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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7

       “…….”

        

       “…….”

        

       음, 어색하다.

        

       하늘이가 그런 대형 폭탄을 터뜨려버린 이후, 하늘이 아버지는 나를 따로 불러낸 상황이었다. 베란다에 서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춥지는 않은 날씨라 다행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겁을 내야 하는 상황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하늘이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그게 사실이냐는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뭐랄까, 표정만 보고 있으면 담배라도 꺼내 피고 싶다는 표정이시기는 했지만, 이런저런 사실을 캐물을 생각은 없으셔 보였다.

        

       굳이 따지자면, 말을 계속 고르고 계신 표정이라고 해야 하려나.

        

       “사실.”

        

       한참을 침묵하시던 하늘이의 아버지께서 겨우 입을 열었다.

        

       “하늘이가…… 자네를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자네라는 말을 듣는 것이 엄청나게 어색했다. 뭐랄까, 미소녀가 들을법한 호칭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따지면 자신을 미소녀라고 생각하는 내가 더 이상하긴 했지만.

        

       아니, 이상한 건 아닌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사라의 몸은 분명히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도 충분히 예쁜 얼굴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당황스럽긴 해. 미리 알고 있었다고는 해도, 하늘이가 아주 어린 시절에 내가 상상하던 모습은 딸이 남자를 데리고 오는 것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은 아니야. 자네가 남자가 아니라는 것은 자네가 원해서 고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하늘이가 자네를 좋아한다는 것도. 모두 자네의 잘못은 아니지. 적어도 내가 듣기로 자네는 다른 사람을 속일 사람은 아니니까. 만약 그런 성격이었다면 애초에 처음부터 다른 여자들과 함께 결혼하려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겠지.”

        

       “…….”

        

       나는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내가 성 평등주의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야.”

        

       그리고 처음으로 하늘이 아버지의 표정이 변했다. 쓰게 웃는 표정. 지금 상황이 웃긴 지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만약 자네가 남자였다면, 무슨 헛소리를 하냐면서 얼굴에 주먹부터 날렸을 테니까.”

        

       “…….”

        

       음.

        

       뭐,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랬을 것 같다. 내 딸이 남자를 데리고 왔는데 그 남자가 애인이 두 명 더 있고, 그 두 명 이랑도 더 결혼하려고 한다?

        

       딸이 아무리 그 남자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렇게 다시 만나주지조차 않았을 것이다. 무조건 반대만 했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엄청나게 돈이 많다는 것을 알면 아예 딸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까지 했을 테니까.

        

       지금 내가 하늘이 아버지에게 한 대도 맞지 않고 여기 있을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사라의 얼굴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하늘이의 아버지의 얼굴에서 다시 웃음이 가셨다. 다시 담배라도 입에 물고 싶다는 표정이 되어서, 한숨을 푹 쉰다. 저 숨에 담배 연기가 섞여 있다고 했어도 상황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으리라.

        

       “첫 경험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내가 뭐라고 할 말이 없군.”

        

       “…….”

        

       음.

        

       역시 말씀을 드려야 하는 걸까? 하늘이가 거짓말을 했다고? 아직 나의 처녀는 무사하다고?

        

       …….

        

       그만두자.

        

       내가 어떻게 말을 해도 이상할 것 같았다. 게다가 그렇게 하면 일부러 그런 말을 해줬던 하늘이의 상황이 이상해질 테니까.

        

       “나는 내가 그렇게까지 보수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지만…… 아무리 요즘 세상이라도, 딸이 그렇게까지 했다고 하니 내가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아, 아뇨! 사과하실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야 안 했으니까.

        

       그리고 만약 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강제적인 상황에서 한 일이 되었을 리는 없다. 하늘이는 나를 엄청나게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나를 강간할 정도로 도덕성이 마비된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사라뿐만이 아니라 수아나 소희도 마찬가지였다.

        

       “…….”

        

       다시 침묵.

        

       “……그래, 그런가.”

        

       한참 동안 침묵하시던 하늘이의 아버지가 말했다.

        

       “하늘이는, 정말로 자네를 사랑하고 있는 모양이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하늘이의 아버지는 나를 향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어보셨다.

        

       “자네는, 내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나?”

        

       “…….”

        

       바로 대답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을 선택했다. 하늘이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나는, 진심으로 하늘이를 사랑하는가?

        

       반드시 결혼해야 할 정도로? 이런 말도 안 되는 형태의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억지를 부릴 정도로?

        

       …….

        

       답이 나오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네, 사랑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분명히 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세 명의 여인에게 똑같은 말을 했으니까.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그래,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친구로서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매일 아침 포옹하는 것이 아쉬워서가 아니다. 틈만 나면 볼에, 입술에, 이마에 날아오는 키스가 아쉬워서가 아니다. 하늘이의 부드러운 피부나 균형 잡힌 아름다운 몸이 아쉬워서가 아니다.

        

       하늘이와 계속 함께 있고 싶었다.

        

       수아도, 소희도, 사라도 전부.

        

       그래. 나는 세 사람 전부를, 내 인생에 넣고 싶었다. 양팔 가득 꽉 끌어안고 싶었다. 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나의 모든 것을 나누고 싶었다.

        

       서로 기대앉아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싶었다.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 가고 싶기도 했고, 별생각 없이 동네를 걷고 싶기도 했다. 함께 영화관을 가거나, 캠핑을 하러 가거나, 해외여행도 해보고 싶었다. 노천탕에 같이 들어가고, 좋은 호텔에서 비싼 술을 따고 싶기도 했다.

        

       ……세 사람이 언제나 참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참고 있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이도, 수아도, 소희도, 사라도, 모두 일생에서 한 번 보기 힘들 정도의 미녀들이다. 각자 개성이 뚜렷하고, 말투나 몸매도 다르다. 당연히, 그 모두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다.

        

       꽉 끌어안고 싶다고? 옷을 벗은 모습을 보고 싶다고? 혀를 섞고 싶다고?

        

       ……확 덮쳐서 범하고 싶다고?

        

       대체 그걸 누가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게네들이야 뭐 그런 쪽으로 취향이 있어서 그러는 건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남자라고. 솔직히 다 큰 미녀들이 그렇게 온몸을 비벼오는데 흥분하지 않는 남자가 어디 있을까.

        

       매일 아침 양쪽에, 그리고 배 위에 여자애들이 올라와 있으면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이고 그게 반복되면서 그 감정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게다가 의식 안에서 사라가 나에게 안길 때도 당연히 끝까지 가지는 못했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나는 원하고 있었다.

        

       그 세 사람을, 원하고 있었다. 전부 가지고 싶었다.

        

       평생, 내 옆에 두고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면서, 평생.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나는 아마 평생 사랑이라는 게 뭔지 모를 것이다.

        

       “저는, 하늘이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랬기에, 나는 솔직하게 그렇게 말했다.

        

       하늘이의 아버지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자네 뜻이 그렇다면야. 그리고 하늘이도 그렇다고 하니.”

        

       “…….”

        

       “내가 더 이상 반대한다고 해도, 별다른 의미가 없겠지.”

        

       그렇게 말하고, 아버님은 입술 끝을 살짝 끌어올리며 웃었다.

        

       “다만, 꼭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 안 그러면, 내가 다시 찾아가서 데리고 올 테니까.”

        

       “반드시, 행복하게 해 주겠습니다.”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도록,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 보일 것이다. 하늘이뿐만이 아니라 수아도, 소희도, 그리고 사라도.

        

       나는 그렇게 약속했다.

        

       *

        

       “아, 엄마한테 죽는 줄 알았다…….”

        

       내가 그렇게 하늘이 아버지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왔을 때, 하늘이는 조금 부스스해진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다. 분명히 처음 올때와 같은 포니테일이었지만, 한 번 풀었다가 급하게 다시 맨 듯 튀어나온 머리카락이 몇 가닥 보였다.

        

       “……혼났어?”

        

       “아니, 맞았어.”

        

       “어…….”

        

       음, 뭐.

        

       하긴, 나도 아들놈이 여자애 데리고 와서 ‘얘 첫 경험을 내가 가지고 갔으니 결혼하겠다’라고 했으면……

        

       음,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첫 경험이니 뭐라느니 하는 것도 본인들 좋으면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러고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지는 거고, 결혼하고 싶으면 결혼하는 거다.

        

       아, 그렇구나.

        

       내 원래 나이가 어떻고 하기 이전에, 우리는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몇 살 때 그랬다고 했어?”

        

       “……몇 년 전이라고 했어.”

        

       …….

        

       고등학생 때 여자친구가 생겨서 성관계를 가질 수는 있다만, 그걸 부모님께 이야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아마 하늘이는 억지를 부리기 위해서 이야기를 더 과장해서 했을지도 모르겠다. 반쯤 강제로 했다거나…… 뭐 지금도 힘으로 싸우면 내가 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허락은 받았어!”

        

       하늘이가 웃으면서 나에게 브이자를 보이는 것을 보고,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 얼굴이 사랑스럽다.

        

       하늘이의 저 웃는 얼굴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좋아해.”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알고 있어.”

        

       하늘이는 그런 나에게 씩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내려 내 손을 꽉 잡았다.

        

       우리는 그렇게 손을 잡은 채 한동안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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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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