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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7

    루크는 오랜만에 만난 리브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리브가 루크의 품 안에서 잠깐 허우적거렸다.

    그 모습에 리브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아차린 루크는 웃으며 답했다.

     

    “음, 네 갑옷 말이구나? 그건 네가 당장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 일단 아공간에 두었다.”

    “……?”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이 시대는 대체로 평온해서 그 거추장스럽고 커다란 갑옷 보다는 이 몸이 더 네게 맞을 게야. 움직임도 더 편할 테고.”

    “……!”

    “하하, 네가 그리 걱정하지 않더라도, 나의 몸은 스스로 지킬 수 있단다. 너는 그저, 나와 함께 있어 주기만 하면 돼.”

    “…….”

     

    리브의 자신이 정말 그래도 되느냐는 듯이 불안하게 올려다보는 시선에, 루크는 안심하라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리브는 존재만으로 자신에게 위안이 된다.

    이 시대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신이 루크 이루시로 있을 때를 온전히 기억해주는 존재가 아닌가?

     

    이 시대의 인물들은 루크가 직접 자신의 정체를 밝힘에도 불구하고 그리 가볍게 넘겨버리고 잘 믿어주려 하지 않았다.

    뭐, 정말 여자아이가 하는 헛소리 취급을 당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정확히 하자면 자신도 본래는 잊혀져야 할 역사의 존재이니.

     

    ‘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믿지 않아 주어서 고맙다고 해야하나.’

     

    5000년이나 되는 긴 세월은, 일반적인 생물은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긴 시간이니까.

    아마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진심으로 믿었다면, 잊혀진 역사는 다시 돌아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신이 온전히 부활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그렇게 어처구니 없이 여신이 돌아와버린다면, 자신은 무엇 때문에 잊혀질 전투를 했단 말인가.

    덕분에 서로의 유일한 이해자인 루크와 리브는 쌓아 둔 대화의 주제가 굉장히 많았다.

     

    “네 그 검술을 완성시키기 위해 내가 케일과 함께 어찌나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던지.”

    “……!”

    “그래, 그래. 바로 그 동작이었다. 그게 바로 그 결과물이었어. 훌륭한 자세구나!”

     

    케일과 함께 만든 검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래서 그 때 레니에가 말했었지. 피망과 오이는 몇천년이 지나도 절대 입에 대지 않을 거라고. 그녀는 정말 그랬나?”

    -끄덕, 끄덕.

    “하하하! 그것 참, 엄청난 의지로구나!”

     

    레니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한바탕 웃어제낀 루크는 웃느라 조금 삐져나온 눈물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토록 들뜨고 즐거운 기분이 든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아 참, 네게 소개를 시켜주고 싶은 아이가 있는데 말이다.”

    “……?”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리브.

    루크는 리브를 품에 안아들고는 일어섰다.

     

    “자, 이 쪽은 네 동생인 ‘케이트’란다. 아직 자아는 다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나중에 네가 잘 챙겨주면 좋겠구나.”

     

    리브는 케이트를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아마도, 동생이라는 것이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리라.

    그에게 ‘동생’은 모두 세월에 함께 스러져버린 흔적밖에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다시 동생이 생겼다는 것은 복잡한 감정이 들겠지.

     

    어쩌면, 어머니의 뱃속에 자신의 동생이 있음을 알게 된 인간과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이해도 간다.

    자신도 동생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런 느낌이었지.

     

    루이 이루시.

    가문에서 나온 자신을 대신해 가문을 이어주었던 고마운 동생이다.

     

    동생은 마법보다는 정치쪽으로 재능을 보여서 자신과 함께 교육을 받은 적은 없어 교류도 잘 없었지만.

    그래서 루크의 기억 속에도 그에게 별다른 기억은 남아있지 않았다.

     

    ‘뭐, 실은 정말 나의 동생도 아니지.’

     

    자신은 루크 이루시의 서클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의 모든 과거가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그 때는 루크의 몸에 서클이 새겨지기 훨씬 전이기도 했고.

     

    “아무튼, 친하게 지내주거라.”

     

    루크는 멍하니 케이트를 바라보고만 있는 리브의 손을 잡고 대신 흔들어주었다.

     

    그 모습은 마치 여자아이가 인형들을 가지고 소꿉놀이를 하는 장면과 비슷해 보였다.

    꽤나 즐거워 보이는 모습이다.

     

     

    귀여운 여자아이가 혼자서 소꿉놀이를 하며 인형에게 말을 거는 것과 비슷한 장면이었으니.

     

    하지만, 그 광경을 탐탁치 않게 보고 있는 시선이 하나 있었다.

     

     

    파이리스는 조금 뚱한 표정으로 메루루를 보던 컴퓨터에서 일어나 루크에게 다가가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언니, 나 한테 약속한 거 있지 않았어?”

    “아, 맞다.”

     

    루크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분명, 파이에게 보상으로 마력을 가득 담은 쿠키를 구워주기로 약속을 했었지.

     

    “나, 지금 쿠키 먹고 싶어. 인형이랑 그만 놀고, 나 쿠키 만들어줘.”

    “아, 알겠다. 잠시만 기다리거라.”

     

    루크는 파이리스가 크게 실망하기 전에 얼른 쿠키를 구워 주어야 겠다고 생각해 리브를 내려 두고 일어섰다.

     

    루크가 그렇게 주방으로 향하자, 파이리스는 리브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언니는 내 언니야. 나도 언니랑 엄청 오래 있었단 말야.”

    “……?”

     

    파이리스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는 리브는 의문이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이리스는 그 모습에 화가 난 듯이 씨익씨익거리다가…….

     

    “그런데 나한텐 한번두……. 그렇게 말해준 적 없는데……. 치사해!”

     

    파이리스는 곧장 손을 뻗어 리브의 몸을 쭉 쭉 잡아늘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파이리스는 리브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다.

    따지자면 파이리스 역시 고대의 존재, 5000년보다 더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정령이라는 것이었다.

    허나 루크는 그보다 훨씬 짧은 시간을 보냈을 뿐인 ‘리브’에게는 더없이 즐거워 보인다는 것이 정령 파이리스의 섬세한 감수성에 질투심이라는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뭐, 루크의 입장에서는 파이가 5000년 전에 존재했던 존재라고는 해도 그 당시 자신은 정령친화력은 0에 가까웠던 대마법사였고, 파이는 전 대륙적으로도 희귀했던 ‘현신’이 가능한 고위급 고대정령이었으니 딱히 만날 일도 없고 공통적인 대화주제도 없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파이의 입장에서 그런 것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대신 어째서 에레는, 아니. ‘루크’는 자신을 따돌리는 걸까?

    그에 대한 고민을 나름대로 해본 결과.

    파이의 머릿속에서는 그것이 다 이 조그만 곰돌이 인형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치사해! 너만 친한 듯이 말하고!”

     

    파이리스는 계속해서 리브의 팔다리를 쭉 쭉 잡아늘렸다.

     

    그 때였다.

     

    파이리스의 손길에 이리저리 마구 늘려지고 있던 리브의 몸에서 ‘툭, 투툭.’하고 불안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소리에 리브는 자신의 인형몸에 이상이 생기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팔다리의 봉재선 부분이 벌어져, 뜯어져 나갈 것만 같다.

    안에 들어있던 솜도 살짝 빠져나와 마력을 가두지 못하고 흘려보내고 있었다.

    인간으로 따지면 출혈상태.

     

    심각성을 느낀 리브는 대체 이 아가씨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설계된 원칙대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작동을 시작했다.

     

    팍!

     

    “앗!”

     

    리브는 파이리스의 손을 강하게 쳐낸 뒤에, 그 충격으로 파이리스가 손에서 힘을 놓은 틈을 타서 재빨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파이리스는 곧장 그 곰인형을 잡아채려 했으나, 본디 리빙아머로 제작된 엄청난 스펙의 사양을 담은 곰인형은 정령의 육신으로도 쉽사리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버거웠다.

     

    이리저리 파이리스의 손길을 휙, 휙 피해내며 리브는 침대 위로 날아올랐다.

    그런 리브를 잡기 위해 파이리스도 침대를 향해 뛰어올랐으나, 리브는 그런 파이리스에게 베개를 던져 교란시키고는 곧장 이불로 덮어버린다.

    리브는 파이리스가 마치 그물에 걸린 물고기마냥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다가, 다시 밑으로 뛰어내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육중한 아세릴 갑옷을 벗어 던지고 지극히 가벼운 곰인형에 이식된 리빙아머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날개가 달린 것과도 같았다.

     

    그 모습에 열이 오른 파이리스는 자신을 감싼 이불을 정령화를 통해 벗어나고, 빠르게 다시 현현하며 외쳤다.

     

    “거기 서!”

     

    ——–

     

    “으음, 이걸 까먹다니. 파이리스가 또 화를 내기 전에 얼른 만들어 주어야겠구나.”

     

    파이리스는 의외로 뒤끝이 길다.

    다음에 또 도움을 받으려면 이렇게 호감도를 올리는 것도 필요한 법.

    루크는 한숨을 푹 쉬었다.

     

    ‘옛날에는 화를 낼 줄도 모르던 아이였는데…….’

     

    몸이 없어서 자신 말고는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때, 파이는 자신에게 단 한번도 크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먹을 것을 먹을 수 없는 몸이라 자신이 너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조금 삐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파이리스는 몸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나누거나 놀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 덕분이라고 할까, 그래서 파이리스는 현재 그 모습의 아이와 같은 느낌이 되었다.

    디아나와 친해져서 함께 놀기도 하고, 숲에서는 숲지기들에게 예쁨과 귀여움도 받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일을 경험한 뒤로는 저렇게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풍부해진 느낌이다.

     

    ‘뭐, 좋은 변화이겠지. 정령의 ‘인간화’도…….’

    원래 감정과 밀접한 존재인 정령이니 인간에 물드는 것 역시 빠른 것일까.

     

    루크는 팔을 걷어붙이고, 앞치마를 찾아 입은 뒤에, 뒷머리를 조금 만져보았다.

    짧긴 하지만 그래도 처음에 비해 꽤 길어졌기 때문에, 요리를 할 때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루크는 앞치마의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요리용 머리끈을 꺼내 뒷머리를 가볍게 올려묶었다.

     

    이제 준비물을 꺼낼 시간.

    루크는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하나씩 꺼냈다.

     

    “자, 버터랑 마력초……. 그리고 우유와 밀가루……. 잠깐, 연금술은 어떻게 되었지?”

     

    그러고보니 자신은 예르나의 화상을 치유할 연고도 문제가 없는지 계속 지켜보면서 확인을 해 봐야 한다.

    쿠키를 만들면서도 중간중간 연금술도 신경을 써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크, 조금 뭉쳤구나.”

     

    루크는 황급히 뭉친 것을 풀기 위해 병 안에 쇠막대 하나를 집어넣고 휘휘 저었다.

    다행히 이번엔 몇번 저어주는 것으로 재료가 덩어리져 있던 것은 풀렸다.

     

    “휴, 할 일이 많구먼.”

     

    리브와 대화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잊어버릴 뻔 했는데, 파이리스 덕분에 제때 생각이 난 셈이다.

     

    ‘파이리스에겐 오늘 평소보다 더 맛있는 쿠키를 구워줘야 겠구나.’

     

    아무래도 평소의 쿠키보다 설탕과 마력초의 비율을 살짝 늘려주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버터를 자르기 위해 도마에 올린 순간…….

     

     

    -우당탕!!

     

     

    어디선가,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엄마는 동생만 예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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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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