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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7

   “언제까지 가만있을 거지? 이래서야 허수아비를 때리는 것과 별 다르지 않은가.”

   

   내 도발 때문에 열이 받은 건지 해골의 목소리에 독기가 묻어 나온다.

   

   미친 듯 몰아치는 검을 막아내고 막아내고 또 다시 막아내는 중인 입장에서는 절로 성질이 나는 말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난 저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저것이 현실이었으니까.

   

   전투가 시작되고서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방어만을 거듭하고 있었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시련 때의 위세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그는 신께서 내린 기적이었던가?”

   

   하나는 시련에서 벗어난 해골을 상대하는 것이 시련을 돌파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일이었다는 것이다.

   

   시련의 풍경은 내가 모니터 너머에서 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면이 현실이 되었을 뿐.

   

   상대의 동작. 버릇. 내지르는 공격의 종류. 노림수. 그 모든 것이 내가 기억하던 것 그대로였지.

   

   지금의 나에겐 과거의 광기를 재현할 능력이 있었으니. 썩은물의 능력을 보이기만 하면 됐다.

   

   그렇지만 지금의 풍경은 내가 기억하던 것과 닮아있지 않다.

   

   난 시련에서 벗어난 해골을 몇 번이나 상대해 보았다. 저 녀석의 패턴이 무엇이었는지 모두 다 외우고 있단 말이다.

   

   처음 몇 번인가는 내 지식이 맞아 떨어졌다. 해골의 경이로운 대처가 아니었다면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지.

   

   허나 어느 순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해골이 대처를 달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알던 것에서. 내가 모르던 것으로.

   

   그렇게 내가 지니고 있던 고인물의 지식은 무력화되고 말았다.

   

   “무어냐. 벽에 몰리니 이제는 활발히 움직이던 혀도 멈춰버린 것인가? 꼬맹이답군 그래.”

   

   그 다음 문제는 내 지식이 파훼되고 수세에 몰려나면서 생긴 문제였다.

   

   바로 파고들 틈이 없다는 것.

   

   내가 동등하거나 더 강한 상대에게 대응할 때 기본으로 삼는 전략은 버텨서 틈을 만들어내는 거다.

   

   나의 실력이 가파르게 성장하는 중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봐야 겨우 1년.

   

   절대적인 경험은 부족할 수밖에 없으니 강자를 상대로 정정당당한 싸움을 추구했다가는 자연스레 불리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나는 방패의 뒤에 숨어 기회를 노리다 결정적인 틈이 생겨났을 때 달려들어 순식간에 승부를 종결시키는 것을 선호했다.

   

   마침 축복임과 동시에 저주인 메스가키 스킬이 상대의 틈을 만드는 데 특화되어 있기도 하고. 할배가 내게 알려주었던 방패를 든 자의 싸움법이 이러한 것이기도 했기에. 나는 여태까지 이 전략을 고수했다.

   

   실제로 이 전략은 여태까지 실패한 적이 없었다.

   

   상대의 공격을 버텨낼 수 있다면. 그를 통해 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나는 싸움의 끝에 승리로 향하는 길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허나 이번의 전투는 그 어느 때와도 달랐다.

   

   상대방의 공격을 버티는 것이 불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스스로를 가라드라 믿는 해골을 본래 움직이고 있었던 것은 다른 해골들과 마찬가지로 카론의 마력.

   

   허나 그 카론의 마력은 시련이 끝남에 따라 사라지고 말았으니. 지금 해골을 움직이는 것은 카론의 마력이 아닌 악신의 기운이다.

   

   그리고 아직 제대로 부활하지 못한 악신의 기운은 카론의 마력에 비해 부족할지어니. 지금 해골의 안에 도사리는 힘은 시련을 담당할 때와 비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해골은 악신의 기운에 저항을 하고 있다. 이성을 가진 채 말을 하는 것이나, 살수를 두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이 사실은 명백하지.

   

   이런 두 가지의 제약을 지닌 해골이다.

   

   녀석의 힘은 던전의 마지막에 도사리던 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허약하단 말이다.

   

   그러니 버틸 수 있다.

   

   나의 방패는. 안키르는. 해골의 검은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다.

   

   도발이 먹히지 않는 건가?

   

   그렇지 않다.

   

   메스가키 스킬의 능력은 절대적.

   

   도발의 말이 내뱉어 질 때마다 덜그럭거리는 해골의 턱이.

   

   거세지는 검격이.

   

   근육 하나 없음에도 힘이 들어갔다는 게 보이는 손이.

   

   내 몸 안에 차오르는 고양감이.

   

   도발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음을 증빙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여태까지 나에게 수많은 승리를 안겨주었던 전략이 제대로 통하고 있는 셈이거늘.

   

   공방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내 마음 속의 답답함은 점차 커지기만 하고 있었다.

   

   “…으엑♡ 해골의 역겨운 냄새를 참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왜 입을 열게 만드는 거야?♡ 꼭 내가 속을 게워내는 걸 보고 싶은 거야?♡ 변태라곤 생각했지만 진짜 역겨운 종류의 변태였네♡ 혹시 나중에 바닥 핥을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

   “…쯧.”

   

   상대의 도발에 응하면서 생각한다.

   

   뭐가 문제지?

   

   왜 파고들 틈을 찾을 수가 없지?

   

   나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거지?

   

   너무 안전하게 움직이려고만 하고 있나?

   

   나보다 실력이 뛰어난 상대라면 어느 정도 도박수를 둬야 하는 걸까?

   

   머릿속을 의문이 가득 채우던 그 때에 가라드가 내지르는 검의 검로가 눈에 명확히 새겨졌다.

   

   저거라면.

   

   저 검이라면.

   

   분명 튕겨낼 수 있어.

   

   생각을 하는 것보다 행동이 빨랐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방패를 움직였다.

   

   티잉! 그러자 분명한 패링의 감촉이 방패를 타고서 전해졌다.

   

   기회다.

   

   틈이다.

   

   드디어 이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왼발을 앞으로 내밀며 상황을 살핀다.

   

   크게 튕겨나갔던 검이 어느새 회수되어 있다.

   

   자세 또한 마찬가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모든 걸 준비하고 있는 모습.

   

   들떴던 기분이 일순에 차가워진다.

   

   저는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다.

   

   입 안으로 기어들어오는 먹잇감을 집어 삼키려는 것이다.

   

   그리 판단을 내리기 무섭게 철벽이 위험을 고하고.

   

   저가 시키는 것을 따라 다급히 방패를 치켜 올렸지만.

   

   공격을 준비하다 말고 다급히 치켜든 방패는 느리고 부족했다.

   

   이대로 공격을 막아내면 균형이 무너져서 상대방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어 버려.

   

   불안한 자세에서 방어를 이어가야하겠지.

   

   …그러다가는 분명 무너져 버릴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타들어갈 것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뇌 속에 떠오른 것은 과거 알른 가문에서 훈련을 할 때 배웠던 것이었다.

   

   때론 어설프게 막는 것보다 시원하게 날아가는 편이 낫다.

   

   일부러 뒤 쪽으로 살짝 뛰어오르면서 해골의 검을 받아냈다.

   

   허공에 떠오른 가벼운 몸은 해골의 힘에 의하여 손쉽게 밀려났고 허공에서 한 바퀴를 돌며 다시금 자세를 잡았을 때에 나와 해골 사이의 거리는 한참이나 떨어져 있었다.

   

   본래 불리해져야 할 상황을 초기화 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숨는 것만 잘하는 가 했더니 도망치는 것도 잘 하는 군. 그대는 시궁창의 생쥐인가?”

   “미안~♡ 시궁창에 처박힌 개뼈다귀 씨가 외로워하는 것 같아서 다가가보려고 노력했는데 냄새가 너무 역겨워서 무리더라~♡ 이해해줘♡ 난 작고 귀여운 귀족 여자애인걸♡ 시궁창에서 사는 너랑은 다르단 말야♡”

   “…하여간 그 놈의 세치혀는.”

   

   상대의 신경을 건드리면서 상황을 점검한다.

   

   우선 느낄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의 실력이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점이다.

   

   긴 세월 쌓아온 검의 실력이. 수많은 전투 속에서 만들어낸 논리가. 완벽하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악신이 던전을 장악함에 따라 약화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저 해골이 악신의 기운에 저항하느라 힘을 아끼지 않았다면.

   

   내가 과연 저 해골을 상대로 버틸 수나 있었을까?

   

   스스로에게 내민 질문에 대한 답은 머잖아 돌아왔다.

   

   아니.

   

   채 1분을 버티지 못하고 박살이 났겠지.

   

   그리고 머잖아 공포가 허리를 타고서 올라와 내 뇌를 장악했을 테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머리를 감싸 쥔 채 질질 짜면서 살려 달라 비는 것밖에 없었을 거야.

   

   그정도 차이다.

   

   그만한 차이다.

   

   그 사실을 머리로 되새기고 있으려니 웃음이 샜다.

   

   약화된 가짜도 이 정도인데 진짜 영웅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이전에 할배가 기적을 펼칠 때에도 느꼈던 거지만 갈 길이 머네. 너무 멀어.

   

   그리 생각을 하면서 방패의 손잡이를 다시금 잡았다.

   

   <왜 굳이 이기려하는 것이냐.>

   

   그러기 무섭게 여태 침묵하던 할배가 목소리를 냈다.

   

   <네 기사가 올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될 터인데?>

   ‘그건 그런데요.’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해골을 상대로 이기는 게 아니다. 버티는 것이다.

   

   루카가 제압되고서 칼이 돌아와 합류할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약화된 해골을 칼이 처리해 줄 테니까.

   

   <알면서 왜 달려들려는 것이냐.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게야?>

   ‘아뇨. 저 그정도로 자기객관화가 안 되진 않아요.’

   <그럼 왜냐. 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야. 혹여…>

   ‘한 방 정도는 제 손으로 먹여주고 싶어서요.’

   

   할배. 당신은 모르겠지만 난 저 해골 때문에 한 달을 낭비했었어요.

   

   그 때 제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알아요?

   

   아니 글쎄 스트레스 때문에 정수리에 구멍이 났었다니까?!

   

   후일 무수한 노력 끝에 시련을 극복하는 데 성공한 후에는 메워지긴 했다만 여전히 그 때의 무력함은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리고 지금. 저 해골과 대련을 시작하고서 여태까지 느낀 감정은 그와 비슷하다.

   

   무력함. 답답함. 조급함. 짜증. 분노.

   

   만약 칼이 올 때까지 버티고만 있는 다면 이 감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0승 1패에 고정되어서.

   

   이 스코어를 뒤집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영원히 패배를 되새기고만 있어야 하겠지.

   

   난 그러고 싶지 않다.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다.

   

   저 해골이 승리하고 뻗대면서 사라지는 광경을 보면 너무 열이 받은 나머지 쓰러질 것 같단 말이다!

   

   그러니까 한 방을 먹여야 한다.

   

   정신승리를 하기 위해서.

   

   너 개 못하잖아를 외치기 위해서.

   

   <…크핳! 크하하하!>

   

   내 이야기를 들은 할배는 일순 침묵했다가 그 어느 때보다 호탕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뭡니까. 할배. 저 지금 진짜 진지하거든요? 그렇게 웃을 타이밍 아니거든요?

   

   <좋다! 좋구나! 지극히 여아 그대다워서 너무도 좋아!>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본래는 가라드 저 녀석이 손속을 두기에 여러 가지를 확인할 겸 지켜보고만 있었다만 생각이 바뀌었다.>

   

   어. 생각이 바뀌신 건 참 좋은 데요.

   

   중간에 이상한 게 들어있지 않아요?

   

   방금 전에 제가 버틸 수 있었던 게 제 실력 때문이 아니라 여우 장난감으로 적당해 보이는 저 개뼈다귀가 봐줘서 그런 거라고요?

   

   <오냐. 어디 한 번 저 녀석에게 굴욕을 심어주자꾸나.>

   

   할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싸움이 꽤 길게 이어졌음에도 여전히 내 몸은 만전의 상태와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기회만 생긴다면 한 방을 먹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건데 이 온전함이 상대가 손속을 두었기 때문이라니.

   

   하아. 씹. 진짜로 쪽팔리네.

   

   그리고.

   

   진짜.

   

   진짜.

   

   진짜 장난 아니게 열 받네.

   

   <우선 말하자면 전략은 틀리지 않았다.>

   ‘네? 그렇지만.’

   <안다. 무력감을 느꼈겠지. 답답했겠지. 스스로의 움직임이 옳은가 싶었겠지.>

   

   그랬다.

   

   답답했다.

   

   무력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각이 많아져갔다.

   

   내 생각을 읽고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읊조리던 할배는 이내 너무도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답했다.

   

   <허나 의심하지 마라. 그 전략은 옳다. 이 루엘이 그를 증빙하겠다.>

   ‘…그럼 뭐가 문제인데요?’

   

   여태까지 수도 없이 공격을 시도해 보았음에도 모두 다 실패로 돌아갔다.

   

   게임 속 지식이 먹혀 들어갔을 적에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후에는 아예 위협조차 줄 수 없었단 말이다.

   

   <그 답은 싸움 속에서 알려주도록 하마. 준비해라.>

   ‘준비는 언제나 되어 있는데요.’

   <역시나. 열심히 가르쳤던 보람이 있구나.>

   

   할배는 기특하다면서 나를 칭찬하고는 이내 웃음기 어린 목소리를 냈다.

   

   <자. 여아야. 2회전이다. 저 건방진 바람둥이의 면상을 박살내자꾸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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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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