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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7

       그는 한없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우진은 금세 그의 말뜻을 이해했다.

         

       “금제입니까?”

       “그렇네. 그것도 아주 강력한 금제지. 그들에게 피해가 될 만한 말을 하는 순간 내 머리는 터져버리고 말 걸세.”

       “으음….”

         

       그것만은 백우진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금제는 특수한 방법으로 상대의 심령에 어떠한 기제를 심어두는 것.

         

       그것을 어길 시에는 체내에서 극렬한 거부 반응을 일으켜 죽음에 이르게 된다.

         

       본디 금제란 제약의 범위가 커질수록 술자에게 가해지는 부담 또한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보통 핵심적인 부분에서만 제약을 가하곤 하는데, 어떠한 말도 제대로 입에 담지 못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강력한 금제를 걸어둔 듯하다.

         

       “시작부터 난항이네요.”

       “그런 셈이지.”

         

       두 사람은 쓰게 웃었다.

         

       그러나 백우진은 크게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안도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뭐가 말인가?”

       “일행수께서 흉수가 아니라서요.”

         

       그러자 황군은 금세 어두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죄인이야. 어떤 사연이 있든, 나는 내 의형과 그 가족들 모두에게 죄를 지었어.”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사연 없는 무덤이 어디 있으랴.

         

       어느 정도 정상참작이 가능하기야 하겠다만, 그는 어쨌든 금씨세가에 큰 혼란을 일으킨 죄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덕분에 금철군의 체내에는 고독이 심어졌고, 첫째 아들인 금명호는 행방불명된 상태니까.

         

       그뿐인가.

         

       일이 잘 풀렸기에 망정이지, 금여울은 추적을 피해 달아나다 마경에서 꼼짝없이 죽을 뻔하지 않았나.

         

       내 가족이 소중하면 남의 가족도 소중한 법.

         

       자기 가족을 위해 남의 가족을 해치는 데에 일조한 순간부터 그는 죄인이다.

         

       아무리 좋게 쳐줘도 ‘사연 있는 불쌍한 죄인’ 정도일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더군요.”

       “…….”

       “금 소저.”

         

       황군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처음 그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추측했을 때,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금씨세가의 편에 선 입장에서 필요 이상으로 동정하진 않았다.

         

       “근데 금 소저가 펑펑 울더군요.”

         

       상황이 참 재미있었다.

         

       편을 드는 이들은 안타까워하고 마는데, 정작 금씨세가의 직계가 펑펑 울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믿고 있었다며, 숙부님이 절대 그럴 분이 아니었다며 안도하고 또 안도했다.

         

       “아직 추측일 뿐이니 믿어선 안 된다고 뜯어말려도 안 듣더라고요.”

         

       제갈연지의 말이 맞다고 어찌나 강력하게 주장하던지, 조금 의젓해진 줄 알았더니 금세 철부지 모습으로 돌아와 떼를 쓰는 바람에 꽤나 애먹었다.

         

       “…그런가.”

         

       황군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면서도, 금여울이 자신을 그토록 믿어줬단 사실에 기쁜 듯한 표정.

         

       백우진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저는 우리의 협력이 완전히 무에서 시작하지는 않을 거라 믿습니다.”

         

       황군은 일견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조각들을 여기저기에 흩뿌려 놓았다.

         

       그것들을 발견하여 자신에게까지 찾아올 수 있도록.

         

       단순히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기를 바라서?

         

       그건 아닐 것이다.

         

       그가 찾은 건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길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놈들에게 한 방 제대로 먹일 수 있는 아군이다.

         

       그렇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흉수를 찾을 수 있는 단서 하나쯤, 금제를 피해 숨겨두었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

         

       백우진의 날카로운 추측에도 황군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정하든, 긍정하든 그것은 금제를 어기는 행동이 될 수도 있기에.

         

       반대로 말하면 그의 침묵은 백우진의 추측이 정답임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했다.

         

       “흐음.”

         

       백우진이 대체 그것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을 때, 황군이 입을 열었다.

         

       “자네는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자리에까지 올라섰는지, 알고 있나?”

       “……?”

         

       뜬금없이 던진 물음에 백우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아한 그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황군은 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열여덟에 첫 상행을 떠나게 되었네. 그때는 내 숙부께서 상행을 이끄셨었는데, 하루는….”

         

       갑자기 그의 일대기가 펼쳐졌다.

         

       열여덟의 나이로 첫 상행을 떠났던 황군이 지금까지 어떤 사건과 마주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묘수를 사용했는지.

         

       세간에 널리 알려진 뼈대 위에 살이 붙어 한 편의 소설 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과연 상인이라고 해야 할까.

         

       완급을 조절해가며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확실히 듣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듣는 내내 백우진은 의아할 따름이었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잠이 오지 않는 손주들을 재우기 위해 두런두런 꺼내 놓는 이야기는 현 상황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기에.

         

       어쩌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 중 누군가가 흉수인 것은 아닐까, 하고 단 한 글자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으나 그것도 아닌 듯했다.

         

       조금이라도 흉수에게 해가 되는 내용이 들어가게 되면 그는 금제로 인해 극렬한 고통을 겪다가 사망에 이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가 지금 늘어놓는 이야기는 적어도 흉수에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는 뜻.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 그러나 놈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

         

       그는 제 삶을 이야기함으로써 어떤 중요한 단서 하나를 던져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핵심은 세세한 내용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단서라는 건데.

         

       ‘…모르겠는데.’

         

       대체 무엇을 던져주고자 그토록 제 삶을 이야기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릴 정도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지만, 해답을 얻지 못한 채 그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리하여 내가 일행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걸세.”

       “그, 그렇습니까.”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는 백우진을 향해 황군이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으음…, 내 이야기가 조금 어려웠나 보구먼.”

         

       아쉽기는 했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금제를 피하고자 먼 길을 돌아서 그에게 단서를 전달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하네. 맥락을 잃지 않으면 언제고 불현듯 떠오를 테니, 잊지 말고 끊임없이 생각해 보게.”

       “으음, 알겠습니다.”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향해, 황군이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여울이에게 이 말 한마디만 전해주겠나.”

       “말씀하십시오.”

       “못난 숙부를 끝까지 믿어주어 고맙고, 그 믿음을 배신하여 미안하다고 전해주게. 그리고….”

         

       황군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마지막 말을 힘차게 내뱉었다.

         

       “일이 모두 끝난 뒤, 응분의 대가를 치르겠다고 말일세.”

       “…….”

         

       결연한 그의 눈빛에, 백우진은 그저 알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 * *

         

         

       다음날.

         

       백우진은 곧장 조원들과 황군이 전해준 단서를 똑같이 전달해주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백우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통 모르겠네요….”

         

       황군이 흩뿌려둔 모래 알갱이 같이 작은 단서들을 이용해 그의 상황을 짐작한 제갈연지조차 깊은 고민 끝에 고개를 내저었다.

         

       각자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거듭하는 조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백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뼉을 부딪쳤다.

         

       “자자,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하자고.”

         

       같은 자리에 몇 시진 동안 박혀 있다고 한들, 답이 나올 리가 없다.

         

       이럴 때는 차라리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 기분을 환기시킨 뒤에 다시 생각을 이어가는 게 맞겠지.

         

       신룡조와 금여울은 한데 모여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각자 생각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자리에 남은 것은 금여울과 백우진, 단 두 사람뿐.

         

       그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저기…, 날씨도 좋은데 좀 거닐면서 생각하지 않을래?”

       “음…?”

         

       살짝 열린 창문 틈새로 진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그녀의 말대로 날씨가 무척 좋은 날이었다.

         

       내리쬐는 햇살만큼이나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본 백우진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듯하여 차마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별채를 나선 두 사람은 화단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이미 몇 번이나 오간 탓에 새로울 건 없었지만, 그만큼 주변의 풍경이 편안하게 다가왔다.

         

       제법 오래 머물고 있다 보니 이곳을 집처럼 여기기 시작한 걸까.

         

       “…슬슬 시간이 아슬아슬한데.”

         

       이곳에 머문 시간을 가늠한 백우진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녀를 돕기 위해 조금 일찍 학관을 나섰건만, 어느덧 백흑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호남까지의 여정을 생각하면 앞으로 엿새…, 빠듯하게 잡으면 이레 이내에는 흉수의 목을 틀어쥐어야만 했다.

         

       조금씩 초조해하기 시작한 백우진을 본 금여울이 말했다.

         

       “저기…, 정 안 되면 백흑전이 끝난 이후에 다시 생각해도….”

       “그건 안 돼.”

         

       백우진이 딱 잘라 말했다.

         

       백흑전이 열리는 기간은 달포.

         

       그 시간이면 놈들이 자신이 없는 사이에 금씨세가를 통째로 집어삼키고도 남을 시간이다.

         

       ‘그렇게 되면 더 골치 아파져.’

         

       그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만약 금씨세가를 습격하고, 황금상단을 홀라당 먹어 치우려는 흉수의 정체가 혈교라면?

         

       놈들이 황금상단을 노리는 이유는 단 하나, 안정적인 자금 확보를 위해서일 터.

         

       ‘고독을 만드는 데에 적잖은 돈이 든다고 했었지.’

         

       황금상단을 집어삼키는 순간, 놈들에게 걸린 제약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그들이 축적한 부를 이용해 고독을 양산해내기라도 한다면…, 무림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조차도 믿을 수 없는 불신지옥이 펼쳐질 테니.

         

       “고, 고마워.”

         

       금여울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아무래도 제 모든 노력이 그녀를 위해서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어, 음.”

         

       진실을 바로잡아야 할지, 아니면 묻어두어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온 익숙한 음성이 그의 귀를 사로잡았다.

         

       “이보시오, 소저. 내 생김새가 이 세상 것이 아님을 알고는 있으나, 너무 빤히 쳐다보지는 마시구려.”

       “…흐응?”

         

       반대편 화단에 낯이 익은 남녀가 서 있었다.

         

       여인은 당선영이었고, 사내는 지난 산책 때 조우했던 황금상단의 팔행수였다.

         

       제 턱을 매끄럽게 쓰다듬는 팔행수의 손동작에 백우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탓이었다.

         

       ‘뭐랬더라?’

         

       자신이 본인과 견줄 만한 외모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직접 찾아왔다고 했던가.

         

       그래놓고선 자신이 훨씬 낫다며 실망했다는 투로 말하고는 그대로 휙 가버렸다.

         

       그때는 정말 미친놈이 아닌가 했었는데.

         

       “진짜 미친놈이네….”

         

       팔행수의 얼굴을 보고 있는 당선영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어머, 정말 이 세상에서 영영 떠나보내고 싶게 생겼네요.”

       “이런…, 벌써 빠져버렸는가.”

       “…….”

         

       틀렸다.

         

       자아도취에 빠져 맥락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저 새끼는 대체 어떻게 팔행수가 된 거야?’

         

       도저히 그의 지위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아무리 말단이라곤 하나, 저딴 인간이 그림 같은 업적을 남긴 황군과 동일선상에 서다니.

         

       그야말로 어불성설….

         

       “아.”

         

       난 데 없이 백우진의 머릿속에 깨달음의 번개가 내리쳤다.

         

       “알겠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황군이 왜 본인의 이야기를 그토록 늘어놓았는지.

         

       그것으로 그가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지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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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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