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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7

       

       

       

       

       

       257화. 스스로 잠든 용 ( 5 )

       

       

       

       

       

       원딜의 중요성은 어느 게임을 막론하더라도 빼놓을 수 없다.

       

       숟가락과 왕자님이라는 멸시 어린 별명이 붙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화력의 꽃을 담당하는 포지션이라고 해도 과연이 아닐 터.

       

       그러한 원딜 없이 지금까지 어떻게 게임을 해왔냐고 물으면…

       

       “진짜 어떻게 했지?”

       

       케니스, 프리가, 한스. 근거리 딜러 셋.

       이스칼. 탱킹 하나.

       카이사르 황제. 버퍼 하나.

       

       …끝?

       정말 이걸로 끝이야?

       

       파티라고 부르기에는 오각형의 한 곳이 너무 뽀죡한 모습이다. 근딜 셋에 탱커랑 버퍼 하나?

       막공도 이렇게 짜면 욕먹는다.

       

       힐러는 내가 하면 되니까 그렇다 쳐도, 원거리 딜링은 하나 정도 있어야지.

       

       “아. 원거리 무기라고 하니까… 엘프들 특성이 활이었나, 원거리 무기였나?”

       

       지나가는 엘프 하나의 특성을 확인했다.

       

       《특성 : 나무 위에서 활동 시 민첩과 공격력 상승, 원거리 무기 사용 시 공격력 및 적중률 상승》

       

       나무 위에서 민첩이 상승하고, 원거리 무기에 보정 효과가 붙는 국밥 같은 특성.

       전형적으로 레인저에 특화된 엘프들이다.

       

       특성만 놓고 보자면 엘프가 원딜에 가장 특화된 종족이라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할 수만 있다면 엘프 중 하나를 밖으로 빼내서 파티에 끼우고 싶지만…

       

       – “옴뇸뇸뇸! 헤●헤! 마시따! 아! 대장€로님도 드실$래요?”

       – “얼른 일어나▪︎요! 얼른! 내가 풀• 뜯어 먹지 말라고 몇 번을ㅡ”

       

       허우대 멀쩡한 엘프 하나가 얼굴을 풀밭에 처박고 열심히 풀을 뜯어 먹고 있다.

       

       녀석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차게 식어간다.

       

       아무리 특성이 좋아도 풀을 뜯어 먹는 파티원은 좀… 많이 그렇지?

       

       물론 모든 엘프가 풀을 뜯어 먹지는 않았지만, 그에 준하는 기행을 벌이기 일쑤였다.

       

       가끔 보고 있으면 이게 엘프인지, 기인(奇人)인지 헷갈릴 지경.

       

       결국  ‘세계 탐험 모드’에서 원딜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것도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요즘 파티의 수준이 제법 높아져서, 덩달아 내 눈도 높아진 탓이다.

       

       어중간한 원딜은 없으니만 못 한 법.

       기동성 없고 딜도 못 넣는 물 몸은 파티의 부담이 될 뿐이다.

       

       “어디 하늘에서 괜찮은 원딜 하나 안 떨어지나?”

       

       그럴 리가.

       

       인생 그리 날로 먹기 쉽지 않은 법이다. 정직하게 일해서 얻을 생각을 해야지.

       

       나만 봐도 그렇다. 째깍째각 제시간에 출근해서 개처럼 일하다가 6시 땡 하면 퇴근.

       그걸 일주일 중의 5일이나 반복한다니까?

       

       “에휴… 이제 그만 자야지.”

       

       시계를 보면 벌써 12시에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내일도 7시에 일어나려면 슬슬 자야 한다.

       

       머리맡의 충전기에 핸드폰을 충전시키고, 조명을 끄면 완전한 어둠이 찾아온다.

       

       “…”

       

       문득 한참이나 천장을 바라보다가.

       

       ‘…오늘 케넬름이 꿈에 나오려나.’

       

       무릎 베개… 좋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

       

       

       

       ‘황금 나무의 대궁’의 존재를 확인한 이후, 일정하던 게임 루틴에 하나가 추가됐다.

       

       ‘세계 탐험 모드’에 틈틈이 들려서 원딜로 쓸만한 녀석이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된 거다. 그리 대단한 건 없었다.

       

       그냥 평소처럼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니다가, 활을 쓰는 녀석이 좀 쓸만해 보이면 즐겨찾기에 등록하는 정도였으니까.

       

       거기에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의도치 않게 재밌는 모습도 많이 보이고는 했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북부의 으슥한 골목에서 몰래 거래하는 녀석들.

       처음에는 마약 거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주 웃기는 녀석들이었다.

       

       – “크흠, 흠! 이*게 그… 소문의 물건&인가?”

       – “돈부#터 확인하지.”

       – “깐깐하군. 자, 확인해.”

       

       – “확실하군… 물건은 여기 있다. 잘 쓰라&고. 주의 사항 있지 말고.”

       – “오, 오오…! 드디어, 드디어 탈모에서…!”

       

       물건을 산 녀석이 소중하게 들고 있는 물건은, 얼마 전 인벤토리에서 털어낸 ‘나라자라 수액’이다.

       먹거나 뿌린 다음에 간절히 원하면 무엇이라도 빠르게 자라나는 물건.

       

       아마 저 물건을 산 녀석은 극심한 탈모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불쌍한 대머리들.

       

       “씁… 어떻게 쓸 만한 원딜이 하나도 없냐?”

       

       여기저기 찾아봐도 영 마음에 차는 원딜 하나 찾기가 너무 어렵다.

       실력이 괜찮아 보이는 녀석들의 대부분은 남자였고, 여자인 궁수는 실력의 고점이 너무 낮았다.

       

       오늘도 꽝인가.

       

       결국 포기하고 신전으로 돌아왔다. 늘상 같은 신전의 풍경이 나를 반겨준다. 

       

       시끄럽게 술을 마시는 드워프와 기행의 엘프, 히키코모리 밤의 일족과 옥천욕을 즐기는 이베르…가…

       

       “뭐야. 이베르 어디 갔어?”

       

       온천에 있어야 할 이베르가 보이지 않는다. 바쁘게 화면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이베르를 찾아 돌아다녔다. 

       

       광산부터 술집, 여관, 대장간과 초원의 끝까지 꼼꼼하게 찾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이베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에 없으면 부유섬 ‘아르고스’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 어린 이베르가 저 높이까지 날 수는 없으니 패스.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이렇게 안 보일 리가 없는데?

       

       “…어?”

       

       문득 시선이 초원의 구석에 우뚝 서 있는 건축물로 향했다. 늠름하게도 존재감을 자랑하는 ‘차원 이동 관문’.

       

       설마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지금 가출한 거야?”

       

       차원 관문 타고 혼자서 빠져나갔다고?

       설마 싶지만… 어쩐지 이게 정답일 거라는 느낌이 팍 꽂혔다. 

       

       바로 화면을 돌려 성도로 향했다.

       

       관문이 연결된 곳은 성도의 한복판. 이베르가 관문을 타고 빠져나갔다면, 분명 성도에 무슨 흔적이 남았을 것이다. 

       

       잠시 로딩이 끝난 화면에 한밤중의 성도가 보였다.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막막해서 잠시 손을 놓고 멍하니 바라봤다.

       

       성도가 이렇게나 넓었나?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보다 어려워 보이는데.

       

       ‘여기서 도대체 어떻게 찾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손가락을 툭툭 두들기며 무슨 방법이 없을까ㅡ 하다가.

       

       “아.”

       

       괜찮은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

       

       

       

       

       

       이베르의 부재를 알아차린 누군가가 애타게 그를 찾아다닐 무렵.

       

       이베르는 근엄한 자세로 용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케니스와 에스텔이 한껏 집중하며 이베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프리가도 아닌 척하면서 은근히 관심을 표했다.

       

       현재 이르러서는 용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매우 적었고, 용이라는 존재는 설화와 동화책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용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푸른빛의 용이 나타난 이후 사라졌지만… 그래도 알려진 건 거의 없지.’

       

       어쩐지 고대의 비밀을 파헤치는 기분.

       

       셋의 시선과 관심을 은근히 즐기던 이베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용은 통치하지 않는 지배자였고, 엄격한 조율자였다. 너희들이 알지 모르겠지만 황금의 시대에는 제법 다양한 것들이 득실거렸지.”

       “도마뱀들이 조율을 무슨…”

       “공녀님! 쉿!”

       

       이베르의 입을 통해 천천히 풀어지는 신화시대의 이야기. 케니스와 프리가와 에스텔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베르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너희 원숭이들도 있었고, 귀가 길쭉한 녀석, 털이 많은 놈… 뭐, 이런저런 녀석들이 많았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버러지들도 가득했지.”

       “악마…”

       

       떠올리기만해도 화가 치미는지, 이베르가 까득ㅡ 이빨을 갈았다.

       

       사설이 길어질 기미가 보이자 프리가가 발라당 드러누우며 빼액 소리쳤다.

       

       “아ㅡ! 곰팡내 나는 역사 공부 말고! 그래서 저 검이랑 너랑 뭔 상관인데!”

       “쯧.”

       

       이베르가 혀를 차며 프리가를 흘겨봤다.

       

       “생각보다 별거 없는 이야기다. 이 검은ㅡ”

       

       텁.

       

       이베르가 거대한 묵빛의 대검에 제 앞발을 올렸다. 옹기종기 붙어있는 발가락을 쫙 펴서 대검의 모양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었다.

       

       “용들의 왕… 우리 영감탱이 용왕의 사념이 깃들어 있는 물건이다. 어쩌다가 이런 검의 형태로 사념이 남았는지는 모르겠다만.”

       “사념이 시, 신검에…?”

       

       이베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당사자인 케니스는 그리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말이 좋아서 사념이지, 실상 귀신 붙은 물건이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하, 하지만! 신께서 제가 보는 앞에서 직접 이 검을 만들어서 저한테 주셨는데! 도대체 언제 사념이 깃들었다는ㅡ!”

       “글쎄. 위대하신 분께서 행하신 일을 감히 어찌 알까.”

       

       짜리몽땅한 발톱으로 눈가를 긁던 이베르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애당초 영감의 사념이 왜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군. 영감이 죽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사념으로 대화가 가능할 정도면, 분명 살아있다는 소리일 터… 영감이 아직도 살아있었다니… 놀랍군.”

       

       가만히 대검을 쓸어내리던 이베르는 어쩐지 회한과 추억에 잠긴 눈이었다. 영감이라고 부르는 용왕과 제법 친밀한 사이였을까? 

       

       “그, 용왕이라는 분과는 친했나요?”

       “음? 아니. 내 손으로 죽였다는 소리다.”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이베르가 휙 돌아섰다.

       

       “에, 네?! 주, 죽였다고요? 직접?”

       “영감이 나한테 부탁한 거다. 죽여달라고.”

       

       충격적인 반전.

       

       “영감은 제일 오래 산 늙은이었다. 기본적으로 용은 수명에 제한 없이 불로하는 종이지만, 그게 불사는 아니다. 용도 죽는다. 독에 죽고, 불에 타서 죽고, 날카로운 것에 목이 베여 죽는다. 쉽게 죽지는 않지만 죽기는 한다. 그래서 아주 드물게, 용 사냥꾼이라는 이들이 나타나기도 했지.”

       

       용 사냥꾼의 이름이 나오자 프리가가 입꼬리를 말아 웃으며 이베르를 바라봤다.

       

       “그날. 우리 영감탱이는… 용왕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참 볼품없는 몰골로 죽어가고 있었지.”

       

       아득한 과거를 바라보는 이베르의 눈이 낮게 번뜩인다.

       

       “끈적하게 꿈틀거리는 역병의 포자와 용의 비늘을 파고드는 검붉은 불꽃… 하늘에서는 산성의 비가 내렸고, 땅은 갈라져서 그 틈으로 무수한 악마가 기어 올라왔다. 그리고 영감탱이는… 숨을 헐떡이며, 나에게 죽여달라 말했다.”

       “…”

       “볼품없는 꼴이었지. 온몸이 역병에 잠식되었고 날개는 불탔으며 산성에 녹아 근육이 드러났다.”

       

       꽈악.

       

       이베르가 작은 앞발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그의 심장을 터뜨렸다. 뜨겁게 박동하는 심장을, 내가 직접 꿰뚫어서 터뜨렸지. 그건… 절대 살아남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야.”

       “야, 야. 도마뱀 너…”

       “그래. 그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부상이었다.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영감?”

       

       묵빛의 대검은 이베르의 질문에도 가만히 침묵할 뿐이었다.

       

       이베르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케니스는 기묘했던 꿈을 떠올렸다.

       

       검은빛의 비늘과 이글거리는 눈, 왕관처럼 씌워진 열두 개의 뿔. 혹시 그 존재가 용왕이었을까?

       

       “혹시 그 용왕이라는 분이ㅡ”

       

       생생했던 꿈을 이베르에게 설명하자, 이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열두 개의 뿔은 영감밖에 없지. 그런데… 네가 영감을 봤다는 곳이 걸리는군.”

       “거긴 틀림없는 심연이었어요. 세상에 그런 끔찍한 장소는 한 곳밖에 없죠.”

       “심연?”

       

       이베르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심연이라면 버러지들의 소굴 아닌가? 영감이 도대체 왜 그런 곳에 있는 거지? 사슬은 도대체 무슨 소리고?

       

       “심연… 아직까지도 살아있다면 어떻게… 아니지, 사슬이라고 했나… 설마 나를 부르고, 원숭이의 꿈에서 계속 기억하라고 한 것이ㅡ.”

       

       중얼거리던 이베르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서서히 목소리가 커졌다.

       

       “미쳤군 영감. 늙은이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건가?”

       

       이베르가 묵빛의 대검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째려봤다. 대검은 이베르의 시선을 받고도 가만히 침묵했다.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가만히 대화에 집중하던 에스텔이 설명을 요구했다. 

       

       대검과 눈싸움을 하는 듯 가만히 노려보던 이베르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이 영감탱이는, 지금 자신을 한 번 더 죽여달라고 하는 거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있는지도 모르는 영감 주제에ㅡ. 감히 자신의 심장을 터뜨려 달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작업 중의 음식물 섭취는 정말 중요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모닥불 asmr과 뜨거운 녹차를 마시면서 작업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죠…!!

    다크 초콜릿은… 작가가 늦은 밤에 주로 글을 쓰기 때문에…!! 다크 초콜릿을 먹어버린다면… 작가는!! 허접♡ 약해♡ 헤에, 고작 이것도 못 버티는거야?♡ 웃겨♡ 작가 실격~♡ 이렇게 되며 잠을 잘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립니다…!!! 슬프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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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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