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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7

       아니 시발 잠깐만.

        

       나는 ‘처음부터’라고 했지, ‘처음의 그다음’부터라고는 안 했는데.

        

       이쪽 세상으로 오고 난 나의 기준으로도 꽤 오래된 기억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내가 ‘다시!’라고 외칠 때마다 발동되는 나의 능력은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서 시간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신의 생각을 잠깐 봤으니 ‘그런 방식’의 시간여행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그러니, 지금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상황은 다시 말하자면 ‘내가 지금 진짜로 처한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단안경을 쓰고 콧수염을 기른, 어깨가 떡 벌어진 신사.

        

       실크햇과 고급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솔직히 ‘젠틀맨’이라고 불릴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나, 실제로 하는 행동으로나.

        

       꽉 쥔 주먹이 위로 올라간다.

        

       내가 이쪽으로 오고 나서 처음으로 겪었던 고통이 다시 한번—

        

       퉁.

        

       “음?”

        

       하지만, 그 주먹이 내 얼굴이 미처 닿기 전에, 마차 창문 쪽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얼굴이 창문 쪽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다른 손으로는 내 몸을 꽉 누르고 있어서 쉽게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때처럼 주먹 한 대에 얼굴이 뭉개지는 일은 없었다.

        

       퉁!

        

       조금 더 강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마차 창문이 흔들렸다. 바깥에서 누가 뭐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이제는 기억도 희미한, 사실 별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이년이!”

        

       분명히 그렇게 외친 것 같았다.

        

       그리고,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억에 있는 소리다. 물론 내가 살면서 수많은 유리를 깨보긴 했지만, 일반적인 창문을 깨는 것과 램프를 깨버리는 소리는 의외로 큰 차이가 있다. 램프는 유리뿐만 아니라 금속으로도 이루어져 있으니까.

        

       바닥에 램프의 쇠 부분이 닿는 둔탁한 소리와 유리 깨지는 소리, 동시에 뭔가 바닥에 촥 흘러넘치는 소리와 뒤이어 들리는 화르르 타오르는 소리.

        

       그리고 비명.

        

       그래, 클레어는 이때 바깥에 있었다.

        

       창밖을 보던 남자의 단안경에 푸른 불꽃이 비쳤다.

        

       남자는 바로 몸을 일으켜 마부석 쪽의 벽을 주먹으로 쿵쿵 두드렸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마부는 알아들은 모양이다. 바로 채찍 소리가 들리고, 말이 히잉, 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마차가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언니!”

        

       바깥에선 그런 소리가 들렸다. 클레어가 외치는 소리일까.

        

       하지만 그 소리가 무색하게도 마차는 앞으로 나가는 속도를 더 빠르게 하고 있었다.

        

       아무리 클레어가 그런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어린아이.

        

       마차를 따라올 만한 능력은—

        

       뭐,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긴 해.

        

       “다시!”

        

       *

        

       능력은 먹혔다.

        

       지금 이 세상이 어떻게 되먹은 건지 생각할 틈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시간을 돌려서 되돌아온 부분이 다시 내가 얻어맞기 직전이었으니까.

        

       남자가 주먹을 드는 것이 보이고—

        

       나는 이를 악물고 다리를 움직였다.

        

       내가 그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할 거라는 걸 몰랐는지, 아주 잠깐 당황했다.

        

       하지만 곧장 손을 들어 올렸다. 그래봐야 어린아이니까. 성인 남성의 다리로 찍어 누르면 아이는 반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법이다.

        

       한 손으로 내 목을 꽉 쥐어서 숨을 쉬기 힘들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쨌거나 기회가 있다는 건 알았으니까.

        

       한 번 기회가 있다면 나에게는 무수한 기회가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다시.

        

       *

        

       콱!

        

       딱 한 번 움직일 수 있었던 발이, 남자의 고간을 정확하게 찍었다.

        

       남자의 얼굴이 순간 파랗게 질렸다.

        

       그래, 나도 전생에 남자였기에 알고 있다. 제대로 맞으면 존나 아프다는 거.

        

       그러려고 발길질을 한 거니까.

        

       순간 내 몸을 누르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나는 다시 한번 발을 놀렸다. 남자의 손이 나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고, 나는 간신히 상반신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남자에게 달려들어,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콰직, 하고 남자의 눈에 있던 단안경이 깨졌다. 내 주먹에도 유리 파편이 몇 개인가 박혔지만, 그보다 남자의 얼굴 상태가 더 심각했다.

        

       얼굴에 지지대도 없이 끼워둔 유리알뿐인 안경이 눈 위에서 깨졌으니 당연한가.

        

       “이년이!”

        

       그와 동시에 문밖에서 그런 소리가 들리고, 쨍그랑, 하고 램프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찢어지는 비명 이후에, 바로 마차 문이 덜컥거렸다.

        

       남자가 눈을 부여잡고 있는 사이에 나는 얼른 문손잡이를 잡아 마차 문을 열었다.

        

       “언니!”

        

       그리고, 드디어 클레어의 얼굴을—

        

       “아.”

        

       보는 동시에, 그대로 목 뒷덜미가 잡혔다. 아마 남자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내가 어떻게 대응하기도 전에 반응한 이가 있었다.

        

       “다시!”

        

       클레어는 그렇게 외쳤다.

        

       엑.

        

       *

        

       콱!

        

       “크윽!”

        

       남자의 얼굴에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클레어가 던진 돌멩이는 눈을 가린 남자의 손에 아주 정확하게 명중했다.

        

       “언니, 빨리!”

        

       클레어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클레어의 꼴도 말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큰 상처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닥에 구르기라도 한 듯 옷에 흙먼지가 잔뜩 묻어있었다.

        

       적어도 램프를 깨면서 화상을 입은 것은 아니니 다행이었다.

        

       나는 얼른 클레어의 손을 잡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클레어는 그대로 내 손을 잡아끌며 뛰기 시작했다.

        

       “이 쓰레기들이……!”

        

       진짜 쓰레기가 말이 많네.

        

       뒤쪽에서 잔뜩 화가 난 남자가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렇게 처맞으면서도 정중한 모습을 최대한 잃지 않으려던 남자였는데, 아무래도 어린아이한테 얻어맞은 것이 분하기라도 한 모양이다.

        

       “애들은?”

        

       “당연히 전부 데리고 가야지. 언니가 했던 것처럼.”

        

       클레어가 그렇게 말하면서 내 팔을 쭉 잡아당겼다.

        

       ……무슨 상황인지 정확하게 파악은 하지 못했지만, 아무래도 내가 노린 상황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는 모양이다.

        

       여신의 힘은 그대로였지만, 동시에 클레어에게도 옮겨갔다. 어쩌면 지보의 힘 때문일지도 모른다. 클레어에게는 그럴만한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뒤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저 앞에서 활활 타고 있는 고아원장의 시체를 보고 우리를 쫓을 생각을 버린 모양이다. 더 엮이면 상황이 곤란해질 거라고 생각한 걸까?

        

       적어도, 고아원 자체가 불타고 있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앞장설게.”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클레어는 내가 기억하던 그 어렸던 시절의 클레어였지만, 이상하게 바로 조금 전까지 기억하던 늠름한 클레어의 모습이기도 했다.

        

       *

        

       “…….”

        

       “그, 황녀님?”

        

       앨리스에게 말을 거는 호위 기사의 목소리에는 긴장이 어려있었다.

        

       아직 ‘소녀’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로 어린 황녀가 마구 떼를 써서 온 곳이 여기였다.

        

       어째서 황녀가 이런 ‘우범지대’를 알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우범지대에서도 하필이면 ‘고아원’을 알고 있는 건지는 그도 몰랐다.

        

       황녀가 탄 마차 외에도, 그 마차를 호위하기 위한 마차가 몇 대나 더 있었고, 그 주위에는 말을 탄 기사들이 있었다.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지시해서 밖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연히 황제에게도 보고가 이루어졌다. 황제는 몹시 흥미롭다는 듯 이 상황을 승인했다.

        

       대체 이 어린 황녀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찾기 위해 여기에 와 있는 건지.

        

       “지난밤에 화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고아원장이 램프를 부주의하게 다뤄서……”

        

       “고아원은 무사한가요?”

        

       “네, 건물은 무사합니다만, 밤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에 있던 고아들은 어디로 사라진 모양입니다.”

        

       기사는 추측 같은 것은 담지 않고 담백하게 보고만 올렸다.

        

       “그런가요.”

        

       황녀 앨리스 팬그리폰은 잠깐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알았어요. 확인은 끝났으니 다시 황궁으로 돌아가도록 해요. 도와주셔서 고맙네요.”

        

       “아닙니다. 제 임무인걸요.”

        

       어린 황녀의 치하에 기사는 여전히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

        

       실비아와 클레어의 사이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서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시야의 위치였다.

        

       앨리스가 기억하던 시야의 위치보다 한참 아래였으니까.

        

       손을 보았다. 여리고 작은 손이었다. 팔도, 다리도, 앨리스 자신이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짧았다.

        

       그리고 거울을 본 뒤에야 깨달았다.

        

       시간이 되돌아갔다고.

        

       “…….”

        

       그렇다면, 그 상황을 앨리스가 기억하고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거울 안의 앨리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뚫어져라 거울 안의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깨닫는다.

        

       그때 그 기계장치 안쪽.

        

       그 안에는 앨리스 자신이 들어있었다.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대체 어쩌다가 그런 상황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기계장치 안의 존재가 ‘가면을 쓴 여자’였다는 것 정도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가면녀가 있었을 때, 시간이 돌아간 뒤에도 앨리스는 기억을 잃지 않았었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삶을 살아가며 후회하지 않는 이가 얼마나 있겠느냐 싶겠지만, 앨리스는 어린 시절에 후회할만한 일을 많이 저질렀다.

        

       특히, 별다른 조건도 없이 그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했던 실비아에게 너무 오랫동안 매몰차게 대한 것.

        

       몇 년이고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상대도 정이 떨어질 만 했지만, 실비아는 끝까지 그 태도를 유지해주었다.

        

       앨리스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것도 실비아 덕분이었고.

        

       그렇다면, 여기서 실비아를 다시 만나면.

        

       그 어렸던 시절의 실수도 만회할 수 있는 걸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화는 바로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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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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