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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8

        

         

       공손요예의 사슴 같은 눈망울에 방울방울 큰 물방울이 왕방울로 맺히기 시작했다.

       용케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다 싶더니만, 결국 얼굴의 곡면을 타고 주르륵 떨어져내렸다.

       그리고는, 후드득 소나기 쏟아지듯 굵은 눈물방울을 펑펑 쏟아내는 것이다.

         

       “가끔. 아니, 거의 모든 때에 전부 때려치우고, 그냥 평범한 여인들처럼, 끄흡, 그렇게 살고 싶었지만, 그래도 숙원을 위해 버텨낸, 버텨냈는데, 그런데 그걸, 어떻게. 이리도 무참히 짓밟고……”

         

       뭔가 단단히 역린을 건드린 것 같은데.

         

       역린은 거꾸로 난 비늘이라는 뜻으로, 용의 턱에 단 하나 그렇게 반대로 달린 비늘이 한 장 있다고 한다.

       수천 수만년의 이무기 수행으로 인내심이 극한에 달한 용이라 해도, 역린을 건드리는 순간 화를 참을 수 없이 극대노에 이른다. 타락하여 도로 이무기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죽이려는 철천지 원수가 되는 것이다.

       역린을 건드리다는 말이 이런 뜻이다.

         

       그리고 공손요예의 역린이 바로 무인으로 무시를 받는 일이었다.

         

       공손요예의 삶은 오로지 무인으로 벼려진 시간들로만 이루어졌다.

       그러니 한 사람의 무인으로 업신여김을 당한다는 일은, 공손요예의 인생 전체를 무시하는 것과 완벽하게 일치했던 것이다.

         

       청이 크게 당황했다.

       왜, 왜 울어? 울 만한 일이야?

         

       “예. 잠깐만. 잠깐만 진정하고. 응? 우리 잠깐 심호흡을 조금 할까?”

         

       “그딴-”

         

       “자! 이거!”

         

       청이 재차 폭발하려는 공손요예를 일단 크게 소리 질러 말문을 막았다.

       그리고는 상자를 척 손에 쥐여 주었다.

         

       “뚝. 울음 그치고. 자, 이거. 선천진기가 상할 때는 영약을 먹으면 좋다면서. 내가 예 주려고 특별히 챙겨온 거다?”

         

       “이딴 거 필요없-”

         

       “어허이. 그거 대환단이거든? 소림사의 대환단. 알지? 이딴 게 아니라.”

         

       그에 공손요예가 그대로 굳었다.

       물론 펑펑 울던 때라서, 히끅, 하고 척수 반사적 들숨이 들기는 했지만.

         

       “대환단? 저, 저를 놀리시는 건가요? 아니면 진짜, 히끕, 대환단이라구요?”

         

       “진짜 대환단 맞아. 무학 대사님이 직접 챙겨주신 거야.”

         

       “무학 대사님이 어째서……”

         

       “선천진기가 상한 친구가 있다고 했더니 흔쾌히 주시더라고. 나도 막 뭐 어렵게 손에 넣고 그런 거 아니니까. 너무 부담 갖진 말고.”

         

       그에 공손요예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이걸, 이걸 절 주신다구요? 이런 귀한, 귀하다고도 다 못하는……”

         

       “애초에 예 주려고 받아왔는걸?”

         

       그에 공손요예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 사람은, 이 사람에게는 비무회뿐만 아니라 세상사의 모든 재화와 명예가 별것이 아니구나. 하고.

         

       대환단이라고 하면 여벌의 목숨으로 치는 보물이니, 가지고 있음이 알려지기만 해도 오히려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는 귀물이다.

       그걸 이리 아무렇지도 않게 툭 꺼내서 건넬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보물보다 고작 친구의 수명이, 선천진기가 아까우니까.

       비무회야 애초에 별 안중에도 없었을 터니, 고작 비무회에 선천진기를 쓴다는 소리가 얼마나 안타깝게 들렸겠는가.

         

       그러니 불붙인 화약처럼 성대하게 폭발한 공손요예의 울화도 결국 자기 집만 날려먹고 만 셈이었다.

       그리고 나니 밀려드는 한없는 부끄러움.

         

       “어, 그. 서문 소저? 미안해요. 내가, 내가 심한 말을 해서요. 어떡하죠, 나는, 애초에 친구 같은 자격도 없었나 봐요. 서문 소저는 절 이렇게 위해주는데, 저는 의심이나 하고, 이래서야 어떻게 친구라고, 애초에나같은건친구따위있는자격도없는년이-”

         

       “어허이, 원래 친구끼리 종종 싸우기도 하는 거지 뭘. 음. 사실, 예가 불쌍하다고 생각을 하긴 했었어. 하지만 그래서 친구가 된 건 아니야. 그러면 세상의 모든 불쌍한 사람하고 다 친구를 하게?”

         

       “아니에요저같은건역시이러니까친구가없지미안해요미안해……”

         

       “아니, 괜찮다니까.”

         

       청이 이후로도 땅으로 마구 파고드려는 공손요예를 계속 달랬다.

         

       사실, 공손요예의 폭발은 벌써 세 번이나 된다. 평상시엔 얌전하지만 한번 열이 뻗치면 욱하여 빵 터져버리는 유형인 것이다.

         

       청이 비녀를 건넸을 때 두 번째.

       지금이 세 번째.

         

       그리고 청이 오기 전, 용봉지회에서 아주 따끔한 일침으로 계집 놀이나 하던 봉황회 회원들에게 첫 번째.

       한심하게 꾸미고 하는 소리라곤 사내를 꼬시니 뭐니, 여기가 무인들의 교류회인지 기녀들 모임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한심한 년들아! 하고.

       봉황회 회원들이 괜한 텃세 따위로 공손요예를 없는 사람인 셈 치지 않았더란다.

         

       어쨌든, 공손요예는 미안함과 민망함과 두려움으로 단단히 고장이 났다.

       그렇게 거의 대역죄인처럼 용서를 빌던 공손요예가 진정한 것도 제법 시간이 지나서였다.

         

       “이건 받을 수가 없어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보물이 아니니까요. 서문 소저도 아시지요? 감당할 수 없는 보물은 피를 부른다고 하지요.”

         

       “그럼, 지금 먹으면 되지 않아?”

         

       그에 공손요예가 빙긋 웃었다.

       눈탱이가 아주 퉁퉁 부어서 영 모양새가 살지 않기는 하다.

         

       “초절정에 이르르면 환골탈태를 할 테니 괜찮아요. 그리고 가문에도 준비한 영약이 있답니다. 대책도 없이 선천진기를 끌어다 쓰진 않으니까요.”

         

       “아. 그런, 그렇겠네. 그래도 갖구 있다가 나중에 위급할 때 쓰면-”

         

       “아니요. 못 받아요.”

         

       그러고는 청의 손을 꼭 잡으며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서문 소저가 결승에서 가진 최선을 다해 주셨으면 해요.”

         

       “수명까지 써 가면서 그러면, 내가 어떻게 예한테 칼질을 해?”

         

       “서문 소저. 저는 비무회 결승을 정말로 기대하고 있었답니다. 정말로, 온 힘을 다해서 서문 소저와 검을 나누고 싶었어요. 제가 얼마나 고대하고 있었는지. 서문 소저가 봐주겠다고 하셔서, 그래서 화가 났던 거예요.”

         

       “하지만, 목숨 태우는 걸 뻔히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그래?”

         

       그러자 공손요예가 청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본래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공손요예라서 아주 진심임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눈두덩이가 시뻘겋기에 살짝 그림이 미묘하게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절 위해서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짧은 평생이지만 그를 위해 살았구나, 하고 생각해요. 부디, 제가 인생에서 가장 기대하는 순간을, 함께 어울려주세요. 네?”

         

       그 간절함에, 청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는.

         

         

       —-

         

         

       청은 중원 출신이 아니다.

       그리고 출신 상 뿌리라고 하는 공동체의 가치가 개인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세상에 살다가 돌연 낯선 곳에 떨어진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니 청에게 공손요예의 폭발은 그저 급발진에 불과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봐서, 청이 잘못했다.

       서문수린이 이 대화를 들었으면 눈물이 줄줄 흐르는 수준으로 가혹한 핵 보복을 가했을 정도의 잘못이었다.

         

       청이 한 말은 대충 이러했다.

         

       어차피 겨우 비무회에 왜 목숨을 거냐.

       그딴 꼼수로 아까운 목숨 쓸 생각 하지 말고 그러면 차라리 내가 져줄게.

         

       하지만, 공손요예는 진짜 목숨을 걸었다.

       지난 모든 삶과 같은 뜻의 폐관 수련이 모두 이러한 때를 위한 준비였다.

       그러니, 청은 공손요예의 인생을 모조리 부정해버리고 만 것이다.

         

       게다가 청을 유일한 친구라고 굳게 믿고 의지했기에 더더욱 아픈 배신이었다.

         

       대환단 쯤 되는 보물이 아니었다면, 결코 청의 진심을 생각해보지 않았을 정도로.

       그렇게 아프고 쓰린 배신이었던 것.

         

       그러나 청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비무회가 뭐라고,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 가문이 대체 뭔데?

       도대체 왜 아까운 생목숨을 가문을 위해 그리도 목을 메는데?

         

       애초에 가문이 뭐라고.

       사람을 위해 가문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왜 가문을 위해 사람이 갈려야 해?

         

       심지어 공손공가가 영락하거나 다 쓰러진 폐허 판자촌에 있으면 또 몰라.

       중원십대세가에 들지 못할 뿐이지 다들 아는 유명한 집안이자 큰 무가라던데.

       어차피 성씨 그거 공식적으로는 공씨 외자 성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모든 이가 굳이 시비를 걸지 않는 한은 죄다 공손씨로 불러주고 있지 않나.

         

       사실 이는 가문이 아니라 문파라고 해도 같았으니, 청이 가진 근본적인 사고관 자체가 중원 사람들과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청은 그를 뼈저리게 느꼈다.

         

       “공손 소저가 검은 뽑지 않은 게 대단한 자제심이라고 하겠군. 원수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면 그딴 막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이번엔 청아가 잘못했네. 그만한 각오로 비무에 나서는 애한테 그렇게 말하면 아주 병신으로 만드는 거잖아. 심지어 가문의 숙원을 위해서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흠. 검우, 그리 안 봤는데 실망이구려. 검우에서 검지인으로 내리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한 사항이 아닌가.”

         

       각각 팽대산과 당난아, 남궁신재의 반응이었다.

       이게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궁금해 물어보았더니 하나같이 왜 그딴 개소리를 지껄였냐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검지인은 또 무슨.

         

       솔직히 전혀 모르겠다.

         

       그렇게 화를 낼 일이었나 싶다.

       정말 가문의 숙원을 원한다면 화려하게 꾸미다가 내가 자연스럽게 져주면 더 좋은 거 아닌가? 예가 선천진기 안 써도 되고.

         

       무인으로서?

       무인이 도대체 뭐하는 직업인데 무인으로서 진심을 다하느니 어쩌니.

       그냥 칼 들고 무력으로 사업하는, 정부와 적대적이면서도 대등하여 당당히 활보하는.

       음. 이거 카르텔 아닌가?

         

       어쨌든.

       내가 결승에서 진심으로 검을 휘두를 수 있을까?

       예가 뻔히 수명 까는 걸 알면서도?

         

       도대체 애초에 진심으로 검을 휘두른다는 게 뭐지?

         

       애초에 무공은 적을 베기 위한 거 아냐?

       그러니까 목숨을 취하기 위한 살검이 아니라면, 생사결이 아니면 애초에 진심이고 뭐고 나올 수가 없는 거 아니냐고.

         

       칼은 베기 위한 것.

       나를 지키는 호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지키는 방벽.

       나쁜 놈을 베고, 즐거움을 주는 수단.

         

       그런데 진심을 다한 비무라는 게 어떻게 존재할 수가 있는데?

       승패를 가리는 비무에 살검을 써야 그게 진심이 되나? 살초를 쓰지 않는 대련이라 하면 진심이 아니게 되나?

         

       지금까지 해 본 적이 없는 고민이었다.

       생각한다고 답이 나올 수가 없는 고민이도 했다.

         

       그러나, 청의 얼마 안 되는 장점이 있다.

       모르는 것을 굳이 혼자서 알려고 낑낑거리지 않으니 남에게 묻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습성이었다.

         

       큰 단점이기도 해서, 주변에 알려줄 사람이 없으면 그냥 나중에 물어봐야겠다고 넘겨버린다.

       그러다 까먹으니 무식함에 발전이 없다.

         

       어쨌든, 청은 그래서 물어보았다.

         

       “사부님, 무공이란 무엇일까요?”

         

       “……? 그걸 이제야?”

         

       서문수린이 깜짝 놀랐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자신의 검을 품고 산다. 서문수린이 검객이라 검으로 표현하지만, 저마다 무공을 정의하여 흉중에 곧게 빚어놓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인들은 저마다의 검을 들어 살아가는 의미를, 제 뜻을 세상에 그린다.

       그렇기에 공부, 무공인 것이다마는.

         

       이게 정녕, 절정 후기에 이른 고수가 할 질문이란 말인가.

       제 검조차 똑바로 그려내지 못하는 이가 감히 절정의 문턱을 넘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늦어도 한참이나 늦어버린 질문이었다.

         

       하지만 늦어서라도 구하고자 함은 참으로 다행이고 대견한 일이다.

       그리고 아직 한참이나 어린, 서문수린에게는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애기나 다름이 없었으니 그렇게까지 늦었나 싶기도 하고.

       슬슬 콩깍지가 두터워지는 서문수린이다.

         

       “백인백색 모두의 무공이 다른 것이니, 이 스승이 함부로 말해 네게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제자는 무엇을 위해 무공을 닦았단 말이더냐?”

         

       그러자 청이 고민하다 대답했다.

         

       “음. 살기 위해서요?”

          

       청의 무공은 살기 위한 수단이다.

       그리고 그것도 진행형이었다.

       절정 후기에 올랐을 때는 고수가 되었다고 기세가 등등했는데, 이게 웬걸 어디서 계속 초절정이 막 튀어나오고, 화경 고수도 심심치 않게 한 번씩 등장하지 않겠나.

         

       “그래. 낭인 출신이라 하였지.”

         

       서문수린이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가 이러하니 당연히 경지가 오르지 않는 것이 당연했구나. 이제라도 고민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쁘고 다행인 일이로다.”

         

       “음.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요?”

         

       “그럼. 중요하고 말고. 네게 있어서 무공이 무엇인지, 어째서 검을 쥐고 휘두르는지 명확히 세워두어야지. 똑바로 목표를 보고 가더라도 험한 길을, 눈 감고 걸어가고 있는 꼴이 아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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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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