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57

        

         옛날 오락실 게임 중에는 그런 타이틀이 종종 있다.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캐릭터는 지독히 무력해서 쫓아오는 적과 스치기만 해도 죽고, 변변찮게 저항할 방법조차 없어서. 꾸역꾸역 반복되는 스테이지 클리어 조건을 달성하거나 가능한 높은 점수를 기록하다 게임 오버 당해야만 하는 타입의 녀석들.

         

         탑 뷰로 맵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 한들 불합리한 느낌은 영 가시질 않아 여태 재밌다고 느껴본 기억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게 웬 걸?

         반대로 쫓는 역할이 되니까 이렇게 흥미롭고~ 몰입감이 올라가서. 섬세한 난이도 설정과 내부 철학에 온 신경을 쏟게 되는데 말이다.

         

         진작 이런 방향으로 타이쿤 게임을 내줬으면 나도 어릴 때부터 더 재밌는 게이머 라이프를 보내지 않았겠나? ……아님 말고!

         

         – 저기, 아샤님? –

         

         “응? 왜?”

         

         때로는 인근 가게에서 설치한 카메라를 잠깐 빌려서.

         거기에 좋은 화면이 안 나오면 구역 일대에 새떼 마냥 날아다니거나 골목 안쪽을 조용히 쳐다보게 난간에 착지시킨 드론 캠을 통해.

         그것마저 별로라면 실감나는 1인칭 무빙을 관람할 겸 하운드로이드나 레슬링 모드에 돌입한 제로의 시야로.

         

         팝콘 같은 게 준비되어 있었어도 괜찮았겠다… 싶은 가상 환경에서 유영하다가, 나를 찾는 제로 쪽으로 몸을 두둥실 돌렸다.

         

         – 이런 말씀을 드리긴 뭐하지만. 혹시 고문이나 유사 잔혹 행위에 거부감을 가지고 계시거나, 심문 과정이 번거로우시다면. 그냥 관심 가지셨던 항목만 통지해주시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구태여 이렇게 정신과 육체 양면으로 몰아넣을 필요가 있습니까? –

         

         “음? 어허…!!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얘가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이건 몰아넣거나 괴롭히는 게 아니라, 다 저 녀석을 위해서 교훈을 주는 거라니까?”

        

         떠드는 와중에도.

         거리를 좁혀 달려든 사냥개가 부드럽게 남자의 발목을 이빨 사이에 끼우자마자 -그래, 정말 깨문 것도 아니라 그냥 얼추 끼우는 시늉만 했다!- 어디 관절이 끊어지는 광경이라도 환시했는지 발작을 일으키길래.

         

         발버둥치다 제풀에 상처라도 날라. 얼른 하운드로이드를 떨쳐내진 척 지면을 한 바퀴 구르게 연기한 다음, 통통 튀는 걸음으로 헐레벌떡 일어나 도망치는 그를 쫓아가게 만들며 대답했다.

         

         간헐적으로 허공을 깨무는 소음이나, 발톱과 꼬리로 여기저기를 긁는 파열음까지 내주면 완벽 그 자체. 멀리서 보기엔 한 편의 희극이어도 당사자에겐 실감나는 추격전의 한중간이 되겠지.

         

         – 교훈입니까…? –

         

         “괘씸하잖아? 사람이 그렇게 간절하게 얘기 좀 하자 했는데 멋대로 도망이나 치고. 그 와중에 또 눈치는 쓸데없이 빨라서 영리하게 자기 몸을 담보물처럼 쓰는 걸로 빠져나갈 궁리도 하고.”

         

         예부터 행동을 잘 살피면 그 목적이 보인다 하였으니.

         

         그런 의미에서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위협만 하는 걸로 그를 끌고 오려 했던 건 빈틈을 아프게 찔려도 할 말이 없는, 동향인 보너스를 포함한 다소 물러 터진 판단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총 맞을 일이 없다는 걸 깨닫자마자 바로 원거리 공격은 배제하고 최단 경로로 움직이질 않나.

         되는대로,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것 같으면서도 서킷 리파이너리 인근에 있는 지름길이나 파쿠르 가능 위치는 꼬박꼬박 챙기는 방향으로 튀질 않나.

         

         아니, 상황 판단이 빠른 건 좋다 이거야.

         사실 그 정도도 못하면 내가 어떻게 합을 맞추거나 도와주고 싶어도, 사는 게 만만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도시인만큼 어디서 죽어 나자빠질 게 뻔하니까.

         

         하지만 의도한 건 아니라도 기껏 유창한 한국어로 힌트까지 널널하게 줬는데, 비슷한 신세인 사람도 못 알아보고 오리발이나 내미는 못된 인간은 혼 좀 나야 한다.

         

         내가… 내가 단순히 그런 존재와 마주쳤다는 확률과 상상에도 얼마나 설레고 반가워했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는데…?

         

         “…허술한 부분을 파고드는 것도 좋지만. 수작질은 상대를 봐 가면서 하는 법이랄까…. 안일한 버릇은 확실하게 고쳐주는 게 선구자의 책임 아니겠어?”

         

         게다가 좋게 좋게 넘어가주려니까 아예 배짱을 부리시겠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화나거든요.

         

         타탕—!!

         

         “왁!?”

         

         허공에 휙, 손을 휘젓는다.

         

         그러자 한 마리 까마귀처럼 다소곳이 옥상에서 아래쪽을 촬영하던 개조 드론의 작약이 터져 나가며 불을 뿜었고, 졸지에 먼지 부스러기로 샤워를 한 그는 이젠 아예 바짝 벽에 밀착하듯이 붙어서 나아갔다.

         

         “하,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서 쓴웃음을 지었다.

         어째 빠릿빠릿하게 대응하는 모습도 얄미워 죽겠네 아주 그냥.

         

         물론 그렇다고 내가 순수하게 훈련시켜주겠다는 마음만으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건 또 아닌 게. 저 망할 녀석이 명백한 물증은 곧 죽어도 안 주려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이 시간 낭비의 주된 이유였다.

         

         애써 장난치듯 쾌활한 기분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도, 염원하던 골대를 눈앞에 두고 바닥 없는 진흙탕에 발목이 빠진 기분이랄까.

         

         육체적으론 저 친구가 지금 개고생을 하고 있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론 이쪽이 느끼는 초조함이 훨씬 빠르게 몸집을 키워 나가는 게 피부로도 느껴졌다.

         

         만약에 만약을 거듭해서 가정해보자.

         참다못한 내가 먼저 ‘나도 너처럼 게임하다 끌려들어온 한국인이라고 이 바보 멍청아!!’를 면전에다 처박았다 치고.

         

         천에 하나, 만에 하나로 그냥 어디 많이 모자란 현지인 친구라면? 진짜 기가 막힌 나름의 사연이 따로 있어서 여태 아무런 문명의 혜택도 못 받고 살다가 겨우 사회에 나온 참이라면?

         

         지금 내 흔적이나 뒤꽁무니에 달라붙은 메가코프만 해도 족히 서너 군데인데, 그런 수상한 뉘앙스의 고해성사를 들은 인간을 그냥 풀어준다?

         

         불…가능하다. 보안 유지를 위해 보통 쓰는 신경성 약물로 적당히 뭉개고 넘어갈 수도 없다.

         기업이 더 지독한 방식으로 정보를 캐내려고 마음먹는다면 무의식 어딘가에 박힌 데이터 파편들도 헤집어서 끄집어낼 테니까.

         

         다시 말해서… 여차하면 내가 직접 죽여서 입막음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 시발. 바보 같아.”

         

         제로 부대를 이용해서 놀던 걸 잠시 끊은 채, 시야를 내려 내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실체가 없는 공간이기에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결한 정보 덩어리로 이루어진 그건, 흔들리기 시작한 정신 상태를 반영하듯 언뜻언뜻 붉은 색감이 감도는 것 같았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상황에서만 살인을 저질렀다 해도 여태 손에 피를 잔뜩 묻힌 건 사실이니까… 이제 와서 한국어 쓰는 사람은 특별하니까 못 죽이겠어요~ 같은 일차원적인 위선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먼저 이기적인 위안을 얻고자 접근한 주제에, 실수였다며 그런 짓을 하려 든다는 건 나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상상만으로도 스스로가 역겨워질 정도로.

         

         – 그렇게 신경 쓰실 것없이 저에게 맡겨 주신다면…. –

         “양심의 가책이라는 녀석은. 그냥 눈을 감는다고 책임 소재가 사라지는 건 아니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일의 경우엔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제로에게.

         절대 내가 안 보는 곳에서 날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딴 짓거리를 하지 말라고 딱 잘라서 경고했다.

         

         그는 나에겐 과분할 정도의 친구이며 동시에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가족이지만 가끔 내가 관련된 이슈에 관해서는 맹목적인 칼날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칼은… 예로부터 휘두른 사람의 책임인 법이었다. 응.

         

         아, 또 하나. 앞서 언급한 심장의 가시가 법률적 불이익이나 제재를 떠나 마음의 문제였다면 이건 조금 더 현실적인 논쟁거리라고 할까.

         

         여태 남자를 골목 미로에 가둬 놓고 경마 뺑뺑이를 돌리던, 무인기를 이용해서 탄막 게임을 시키던 조용히 넘어갔던 내 망할 직감이.

         비밀을 밝히거나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선택지를 떠올리자마자 가슴속에서 비명을 내지른 게 주요 문제가 되시겠다.

         

         전혀 못 알아보고 넘어갈 뻔했을 때도 조용했던 주제에, 해코지하는 걸 염두에 두는 순간 꺼림칙한 느낌이 영 가시질 않는다.

         

         마치 본인도 저렇게 필사적으로 도망가길 원하니 소원대로 내버려두는 게 미래영겁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보장해주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이해가 안 가!!”

         

         – ……. –

         

         크아악! 하고 머리를 움켜쥐며 마구 헝클어트렸다.

         

         때마침 바람에 의해 흐트러진 앞머리를 제로 0호기가 다시 예쁘게 정돈해주는 게 화면에 잡혔는데, 여기 심층 의식까지 그 감촉이 피드백 될 리도 없건만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신나게 여기저기서 악용한 전적도 있는 인간이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는데, 제발 그러는 편이 이득인 이유나 근거라도 좀 슬쩍 알려 줄래 직감아…? 어!?

         

         뭐, 아무튼! 결국 강압없이 서로의 속을 터놓을 상호 신뢰를 구축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건 변함없다.

         

         진짜 엘리시움 뇌분석실에 끌고가서 머리를 뜯어보지 않는 이상, 내가 가진 정보가 드러나는 걸 각오하고 능력을 써서 양쪽 뇌라도 이어 붙이는 게 아니라면 방법은 거의 전무하다.

         

         그러니까…… 하아, 거기 심부전이라도 올 것처럼 힘들어서 헐떡이는 당신. 휴식 시간은 딱딱 보장해줬는데 이쪽이 살살해주기를 바라며 엄살이나 부리는 너는 진짜 운 좋은 줄 알아.

         

         원래 그런 식으로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왜 이러세요우~’ 같은 태도로 일관하는 게 괘씸해서라도 끝장을 보려고 했는데, 오늘은 몇 가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보내 줄라니까.

         

         하지만 진짜로 본인이 잘해서 도망치는데 성공한 줄 알면 버릇 나빠질 수도 있으니 마지막 피날레로 한 번만 확 몰아쳐 놓고!

         

         드드득—!

         

         공간이 작게 진동한다. 시적인 감상을 조금 보탠다면 기지개를 켠다고 표현해도 좋으리라.

         

         휴면 모드에 들어가 있던 화력 지원 드론들이 프로펠러를 다시금 돌렸고.

         자동 사냥(…)을 돌려놨던 하운드로이드들의 연결을 일제히 복구해 타겟의 위치를 연동시킨 다음 제로에게 조종권을 양도했다.

         

         일제히 날아오른 무인기가 편대 비행을 개시하며, 비활성화되어 있던 발톱과 송곳니가 팅! 하고 사출되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으나.

         

         내가 조종하는 건… 저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섬세한 힘조절이 필수적인 녀석 하나로 충분하다.

         

         애당초 예비 전력까지 몽땅 불러들인 것 자체가 오버였다. 불쌍한 일반인을 상대로 일대를 차단한 걸로도 모자라 다중 포위망을 펼쳐서 뭘 하려고 했던 걸까 난.

         

         – 이걸 제가 담당해도 괜찮겠습니까? –

         

         “나중을 대비한 총력전 예행 연습이라 생각하고 마음껏 조종해! 다중 컨트롤은 아마 나보다 네가 더 잘할 것 같은데… 그렇게 겸양 떨 것도 없어.”

         

         좋아, 장난은 그만.

         지금부터는 우리 제로의 몰이 사냥 겸 기념할만한 실전 투입을 구경하는 시간을 잠시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예.

         

         어떻게, 예상 탈출구로 잘 유도해서 내 앞까지 대령해보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잘 놀았다. 이제 그만 죽어라(?)’
    서로 너무 생각이 많은 탓에 최후의 한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망설임이 그만.

    두 사람 모두 각자 개고생하고 클리어 난이도를 체험해본 만큼 ‘원작’이라는 틀을 지키고자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쓰고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제 글 솜씨가 부족한 탓에 ‘얘들 이렇게까지 안 맞을 수가 있냐, 어엌!’ 이라는 반응이 나오셨겠지만 부디 귀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에피소드 막바지 부분이라 제가 좀 신중하게 쓰고 있기에 쭉쭉 진행되지 않는 점도 죄송합니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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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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