가 부모님을 알고 있었다. 나름대로 깊은 대화를 해본 적도 있었고, 나름대로 친분도 있었기에 허락을 받아내는 게…… 뭐, 쉽다고는 하지 못해도, 받아 낼 수는 있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던가. 그건 소희네 아버지와 수아네 부모님께도 적용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육체적인 관계…… 그러니까, 포옹이나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 키스 정도를 제외하면 우리는 더 깊은 육체관계로 나아간 적은 없다. 내가 걸어둔 ‘성인이 될 때까지’라는 말을, 아이들은 정말 고마울 정도로 잘 지켜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동거 기간이 거의 3년에 근접하고 있는 우리였다. 그것도 집안 문제로 가출한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나를 좋아해서 내 집에 들어와 사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까지 쭉 그렇게 살았고,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쭉 그렇게 살았으니 십 대의 거의 절반을 쭉 함께해 온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이제는 애인들이라고 해야 하려나.

        

       수아나 소희의 머릿속에서는 이제 더는 나 외에 다른 상대가 남아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건 하늘이도 마찬가지였지만—

        

       “미안해…….”

        

       카페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하늘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그렇게 말했다. 나도 그렇지만, 하늘이도 정갈한 복장이었다. 부모님께 결혼 허락받으러 가는데 아무 옷이나 입고 갈 수는 없었으니까. 처음 구직활동하면서 면접 보러 갔을 때도 이 정도로 신경 쓰고 긴장하지는 않았는데.

        

       “아냐. 미안할 일은 없어.”

        

       나는 이 점을 확실하게 말했다.

        

       내가 나쁜 거다. 한 사람을 선택하지 못해서, 아이들에게 상처 주기 싫어서 계속 미루고 미루다 보니 지금의 이 상황을 끊어놓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하늘이, 수아, 소희에게 선택지가 나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던가?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빠지면, 나는 아마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그 사실로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갈 테니까. 내 일상에서 비어버린 한 사람의 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질 테니까.

        

       매일 아침 맡던 살 내음이, 세 사람 모두 다른 방식으로 해주던 포옹이, 입맞춤이, 말을 걸었을 때 언제나 거기 있다는 안도감이, 완전히 깨져버릴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나쁜 거다. 내가 이기적인 거고.

        

       상식적으로, 자기 딸이 결혼하려는 사람이 딸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도 결혼하겠다는데, 그걸 단번에 인정해줄 장인어른이 어디 있을까. 나라도 내 딸이 그런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똑같이 반응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하려는 결혼의 방식은 상식을 넘어선 것이라 법적으로 제대로 보호도 받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결혼제도는 오로지 일부일처제만 허용하니까. 나처럼 당당하게 여러 여자와 결혼하려는 인간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것도 여러 여자를 거느리겠다고 하는 젊은 여자라면.

        

       “오히려 미안하려면 내가 미안해야지.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까.”

        

       “……그런 말 하지 마.”

        

       하늘이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좋았다.

        

       “먼저 좋아한 건 우리였으니까. 네가 우리에 대해 친구라고 생각하던 시절부터 우리는 너를 그런 눈으로 봤잖아. 우리 셋이 억지를 부려서 여기까지 온 거고. 아무도 포기할 생각이 없으니까, 너가 희생하고 있는 거야.”

        

       ……참, 얘네들도 착해 빠져서 문제다.

        

       나는 손을 뻗어서 하늘이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하늘이는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고개를 가져다 대었다.

        

       나도 그 시절부터 조금은 자랐다. 체력은 완전히 회복했고, 지금은 오히려 건강하다고 해도 될 정도의 체중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 키가 하늘이보다 커졌다는 소리는 아니다. 여전히 수아를 제외하면 다들 나보다 키가 컸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하늘이가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내 가슴이 얼굴을 기대고 있는 하늘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으니까.

        

       “…….”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다시 해 보자.”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의 축복 없이 결혼할 수는 없으니까. 완전히 이해해주시지는 않더라도, 결혼은 축하해주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너무 슬프니까.

        

       하늘이가 자기 가족을 포기하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도 한 번에 허락받은 건 아니잖아. 우리도, 몇 번이고 다시 해 보자. 허락은 내가 꼭 받아내도록 할게.”

        

       “사라야…….”

        

       하늘이의 목소리는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하늘이는 나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

        

       우리가 하늘이의 부모님을 다시 찾아간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

        

       격한 반응은 없었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우리 둘을 가만히 바라보는 하늘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을 뿐.

        

       하늘이의 아버지는 팔짱을 낀 채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하늘이의 말에 따르면 평소에도 굳은 얼굴을 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건 분명히 그저 ‘평소의 얼굴’은 아닌 것 같았다.

        

       “부디, 허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면서 부탁드렸다.

        

       “저도, 결혼하고 싶어요.”

        

       “하늘아…….”

        

       하늘이 어머니께서 안타까운 목소리로 하늘이를 불렀다.

        

       “…….”

        

       하늘이 아버지는 여전히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저는—”

        

       “저!”

        

       내가 다시 한번 말하려고 입을 여는데, 갑자기 하늘이가 그렇게 외쳐서 깜짝 놀랐다.

        

       “제가! 이 아이를 책임져야 할 일이 있어요!”

        

       엑.

        

       사전에 합의된 적이 없는 이야기라서 식겁했다. 아니, 나를 책임져야 한다니,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그런 일이—

        

       아, 혹시 첫키……

        

       “얼마 전에, 제가 사라를 덮쳤습니다!”

        

       ……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아니, 그보다 그게 무슨 이야기야? 나는 아직 한 번도 누구랑 이렇고 저렇고 한 일을 한 적이 없다. 이제 결혼해도 될 법적인 나이가 되었고, 성인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다행히도 ‘결혼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아이들의 동의를 얻고 당분간 그…… 상황을 유예해둔 상태였다.

        

       당연히 하늘이랑도 잔 적이 없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입을 떡 벌리고 하늘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하늘이는 그 시선들을 온전히 받아내고 있었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서 있는 하늘이는, 자길 올려다보는 모두에게 선언하듯이 말했다.

        

       “사라의 처음을 제가 받아 갔으므로, 사람으로서 사라를 제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엑.

        

       아니, 아무리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서라지만, 이건 좀 너무 나가버린 게……?

        

       지금 이 상황에서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나는 그저 하늘이를 올려다보며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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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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