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57

       텔레비전 화면이 나가버렸다.

       레비나스가 몇 번이고 리모컨을 눌러보았지만, 화면이 켜지는 일은 없었다.

       완벽하게 고장 났다는 의미였다.

       

       “레비나스의 티비가···”

       

       툭-

       리모컨을 떨어트린 레비나스가 비틀거리며 침실로 이동했다.

       침대 위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는, 미동조차 없이 엎드려 있었다.

       텔레비전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이 큰 것 같았다.

       

       “레비나스···”

       

       레비나스가 왜 저러는진 알고 있었다.

       우리 집 텔레비전은 상당한 고가의 제품이었으니까.

       비싼 물건이 한순간에 고장 났는데, 그걸 또 살 돈이 없으면 절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영영 텔레비전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지.’

       

       텔레비전을 사 주고 싶은데.

       원래 보던 텔레비전은 내가 감히 구매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아쉽지만 훨씬 아래 등급의 텔레비전으로 타협을 봐야 할 거 같았다.

       

       “레비나스, 내일 텔레비전 보러 가자. 내가 하나 사줄게.”

       

       “···괜찮다. 티비 말고도 놀 거 많다.”

       

       레비나스가 배게에 얼굴을 파 묻은 채 말했다.

       원래 쓰던 텔레비전의 가격에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아, 아냐. 텔레비전 싼 거도···”

       

       레비나스를 위로해 주려는 순간이었다.

       강아지 소녀가 침실 문 밖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헥···”

       

       빼꼼 내민 혓바닥과, 힐끔거리는 눈동자.

       어딘가 맹하면서도 미안해 하는 표정이었다.

       

       우리를 빤히 바라보던 소녀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낑낑하는 강아지같은 소리를 내며 레비나스의 등을 마사지했다.

       

       그럼에도 레비나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화를내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기운이 없어보였다.

       

       “레비나스는 당분간 혼자 있을 예정이다···”

       

       레비나스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무래도 잠시간의 시간을 줘야할 것 같았다.

       

       “레비나스, 우리 밖에서 기다릴게. 진정되면 나오는 거다?”

       

       “웅···”

       

       “이따가 또 같이 놀자.”

       

       나는 새벽이와 소녀를 데리고 침실을 빠져나왔다.

       아이들도 많이 놀랐는지,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나는 아직도 미안함을 표출하고 있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을 거야. 레비나스는 착하거든.”

       

       “낑···”

       

       소녀가 꼬리가 흔들었다.

       시선은 고장 난 텔레비전을 향해 있었다.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아이에게도 시간을 주기로 했다.

       

       

       **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거실로 나왔다.

       그 짧은 시간에 기분이 풀렸는지, 레비나스가 소파 앞에 서 있었다.

       

       “레비나스.”

       

       흔들리는 꼬리를 느끼며 레비나스를 향해 다가섰다.

       그런데 어째선지 레비나스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왕아, 멍멍이 못 봤냐?”

       

       “수인 친구?”

       

       그러고 보니 아이 이름도 안 물어보고 있었네.

       주위를 둘러보는데, 집 어디에도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가 않았다.

       

       “레비나스가 사과하려 했는데, 어디 갔는지 안 보인다···”

       

       “어··· 잠깐만···”

       

       코를 높이 들고 아이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아이의 체취가 현관문 쪽으로 향해 있었다.

       

       “냄새 찾았냐?”

       

       “응. 밖에 나갔나 본데···?”

       

       새벽이가 낮잠을 자고, 내가 샤워를 하는 그 타이밍에 빠져나간 건가.

       

       이제 막 포탈에서 빠져나온 아이였다.

       나보다도 이 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의미였다.

       

       ‘큰일 났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혼자 집을 빠져나갔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떡하냐···? 레비나스가 심술부려서 나간 거냐···?”

       

       “아니, 그건 아닐 거야.”

       

       “근데 왜 집 나갔냐···?”

       

       “글쎄···”

       

       솔직히 나도 아이가 왜 집을 나간 건진 알지 못했다.

       불만을 품거나 삐쳐서 떠나간 건 아닌 거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으나, 일단은 아이를 먼저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다시 데리고 올게. 그때 사과하자.”

       

       “···레비나스도 같이 가도 되냐?”

       

       “응. 그럼 다 같이 가자.”

       

       나는 새벽이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자다가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미안했는지,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냄새 있으니까 금방 찾아낼 거야. 너무 걱정 마.”

       

       “응···”

       

       우리는 다 같이 공원으로 내려왔다.

       아이의 이름을 몰랐기에, 가장 근접한 존재를 부르며 다녔다.

       

       “멍멍아, 레비나스가 미안하다.”

       

       “강아지야···”

       

       레비나스와 새벽이가 아이를 부르고, 내가 냄새를 추적했다.

       절망스럽게도 아이의 냄새는 공원 밖으로 이어져 있었다.

       

       ‘진짜 큰일 났네.’

       

       수색범위가 너무 넓어졌다.

       이 세계의 밖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 나로서는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왕아, 멍멍이 밖에 나갔냐?”

       

       “응··· 그런 거 같아.”

       

       털썩-

       내 대답에 레비나스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릎을 꿇고, 절규하며 땅을 콩콩 내리찍었다.

       

       “전부 레비나스 때문이다···! 레비나스가 혼자 있고 싶다 해가지고···!”

       

       “레비나스, 다시 만나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되잖아. 응?”

       

       “···맞다. 레비나스가 찾아서 미안하다고 사과할 거다.”

       

       훌쩍.

       레비나스가 콧등을 문질렀다.

       무언가 결심을 내렸을 때의 표정이었다.

       

       레비나스와 강아지 소녀.

       두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꼭 찾아내기로 했다.

       

       

       **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원래라면 집에 있어야 할 그 시간에 우리는 아직도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왕아, 냄새로 못 찾겠냐?”

       

       “응··· 여기저기 많이 뛰어다녔나 봐···”

       

       아이의 냄새가 이리저리 퍼져있다.

       빠르고 난잡하게 도시를 돌아다녔다는 의미였다.

       

       길을 잃어버려 여기저기 돌아다닌 건가?

       모르는 세상에서 혼자 겁에 질려있을 아이가 걱정되었다.

       

       “레비나스 때문에 밖에 나갔다가 길 잃었나 보다···”

       

       “아니야. 절대로 그런 거 아니야.”

       

       레비나스의 자책이 점점 커져갔다.

       새벽이도 흔치 않게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쩌지.

       길드 사람들한테 부탁해야 하나?

       

       생각에 잠기려는 때였다.

       골목길 너머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끼잉···”

       

       겁에질린 강아지들이 낼법한 소리였다.

       작은 소리였으나, 내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찾았다!”

       

       “찾았냐!”

       

       “응! 저쪽!”

       

       나는 아이들과 함께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달렸다.

       소녀를 만나기 위해 골목길을 이리저리 비집어야했다.

       

       그렇게 도달한 마지막 길.

       길의 끝자락에 소녀가 보였다.

       겁에 질린 눈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소녀의 품에 무언가 들려있었다.

       

       “멍멍아!”

       

       레비나스가 누구보다 빠르게 소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레비나스를 발견한 소녀의 꼬리가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헥···!”

       

       다시 만난 소녀의 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다.

       옷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더럽고 찢어졌으며,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생겨있었다.

       

       “멍멍아, 레비나스가 못되게 굴어서 미안하다.”

       

       “헥.”

       

       낼름-

       레비나스의 뺨을 핥은 소녀가 품에 안고 있던 걸 앞으로 내밀었다.

       작고 뚱뚱한, 오래된 브라운관 텔레비전이었다.

       

       “아···”

       

       그제서야 나는 아이가 왜 밖으로 나간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몸이 왜 저리 더러워진 건지도.

       

       온종일 텔레비전을 찾아 돌아다닌 거구나.

       레비나스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아이의 순수한 마음에 꼬리가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멍멍아, 이게 뭐냐?”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본 레비나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집에 있는 얇고 큰 텔레비전과는 너무 달라서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레비나스, 이거 텔레비전이야. 레비나스한테 주는 건가 봐.”

       

       “허걱···?!”

       

       레비나스가 뿔토끼 눈을 떴다.

       믿기 어렵다는 눈빛이었다.

       그러면서도 몸을 들썩이면서, 텔레비전을 준 아이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근데 이게 켜질지 모르겠네. 선도 다를거고···”

       

       “집에 가서 해보냐?! 해보냐?!”

       

       레비나스가 발을 동동 굴렀다.

       울적함이 없는, 평소의 레비나스였다.

       

       “응. 일단 집에 가져가 보자.”

       

       우리는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이 다 되었음에도 소피아랑 한여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왕아 근데 텔레비전 연결하는 법 아냐?”

       

       “음··· 일단 봐볼까?”

       

       텔레비전 뒤쪽에 있는 선을 전부 빼 왔다.

       브라운관이라 호환이 안 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꽂히는 선이 있었다.

       내가 살던 세계랑은 달라 다행이었다.

       

       “되냐?! 되냐?!”

       

       “글쎄? 레비나스가 전원 눌러볼래?”

       

       “이거 누르면 되냐?”

       

       “응. 거기 네모난 거.”

       

       꾸욱 레비나스가 브라운관 텔레비전의 전원을 눌렀다.

       오래된 텔레비전 특유의 전자소리와함께 화면이 켜졌다.

       

       “······!”

       

       “아.”

       

       화질이 형편없다.

       집중하면 픽셀 하나하나가 다 보일 정도였다.

       크기는 원래 보던 텔레비전의 반의 반절도 되지 않았다.

       

       레비나스가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힐끔거리며 레비나스의 상태를 살폈다.

       

       “······.”

       

       레비나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채널을 돌렸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 채널에서, 뿔토끼 만화가 나오고 있었다.

       

       “우!”

       

       “우?”

       

       “아!”

       

       만세!

       레비나스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자리에서 폴짝 뛰기도 했다.

       

       다행이었다.

       텔레비전을 구해다 준 아이의 상냥한 마음 앞에선, 화질따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을 멍멍이 채고다!”

       

       “가을 멍멍이?”

       

       “응! 멍멍이는 앞으로 가을이야!”

       

       “가으리.”

       

       강아지 소녀.

       아니, 가을이가 꼬리를 흔들었다.

       이름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가을이로 괜찮겠어? 원래 이름 있지 않아?”

       

       “가으리 죠아.”

       

       그렇구나.

       가을이만 좋다면야 상관없겠지.

       새로운 아이의 이름은 가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되요! 파이팅!

    아이의 이름은 가을이었답니다…!
    근데 댓글에 달아주신 다른 이름들도 너무 마음에 들어서 혹했지 뭐예요…?!
    바꿔야 하나? 하고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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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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