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57

       교수로서 일리야드에 잠입한 후, 두 달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에테르는 한 가지 준칙에 따라 행동해 왔다.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되,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지 않는다.’

       

       마수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효과는 그럭저럭 있었다. 로테, 프레이, 버멜. 그 셋을 제외하면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으니까. 

       

       이는 세실 총장도 마찬가지였다.

       

       “곧 있으면 견학입니다. 하이젠버그 교수께서 잘 인솔하여 주시길 바랄게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에테르는 그리 말하고는 총장실을 빠져나왔다. 얼마간 걷자 아카샤가 따라붙었다.

       

       “언니, 괜찮겠어?”

       “뭐가.”

       “총장이 언니를 의심하고 있잖아. 정말 세계수를 보러 가도 되겠냐고.”

       “상관없어.”

       

       마음껏 의심하라지.

       

       거기 가서도 아무 짓 안 할 예정이다.

       

       이곳에 온 목적은 어디까지나 염탐이었다. 괜히 과도하게 움직였다가 정체만 들키면 본전도 못 건진다.

       

       게다가.

       

       “아직 그게 완성되지 않았잖아.”

       

       원자폭탄.

       

       세계수에 떨어뜨릴 핵무기 개발이 아직 전부 완성되지 않았다.

       

       “최소 3개월은 걸리겠지. 그동안 학업에나 힘쓰면 그만이야.”

       

       예컨대 흑주를 완성하는 것도 학업이라 할 수 있다.

       

       “때마침 좋은 대학원생… 아니, 학부 인턴을 들였거든. 그것도 둘이나.”

       “…야.”

       

       아카샤는 이마를 짚었다. 못 말리겠다는 표정이었다.

       

       “언니, 요새 많이 누그러졌다?”

       “어디가?”

       “지나가는 말이니까 그냥 흘려들어.”

       

       아카샤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보다도, 슬슬 본진에 다녀와야 하는데.”

       

       잠입해서 정보를 빼내었으면 본진인 마왕서에 보고하는 것이 정상이다. 학기가 시작한 지도 2개월이 지났으니 한 번쯤 중간보고를 올릴 때가 되었다.

       

       그 보고서를 받는 대상이 창천과 호천이라는 점이 영 내키지 않는다. 그래도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는 구분한다. 에테르는 한숨을 쉬며 품에서 보고서를 꺼냈다.

       

       “병결 처리를 해줄 테니까 잠깐 마왕성에 다녀와. 가서 나머지 사천에게 전해. 폭탄이 얼마나 만들어졌는지도 확인하고.”

       “알았어.”

       “아, 그리고….”

       

       나는 아카샤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

       “…그럼 다녀와.”

       

       에테르는 쌍둥이 동생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잘하고 오라는 뜻이었다.

       

       

       **

       

       

       아카샤가 없는 동안, 에테르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열중했다.

       

       시간이 지나 ‘나’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그럭저럭 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호응이 나쁘지 않아 가르치는 보람이 있었다.

       

       그렇다고 학생들과 긴밀히 교류할 생각은 없었다. 에테르는 특히 틸레트에서 온 학생들을 경계했다. 지난 한 달간, 그들 중 누구와도 말을 섞어 본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대신 두 학생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했다.

       

       유피엘 피어바인, 그리고 레니냐였다.

       

       에테르는 두 학생을 학부 인턴으로 만들었다. 자신이 제안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두 학생이 부탁했고, 에테르는 허락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연구실에서 두 학생을 관찰한 결과.

       

       두 학생에겐 한 가지 차이점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신분이었다.

       

       유피엘은 피어바인의 피가 흐르는 하이엘프인 반면, 레니냐는 성씨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한쪽은 온실 속 화초로 자랐고, 다른 한쪽은 어릴 적 부모를 여의었다고 들었다. 태어났을 때 상황도, 자라난 환경도 서로 다른 두 사람이었다.

       

       “어떻게 선을 그어야 좋을까?”

       “여기 이쪽으로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런데도 저렇게 머리를 맞대고 지낸다.

       

       레니냐와 유피엘 모두 학구적이었고 차분한 성격이었다. 방종하지 않았으며, 자유롭고 수평적인 관계를 추구했다.

       

       유유상종이라고 해야 할까?

       

       차이점은 하나뿐이었지만, 공통점은 배 이상으로 많았기에 둘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이렇게 하면 마나가 이쪽 회로를 지날 때 문제가 생길 거야.”

       “그런가? 이렇게 하는 건?”

       “나쁘지 않은데?”

       

       두 엘프는 한 책상에 둘러앉아 펜을 끄적거렸다. 그 모습을 보는 에테르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에테르가 공부하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말을 걸었다.

       

       “두 달 사이에 많이 친해졌구나.”

       “네, 레니냐는 똑똑한 친구인걸요. 선생님이 계시지 않을 때 저에게 많은 걸 알려주었어요.”

       

       유피엘은 그리 말하며 레니냐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레니냐의 귀가 위아래로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아, 아뇨. 유피엘이 더 뛰어난데….”

       “레니냐는 천재예요.”

       “야, 너….”

       “학기 시작부터 사귀었으면 좋았을 텐데, 많이 아쉬워요.”

       

       유피엘의 계속된 칭찬에 레니냐 호는 격침되었다.

       

       레니냐는 보기보다 수줍음이 많았다. 유피엘이 입을 열 때마다 어쩔 줄 몰라하며 얼굴을 붉혔다.

       

       “…….”

       

       두 사람의 티키타카를 보는 족족 오묘한 기분을 느꼈다. 

       

       일종의 기시감이었다. 겪은 듯하면서도 겪어보지 않은 느낌.

       

       “앗,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 느낌이 어디서 온 감각인지 반추하던 사이, 공부에 열심이던 두 제자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먼저 말을 꺼낸 건 유피엘이었다.

       

       “오랜만에 회 먹고 싶다. 우리 저번에 갔던 그 집 갈래?”

       “요새 생선 비싸잖아.”

       “내가 쏠게.”

       “돈 괜찮아?”

       

       유피엘은 주저하지 않고 지갑을 꺼냈다.

       

       1천만 엘랑짜리 수표가 족히 스무 장은 들어있었다. 레니냐로서는 입이 떡 벌어지는 액수였다.

       

       “이 정도면 괜찮아.”

       “미안해서 어떡해. 나는 매일 받아먹기만 하는데….”

       “괜찮대도. 내가 쏘고 싶어서 쏘는 거니까. 자, 가자!”

       

       레니냐가 어어, 하는 사이. 유피엘이 제 친구의 손을 붙잡고 튀어나갔다. 자신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연구실.

       

       “…….”

       

       이것도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었다.

       

       그런데도 도저히 기억나질 않아서. 머리를 싸맨 채 의자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흐으.”

       

       신음이 흘러나왔다. 둔기로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뒤통수가 얼얼했다.

       

       “야, 나 다녀왔어.”

       “어, 아카샤. 마침 잘 왔다.”

       

       아카샤는 일주일만에 짐을 한 꾸러미 싸 들고 돌아왔다.

       

       “보고는 제대로 했고?”

       “당연하지. 답신도 받았어.”

       

       아카샤는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창천과 호천 명의로 온 것이었다.

       

       꺼내서 읽어보니 사무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대충 상황은 파악했다, 새로운 작전을 수립하는 중이다, 계획은 예상대로 진행될 것이다, 기타 등등. 그중에는 원자폭탄 관련 내용도 있었다.

       

       “아직 원폭이 완성되질 않은 모양이로군.”

       

       편지지에는 공정 문제로 절반도 채 만들지 못했다고 쓰여있었다. 예상보다 일정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에테르가 편지를 다 읽고 한숨을 쉬려던 찰나였다.

       

       “아니.”

       

       아카샤가 고개를 내저었다.

       

       “두 사천을 만나기 전에 몰래 공장에 다녀왔어. 그런데 거의 다 만들어 놓았더라고.”

       “뭐? 어느 정도로?”

       “못해도 9할은 완성한 것 같던데.”

       

       아카샤는 그러면서 민천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고 답했다. 아랫것들 말로는, 피치블렌드 가공을 열심히 하는 중이라고.

       

       “공장에서의 작업 속도는 상상 이상으로 빨랐어.”

       

       보고를 받은 에테르의 눈가에 핏대가 섰다.

       

       “미친 새끼들.”

       

       자신은 제대로 보고했는데, 자기들은 뒤통수를 후려?

       

       빠득, 하고 이가 갈렸다. 에테르는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묻히며 아카샤를 쏘아붙였다.

       

       “네가 거짓을 보고한 게 아니렷다.”

       “와, 억울하네.”

       

       아카샤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아무리 마왕군이 개판이라도 그렇지. 내가 설마 하나뿐인 혈육을 저버리려고 이간질을 하겠어?”

       “…….”

       “미덥지 않으면 나부터 죽이든가.”

       “아니, 아니다. 미안하다.”

       

       에테르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쌍둥이 동생이지 않은가. 어린 시절부터 동고동락하던 아이를 저버리다니, 있을 수 없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아카샤가 미묘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잠시 생각해 봐야겠군.”

       

       지금은 창천과 호천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길라흐는 즉흥적인 편이라 예측하기 쉬웠다. 마왕에게 총애를 받고 싶어하는 그라면 자신의 공적을 가로채려고 하고도 남는다.

       

       그까짓 전공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일이 다 끝나면 마왕성도 불바다로 만들 계획이었으니까.

       

       문제는 파스모였다.

       

       “호천은 몰라도, 창천까지 아무 말 않았다니.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모양이로군.”

       

       파스모는 마왕이 가장 총애하던 심복이다.

       

       전투력도, 정치질도 고단수.

       

       마왕군은 뒤통수가 일상인 집단이다. 파스모라고 가만히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대전쟁 때 크게 활약했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때 넌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지. 마왕은 날 사천으로 올려놓았지만 출정시키지 않았었고.”

       

       그 때문에 파스모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는 모른다.

       

       그나마 알고 있는 키워드는 ‘호롱불’과 ‘붕대’, 그리고 ‘그림자’.

       

       그것 말고는 전투 방식이나 수준을 알 길이 요원하다.

       

       “…음흉한 놈.”

       

       일단 뒤통수 안타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겠다. 이대로 순순히 당해 줄 상천이 아니었다.

       

       에테르가 한참을 진중한 표정으로 있자, 아카샤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야, 이거.”

       

       에테르가 눈동자를 뒤룩 굴렸다.

       

       아카샤가 꺼낸 것은 목도리 두 개였다. 하나는 검은색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얀색이었다.

       

       “난장판이 된 네 연구실에서 주워왔어. 도중에 세탁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

       “어느 쪽 가질래?”

       

       조금 있으면 여름인데, 목도리라니.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두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하나를 냉큼 빼앗아 손에 들고 있었다.

       

       “…….”

       “하양? 나쁘지 않지. 언니는 흑발이니까 그게 어울려.”

       

       그러면서 아카샤는 검은색 목도리를 시험삼아 둘렀다.

       

       “…아.”

       

       에테르는 자기 손에 들린 하얀 목도리를 보자마자 짧은 탄식을 흘렸다.

       

       이제야 알겠다.

       

       지난 기시감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를.

       

       지난 한 달간 보았던 레니냐와 유피엘의 관계는, 자신과 어떤 소녀의 관계와 무척이나 닮아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본편 기준) 올해 상반기 완결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벌써 차기작을 쓰고 싶은 것이어요 ㅇㅅㅇ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