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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6

     수맥이 터졌다.

     

     아마도 바르셀로나 땅 지하에 흐르는 수맥이 하필이면 무너졌던 금광 위로 터져나왔던 것일 터.

     알고 있었나?

     ‘그럴 리가.’

     알고 있었다면 아예 개발을 하지 않았다.

     혹은 개발을 하더라도 지하수가 터질 수 있다는 걸 파악한 뒤, 그 다음에 미리 광산 노동자들을 불러다가 사금을 채취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준비를 할 새도 없이, 수맥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하….”

     어처구니가 없다.

     물 속에 얼마나 사금이 많이 스며들어있는 건지, 지하에서 뿜어져나왔는데도 황토물이 아니라 황금물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물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이건, 정말이지.”

     장례식 현장을 아버지에게 맡기고 급히 달려와 호수에 잠겨버린 마을의 광경에 실로 헛웃음이 절로나왔다.

     “우오오오ㅡㅡ!!”

     “흐헤, 금이다! 금이야!”

     마을 주민들은 열광하고 있다.

     죽은 사람이 있었다면 누군가는 슬퍼하겠지만, 그런 이가 없기에 저들은 기뻐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기사들 덕분에 살아나서 기뻐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금광을 한창 개발하고 있던 카를로스 경 이하 지브롤터의 기사들은 수맥이 터지자마자 장비와 채굴한 금을 내던지고 곧장 마을 주민들을 구하러 나섰다.

     만일 기사들이 조금만 황금에 눈이 멀었어도 마을은 지하수에 수몰되었을 것이며, 주민들은 몸 속에 지하수와 사금이 들어간 채로 황금 속에서 익사했을 터.

     일단 살아남았다는 것에 기뻐하는 것 같지만-

     “뜰채!! 뜰채 가지고 있는 사람 있어?!”

     아직 호수가 되어버린 지하수가 잠잠해진 것도 아닌데, 벌써 사금을 채취하려고 들기 시작했다.

     허리 아래가 흙탕물에 젖어 죽음의 흔적이 그대로 옷에 묻어있는데도, 마을 주민들은 눈 앞의 황금에 열광하며 희망을 본 것처럼 떠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내가 현장에 와서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초, 총독님.”

     “됐네. 카를로스 경.”

     마을 주민들의 태도에 카를로스 경은 어쩔줄 몰라했으나, 나는 상복의 검은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고인에 대한 애도는 충분했다고 생각하네. 장례식이 꼭 그 날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될 필요는 없겠지. 화장도 했고, 지금쯤 유골을 잘 수습하고 있을 테니까. 황금이랑 조금 섞이기는 하겠지만.”

     “휴식도 없이 바로 일을 시작하시는 겁니까?”

     “나에게는 일하는 게 쉬는 거야. 이 상황에서 괜히 모른척하고 있으면 물에 빠져 익사하는 이들이 늘어날 거고, 나중에 그거 건져내고 수습하는 게 더 힘들걸.”

     어느덧 소란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 중 그나마 일부가 나를 눈치채고 목소리를 낮추기 시작했고, 그제야 자신들이 처한 처지에 고개를 조아리기 시작했다.

     “이 근처에 계속 있으면 물이 범람할 수 있으니, 수몰된 마을 주민들은 근처 마을의 인근 공터를 정리하여 그곳에 임시 거주구역을 만들도록 하지. 제국식으로 지으면 사흘 안에 최소한의 생활환경은 만들어질 테니 안심하고.”

     정확히는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살면 좋겠느냐’라고 성 앞에서 드러눕기 전에 누울 자리를 마련해주는 거지만.

     “…잘 곳이 정리되고 난 뒤에는 일할 준비를 하라고 전하게. 집이 한순간에 수몰되어서 당황스럽겠지만, 가만히 있다가는 다른 이들에게 자리를 다 빼앗길테니까.”

     내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마을 주민들이 서서히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금 채취는 어린 아이도 할 수 있는 일. 이 구역 말고 다른 구역에서도 이 소식을 들으면 뜰채 가지고 찾아와서 사금을 채집하려고 하겠지.”

     사금 채취는 생각보다 쉽다.

     굳이 힘들게 광질하고 금이 스며들어있는 덩어리를 쪼개고 가를 필요 없이, 흐르는 물에 채를 받쳐 사금이 채에 걸릴 때까지 계속 좌우로 흔들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걸 또 분리하고 하는 게 일이겠지만, 아녀자나 아이들도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부분.

     이 마을 주민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마을에서 소식을 들은 광부의 아내와 자식들도 뜰채를 들고 찾아올 수 있다는 것.

     “경비병을 두는 것보다 여기 마을 주민들 스스로 눈 부릅뜨고 경비 서라고 하는 게 낫지.”

     사금을 채취하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사금을 채취하려고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다가 총독부가 나서야 할 사안이 생긴다면, 그게 오히려 우리에게 더 귀찮은 일이 발생할 터.

     ‘자리 때문에 살인사건 일어나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황금 앞에서는 또 얘기가 다르지.’

     이미 금광 개발만으로도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나를 향해 일어난 암살마다 내가 죽은 횟수를 다 더해도, 그 동안 금광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사상자의 숫자보다는 덜할 것이다.

     “미칠 법도 하지만, 정말이지 황금에 다들 미쳤군.”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고 총독이라는 자리에 있어서 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는 해도, 때로는 이 나라의 사람들은 너무 황금에 미쳐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뭐…사건 사고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냥 또 하나의 금맥이 터진 걸로 흘러가면 좋겠지. 카를로스 경. 저기 뒤에 행정관들이 도착하면, 그들에게 이곳을 수습하라고 전해주게. 나는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가야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총독님.”

     “아, 그리고 여기 이름은….”

     “이름이요? 사르코파구스 마을입니다.”

     “고맙군. 그런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새롭게 정할 이 마을, 그리고 호수의 이름이었어.”

     “새 이름이요?”

     “그래. 가장 적절한 이름이 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건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총독부 방향을 가리켰다.

     “허가가 나면 바로 그 이름으로 공표하는 걸로 하지.”

     * * *

     

     잠시 뒤.

     나는 장례식의 모든 절차가 끝난 뒤, 총독부에서 조금 떨어진 지브롤터의 전용 마도자동선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우리 가족들을 찾았다.

     “어머니. 잠시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둘이서 따로 이야기를 하자고?”

     

     그 중에서도, 어머니를.

     “무슨 일이니?”

     “금맥 아래 지하수가 터지며 생긴 호수 말입니다. 그곳에 이 이름을 쓸까 합니다.”

     나는 어머니의 방에서 어머니에게 단어 하나를 적어 건넸다.

     “이건….”

     “일단 허락은 구해야 할 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죽은 사람을 이용하는 것처럼 비춰지지 않겠습니까?”

     “나쁘게 생각을 하면 실제로 이용하는 셈이로구나.”

     “예. 조금, 객관적인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패륜을 입에 담아야 할 수도 있겠지만,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 게 차라리 편할 때가 있다.

     “발자크 렘부르 군터 남작, 금맥을 발견하고 사망하다. 그의 장례식 마지막날, 지하수가 터지면서 황금으로 물든 호수가 생겨나다.”

     “……무슨 옛날 이야기에 나올 법한 이야기구나.”

     어머니는 내가 하려는 계획을 바로 눈치챘다.

     “[설화]로 남길 거니?”

     “예.”

     설화.

     신화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고, 지역이나 마을 단위에서 내려오는 전설적인 이야기.

     “발자크 남작을 조금 신격화해볼 생각입니다. 나쁜 말로 표현하자면, 시체팔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정말 나쁜 말이로구나.”

     “사실인 걸요.”

     실제로 그러하다면 그냥 고인의 유지를 이어받는 거지만, 사금호수에 관한 이야기는 내가 만들어내고 지어낼 것이기에 시체팔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우는 저희로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 장례식 연회에 참석한 이들 대부분 그러더구나. 자기는 무슨 남작이 아니라 공왕(公王)이 돌아가신 줄 알았다고.”

     어머니가 자조하듯 웃었지만, 실제로 장례식 과정이나 참가한 면면, 그리고 장례식 연회의 규모가 그러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가신 분이 노스트럼의 영령이 되어, 노스트럼의 모든 이들을 위해 황금의 축복을 선사한 셈이 되는 거죠.”

     “말 그대로 신격화하려는 거구나.”

     “지금은 그저 빚을 지고 끝까지 노욕을 내려놓지 못하고 죽은 노인네지만, 한 100년 정도 지나면 후손들을 위해 전설적인 축복을 내려준 존재로 추앙받을 겁니다.”

     사금공 발자크 설화.

     “오래 전 바르셀로나 땅에 곡괭이 든 노인이 찾아와 땅을 파냈다네. 모두가 말렸지만 노인은 땅을 계속 파냈고, 결국에는 황금을 찾아냈어. 노인의 희생 덕분에 호수가 생겨났고, 지금에 이르러 황금호수가 된 거야.”

     수몰된 마을 주민들의 아이들이 50년 정도 뒤에 손자손녀들에게 마을의 일화를 이야기할 때, 분명 그렇게 이야기를 하겠지.

     “…아이에게 이야기하기에는 구멍이 숭숭 뚫린 이야기구나.”

     “그냥 토대만 마련한 겁니다. 나머지는 동화작가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구요.”

     “그렇게 해서 네가 얻는 건 뭐니?”

     “우리가 얻는 겁니다, 어머니.”

     나는 나와 어머니, 그리고 밖을 가리켰다.

     “발자크 렘부르 군터라는 추악한 욕심덩어리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 아닌, 모두에게 사금의 축복을 나눠준 영웅의 핏줄이 되는 셈이지요.”

     “…….”

     “지금 당장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0년, 20년,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뒤에는 아이들의 입에서 황금의 축복을 찬양하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겠죠.”

     “…왜?”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진짜로 얻는 이득이 뭐길래?”

     “망각.”

     나는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발자크 남작에 대해서 떠올릴 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과의 관계를 떠올리는 게 아닌, 이 호수의 일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될 겁니다.”

     “…….”

     “황금으로 과거를 덮는 겁니다, 어머니. 당신의 인생에서 발자크 렘부르 군터라는 걸 세상 사람들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게. 그 노인이 살아온 인생은 그 개인의 것이 아닌, 제가 조작한 이 사금호수의 전설만으로 기록되고 정리되겠죠.”

     한 인간의 역사가 생전의 궤적으로 알려지는 게 아닌, 사후에 이루어진 조작으로 쓰여진다.

     “발자크 렘부르 군터에 관한 사료에는 모든 것이 지워질 것입니다. 남는 것은 오로지 세 가지. 하나. 샤를로트 렘부르 군터의 아버지였다. 둘. 렘버리 캠프의 중책을 맡았다가 크게 실패했다. 셋.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금광과 사금호수를 발견했다.”

     “…….”

     “한 인간의 60년 넘는 인생은 역사의 그 어디에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남는 거라고는 그저 말년의 실패와 조작된 신화 뿐이죠.”

     “진짜 목적은….”

     “저희가 매국을 결정하게 된 근원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는 것.”

     “…….”

     “누군가의 기억에는 남겠지만, 그 어떤 역사서를 뒤져봐도 ‘기록’에는 남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고개를 떨구었다.

     “허락, 해주시겠습니까?”

     “…그레이.”

     어머니가 잠시 숨을 들이키며 고개를 들었다.

     “혹시나. 만일. 정말 만약이지만 말이야.”

     어머니는 어딘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만일 내가 죽는다면, 그로 인해 너와 네 동생들에게 안 좋은 상황이 된다면.”

     “어머니.”

     “그 때도 지금처럼 해준다면, 허락할게.”

     “…….”

     “발자크 렘부르 군터라는 인간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니야. 이건 순수한 의미에서 너희를 위한 거야.”

     어머니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나를 팔아서 너희를 지킬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팔아도 좋단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습니까?”

     나는 손수건을 어머니에게 건넸다.

     “팔려고 했으면 이미 9년도 전에 팔아치웠겠죠.”

     “…위로라고 하기에는 뭔가 말하는 게 엄청 어색하구나?”

     “…….”

     나는 말을 아꼈다.

     회귀 전 나의 가족 중, 가장 먼저 죽었던 사람은 어머니였고, 그 죽음은 나로서는 조금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악몽같은 것이었으니.

     “그레이. 이것 하나만 알아주렴. 나는 죽더라도, 너희들에게 가장 가치있게 죽을 거라는 걸.”

     “…이왕 돌아가실 거라면, 손자손녀 결혼하는 것도 보고 가시죠.”

     “후후, 얼마든지.”

     어머니는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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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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