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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7

        

         

       성년의 날 행사는 무사히 끝이 났다.

       더할 나위 없이 아주 완벽하게 말이다.

         

       진성은 이양훈이 여러 사람에게 소개해준 덕분에 자신이 원하던 ‘인맥’을 얻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고위 공무원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고, 재계의 거물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뿐만 아니라 장성들에게 역시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심지어 그냥 장성이 아니었다.

       진성의 관심사를 눈치채고 있던 이양훈의 배려였던 것일까.

       DMZ, GOP, 안전지대와 연관이 있는 장성들이었다.

         

       북한에 악령과 악귀가 널려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 인맥은 아주 훌륭하게 써먹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진성의 성년의 날 행사는 완벽하게 끝났다.

         

       ‘진성의’ 성년의 날 행사는 말이다.

         

       “으, 짜증 나!”

         

       안타깝게도 행사에 참여한 이아린과 이세린은 성년의 날 행사가 좋은 의미로만 기억되지는 않았다.

         

       인맥을 만들기 위한 다른 사람들의 접근이 그들에게 최악의 인상을 준 것이다.

       

       본디 인맥이라는 것은 거미줄처럼 뻗어가는 것.

       하지만 그렇게 뻗어나간다고 한들 그 인맥은 가느다랄 수밖에 없다.

         

       본래 사람과 사람 사이가 그러하듯, 인맥 역시 ‘신뢰’가 있어야만 그것이 튼튼하고 쓸만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는 기나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만 간신히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귀찮은 과정을 한 번에 뛰어넘는 획기적인 방법이 존재한다.

         

       혈연(血緣)이 바로 그것이다.

         

       “그놈의 결혼, 약혼, 결혼, 약혼, 결혼, 약혼.”

         

       이양훈의 집안은 객관적으로 보면 나쁜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양훈의 딸 역시 훌륭한 매물이었다.

         

       아니, 훌륭한 수준이 아니다.

       특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예쁘고, 성격도 괜찮다.

       사고치고 다니지도 않고, 사치가 심하지도 않고, 구설수도 없으며, 사교성도 충분하다.

       게다가 ‘능력자’ 이기까지 하다.

         

       그것만 해도 훌륭한데, 능력의 종류도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젊음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무인에다가, 세계적으로 손가락에 꼽을 만큼 희귀한 계약자라니!

         

       사람들은 눈이 돌아가서 이양훈에게 접근했고, 자기 자식놈이라면서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아직 연을 맺은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슬슬 나이도 차고 있는데, 제 아들은 어떻습니까?’라며 운을 떼었다.

       게다가 이양훈이 진성을 데리고 소개하기 시작하자 기회라는 듯 온갖 남정네들이 몰려들며 흑심을 숨긴 채 그녀들에게 말을 걸며 귀찮게 만들기까지 했다.

         

       그러니 짜증이 날 수밖에.

         

       이아린은 짜증을 여과 없이 표출하며 분통을 터뜨렸으며, 이세린은 뚱한 표정으로 그레모리에게 기댄 채 위로받고 있었다.

       이아린은 짜증을 분출하지 못해서 더 화가 난다는 듯 마음껏 발버둥을 쳤다.

       침대의 이불보가 흐트러지도록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고, 베개를 절묘한 힘으로 벽에 집어 던져서 벽에 한 번 튕겼다가 자신에게 돌아오도록 만들며 공놀이하듯 갖고 놀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세린에게 화풀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인지 이불을 그물처럼 던져서 이세린을 덮어버리기도 하고, 침대 위에서 통통 튀면서 소음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방 주인’이 항의했다.

         

       “이봐요, 퓨마. 대체 제 방에서 뭐 하는 건가요!”

         

       엘라는 자신의 방이 갑자기 쳐들어온 불청객 때문에 엉망이 되어가자 짜증을 담아서 소리쳤다. 하지만 이아린은 그러한 엘라의 항의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침대에서 이리저리 통통 튀었고, 엘라가 항의의 뜻으로 그녀에게 다가가자 학교에서 배운 금나수(擒拿手)를 사용해서 그녀를 붙잡았다.

         

       이아린의 팔은 뱀처럼 엘라의 팔을 타고 올라가며 그녀의 어깨까지 도달했고, 엘라가 반항하기도 전에 그녀의 무게중심을 흐트러트리곤 그녀를 침대에 폭 쓰러지게 했다. 이아린은 그녀가 쓰러지자 기다렸다는 듯 팔과 다리를 이용해 그녀의 몸을 칭칭 감았다. 마치 뱀이 먹이를 휘감는 것처럼 말이다.

         

       학교에서 배운 유술(柔術)과 팡크라티온(Παγκράτιο)의 기술을 응용한 제압법이었다.

         

       “이게 뭐예요! 당장 놓지 못해요! 풀어요!”

         

       방 주인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다가갔다가 봉변을 당하고 만 엘라는 빼액 소리를 질렀다. 이아린의 고막을 터뜨릴 듯 소리를 빽빽 질렀고, 그녀의 팔다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들썩였다.

         

       하지만 한 번 제대로 걸리면 빠져나오기가 힘든 것이 바로 유술이 아니던가.

       엘라는 옴짝달싹 못한 채 이아린에게 붙잡히게 되었고, 이윽고 반항할 힘조차 빠져서 얌전히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아린은 엘라가 기진맥진한 것을 확인하자 그제야 그녀를 슬그머니 풀어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 스트레스 풀렸다.”

         

       이아린은 개운한 듯한 얼굴로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곤 허망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엘라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토끼 덕분에 짜증이 많이 가셨어! 고마워!”

       “이, 멍청한 퓨마가….”

         

       이아린은 그러한 모습마저 마음에 드는지 눈을 빛냈다. 그러더니 무언가 떠오른 것인지 씩 웃더니 침대에 엎어져 있는 엘라의 허리에 자기 머리를 딱 올려버렸다.

         

       그녀를 베개 삼아 침대에 누운 것이다.

         

       졸지에 베개가 되어버린 엘라는 그녀에게서 반항하려는 듯 몸을 비틀려고 했으나, 이아린이 머리를 이용해 그녀가 몸을 비트는 것을 방해해서 그 시도는 실패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며 이세린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화접목(移花接木)의 무리(武理)를 왜 저딴 데 쓰는 거야….”

         

       그녀는 날고 기는 재능있는 유망주들이 몰려드는 서울 이능 특성화 고등학교에서도 깨달은 사람이 몇 없는 무리(武理)를 저런 장난에 쓰는 이아린의 하찮으면서도 대단한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끼어들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인지 긴 생머리를 앞으로 끌어와 우물에서 튀어나오는 귀신처럼 자기 얼굴을 삭 가려버린 뒤 그대로 그레모리에게 몸을 기댔다.

         

       이세린은 자신의 기다란 머리카락으로 시야가 가려지자 천천히 눈을 감았고, 행사장에서 보았던 것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이아린과 이세린을 시장에 나온 ‘결혼 매물’로 바라보던 사람들, 이아린과 이세린의 미모에 감탄하면서도 묘하게 이양훈을 깔보는 듯했던 재벌 3세, 4세라고 불리는 놈들, 그리고 그레모리의 힘을 이용해 본 그들의 온갖 비밀들….

         

       그녀는 그것을 그레모리가 알려준 기억법을 사용해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아주 오래전, 어떤 왕국에서 대신이 수많은 사람을 기억할 때 사용했다고 하는 기억법이었다. 기억의 궁전 기억법보다 이해와 응용성이 좋았고, 사람의 얼굴 바로 옆에 메모장을 띄우는 것처럼 연동시킬 수도 있었다.

       바로바로 비밀을 꺼내서 쓸 수 있기에 이세린이 애용하는 기억법이었다.

         

       이세린은 자신을 짜증 나게 했던 사람들의 얼굴과 그들의 ‘치명적인’ 비밀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정리했고, 계속해서 자신을 귀찮게 한다면 언제든 그것을 이용해 결혼의 ‘결’자도 꺼내지 못하게 인생을 짜릿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결심했다.

         

       [ 귀엽구나. ]

         

       그러한 모습을 보는 그레모리는 발톱을 바짝 세운 이세린의 모습마저도 귀엽다는 듯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엘라는.

         

       “내 방에서 다 나가요….”

         

       고통받고 있었다.

         

       “왜 내 방에 와서 이래요…. 나 위치크래프트 연습해야 한단 말이에요….”

         

       엘라는 자신을 제압하고 허리를 베개처럼 사용하고 있는 이아린과 귀신처럼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있는 이세린을 보며 제발 나가라고 애원했다. 위치크래프트를 연습해야 하는데 제발 가달라고, 할 일이 있는데 왜 이렇게 방해하냐면서.

         

       하지만 그러한 엘라의 ‘부탁’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버렸다.

         

       “안 돼. 오늘은 토끼가 땡땡이치는 날이야.”

         

       이아린은 절대 안 된다는 듯 엘라의 혈도(穴道)까지 짚었다.

       그리곤 엄한 얼굴로 엘라에게 말했다.

         

       “연습과 단련도 적당히 해야지. 오늘은 쉬는 거야! 알겠어?”

         

       이아린은 꼼짝 못 하는 엘라에게 혼을 냈다.

         

       “하루에 3시간도 안 자고 매일매일 연습만 하고! 생명력이 부족해서 골골대면서도 쉴 생각은 안 하고! 자양강장제나 정력에 좋은 것들 찾아 먹으면서 계속 강행군하고!”

       “그건….”

       “토끼야! 네가 언제까지 젊을 것 같아! 몸 관리해야지!”

         

       이아린은 젊음만 믿고 몸을 험하게 쓰는 엘라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일갈했고, 연습이라는 것은 적당한 휴식과 병행해야 한다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이러한 연설은 엘라가 그녀의 말에 설득이 될 때까지 반복되었고, 엘라가 알겠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그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아린은 언제 혼을 냈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앞으로는 휴식도 잘 하는 거다? 알겠지?”

       “네, 네. 알겠어요. 그러니까 이것 좀 풀어요. 그리고 제 방에서도 좀 나가고….”

         

       이아린은 엘라가 기특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고, 다른 손으로는 검지를 쭉 뻗고 그 끝에 기를 집중시켰다. 그리고 점혈을 풀어줄 듯 기만하고는 다시 혈도를 짚었다.

         

       수면에 도움을 주는 점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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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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